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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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1.정치인과 정치 역량의 체화  2022년 9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단체교섭 대표로서 첫 연설을 했다. 필자는 유튜브를 통해 보고 들었다. 그는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서 많은 연설을 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연설을 했다. 내일이면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22년 3월 8일 청계 광장에서, 그는 운집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마지막 유세 연설을 했다. 동학혁명을 거론하면서 대동 세상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양극화로 현실화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바로 잡겠다는 그의 주장에는 ‘대동 사회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혁명의 정치 이념이 그 기초로 작동하고 있었음이다. ‘보국안민’과 ‘부정부패 일소’ 그리고 ‘배양배일’을 기치로 내세운 동학군들이 지향한 인민 중심의 평등한 세상의 건립과 외세 배격의 독립정신이 작동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정치의 비전을 마련해 갖추어야 한다. 그때 정치의 비전이 개개 국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제시하는 정치의 비전은 사회 역사적인 보편성을 지녀야 하고, 그래서 원리 원칙적인 이념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편적인 이념은 추상적이어서 자칫 현실이 갖는 실재성과 동떨어지기 쉽고 현실이 갖춘 그 실현 가능성과 괴리되기 쉽다. 그래서 정치의 비전은 분명 미래를 향한 것이나 철저하게 현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이때 현실은 그저 당면한 현재만을 시제로 한 것이 아니다. 현재는 항상 과거와 미래와 결합함으로써만 살아있는 시간으로 작동한다. 현재를 중심으로 한 공시성(共時性)과 과거와 미래를 관통한 통시성(通時性)이 두 축으로 작동함으로써 현실의 시간이 구성된다. 이러한 현실적 시간의 특성을 넓혀 사회 역사성이라고 한다.  정치의 비전이 미래를 향한 사회 역사성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할 때, 그 설정의 동력은 국가의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과 정치적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진정 인간이게끔 하는 근본 역량이다. 감각이나 정서 그리고 지성이 제대로 유의미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상력과 결합해야 한다. 상상력은 주어진 것을 모티브로 삼아 주어지지 않은 것을 꾸려내는 능력이다. 상상력이 현저하게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예술과 문학이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은 바로 정치다. 국가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상상력은 통치를 통해 국가 공동체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정치적 상상력이 부재한 자는 정치에서 항상 과거를 향한다. 과거는 이미 사실로 주어진 것으로 채워져 있기에 과거를 다루는 일에는 정치적 상상력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국가 공동체를 망치기 일쑤다. 미래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부재하고 당연히 모험과 도전을 멀리한다. 또 예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편하고 안정된 길이라 여겨 기존의 강한 세력에 들러붙는다. 무엇보다 공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무식하고 무능하게도 자신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 획득한 사적인 권력으로 여겨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존재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일에 활용한다. 그러니까, 정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통치자는 아예 정치인이 아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정치 모리배일 뿐이다.  국가 현실을 폭넓게 핵심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국가의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이 제대로 결합했을 때, 현실화 가능성이 강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체화되지 않고서는 자칫 공허한 이념의 발로에 그치고 만다. 필자로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국회 단체교섭 대표 연설에서 그러한 체화된 정치적 비전을 보았다. 그의 기본사회론이다. 출처- pixabay 2.기본사회론에 대한 하나의 해석  한 국가 공동체를 이끄는 보편적인 이념은 그 나라의 헌법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의 헌법 제10조다. 우리는 이 헌법 제10조를 정치를 통해 사회 역사적인 현실로 실현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공동의 권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헌법 제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국가 공동체의 이념을 현실로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진 자는 국민 자신이다. 이에 기반하여 대선 때 이재명 후보자는 “정치의 주체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원리적으로는 그 책임과 의무를 진 자는 국민 자신이지만, 실제로는 선출 과정을 통해 선택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행정을 통한 통치를 책임지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입법 활동으로써 통치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국회의원들이 바로 그러한 정치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원칙적으로,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국가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 또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실제에서 보면 그러한 정치인을 찾기는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 정도로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렵다. 그런데, 이번 대선 과정과 그 이후 전개된 정치 상황을 통해 그런 면모를 보이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얻게 되었다. 비록 0.73%라는 근소한 차로 대통령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우선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나아가 절대다수의 국회의원을 확보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그 이유는 기본사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서 드러난다.  첫째, 그는 “이제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서서 기본사회 30년을 새롭게 준비할 때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우선 그의 국가 공동체를 향한 비전에 대해 ‘기본사회’라는 명칭을 붙여 정립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정치 사회적인 담론의 얼개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얼개의 구축이 그저 일면적인 착상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현대사를 기반으로 향후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 축을 제시한 것이다. 한편으로 사회 사상가로서의 면모마저 보인다.  둘째, 그는 “소득, 주거, 금융,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 같은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가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1) 대선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에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이라는 네 항목을 보탠 것이다. 이 일곱 항목 중 소득과 금융을 뺀 다섯 항목은 국민 각자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섯 항목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오늘날의 기술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일자리를 통한 소득과 소득을 위한 편의를 도모하는 데 필요한 금융이다. 하지만 자유시장 제도의 자본주의적 경쟁에 맡겨서는 소득과 금융의 영역에서 뒤처져 인간 이하의 삶으로 전락하는 다수의 국민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책으로서 모두 일곱 항목의 기본 충족을 통한 기본사회의 건설을 역설한 것이다. (2) ‘사회 시스템의 전환’은 달리 말하면 사회 전체의 구조 개편이다. 기본사회의 구축과 영위가 다수이건 소수이건 개개인의 선의에 의존하고 악의를 막아내는 것으로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사회 체제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암암리에 이를 위해 국민 전체의 총의를 결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노동이 생산의 주역이 되는 것이 합당했던 사회제도는 기술이 생산의 주력이 되는 시대에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대전환을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앞서 말한 둘째의 (2)에 관한 근거를 제시하는 대목이다. 그는 21세기 세계 전체의 흐름의 대변화를 심중하게 파악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널리 통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노동의 시대에서 기술의 시대로 급격하고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를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사회제도의 대전환을 발상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일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혁명적인 정치의식이 평소의 신념으로 체화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실질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담보하는 논거와 주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진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넷째, 그는 “국민 여러분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자신이 제시하는 기본사회 정책 및 이론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본인이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오만하게 일방적으로 윽박지를 성격도 아니고 그럴 뜻이 전혀 없다는 다짐을 내보인다. 한편으로 국민 모두의 이른바 집단지성을 믿고 함께 공적으로 논의해서 국민 다수의 의지를 결집해 나가겠다는 뜻을 내보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리하여 최대한 물샐 틈 없이 계획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것이다.  다섯째, 이에 그는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미래 앞에는 여도 야도 그리고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불안과 절망이 최소화되는 기본사회를 향해서 함께 준비하고 나아갑시다.”라고 역설함으로써 기본사회의 건설이 국민 모두의 과업임을 강조하고 그 과업의 실행을 위한, 정치인들과 사회세력을 비롯한 국민 모두의 관심과 공동의 노력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이 정도로 이재명 대표가 역설하는 ‘기본사회’라는 대 정치 비전에 대한 필자의 소회를 밝힌다.   3.통감(痛感)  그런데, 작금의 정치 현실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추측건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당 대표인 이재명 씨가 제시한 ‘기본사회’에 관한 논의기구가 준비 중이거나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그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일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대통령 윤석열 씨의 통치가 각종 미필적 고의에 의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24%라는 전대미문의 열등한 국민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차라리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취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절망을 넘어 대통령이라는 자가 대다수 국민에게 아예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슨 의도에서인지 과거에 집착하여 절체절명의 국가 경제의 위기에 대해 겉치레 말로만 일관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이를 결단코 좌시할 수 없어 이를 비판적으로 타개하는 일에 집중한 탓에, 모처럼 자당의 대표가 제시한 정치적 비전에 관한 국민적인 여론을 독려하거나 형성할 수 있는 여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정치인 이재명 씨가 제시한 ‘기본사회를 향한 대개혁’이 민의의 동력을 얻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 경제의 위기, 대결로 치닫는 세계적인 신냉전이 복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의 전쟁 발발의 불안한 정세의 급습, 더불어 백척간두의 위험에 빠진 남북평화의 문제 등이 전격적이고도 시급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만이라도 심혈을 기울여 최대한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분투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22-10-05 | hrights | 조회: 734 | 추천: 3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감히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고 자신 있게 제목을 적었지만, 사실 아직은 나의 바람이고 희망 사항이다. 다만,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소소하지만 썩 괜찮은 움직임을 시작했음을 알리고 싶어 과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오랫동안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삶과 배움이 일치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아젠다로 부상하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다. 춘천도 행복교육지구사업이라는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청과 시청이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지역과 마을이 아이들을 돌보는 성장 배움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나도 몇 년 전부터 춘천의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청소년 본인들은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대입 경쟁을 위한 6년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시작했음을 당연시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미래의 희망이자 나라의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청소년들이 ‘입시생’ ‘수험생’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이 현실이 맞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중간지원조직으로 이 업무를 맡게 되면서 고민이 들었다. 숨 쉬는 것도 귀찮아하는 청소년들, 입시 준비에 24시간도 모자란 청소년들, 꿈도 희망도 생각해 볼 여유도 없는 청소년들.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명쾌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나 어른들의 환대나 보살핌, 지지 응원이 있었나 하는 물음이 들었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리와 얘들아 너희를 응원할게’하는 사업이 아닌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는 ‘맡겨놓은 카페’라는 청소년 환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처- 춘천 청소년들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https://ccycafesospeso.modoo.at/  춘천의 청소년들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인 ‘맡겨놓은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1930~1940년대 벌어졌던 ‘카페 소스페소(Cafe Sospeso)’ 운동에서 착안했다. 이 소스페소 운동은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로 형성된 이탈리아에서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약자, 노숙인들을 위해 조금 여유 있는 시민이 커피 한 잔 값을 미리 지불하고 그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나눔 캠페인이다. 춘천도 급격히 카페가 늘어 이 작은 소도시에 450여 개의 카페가 있고 이 공간을 청소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남는 시간에 우리 청소년들은 공원 벤치나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고 싶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갈 곳이 마땅히 없다. 무더운 여름날, 추운 겨울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용돈이 부족해도 편안히 몸을 쉬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한잔의 음료를 맡겨놓고 응원의 한마디 전해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춘천의 6개 중간지원기관들이 TF(사이사이)를 구성하고, 7월부터 시작해 세 달여가 지난 지금 그동안 자발적으로 동참한 카페가 28개, 시민들이 맡겨놓은 음료가 1300여 잔, 이용한 청소년들이 500명을 넘어섰다.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수치를 넘어 그 28개 카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동스럽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속속 들려온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카페 사장님들이 고맙고, 마음을 나눠주시는 시민들이 고맙고, 카페를 찾아준 청소년들이 고맙다. 우리 사회가 어떤 큰 정책이나 사업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누구나가 참여와 동참으로 성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준(격)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맡겨놓은 카페’가 단번에 청소년들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해법을 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춘천의 청소년들에게, 춘천의 어른들이 너희를 생각하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환대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는 일임은 틀림없다.  다시 꿈을 꾼다.  먼 훗날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누군지 모를 춘천의 어른이 맡겨놓은 음료 한잔 마시던 때를 생각하며 푸근해졌으면 좋겠다. 또, 제목처럼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환대와 지지, 응원의 한마디 말과 토닥토닥해주는 바로 옆의 선한 이웃 어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2-09-28 | hrights | 조회: 546 | 추천: 5
: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및 모든 주민들이 평등한 나라 홍미정(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모두 역사적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개종을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역사학 교수 슬로모 샌드는 서기 70년에 로마제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다는 것은 신화이며, 유럽 유대인들은 개종을 통해서 창출되었다고 주장한다. 2022년 8월 30일,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 지리학 교수이며 인구통계 전문가인 아르논 소퍼의 이스라엘군 라디오 인터뷰에 따르면, 계속된 외국 유대인 이주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은 전체인구의 47% 미만을 차지한다. □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계와 유대인 6세기 후반에 출생한 예언자 무함마드는 꾸라이시 부족의 하심가문 출신이다. 5세기 초에 홍해 연안 메카 지역과 히자즈 산악지역에 기반을 둔 키나나 부족에 속해 있던 쿠사이 빈 킬랍이 이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 친족들을 모아 메카와 카바를 지배하는 상업 중심의 꾸라이시 부족 연맹을 결성하였다. 이때 사람들이 쿠사이를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꾸라이시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꾸라이시 부족의 1대 수장이 되었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5대 선조다. 그 이전에 꾸라이시라고 불린 사람은 없었다고 알려졌다. 이때 메카는 나무라곤 거의 없는 황량한 산에 둘러싸인 골짜기에 발달한 상업 도시였지만,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 인도 등과의 교역이 성행했고, 다신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조로아스터교도, 하니프, 마즈닥교도, 마니교도 등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상업 중심지로 국제 무역의 통상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메카의 번영은 꾸라이시 부족의 상업 활동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오늘날 예멘 지역에 존재하던 힘야르 왕국(BC. 110–AD. 570)은 유대교로 개종하고, 기독교 국가인 악숨 왕국(AD. 1세기-960) 및 동로마 제국에 맞서 중앙 아라비아 정복을 추진하였다. 이 정복 전쟁 과정에서 힘야르 왕국은 메카의 다신교도 꾸라이시 부족과 동맹을 맺었다. 꾸라이시 부족장 쿠사이는 힘야르 왕국의 투바 아부 카립아사드 카밀왕의 명령으로 무너진 카바 신전을 재건하였다. 쿠사이는 카바 주변에 우물을 파고, 가옥을 건축하고, 유목민들을 정착시켰으며, 카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카바 신전의 제사를 장악하였다. 당시 카바 신전에는 다양한 부족들이 신봉하는 수백 개의 신상들이 있었다. 쿠사이의 뒤를 이어 꾸라이시 부족의 2대 수장이 된 쿠사이의 아들, 압드 마나프 빈 쿠사이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고조할아버지다. 메카에서 압드 마나프의 샴쌍둥이 아들인, 하심과 압드 샴스는 하심의 다리와 압드 샴스의 머리가 붙은 채로 태어났다. 아버지 압드 마나프가 이들을 칼로 분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압드 샴스는 우마이야 빈 압드 샴스의 아버지로 7세기 중반 우마이야 칼리파조를 세운 우마이야 가문의 선조가 되었고, 하심은 예언자 무함마드를 배출한 하심가문의 시조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증조할아버지다. 하심은 메카에서 꾸라이시 캐러반을 시작한 유능한 상인이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통치하의 예멘으로, 동로마 제국 통치하의 시리아로, 앙카라로 국제 무역을 하였으며, 일신교인 아브라함의 종교를 가졌다는 뜻으로 하니프라고 알려졌다. 하심은 매년 메카로부터 북방으로 약 340㎞에 위치한 야스립(메디나)을 지나갔고, 그곳에서 시장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야스립에 거주하는 카즈라즈 부족의 분파 낫자르 씨족의 살마 빈트 암르와 결혼하였다. 살마 역시 캐러반들과 거래를 하는 낫자르 씨족 내에서 명망이 있는 상인이었다. 하심은 야스립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집에 머물렀고, 살마가 임신했을 때, 시리아로 떠났다. 살마는 야스립에서 상업을 계속하면서 가족들과 가정을 지켰고, 하심과의 사이에서 낳은 사이바 빈 하심(예언자 무함마드의 할아버지)을 키웠다. 사이바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 하심은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무역 활동을 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야스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던 사이바는 삼촌 무딸립 빈 압드 마나프의 제안으로 야스립보다 부유한 상업 도시 메카로 이주하였다. 사이바가 삼촌 무딸립을 따라 메카로 들어가자, 메카 사람들이 사이바를 무딸립의 노예로 알고, 그의 이름을 압둘 무딸립으로 불렀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사이바보다 압둘 무딸립으로 더 흔하게 불렸다. 어느 날 압둘 무딸립은 카바 신전 주변 약 20m 떨어진 곳에서 잠잠 우물을 발견하였다. 이후, 압둘 무딸립은 잠잠 우물을 관리하며 메카를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권리를 획득하였고, 그의 아들 알 압바스가 이 권리를 이어받았다. 8세기 중반 알 압바스 가문의 후손들이 압바스 칼리파조를 개창하였다. 메카에서 압둘 무딸립은 유복자로 태어난 손자이며 훗날 예언자가 된 무함마드를 키웠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압둘 무딸립이 사망하였다. 이후에는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달라와 동복형제인 삼촌 아부 딸립이 자신의 아들 알리와 무함마드를 함께 키웠다. 캐러반을 이끌었던 아부 딸립은 하심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어린 시절 무함마드와 알리는 형제처럼 자랐고, 훗날 알리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남편이 되었으며, 시아파의 1대 이맘이 되었다. 622년 예언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야스립(메디나)으로 이주하면서 증조할머니 살마 가문인 낫자르 씨족과 함께 거주하였고, 이후 같은 장소에 예언자의 모스크가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623년 작성된 메디나 헌장은 사실상 낫자르 씨족의 유대인을 포함하는 메디나 거주 유대인들과 무슬림들과의 동맹을 명시한 문서다. 따라서 이주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거주지를 제공한 낫자르 씨족이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메디나에 거주하던 낫자르 씨족과 누세이바 씨족을 포함하는 더 큰 규모의 카즈라즈 부족 대부분은 이슬람교로 개종하였으며, 예언자 무함마드 사후 636년 시작된 예루살렘 정복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현재 낫자르 씨족과 누세이바 씨족은 예루살렘의 무슬림 명문 가문들이다. 특히 누세이바 가문은 예수 무덤 교회의 관리인으로 성묘 교회 정문 열쇠를 관리하고 있다. 성묘교회 관리인 와지흐 누세이바 □ 개종을 통해 형성된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2008년 9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인터뷰에서 슬로모 샌드는 “기원전 6세기에 일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추방당하지 않았고,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만이 바벨론으로 이주하도록 강요받았다. AD 70년에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동부 지중해에 어떤 지역으로부터 어떤 민족도 추방하지 않았다. 노예가 된 죄수들을 제외하고, 일반 유대 주민들은 두 번째 성전 파괴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땅에서 살았다. 4세기에 일부 예루살렘 주민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7세기 아랍 정복 이후 다수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일부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조상은 유대인이다. 예를 들면, 헤브론에는 유대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가문들이 있다. 헤브론에 거주하는 드웩 가문 중 일부가 14세기 이집트 맘룩 통치하에서 유대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드웩과 팔레스타인 무슬림 드웩은 조상이 같은 유대인 가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515년 오스만제국이 정복한 시리아 알레포 지역의 세파르디 유대인 야콥 사울 드웩 하코헨은 오스만제국 술탄이 임명한 시리아 알레포의 하캄바시(유대교 최고 랍비, 재임:1904~1908년)였다. 드웩은 세파르디 유대인 공동체 하캄바시 가문이다. 알레포의 하캄바시는 야콥 사울 드웩 하코헨 이전에도 사울 드웩 하코헨(1869–1874), 모세 하코헨(1880–1882), 아브라함 에즈라 드웩 하코헨(1883–1894) 등의 드웩 가문이 장악하였다. 그런데 1942~1947년 사이에 약 4,500명 정도의 시리아 및 레바논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1948년에는 시리아에 40,000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였다. 이들 중 1948~1961년에 약 5,000명의 시리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이때 알레포의 드웩 가문도 이스라엘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동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드웩 가문 출신 무슬림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필자가 2016년 『21세기 중동 바르게 읽기: 재설정되는 국경』을 출판할 때, 그림 4 작품을 제공한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명한 팔레스타인 무슬림 화가 탈렙 드웩,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고위급 지도자 아지즈 드웩 등 드웩 가문 출신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12월 8일, 미국 언론인 필립 웨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슬로모 샌드는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지 사이의 유대관계를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 땅에 대한 종교적 유대관계가 유대인에게 예루살렘 성지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지지한다. 그 이유는 성지에 대한 유대인의 역사적 권리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오늘날 존재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새로운 비극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주의는 존재할 권리를 갖는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슬로모 샌드는 2010년 출판된 『유대민족의 발명』을 저술하였다. 슬로모 샌드의 희망처럼, 이스라엘은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을 포함하는 주민들이 모두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누리며, 민주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2022-09-21 | hrights | 조회: 740 | 추천: 0
이윤/ 경찰관  얼마 전 ‘헌트’라는 영화를 봤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에 화려한 액션까지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정보기관의 고문 장면은 불편했다. 고문 묘사가 간략해서 그다지 잔인하지는 않았지만, 고문당하는 공포와 고통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했다. 교수, 대학생, 방산업체 사장, 심지어 정보기관 내 다른 부서 근무자도 고문 대상이었다. ‘저 사람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투서나 첩보 한 줄이면 누구라도 고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존재했던 80년대까지의 한국 현대사는 메카시즘이 만연한 야만의 시대였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부터 1년이 지난 후인 88년 1월, 몇몇 경찰대학 재학생 대표들은 경찰 중립화 선언 준비로 분주했다. 졸업한 1, 2, 3기 선배들과 함께 총동창회 명의로 「경찰 중립화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각 언론사에 배포하기로 하고 문안을 작성했다. 당시 과 대표로서 참석했던 나도 종로 어느 식당에서 선배들의 토론을 지켜보았다. 어리숙한 나는 허공에 날아다니는 문장을 따라잡기에도 숨이 찼다. 당시 선배들은 성명서가 보도되면 주동자와 참여자들이 잡혀갈 수도 있다며 그에 대한 대책을 고민했다. 나에겐 그 고민이 좀 생뚱맞았다. 그래도 경찰관인데, 민주 사회를 위한 의견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잡혀갈까 걱정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걱정을 이해하게 된 것은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 한 1기 선배님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였다. 그 선배님은 88년 총학생회 성명서 배포 며칠 전 이미 일부 언론사에 「경찰의 발전과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참회록」을 보냈다.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며칠간 조사받고 나왔다고 했다. 끌려갈 때는 어디로 무슨 이유로 간다는 아무런 설명 없이 눈이 가려진 채 차에 실려 갔다고 했다. 몇 대 맞기도 했고 온갖 욕설과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고 했다. 그 선배는 80년대를 성인으로 살며 시대의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었고 또 그 공포를 견디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입을 헤 벌리고 들으며 살갗에 돋는 소름을 느낄 뿐이었다.  ‘헌트’를 보면서 느낀 불편한 감정은 그때의 기억과 함께 내가 저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저 폭력을 견딜 수 있었을까. 저 자리에서 저런 고문을 받은 사람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죽을 수도 없는 무한한 고통의 굴레에서 얼마나 절망하였을까. 그래서 누군가는 고문 중에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풀려난 후에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스스로 끊었을 것이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공포와 절망의 깊이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사진 출처 - 영화 '헌트'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법을 사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이 고문 같은 비인간적인 행동을 못 하도록 국민의 약속인 법으로 정하고, 사회적 필요에 의해 체포, 구속, 압수 등 신체․재산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법이 정한 요건이 충족될 때, 법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나마도 최소한으로 하라는 것이 법치주의다. 대학생 시절 헌법과 형사소송법 교과서는 ‘적법절차’와 ‘무죄추정 원칙’,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을 지켜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원리와 원칙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던가 보다. 도서관에서 본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라는 책도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 많은 법학 교수님과 법조인들의 말과 글이 공허하고 무책임해 보였다.  아직도 지구별 어딘가에서는 고문과 사법 폭력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911테러 용의자로 구금되어 고문당했다는 증언이 최근에도 공개되었다. 실화에 기반한 ‘제로 다크 서티’라는 영화를 보면 CIA 요원들이 빈 라덴을 추적하기 위해 알 카에다 대원을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고문이 불가피할 경우 고문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한 철학적 딜레마다. 인류 문명은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우린 아직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만의 시대는 종식되어야 한다. 특히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특히 경찰이 야만의 첨병이 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더더욱 간절히 바란다. 법률 속 글자 몇 개와 시행령 속 문장 몇 줄을 걱정할 만큼 대한민국이 허약하지 않음을 믿는다.
2022-09-13 | hrights | 조회: 815 | 추천: 14
석미화/ 평화활동가  9월 2일 방송의날 축하연이 열리는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공영언론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보수단체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석자 대부분은 월남 참전군인이었다. 참전군인들이 왜 공영방송 관련 집회에서 사장 퇴진을 외치고 달걀을 던지게 되었을까. 그 배경은 응우옌티탄의 방한과 이에 맞춰 편성된 <KBS시사멘터리 추적> 8월 7일 방송분 ‘얼굴들, 학살과 기억’과 관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중부 퐁니퐁넛마을에서 일어난 한국군 청룡부대 민간인학살과 이 사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소송을 다루었다. 참전 관련 단체는 이를 편파방송으로 규정하고 참전군인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항의했다. 방송 열흘 후 월남참전전우회, 고엽제전우회, 무공수훈자회, 상이군경회 4개 참전 관련 단체가 KBS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KBS사장 면담과 사과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화형식과 삭발식, 국회까지 행진하면서 그들은 ‘우리는 양민을 학살하지 않았다’ ‘참전군인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  집회 다음 날 KBS 소수 노조는 ‘20년 전 알려진 논쟁 아이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총살사건을 1심 선고 전 방송한 까닭은?’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후 노조 위원장이 월남참전자회 회장을 찾아 KBS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총살’이나 ‘논쟁 아이템’ 등 사려 깊지 못한 용어의 표현에서와같이 이 입장은 베트남전쟁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공정’을 빙자한 선동의 언어와 편협한 이해 수준을 드러내고 있었다. 방송의 날 리셉션 행사장 앞 거리에 참전군인이 모이게 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집회에 참석한 한 참전군인은 “우파 노조 분들이 월남전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우리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라는 기대를 말했다고 한다. 보편적 인권개념에 반하거나 미달하는 노조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못 의문스럽다. 언제 한 번이라도 참전군인들의 고통과 절박함을 그들이 진지하게 접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자칫 그들이 긴 세월 겪어 온 아픔을 도리어 도구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지난 9월 2일 한국방송협회 주최 방송의날 축하연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앞에서 보수단체들의 공영언론 사장 퇴진 촉구 집회가 진행됐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며칠 뒤 국가보훈처는 <KBS 시사멘터리 추적> 프로그램 관련해 입장문을 냈다. 보훈처장이 국회에 출석해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역시 KBS가 편파방송으로 참전군인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이에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국가보훈처가 오래도록 참전군인의 ‘명예’를 지키기보다는 이러한 노력 자체를 망각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년 넘게 국가가 방관함으로써 일어난 갈등과 참전군인의 분노에 대한 책임 있는 입장을 내기는커녕 얕은 수준의 문제 인식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참전군인들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과 퐁니퐁넛 사건 재판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할 뿐 아니라 참전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투수당, 참전명예수당 등을 받는 일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참전군인 한 사람이 단체 누리집에 쓴 글이다. “이 문제가 잘못되어간다면 우리들 희망 사항인 전투수당, 참전명예수당, 이러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훗날 자손들에게도 부끄러운 조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전군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국가의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한 뒤 받아야 하는 대우가 전쟁의 진실 때문에 어그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아가 국가에 공헌했다고 해서 전쟁 때 행한 모든 행위가 정의일 수는 없는 일이다. 참전군인들 스스로가 걱정하듯이 그 부끄러움이 참전군인들의 몫만이 아니라 후대들의 몫으로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과 참전군인의 진심 어린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8월 초 익산에서 참전군인을 찾아다니고 있는 동안 응우옌티탄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익산에서 태어나 6.25를 겪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거나 노년을 보내고 있는 월남전 참전군인들의 기억을 들었다. 마을은 고요하고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저려왔다. 응우옌티탄의 눈물과 참전군인의 애환은, 실은 둘이 아니다. 오랫동안 피해자 가해자로 나누어 인식해온 사회적 관점이 둘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참전군인 32만여 명 중 5천여 명은 베트남에서 죽었고 살아 돌아온 이들도 이미 70대 중반과 80대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18만여 명 정도가 있다지만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이 없다. 이 둘을 이제라도 만나게 하려면 최소한의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다시 짐을 싼다. 참전군인 할아버지들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2022-09-07 | hrights | 조회: 563 | 추천: 3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네트워크 젠더고물상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었던 8일에 사무실 건물의 배수구가 막혀 물이 현관을 넘나들고 있어 건물 전체의 활동가들이 함께 배수구 청소를 하였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신림동에서 여성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반지하에 사는 40대 여성 두 명과 10대 여아였다. 70대 노모는 병원에 입원해서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10일에는 상도동 반지하주택에서 50대 여성이 침수로 사망했다. 역시 70대 노모는 다행히 참사를 피했다고 한다. 사망한 위의 40대 여성 한 명과 50대 여성은 발달장애인으로 이들을 돌보는 70대 노모와 함께 살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16일에는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이 꾸려졌고, 22일에는 ‘서울장애인부모연대’가 서울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출처 - 한겨레  ‘재난불평등추모행동’측은 8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회 앞에 일주일간 분양소를 마련하여 자연재해가 아닌 정부 정책의 부재로 인한 재난이라는 사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 기후로 인한 재난의 예방과 극복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시민들에 알리고자 하였다.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9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아, 주무시다 돌아가셨구나”,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를 하지 않았어요?”라고 한 발언과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의 장례 기간동안 대통령실이나 서울시장, 서울시 관계자, 여당 등에서 한 명도 문상하러 오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무시다 돌아가셨으니 다행이라는 건지, 침수 사실을 알고도 대피하지 않은 그분들이 잘못이라는 건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님이 틀림없다. 이번 침수사건을 계기로 침수가 누구에겐 불평거리로 끝나지만 누구에겐 생존의 문제임이 드러났다. 그 경계에는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예전에 강의안을 작성하면서 존 C.머터의 <재난 불평등>을 참고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자연재해가 재난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인간으로 인한 원인이 함께 작동한다고 보았다. 즉,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가 함께 결합 되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재해가 ‘파인만 경계(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의 양쪽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재난의 피해가 동등하지 않은 원인, 재난의 피해가 불평등하게 오는 원인을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고 못 박는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는, 재난은 자연적이다. (…)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재해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소외계층, 즉 빈민층, 장애인, 여성, 노인, 청소년 등등 취약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재난 불평등의 요소는 부, 장애여부, 나이, 권력, 성 등 사회적 불평등 요소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연재해는 한 사회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불평등한 현실을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참사는 기후 위기와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정책의 부재가 빚어낸 것이다. 문제는 이 두가지 원인 모두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을 변경하지 않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인간 행동의 결과이고, 반지하에서 참사를 당한 것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인간 행동의 결과이다. 나아가 재난마저 돈벌이 기회로 사용하기조차 한다.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에서, 재난은 ‘손해’가 아니라, 외려 복구 과정에서 사회적 ‘이익’을 산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가 3월에 발표한 ‘도시기본계획’에서는 부동산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고,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는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동산 규제를 풀면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익을 더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고,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는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이전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이들을 거주지에서 쫒아내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갈 곳은 또다시 고시촌이나 옥탑방 같은 곳으로 옮겨갈 뿐 근원적인 대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 이는 재난 복구과정에서 사회적 ‘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는 슘페터의 이론이 들어맞게 된다. 때문에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 더 고려할 것은 참사를 당한 발달장애인들을 돌보는 이들이 나이든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대게 돌봄 노동은 여성들의 몫이다. 여성들이 재해 상황에서 더 많은 피해를 당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도 돌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 노동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돌봄 노동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와 성 모두에서 취약 요소를 안고 있는 여성에게 재난은 더 가혹한 결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재난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재난 발생의 원인과 재난 발생 후의 대책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인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재의 결과는 사회적 불평등의 위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적 불평등이 양극화 될수록 재난 불평등도 양극화된다. 이번 참사에 대응하는 국가와 서울시의 안일하고 미봉적인 대처는 정치권력층이 양극화의 어느 쪽에 위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믿을 것은 양극화의 다른 편에 있는 이들의 연대와 대응뿐이다.
2022-08-31 | hrights | 조회: 712 | 추천: 0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늦은 밤, 전철을 타려던 내 발길이 잠시 멈칫거렸다. 승객이 별로 없는 전철 안에 기괴한 기운이 감돌았던 것이다. 불콰한 취객의 고성도 수군거리는 대화 소리도 없는, 이런저런 소리와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전철에 적막감이 감도는데, 그 느낌이 기괴했다. 코로나19로 말을 빼앗긴 사람들의 마스크를 쓴 표정 없는 얼굴은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의 암울한 도시 풍경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이 기괴한 적막을 깬 것은 서울역을 벗어나면서였다. 그전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서서 가는 사람이 별로 없던 전철 안의 사람들 눈길이 소리 나는 쪽으로 일시에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서른 중반의 두 남녀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요한 전철 안에 울림마저 느끼게 하는 대화 소리를 정작 두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못마땅한 눈길을 느낄 만도 한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대범하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고장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신경을 긁었다. 적막 속에 이어지는 말소리에 오히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그때였다. 전철 한쪽 끝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발소리를 쿵쿵 내며 흔들흔들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덩지가 아주 컸다. 사람들의 긴장한 눈길이 그 남자를 따라가는데 당사자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두 남녀 앞에 다가간 남자가 앉아 있는 남자의 코끝에 거칠게 손가락을 흔들며 소리쳤다. “마스크 써!”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지 앉아 있던 남자는 멀뚱히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마스크 써, 마스크 쓰라고!”라며 덩지 큰 남자가 우악스럽게 소리를 쳤다. 순간, 상황을 파악한 남자의 얼굴이 당황스러움과 수치심으로 발개졌다. 사과하고 끝내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고, 대거리하기에는 본인의 실수와 남자의 덩지가 만만치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를 대신해 옆에 앉은 여자가 남자의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입에 씌워 주고 자기도 마스크를 썼다. 그들의 행동에 만족했는지 덩지 큰 남자는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두세 역을 가지 않아 두 남녀는 다시 ‘턱스크’를 한 채 두런두런 대화를 하였다. 조용한 전철 안에서 그 말소리는 사이렌 소리 같았다. 덩지 큰 남자가 더욱 거칠고 험악한 몸짓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욕설 섞인 말로 “너, 마스크 써, 마스크 쓰라고, 왜 벗고 난리야!”라며 큰소리를 쳤다. 이번에도 옆에 있는 여자가 남자의 마스크를 슬그머니 코 위로 올려 주며 자신도 바르게 썼다. 남자는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덩지 큰 남자의 기세가 사나워지면서 사태가 커지려는 순간, 한 청년이 다가가서 덩지 큰 남자의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이분들 이제 마스크 쓰셨으니 됐잖아요! 아저씨도 그만하세요!”라며 달랬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야지~ 우이 씨~” “이제는 (마스크) 쓰셨으니~” 청년은 남자를 달래면서 두 남녀에게는 참으라는 몸짓을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사태는 그쯤에서 매듭지어졌다. 뭔가 뒤끝이 개운치는 않았지만, 덩지 큰 남자와 청년은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두 남녀는 분하기는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그다음 역에서 내렸다.  코로나19는 은연중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감정까지도 용인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초기,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우리는 초기 확진자를 향해 거침없이 손가락질을 하며 매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돌아보니 그때 우리한테 있던 절대 감정은 언제 전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따른 공포였다. 그 불안감에 따른 공포를 나는 전철 안에서 체감하였다. 그리고 그 공포감을 제압한 것은 폭력이었다.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알려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전철 안에 있던 우리는 그들 스스로가 대화를 멈추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눈치 없이 자신들만의 세상에 있었고, 이를 참지 못한 한 사람이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였다. 종료된 상황이 그저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덩지 큰 남자보다 먼저 “마스크 좀 써 주시겠어요!”라고 말하지 못한 걸 자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녁 뉴스를 들으며 상식보다는 권력이 우위에 있는 세상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면서, 공포를 제압하는 폭력이 이렇게 우리를 세뇌시키도록 놔두어도 되는 건지 하는 생각에, 코로나19를 살아가는 나를 되돌아보는 오늘이다.
2022-08-23 | hrights | 조회: 528 | 추천: 4
이재환/ 시흥시청 지역화폐팀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지역화폐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다.  발단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최근 국회 대정부 질의응답에서 시작됐다. 추 부총리는 “전국 지역화폐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대대적으로 지원한 데 대해 학계 등 전문가의 많은 지적이 있었고, 원점에서 실효성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광범위하게 지원하는 형태는 재고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 시흥화폐 시루  정부의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예산 축소는 올해부터 있었다. 정부는 2022년 국비 지원액을 2021년보다 5,000억 원 이상 적은 7,053억 원으로 편성했다. 그 결과 경기도의 경우 국비:도비:시비 지역화폐 인센티브 비율이 4:3:3 수준으로 편성되었다. 지난해는 8:1:1 수준이었다.  정부의 올해 급격한 지역화폐 지원 축소로 인해 각 지자체들은 매칭되는 지자체 부담 예산의 증가로 지속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인구수가 많아 발행량이 큰 광역시·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화폐 인센티브 축소 및 중단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 와중에 추 부총리의 발언이 나오자 곳곳에서 지역화폐가 내년부터는 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것이다.  사실 관계부터 톺아보자. 추 부총리의 재고 발언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효과성에 대한 학계 및 전문가들의 의문. 그 근거는 2020년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를 불러 온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화폐를 대신해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의 확대’를 대안으로 지목했다.  지역화폐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역외소비방지’이다. 서울·수도권으로 지역소비의 부가 몰리는 것을 막고 지역 내 소비로 돌려보자는 것이다. 서울·수도권에 본점이 몰려있는 대형마트,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대기업 직영점 및 프랜차이즈 등이 지역화폐 가맹점이 안 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지역화폐는 국가 전체적인 소비 증대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난맥상 중에 하나인 부의 서울·수도권 집중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다.  지역에서만 쓰게 한 지역화폐는 다음단계로 지역 내 소외된 소비처에서 순환시키자는 목적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대기업상권에서는 못쓰고 주로 골목상권에서만 쓰도록 지자체마다 가맹점 기준을 정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동안 별다방에 가던 소비자의 발길을 동네카페로 돌리려는 것이다. 대기업상권과 골목상권의 상생과 공존을 위함이다.  덧붙여 보고서는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를 몰리게 하는 문제라고 했지만 이는 지역화폐의 가맹점 기준을 감안하면 역설적으로 동네상권에서만 소비를 몰리게 하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가게)들은 지역화폐를 쓰지 못하는 가게보다 대체로 열악하다.  조세재정연구소의 해당 보고서가 나온 이후 지역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전가의 보도처럼 이 보고서의 내용이 인용된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과연 지역화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고 나온 보고서인지 의문이다. 이 보고서가 나온 이후 지역화폐 관련 다수의 논문이 나왔고, 대부분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 및 경제공동체 강화에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분석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가 제시한 대안이 온누리상품권이라는 부분에서는 더욱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의 전통시장과 상점가에서만 쓸 수 있게 만든 상품권이다. 지역화폐의 목적과 용도와는 전혀 다른 상품권을 대체재로 내놓았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 근거는 재정문제이다. 어떤 시각에서는 정치적 변화가 지역화폐 정부지원 축소의 배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 축소는 이미 4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2019년부터 정부는 기재부의 예비비로 4년 동안 한시적인 지원 예산을 마련했다. 그 기간이 올해 종료된 것이다. 그러니 2023년부터 새로운 틀에서 지원 방향을 모색해야 했고, 바뀐 정권의 긴축재정 정책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정부 지원 축소는 이미 예고된 미래였다.  앞서 말한 대로 정부는 올해 지역화폐 지원 국비 투입액을 7,053억원으로 편성했다. 내년도 정부 총 예산은 640조원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올해 지역화폐 국비 투입액만큼을 전액 삭감한다 해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역화폐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와 정책 효율성을 감안한 정책 방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정부 지원이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하더라도 지역화폐 정책이 일제히 일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자체가 발행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존폐는 지자체의 선택 여부에 달려있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지역화폐가 유지되거나, 더욱 발전하거나 반대로 복지비(정책수당)의 전달 수단에 머물거나, 아예 정책을 중단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확실한 사실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 민생위기 극복 차원에서 유지됐던 10% 할인/적립 인센티브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점이다.(지자체가 의지와 예산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면 예외이지만)  이 와중에 살아남을 지역화폐는 지역화폐의 도입 취지에 충실한 지자체의 지역화폐가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고, 역내로 유입된 소비가 고르게 배분되어 대기업 상권과 골목상권 자영업이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기 위함이 지역화폐의 목적이다.
2022-08-17 | hrights | 조회: 569 | 추천: 1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올해 7월의 어느 날, 드디어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에 다녀왔다. 지구 온난화로 매년 더워지고 있는 유럽 날씨. 에어컨 없이도 쾌적한 유럽의 여름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날 파리는 섭씨 40도에 가까운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메트로 트로카데로 역에 내리면 인간박물관이 있는 팔레드샤요(Palais de Chaillot)와 에펠탑이 바로 보인다. 팔레드샤요는 1937년 파리박람회장으로 세운 건물로 인간박물관은 양 날개처럼 펼쳐진 반원형 건물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바깥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유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박물관이건만 그날은 어찌나 더운지 냉방을 하는데도 실내가 더웠다. 인간박물관 전시실을 옮겨 다닐 때면 통창 너머로 에펠탑의 멋진 전경이 각도를 달리해 시야에 자꾸 들어왔다. 한여름 한낮 데워진 지면에서 열기가 피어올라 에펠탑이 아래로부터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시마저 들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  인간박물관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인간박물관은 영광과 오욕을 동시에 지닌 박물관이다. 초대 관장 인류학자 폴 리베(Paul Rivet)는 반파시즘과 반인종주의의 정신에 충실했고, 이본 오동(Yvonne Oddon)을 비롯한 박물관 소속 학자들은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에 저항하는 최초의 레지스탕스 조직을 결성했다. 리베와 오동에게 바치는 레지스탕스의 영광된 기억은 이 박물관의 ‘폴 리베 아트리움’과 ‘이본 오동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새겨져 있다. 한편, 인간박물관은 사르키 바트만(Saartjie Baartman)의 유해가 있던 곳이다. 해부되고 분해된 바트만의 몸이 유리병에 담기고 박제 표본이 되어 1970년대까지 전시되었던 곳이 바로 인간박물관이다. 바트만의 유해는 2002년 고향 남아프리카로 귀환했지만, 인간박물관이 식민박물관으로서 식민지 타자의 유해, 유골,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고, 지금도 일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박물관의 기원은 1882년에 문을 연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Musee d’Ethnographie du Trocadero)에 있다. 트로카데로인류학박물관은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과 아르 네그르(Art nègre)라 불리는 아프리카 미술을 모아둔 식민박물관이자 인류학 박물관이었다. 1937년 인간박물관이란 이름을 걸고 개관할 때는 인종주의 극복과 보편적 인류애를 내세웠다. 그러나 식민박물관의 유산을 탈피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더구나 2006년에는 소장 인류학 유물의 대부분을 새로 개관한 자크 시락-케브랑리미술관(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에 넘겨주게 되면서 인간박물관은 새로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박물관은 6년 동안 문을 닫고, 상설전시 개편을 단행해 2015년 10월 재개관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보고 있는 전시는 대규모 리뉴얼의 산물이다.  리뉴얼 기간과 코로나19 폐관 동안 기다리며 기대도 부풀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개편 이후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상설전시가 낡은 것이 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 우려는 절반씩만 맞았다. 먼저 인간박물관은 전혀 낡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박물관은 실체가 모호한 ‘인류’라는 허구의 개념에 매달리는 대신, 피와 살을 지닌 구체적인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 때문에 이 박물관의 우리말 번역어도 ‘인류박물관’이 아니라 ‘인간박물관’이 되어야 옳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 전시실은 각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인간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혹자는 이 박물관이 지나치게 생물학에 치우쳐 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형질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을 통합적으로 적용해 생물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고 전시한 것이 장점으로 보였다.  인간의 미래 전시실 마지막 케이스에는 안경, 얼굴 부상 성형, 임플란트, 미용 성형, 인공보철 팔과 다리 등 다양한 인공보철이 걸려 있었다. 인공보철이라고 하면 SF에 나오는 수퍼 히어로나 사이보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시가 보여주듯이 손상으로 해를 입은 육체를 보완하는 보철은 인간 역사 이래 계속 존재해 왔다. 보철은 질병과 장애에 인간이 대처해온 긴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다. 보철은 미래를 말하는 동시에 미래를 장밋빛 판타지로 상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생각거리다. 인간 육체의 한계를 한방에 극복할 ‘마법의 알약’ 같은 건 존재할 리 없고, 우리는 아프고 다치고 부러진 데를 어루만지고 꿰매고 덧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미래를 보철로써 말하는 전시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존엄을 동시에 일깨우는 울림을 전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보철/부분확대)  인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인류학 박물관으로서 인간박물관의 또 다른 미덕은 고인류학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인류 아프리카 기원설을 구체적 유물로 전시하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으로 아프리카를 인류의 요람으로 정확히 자리매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종적 다양성에 관한 전시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피부색과 안면 골격이 다양한 인간의 흉상을 1층과 2층을 연결해 수직적으로 배치해 놓은 전시는 언뜻 보았을 때 피부색 차이를 정면으로 드러내며 인간 다양성을 찬미하는 전시로 보였다. 하지만 설명문을 읽어보고는 긍정적 평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인 흉상은 이름 없이 ‘전형’으로 전시된 반면 눈을 감고 있는 비유럽인 흉상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유럽인 흉상은 인간전시를 위해 프랑스에 왔던 아메리카 인디언, 애보리진, 태즈메이니아인, 그린란드인, 무어인, 아랍인, 수단인의 실제 얼굴을 본떠 제작됐기 때문이다. 전시 설명문에 비유럽인 흉상의 주인공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프랑스에 오게 된 연유를 적고, 그들을 부당하게 ‘열등한’ 인종으로 낙인찍는데 동원된 도구인 두개계측기(cephalic index)를 나란히 놓고 과거 골상학과 인종주의를 반성한다고 해서 이 전시를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평자가 혹평하듯이, 과거 ‘호기심의 방’에 놓였을 유물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재활용한 것에 불과한 것 1) 은 아닐까? 인간 다양성을 전시하는 대안적 방식은 무엇일까? 출처 - 저자 촬영 (인간유형흉상전시와 두 개계측기)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박물관 전시의 문제점은 더 눈에 들어온다. ‘여성은 육체, 남성은 정신’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는 곳이 여럿 보였다. 첫 전시실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작점에는 젊은 여성과 노인 남성의 두상이 있고, 그 옆의 버튼을 누르면 오디오 설명이 나오는 장치가 있었다. 인간의 육체적 형질과 특성에 대한 설명은 여성이 하는 반면, 생각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는 남성 노인이 “자, 내 주름을 만져보렴”이라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21세기 전시로서 너무 낡은 사고방식이라 지적하면 속 좁은 반응인가? 또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전시하면서 출생과 양육에서 여성의 역할을 전통적 생물학적 성별분업에 고정해 제시한 것, 미래의 사이보그 인간을 굳이 임신한 여성으로 재현한 것도 상식에 기댄 게으른 설정이었다. 이외에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당면한 현실이자 지향으로 제시하면서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결코 평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거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교류 증대를 식민주의의 극복과 안이하게 연결 짓는 점도 취약한 부분이었다. 출처 - 저자 촬영 (인공적 세계의 확장: 오디오 전시 임신한 여성)  반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한 박물관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박물관은 적어도 내가 본 인류학 박물관 가운데는 앞줄에 놓일만한 박물관이다. 프랑스의 박물관들은 대체로 프랑스어에 능숙하지 않은 관람자에게 불친절하다. 영어 가이드가 소략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인간박물관은 영어와 스페인어 오디오 가이드를 잘 갖춰놓았고, 설명 내용도 깊이 있고 훌륭하다. 관람 시에는 오디오 가이드 앱 다운로드를 추천한다. 1) Herman Lebovics and Gilles Boëtsch, “Biology and Culture at the reinvented Musée de l'Homme,” French Cultural Studies, Vol. 29(2), 2018, p. 105.
2022-08-11 | hrights | 조회: 1351 | 추천: 1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들뢰즈(Gille Deleuze, 1925∼1995)를 알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대통령 윤석열 씨가 혹시 들뢰즈라는 현대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한다거나, 심지어 한 걸음 더 나아가 ‘리좀’이란 말을 한 철학자 아니요? 하는 말을 한다거나 하면, 나로서는 깜짝 놀란 나머지 그의 취임 80일에 28%라는 국민의 지지율이 혹시 조작된 것 아닐까, 하고서 의심하는 잘못을 범할지도 모른다. 설사 언감생심일지언정, 마음 한쪽에서는 우리의 대통령인 그가 이처럼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인문 · 철학을 가까이하는 정치가였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들뢰즈가 그의 학문적 절친인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1930〜1992)와 함께 쓴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있다. 철학 영역에서는 워낙 유명한 책이다. 이 책 맨 앞에 약 30쪽 분량의 '서설: 리좀'이란 글이 실려 있다. 두 달 전쯤에 나는 <철학아카데미>에서 이 글에 관해 2시간씩 네 번에 걸쳐 강해를 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윤재은  ‘리좀’(rhizome)은 감자와 같은 ‘땅속줄기’인데 본래 생물학에서 식물을 분류하는 개념이다. 나무는 ‘주축 뿌리’ 식물이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지구를 뒤덮고 있는 풀은 대체로 리좀의 구조를 갖고 생장하고 확산한다. 예를 들어, 잔디는 땅 밑에 뿌리들이 중심이 없이 엄청 복잡하게 얽혀 사방으로 넓게 퍼져 있어서 한 부분을 떼 내려면 가위를 써서 잘라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뿌리가 동등하게 수평으로 한껏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식물이 리좀 식물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들의 탁월한 창의적인 사유 능력을 발휘해 이 ‘리좀’이란 생물학적인 개념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둔갑시켜 활용한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사유와 표현과 실천의 방식, 일상에 밴 욕망과 습관의 방식, 나와 나 아닌 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맺기의 방식, 권력에 관련한 사회나 국가의 구성 형태, 사회 혁명을 위한 저항의 형태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사유방식과 이에 따른 실천의 방식을 크게 나무의 구조를 반영한 수목형(樹木型)과 풀의 리좀 구조를 반영한 리좀형으로 나눈다. 2.  나무는 땅 위의 중심 둥치와 흙 밑의 주된 중심 뿌리가 있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는 대체로 중심 둥치가 위로 두 개로 나뉘고 그 두 개의 가지가 또 각각 두 개로 나뉘면서 위로 자란다. 이러한 나무의 구조를 반영한 사유방식을 ‘이항 논리’ 또는 ‘이분법’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세상과 온 우주에는 인간들과 동식물을 비롯한 온갖 것들이 무한할 정도로 많다. 수목형 사유는 이 모든 존재자가 하나의 근원에서 생겨나 갈래져 변화 · 운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지닌다. 그리고 그 근원인 하나에서 둘이 갈래져 나오고, 그 둘 각각에서 또 둘이 갈래져 나온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 이원법적인 수목형의 사유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이해하기 쉽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정신과 물질, 리(理)와 기(氣), 무한과 유한, 존재와 무, 참과 거짓, 추상과 구체, 본질과 현상, 주체와 대상, 이성과 본능, 사유와 행동, 이론과 실천, 실재와 가상,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주인과 노예 등, 서로 대립하면서 쌍을 이루는 두 항이 있고, 이 두 항이 서로에 의존해서 작용하면서 만물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꾸로 만물의 변화와 운동을 이러한 각종 두 항의 모순과 대립을 원리로 삼고 이 원리에 환원함으로써 설명하고자 한다. 이분법의 원리는 아주 편리한, 인류가 고안해 낸 너무나 오래된 사유의 장치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유는 우리가 자연을 필연적인 환경으로 삼아 그 속에서 사는 데서 출발한다. 환경을 잘 알아 잘 이용 또는 역이용해야만 생명을 잘 가꾸고 유지할 수 있고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하늘과 땅이 있고, 해와 달이 있고, 낮과 밤이 있고, 밀물과 썰물이 있고, 암컷과 수컷이 있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수시로 변하는 것이 있다. 늘 죽은 것이 있고, 산 것이 있다. 움직이는 생물이 있고, 움직이지 않는 생물이 있다. 강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다. 뜨거운 것이 있고, 찬 것이 있다.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이같이 두 가지로 뚜렷이 나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만약 그 두 가지 각각의 항이 지닌 고유한 성질과 성격 등을 제대로 알아 구분할 줄 모른다면 목숨을 유지할 수도 없고 자손을 퍼뜨릴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분법적인 원리를 고안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연환경에 대해 예측하고 방비책을 미리 마련해서 우환과 불행을 막아내고자 했던 셈이다.  그런데 인류의 사유 능력이 점점 발달한다. 생각해서 보고 듣고 만지고 하니까 생각하지 않고 그럴 때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듣고 만지게 되고 그 경험적인 지각의 효력을 더 많이 더 잘 활용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가 생겨났다. 사유 능력이 발달할수록 아는 것이 더 많아지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모르는 것도 더 많아졌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 채 그냥 놔둘 수 없는 호기심과 이를 어떻게든 설명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달했다. 그리하여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 신화다. 그리고 신화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모듬살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나쁜 일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끌어들이려는 행위가 주술이다. 신화는 모든 일이 신들 말하자면 귀신들의 힘과 의지에 따라 생겨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술의 기본은 신들을 기분 좋게 해서 그들의 분노를 잠재워 일어난 불행은 되돌리고 일어날 불행은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주술을 집행하는 자는 신들과 교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고, 신들의 말을 인간들에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샤먼이 생겨나고, 사제 계급이 생겨나고, 주술이 체계화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절대로 벌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행동 규범이 만들어진다. 제례와 행동에 관한 교리를 갖춤으로써 체계적인 종교가 생겨나 자리를 잡게 된다.  각 부족은 각기 그들 나름의 신들을 창안해서 믿고 후대에 전한다. 역사가 흐르면서 그 신들을 무조건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종교적인 관념과 그에 따른 관습과 도덕이 생겨나 굳건해진다. 신들과 종교의 힘을 장악한 특정한 인간 또는 사제들이 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부족을 이끄는 통치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부족들을 만나보니 자기 부족과는 다른 신들을 믿고 있다. 부족들 간의 투쟁과 전투는 곧 서로 다른 신들 간의 전투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패배한 부족의 신은 가짜 신이 되고, 승리한 부족의 신은 진짜 신이 된다. 이 과정이 오래 진행되면서 생산력이 발전하여 부족국가 내지는 도시국가를 형성하게 되니 그에 따른 수호신이 등장하게 된다.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하면서 더 많은 전쟁과 전투를 통해 더 큰 나라, 이른바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제국의 수호신은 단 하나의 신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하위의 신들은 모두 가짜 신 즉 우상 신으로 인식되어 제거된다. 그리하여 유일신 사상이 만들어진다. 이제 만물은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유일신이 힘을 발휘하여 자연의 일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사의 모든 일을 일으켜 생겨나게 하고 억눌러 사라지게 한다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유일신에 의한 창조 사상과 섭리의 사상이 생겨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수십억의 사람들이 유일신을 믿고 있다.  유일신은 단 하나의 영원한 절대자로서 우뚝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일신이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존재로서 그 본질과 활동을 제한하는 일체의 경계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유일신은 무한자로 등극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일신은 영원한 자, 무한자, 절대자, 전지전능한 자로 정확하게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종교에서의 유일신이 철학으로 넘어와 ‘일자’(一者, the One)로 개념화된다. 그리고 일자가 만물 · 만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여겨지고, 이 일자가 다시 종교와 결합하여 일자인 신은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 그 명령을 어기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는 벌을 가하고 지켜 실현하는 사람 또는 집단에게는 복을 내리는 자로 정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일자인 신의 힘은 천사와 악마라는 두 대립적인 존재의 힘으로 분화된다. 천사는 천사대로, 악마는 악마대로 계속 분화되어 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 조직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장구한 역사의 과정을 거쳐 이러한 일자를 정점으로 한 위계 조직에 따라 자신들의 욕망과 사유, 습관과 신념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형성하여 대를 이어 계승한다. 이에 지상에서 이렇게 위계적으로 습관화된 욕망을 지닌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치하려 하는 자는 당연히 일자를 정점으로 한 위계 조직을 구성하여 강화하고, 이를 철저하게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이 위계 조직 전체가 유기적으로 한 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통일된 몸으로 이데올로기화된다. 개개인의 위계 조직에 따른 욕망을 역용하여 지배하는 데는 위계 조직으로 된 통치가 가장 효과적이고 유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위계적인 집단 조직의 형태는 사회 곳곳에 아형(亞型)들을 만들어낸다. 이 아형들은 왕과 황제 그리고 교황 등은 물론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에서의 아버지, 회사에서의 사장 또는 회장, 민주적인 정부 조직에서의 대통령, 심지어 혁명에서의 최고 지도자 등의 우두머리를 정점에 내세운다. 그 우두머리들의 권력은 우두머리 쪽으로 올라가 가까울수록 소수의 사람에게 강하게, 아래로 내려가 멀수록 다수의 사람에게 약하게 분화되면서 퍼진다. 그리하여 권력의 강약에 따른 상명하복의 질서가 형성된다. 상명하복의 질서에 따른 집단 조직은 그렇지 못한 집단 조직보다 더욱 결집한 위력으로써 높은 사회적 생산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검증 과정을 거쳐 가장 효율적이라 여겨진 탓에 전체적으로 거대한 위계 조직의 체계 즉 거대한 관료제가 형성된다. 상명하복이 행동 지침으로 통용되고, 삼각형 사다리 형태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가 중간을 거쳐 아래에까지 관철된다.  이를 극단적으로 구현한 것이 파시즘적인 독재 통치의 구조다. 인민들에 대해 이른바 ‘내 안의 파시즘’을 운운하는 것은 인민들이 일자 정점의 이 위계 조직을 대대로 받아들여 무의식적인 욕망의 구조로 삼음으로써 그러한 지배 · 피지배의 사다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사회정치 철학자인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사회정치적인 권력 관계가 사람들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 내면화하는 것을 보고서 ‘미시권력의 그물망’이라는 개념과 ‘생체 권력’이란 개념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일자 정점의 위계적인 권력의 구조를 지탱하는 이러한 내 안의 파시즘적인 욕망을 고발했다.  자본주의 사회 경제 체제는 일자 정점의 위계에 따른 내 안의 무의식적인 파시즘적 욕망의 구조적인 형태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이제 일자 정점의 자리에는 자본이 차지한다. 자본은 외부가 없는 무한한 신과 동형이다. 자본은 노동자건 자본가건, 물질이건 정신이건, 자연이건 문화건, 시장이건 국가건, 법이건 도덕이건, 집단이건 개인이건 상관없이 그 모든 다양하고 특정한 이질성을 저 자신의 맹목적인 양적 동질성으로 바꾸어내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 세상에 돈 좋아하지 않는 놈이 누가 있어!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생각을 왜 해!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잖아! 그리하여 돈은 신적인 자본이 인간에게 내리는 절대적인 명령인 계시처럼 작동한다.  3.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하는 리좀형 사유 및 실천 그리고 그에 따른 욕망은 이제까지 설명한 수목형 사유 및 실천 그리고 그에 따른 무의식적 욕망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정점의 ‘일자’인 그 ‘머리’를 단칼에 베어 버리는 것이다. 그 정점의 일자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그 아래의 위계적인 몸으로부터 절단함으로써 몸의 위계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의 능력을 배, 가슴, 머리라는 인체의 구조에 빗댄다. 배는 무질서한 욕망에 해당하고, 가슴은 행동을 이끄는 의지에 해당하고, 머리는 삶을 최고의 선으로 이끄는 이성적인 지혜에 해당한다. 당연히 머리가 온몸에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배와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욕망과 의지를 제압하여 지혜에 따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세우는 철인(哲人) 정치는 지혜롭기 이를 데 없는 철학자를 우두머리로 삼아 귀족들과 인민들을 다스리도록 하는 체제다. 이는 가톨릭교회에서 교황과 사제들 그리고 일반 신도들이 교회라고 하는 큰 몸을 이루는 구조와 닮았고, 또 북한에서 내세웠던 주체사상에서 수령을 정점으로 한 당과 인민들의 조화를 내세운 것과 닮았다.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서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사 동일체 원칙과 닮았다.  정점의 우두머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하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하나’에 대해 엄청난 실천철학적인 적개심을 지닌다. 이에 대해 그들은 이론의 구성을 위해 다소 어려운 수학적인 용어를 활용해 ‘n-1’의 사유와 실천 및 욕망의 발휘 방식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n은 존재하는 일체의 것들을 추상화해서 일반적으로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1은 n에 해당하는 일체의 것들을 한 손에 거머쥔 정점의 일자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일체의 것들은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카오스 상태를 이루지 않는다. 그 나름으로 일정하게 배치 상태를 이룬다. 그 구성적인 형태와 상관없이, 가족이건 사회건 국가건 근본적으로는 원리상 이러한 성격을 지닌 하나의 배치 장치다.  그런데 이러한 배치 관계에서 만약 정점의 일자(우두머리) 즉 1을 인정해 꼭대기에 놓게 되면, 그 바깥으로 아무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닫힌 위계의 배치가 이루어진다.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 또는 국민의 경우, 각자는 정해진 자리를 지켜야 하고, 그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위에서부터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에 각자는 자신의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다양하게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지배적이면서 피-지배적인 상대적인 위치에 갇혀 명시적이거나 암시적으로 아래를 향해서는 일방적으로 억압하면서 위를 향해서는 일방적으로 굴종하는 일에 길든다.  인민 모두가 타고난 권리에 따라 각자 나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으려면, 이같이 정점의 일자를 중심으로 한 수목형의 수직적 위계 조직을 해체 ·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들뢰즈와 가타리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n-1 즉 n에서 1을 빼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n-1의 원리를 투쟁의 전략이자 대안으로 삼는 것이 리좀형 사유와 실천의 방식이고, 그에 따른 사회 구성의 방식이다.  리좀은 중심이 없다. 리좀은 통일성 대신에 다양성을 띤다. 리좀은 시작점과 끝점이 없다. 시작점에서 끝점은 한없이 멀 뿐만 아니라, 그래서 철저히 배타적인 이원성을 띠게 된다. 리좀은 항상 중간과 사이에서 힘을 발휘하여 확산한다. 중간과 사이는 시작점과 끝점이라는 대립적인 두 끝을 섞은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그 두 끝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성립한다. 중간은 정점의 일자에서 비롯되는 보편성이 아니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들을 두루 인정한다는 데서 성립하는 보편성을 지닌다. 리좀은 정확한 질서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전혀 질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리좀은 ‘카오스모스’(chaosmos), 즉 코스모스 쪽에서 보면 카오스이면서 카오스 쪽에서 보면 코스모스인 상태를 이룬다.  리좀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무한정한 방식으로 다른 구성 요소들과 연결되지만, 그 연결은 고정되지 않은 접속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기존의 접속을 버리고 새로운 접속을 이룰 수 있다. 연결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리좀은 창조적인 생산의 장(場)이 된다. 리좀은 수직선을 형성하지 않고 수평면을 형성한다. 사회 구조에서 보면, 리좀은 파시즘적인 기미를 보이는 그 어떤 형태의 관료적인 위계 조직이라 할지라도 아예 허용치 않는다. 리좀은 워낙 탈중심적이다. 그리하여 인민들 각자가 서로를 매개로 해서 자발성을 발휘하고, 또 자발성을 발휘함으로써 서로에게 매개로 작동한다. 각자는 나 홀로 우뚝 솟아 만물을 지배하는 중심을 지향하는 주체성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을 더 많이 매개로 삼으면 삼을수록 소멸할 정도로 더욱 확산해 나가는, 말하자면 인민적인 주체성을 확보한다. 그리하여 인민들은 더 많은 매개를 통함으로써 성립하는 생명의 강렬함과 높은 밀도를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4.  세상이 순식간에 잔인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여 지속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해서 세계의 주요 지점에서 헤게모니 즉 누가 어느 나라가 정점으로서의 일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갈수록 적대적인 기세 싸움의 기미가 강화된다. 헤게모니 장악을 둘러싼 이항 대립의 중심 국가는 물론 미국과 중국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이항 대립의 전선이 강화되는 중이다.  지난 30여 년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은 인류의 욕망과 사유와 행위를 위계적인 수목형에서 수평적인 리좀형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사회문화적인 영역을 비롯한 경제적인 영역이 다양성과 열림에 따른 자유롭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 가운데, 군사 외교의 영역에서는 치열한 적대적인 대립이 지속했지만 으르렁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발톱을 일으켜 물어뜯기도 하고 덤벼들기도 한다. 노골적으로 핵전쟁 운운하기까지 하는 위기가 노현되고 있다. 정점의 일자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파시즘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촌의 시계가 20세기 초의 상황을 향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 와중에 우리네의 정치가 하필이면 그야말로 일자 정점의 위계 조직적 동일체를 강조하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들어서서 남북 간의 극적인 대립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활하고 있는 제국주의적인 세계 냉전의 구도를 아무런 성찰 없이 수용하면서 뒤따르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집단 지성이 리좀적 사유와 실천을 무기로 삼아 일방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자 정점의 수목형 수직적 위계의 도래를 미연에 방지하는 쪽으로 결집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우두머리들이 그러잖아도 기후 위기로 절체절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지구촌을 향해 리좀적 사유와 실천의 긴급한 필요성을 절감하기 바란다.
2022-08-03 | hrights | 조회: 2104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