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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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강대중(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도재형(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동호(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동우(변호사),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장은주(영산대학교 성심교양대학 교수),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출처 - 셔터스톡   근 3년간의 코로나19 시국 이후 이곳저곳에서 내놓는 경제 전망은 음울하다. 지난 2월 KDB산업은행의 2023년 국내 물가 및 고용 전망에 따르면, 국내경제는 글로벌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 환경 하에서 소비·수출 둔화와 투자 위축으로 1.9%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소비는 소비심리 악화 지속과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가계의 실질 구매력약화로 2.3%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물가는 민간소비 감소와 기저효과 등의 영향으로 상승폭은 축소되겠으나, 물가안정목표를 상회하는 3.4%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은 수출 부진 및 민간소비 위축으로 고용 여건이 악화되고 전년도 증가의 기저효과로 취업자 수 증가가 제한되어 실업률은 3.2% 수준으로 전망된다. 민생과 직결되는 물가는 2022년 대비 상승세가 완화될 것으로 예측되나 여전히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며 고금리현상과 관련하여 소비심리를 위축할 가능성이 크므로, 관련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목했다. 아울러, 소비의 위축은 기업의 생산량․수익 감소, 고용률 저하, 구조조정 등 경기침체와 실업사태를 유발 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긴급복지정책과 고용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 관련기관의 예측 이전에 현장의 우려는 더 직접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예술․스포츠․여가 관련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소상공인 경영환경 전망 및 경영애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2023년 경영환경이 올해보다 어두울 것으로 내다봤다. 경영환경이 2022년보다 올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 소상공인은 56.0%였으며, 다소 악화 47.7%, 매우 악화 8.3%로 순으로 집계됐다. 악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고물가에 따른 원가 상승과 수익 감소(52.4%), 기준금리 인상 등에 따른 대출상환 부담 증가(38.7%), 온라인·디지털화 등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대한 대응능력 부족(8.9%) 등이 꼽혔다. 경영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한 소상공인은 10.3%에 불과했으며, 다소 개선 10.0%, 매우 개선 0.3%로 조사됐다. 개선 기대 요인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및 코로나19 종식에 대한 전망(77.4%), 새 정부의 다양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책 도입(12.9%), 향후 고금리․고물가 추세 완화에 따른 경영비용 감소(9.7%) 등 순이었다. 장황하게 경제 분석 및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었지만, 요약하자면 코로나19 이후 고금리, 고물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며 물가는 오르고 소비는 위축, 후속 여파로 고용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경제는 심리라고 하는데 경제 주체들의 위축 심리가 큰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이처럼 경기침체라는 해일이 눈앞에 닥치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적 대안이 추진되고 있는지 경제주체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지역화폐는 1930년대 초 오스트리아 티롤(Tyrol)의 뵈르글(Worgl) 마을에서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자가 증대하자 마을회의를 거쳐 지역 저축은행 차입금을 담보로 지역일자리에 대한 보상으로 법정화폐 임금대신 ‘노동증명서’ 형태의 지역화폐를 지급한 것으로 시초로 본다. 또 1980년대 초 오일쇼크로 인해 북아메리카 지역의 경제 불황이 극심해진 시기,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주 코목스 벨리(Comox Valley)에서 최초의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가 사용되었으며, 이 ‘렛츠’ 지역화폐는 근대적 지역화폐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지역화폐는 경제 불황기에 그 빛을 발휘하게 된다. 경기불황과 소비위축이 반복되며 돈이 풀리지 않을 때 축적(이자) 없이 교환에 중점을 두고 소비 활성화를 목적으로 효과를 본 것이 지역화폐이기 때문이다. 돈이 안돌면 돌게 만들자! 지역화폐 시루와 텅빈 상권   일각에서는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면 인플레이션에 의한 화폐가치 하락 등을 우려하지만, 한 해 유동성 현금이 수 천조 원 돌고 있는 현실에서 지난해 불과 27조 원이 돌았던 지역화폐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것은 과대망상에 가깝다. 무엇보다 국내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1대 1로 연동(태환)되는 보완화폐로 지자체가 마구 찍어내는 돈이 아니다. 인센티브 분을 제외하고 화폐가치의 하락을 이끌 개연성이 없다. 지역화폐가 소비를 촉진하고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한 것도 문제다. 이를테면 난방비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상에 대한 지원을 강구하면서 지역화폐 할인율 또는 캐쉬백을 대폭 상향하는 것은 정책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지역화폐는 현금으로만 구매가 가능해 난방비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상자들보다 현금 구매능력이 높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집중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역화폐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타개할 하나의 도구로 그 쓰임새를 역사에서 검증 받아왔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지역화폐를 통해 오롯이 민생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지혜를 모으길 희망한다.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웹진 #박상경 #코로나 #경제 #지역화폐
2023-03-14 | hrights | 조회: 625 | 추천: 3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출처 - YTN뉴스 1.  국민학교(오래 전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4학년 교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우리는 시험을 보고 있었다. 시험문제를 푸느라 조용한 교실에는 난로에서 타닥 타다닥 탁, 나무 타는 소리만 들렸다. 난로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나는 뜨거운 난롯불로 벌게진 얼굴을 돌리느라 잠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아이가 지금은 학습 참고서인 전과(책)을 넘기며 양옆에 있는 아이들한테 무엇인가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아이들 바로 앞에는 선생님의 책상에서 선생님이 책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 책을 보던 선생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일어나서 “ㅇㅇ이 전과를 보면서 시험을 봅니다. 그리고 ㅇㅇ과 ㅇㅇ한테 알려줍니다.” 하고 말하였다. 순간, 교실 안이 잠시 술렁이는 듯하더니 이내 적막감이 흘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내 얼굴과 선생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고, 얼굴빛이 차가워진,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하던 선생님이 나한테 “네가 봤냐?”고 물었다. 내가 “봤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앞의 아이들에게 “네가 정말 그랬냐?”라고 물었다. 그 아이가 들릴 듯 말 듯 한 조그만 소리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얘가 아니라고 한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나한테도 그 아이들한테도 더 이상 확인을 하거나 책망 같은 것은 없었다. 사실 전과를 보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 양옆에 앉은 아이들은 반장과 부반장이었고 부잣집 딸이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짝꿍으로 엮어 자신과 가까운 맨 앞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벌이는 부정과 횡포를 방조하거나 방임하였다. 모두 가난하던 시절에 조금 잘사는 집안의 딸들, 고만고만하게 공부하던 아이들 중에 공부를 조금 잘하는 아이를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멋쟁이인 선생님은 이렇게 모두가 알게 차별(?)하였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운동장에서 한바탕 눈싸움이 벌어졌다. 우리는 분노를 담아 뭉친 눈을 그 아이들을 향해 던졌다. 쏟아지는 눈 뭉치를 피해 그 아이들은 도망갔다. 우리는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가며 눈 뭉치를 던졌다. 그 아이들은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고 항의하지도 않았고 그만하라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저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우리는 화가 났고 비열한 선생님의 그늘을 벗어난 아이들은 비굴했다. 그리고 5학년에 올라가면서 당시 부잣집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반장과 부반장은 서울로 전학을 갔다. 물론 집은 이사 가지 않은 부정 전입이었다.   출처 - 드라마 더글로리 중 2. 중학교 2학년, 우리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눈이 너무 나빠 뱅글뱅글 도는 돋보기 같은 안경을 끼고 목소리는 쉰 것처럼 허스키하지만 감수성 예민하신 시인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종례를 마치면서 몇 명의 아이한테 잠깐 남으라고 하였다. 모두가 돌아간 교실에서 선생님은 이유는 말하지 않고 일요일인 다음 날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선생님 집으로 오라고 하는 걸 보니 뭔가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시간에 맞춰 선생님 집으로 갔다. 우리 감수성 예민한 시인 선생님은 몸이 약한 선생님의 부인을 대신하여 무거운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배추를 나르고 펌프질을 해 물을 길었다. 몸이 약한 선생님 부인은 이것저것 우리한테 주문했고, 감수성 예민하신 선생님은 부인이 주문한 일을 되풀이하여 말해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시키는 일을 하고는 저녁이 되어서 집으로 갔다. 우리는 창피함을 느꼈다.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흘러 시인이신 선생님을 직장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때 일하던 잡지에 원고를 가지고 왔다. 나는 그냥 외면했다. 쪽팔린 그때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그이를 외면하게 했다. 3.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병가를 내셨단다. 임시 담임으로 사회 과목을 맡은 옆 반 선생님이 오셨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안경 너머의 눈매와 목소리가 몹시 날카로운 선생님은 무섭기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이 인사를 하면 무시하는 선생님, 우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선생님은 때리지는 않았으나 늘 가는 매를 들고 다녔다. 언제든지 우리를 향해 그 매를 휘두를 수 있다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때리지는 않는 그 선생님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폭력적이었다. 대다수의 여고생들은 알지도 못하는 남녀간의 일을 마치 당연히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말하거나, 우리는 그저 나쁜 짓을 저지를 아이들로 대했다. 비아냥거리며 무시하는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면 한 대 맞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무시하고 미워하고 폭력적인 말로 학생들을 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울대 나온 사람은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도 되냐며, 우리는 성질 더러운 선생님한테서, 지옥 같기만 한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아직은 많은 게 서툴고 그래서 많은 가능성을 가졌을 그런 우리를 조금은 인정해 주는,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야단치는 선생님을 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런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한 마디에 기가 죽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 무의식 속에 접혀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문득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선생님, 왜 그렇게 저희를 무시하고 미워하셔요? 저희가 그렇게 나쁜 아이들인가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권위라는 폭력의 그늘에서 정말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까?!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학교폭력 #교사폭력 #학생
2023-03-14 | hrights | 조회: 539 | 추천: 6
이윤/경찰관 체포라는 용어가 영화, 드라마, 뉴스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수사관에게 잡혀가는 것이라고만 아는 분이 많다.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지하철 내 몰카범을 체포하는 장면에 현행범체포가 아닌 긴급체포라는 용어를 쓰기에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방송 작가나 PD도 정확히 모를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수사기관에 체포당했을 때 체포에 대해 모르고 있으면 당황하여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나의 인권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체포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 연합뉴스 영장에 의한 체포와 영장 없는 체포 체포는 크게 영장에 의한 체포와 영장 없이도 가능한 체포로 나뉜다. 영장 없이 가능한 체포에는 현행범체포와 긴급체포가 있다. -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 체포는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여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므로(무죄추정의 원칙) 함부로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죄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면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피의자)을 상대로 구체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형사소송법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강제로라도 데려다 앉혀놓고 질문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의심된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아무나 체포하면 안 되므로, 법원이 검토하여 영장을 발부한 사람만 체포하게 한 것이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려면 수사기관이 피의자 인적사항(이름, 주민번호, 주거지 등)을 알고 있어야 하고,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3회 정도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출석요구에 잘 응하면 체포영장은 잘 발부되지 않는다. 수사는 임의수사(강제가 아닌 동의나 승낙에 의한 수사)가 원칙이다. 몇 번이나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체포영장 또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발부할 요건이 되지 않는다. 재판도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다. - 현행범체포 현행범이란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사람이다. 현행범은 누가 보더라도 범인임이 확실하고, 바로 체포하지 않으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으며, 도주하면 누구인지 알아내기도 쉽지 않고, 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2~3일)도 없으므로 영장없이 체포가 가능하다. 또한 수사기관이 아닌 누구라도 현행범을 체포할 수 있는데, 이때는 즉시 수사기관에 인계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현행범으로 취급되는 준현행범이 있다는 것이다. 준현행범은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는 사람(“도둑이야”라며 쫓기는 사람), 장물이나 범행에 사용된 물건을 가진 사람, 신체나 의복에 증거가 될 뚜렷한 흔적이 있는 사람,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는 사람이다. - 긴급체포 말 그대로 영장을 미리 받을 여유 없이 범인을 우연히 발견했거나 하는 긴급한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받아간 사람을 5시간 정도 추적하다가(이미 현행범은 아니다) 범죄장소에서 먼 곳의 어느 모텔로 들어간 것을 CCTV로 확인하였으나, 그 사람의 인적사항은 모른다. 그래서 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다. 혐의자가 모텔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일단 체포해야 한다. 종업원에게 물어 그 사람이 어느 방에 있는지 파악하여 불러내었다면 도주 방지를 위해 영장없이 체포할 수밖에 없다. 긴급체포는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와 현행범체포의 실무적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보인다. 경찰이 긴급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받지 못하면 바로 석방해야 한다. 검사가 긴급체포하면 별도로 승인받는 절차가 없다. 체포 시 고지받을 권리 위 세 가지 체포를 할 때 검사나 경찰은 피체포자에게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진술거부권과 체포적부심사권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흔히 미란다 고지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진술거부권 고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대통령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는 고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고지하지 않은 체포는 절차적으로 위법하며, 위법한 체포를 이용하여 얻은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될 수 없다. 체포와 구속 체포는 수사를 위해 잠시 붙잡아두는 것이고, 구속은 재판을 위해 붙잡아두는 것이다. 수사를 위해 잠시 붙잡아 인적사항과 혐의사실을 확인하는 데 영장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강한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체포에도 영장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독일이나 영국은 영장 없는 체포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체포영장 제도가 있는데, 검사만 청구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경찰도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다. 한국은 체포가 마치 구속을 위한 전 단계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체포 후 구속할 필요가 있으면 다시 검사에게 구속영장 청구를 신청하여 발부받도록 하고 있다. 체포와 구속에 검사는 항상 관여한다. 체포 시간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석방해야 한다. 그러니 무고하게 체포가 되었다고 하여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죄가 없다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절차에서 판사에게 무고함을 토로하고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실질심사는 구속 적절성을 심사하는 절차일 뿐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은 아니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인데도 요건이 미비한 구속영장을 청구해놓고 ‘정정당당하다면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체포와 구속은 수사와 재판을 위해 대상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여 피의자의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수차례나 성실히 응하여 도주 우려가 없고, 달리 인멸할 증거가 없는데도 체포나 구속을 시도하는 것은 직권을 남용하여 괴롭히는 행위로 보인다. 법집행이 공정하려면 일관성과 형평성이 요구된다.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이윤 #체포 #긴급체포 #현행범체포 #의미
2023-02-28 | hrights | 조회: 740 | 추천: 12
反시온주의, 시온주의, 비시온주의   홍미정 / 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 초정통파 유대인의 특성 유대인들의 혈통이 다양하다는 것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치적 입장이 시온주의, 비시온주의, 反시온주의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유대인들의 종교적 성향도 개혁파, 초정통파, 정통파, 전통주의자, 세속주의자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초정통파(하레디)는 특별한 복장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다. 검은 정장에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초정통파 남성, 긴 치마, 두꺼운 스타킹, 검은 머리 덮개 등을 입은 초정통파 여성을 예루살렘 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간간히 보이는 검은 덮개로 머리와 얼굴까지 가린 초정통파 유대인 여성들은 세계 미디어에서 널리 알려진 무슬림 근본주의자 여성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초정통파 유대교는 세속화에 맞서 모세 시대부터 내려온 유대교법(토라)과 전통을 보존하고 수호함으로써, 세속 사회로부터 유대교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중부 및 동유럽 전통주의자 랍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공통적인 존재 근거는 유대교법과 전통의 보존 및 수호다.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유대교 내부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유대 계몽주의 운동(하스칼라)이 발생하자, 이에 맞서 중부 및 동유럽 소재 예시바(유대교 학교)와 시나고그(유대 교회) 등 유대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신비주의 및 경건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경건주의 운동을 주도한 집단은 계몽주의 확산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보수적인 하시디 랍비들(우크라이나 중심)과 미트나그디 랍비들(리투아니아 중심)이었다. 역내에서 서로 세력 경쟁하던 이 두 랍비 집단들이 초기 초정통파 유대인들이다. 2021년 12월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경외와 두려움으로 신의 의지를 수행하고, 현대 가치와 관습에 반대하면서 유대교법과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초정통파 유대인공동체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3%(약 1백 22만 6천명)다. 초정통파 유대인공동체는 사실상 종파 내 결혼과 높은 출산율 때문에 인구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이스라엘 내 초정통파 비율은 2009년 10%에서 2021년 13%으로 증가했다. 이스라엘군은 징병제이지만, 대부분의 초정통파 유대인은 예시바에서 토라공부를 한다는 구실로, 병역 면제 나이에 도달할 때까지 병역을 연기한다. 최근에는 초정통파 유대인 남자의 군대 지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초정통파 주민들은 국가 공무원이나 군복무를 반대한다. 최근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들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이상으로,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이 정당들의 최우선 과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하는 종교 공동체의 현실적인 이익 확보다. 따라서 이러한 유대교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파에 이익이 된다면, 좌파 진영이나 우파 진영 어느 쪽과도 연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스라엘 비례대표제 의회제도에서 전체 120석 중 61석 이상을 확보한 정당 연합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기 때문에, 상대적 소수파인 정통파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인구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연합정부의 생존에 결정적이다. 따라서 정통파 유대인 정당들은 ‘예시바 등 종교 교육기관에 재원 지원, 안식일 및 코셔 음식 준수, 비정통파 및 개혁파 유대교에서 행하는 개종 거부’ 등 종교 행위를 법제화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영향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22년 11월 의회 선거에서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은 11석을 획득한 세파르디&미즈라히(대부분 중동 출신)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당, 7석을 획득한 초정통파 아쉬케나지(유럽 및 러시아 출신) 유대인을 대표하는 토라 유대교 연합당(아구다트 이스라엘+ 데겔 하토라)이다. 이 두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은 20세기 초 폴란드에서 창설된 세계적인 초정통파 유대교 정치 단체,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갈라져 나오거나 통합된 정당들이다. 이스라엘 최초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으로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교육, 사회복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종교 문제에 관한 입법과 초정통파 유대인들에 대한 병역 면제를 주도했다. □ 아구다트 이스라엘: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반대, 이스라엘 국가 지지 세속적인 시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WZO)의 활동에 반대하면서, 1912년 폴란드에서 3종류의 초정통파 유대인들, 즉 독일 정통파 유대교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1808~1888)의 제자 랍비들, 폴란드의 하시디 랍비들, 리투아니아의 미트나그디 랍비들이 연합하여 세계적인 운동으로 아구다트 이스라엘을 창설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신의 개입으로부터 유대국가가 출현해야 한다고 믿고, 세속적인 시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유대국가 창설 운동을 반대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을 토라(모세 오경)에 의해서 정의된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이라고 정의하였고, 정통파가 아닌 유대인 단체들과 협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시온주의를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고,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설립을 목표로 활동하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맞서면서, 한 때 세파르디&미즈라히를 포함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포괄적인 우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시기에 4차례(1920년, 1925년, 1931년, 1944년) 실시한 팔레스타인 유대인공동체 대표회의 선거도 거부하였다. 이 선거에서 탁월한 시온주의 지도자로 부상한 폴란드 출신의 데이비드 벤구리온(1886~1973)이 이끄는 정당은 영국위임통치 기간 4차례 선거에서 모두 제 1당을 차지하였다. 게다가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후 1949년~1961년까지 실시된 5차례 의회 선거에서도 벤구리온이 이끄는 당이 제1당을 차지하였다. 동시에 벤구리온은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의장(재임: 1946~1956) 및 이스라엘 총리(재임: 1948~1954, 1955~1963)를 역임하는 등 이스라엘 정치에서 장기 지속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와 벤구리온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창설되었다.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의장 벤구리온이 발표한 ‘이스라엘 독립선언서’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창설을 주도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데오도르 허즐(1860~1904)을 ‘유대국가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명시하였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시대에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조직화된 유대 공동체와는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1933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산하 조직인 유대기구와 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대기구가 영국위임통치당국으로부터 할당받은 이민자 중 6.5%를 재분배 받았다. 게다가 1947년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유대기구와 ‘현상유지 서한’으로 알려진 훨씬 더 포괄적인 협정을 체결하면서, 종교적인 이익을 보장받았고, 합법적으로 이스라엘 정부 연합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등 이스라엘 국가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1951년 실시된 제2차 이스라엘의회 선거에 참가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1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1951년 3석, 1955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6석, 1959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6석, 1961년 4석, 1965년 4석, 1969년 4석, 1973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5석, 1977년 4석, 1981년 4석, 1984년 2석, 1988년 5석을 획득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가와의 전략적 관계에서 장관 직위를 거부하였고, 정부에서 맡은 주요 업무는 ‘교육, 주택, 사회 서비스, 비군사 서비스, 유대 종교적 특성 보존을 위한 예산 문제’에서 하레디(초정통파) 유권자들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시온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유연했다. 이러한 모호하면서 유연한 태도로 인해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정치적 협상력을 높이면서 리쿠드와 노동당이 이끄는 연합정부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2020년 10월 28일,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하레디 원칙에 대한 아구다트 이스라엘 성명]에서 세계 시온주의 기구에 반대하지만, 하레디 공동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하레디 원칙에 대한 아구다트 이스라엘 성명]   최근 시온주의 운동 조직 대표들의 성명은 하레디 유대인들이 세계 시온주의 기구의 ‘예루살렘 프로그램’을 수용했다고 암시했다. ‘예루살렘 프로그램’은 시온주의를 ‘유대인의 민족 해방 운동’으로 선언하고 ‘유대 민족의 삶에 있어서 이스라엘 국가 중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일신과 신이 우리에게 주신 토라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사람 집단이며, 그 외에는 다른 것은 아니다. 이 진리를 생략함으로써, ‘예루살렘 프로그램’과 그것이 구현하는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과 유사한 정치적 실체로서 유대인의 본질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한다. 이 재정의는 우리 유대인의 신앙과 전통의 본질에 어긋난다. 지난 세기의 토라 거장들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운동을 설립한 근본 원칙들은 유대인 민족성에 대한 시온주의 재정의를 확고하게 거부하는 것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그 근본 원칙에 충실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온주의가 하레디 유대인의 근본적인 믿음과 양립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제안도 근거가 없으며 거부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전에 시온주의 운동발흥 초기부터 유럽의 명망 있는 랍비들 사이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땅에 ‘유대국가’ 건설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유대인들의 운동에 관한 깊은 우려가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가 창설되면서, 아구다트 이스라엘 운동을 이끈 명망있는 랍비들은 종교적 유대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의회 활동을 포함한 이스라엘 국가의 민주적인 업무에 참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스라엘 의회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부 기구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어떤 시온주의자 기구나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토라가 유대인들의 궁극적인 결정자이자 통합자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 시온주의가 유대민족을 규정하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변경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안보, 경제적 필요, 복지 등을 항상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 반시온주의자-네투레이 카르타: 이스라엘 해체 운동 영국 위임통치기간 동안 아구다트 이스라엘 소속 랍비 중에, 예루살렘 지역 초정통파 유대인 집단 거주지, 메아 쉐아림 소재 헝가리 유대 공동체 태생의 랍비 암람 블라우(1894~1974)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1869년 슬로바키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며, 어머니는 예루살렘 원주민 유대인이었다. 1930년대 아구다트 이스라엘이 시온주의 운동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자, 1938년 랍비 암람 블라우는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결별하고, ‘도시(예루살렘)의 수호자’를 뜻하는 네투레이 카르타를 공식적으로 창설하였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네투레이 카르타는 네투레이 카르타 교회당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하거나, 네투레이 카르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에 자녀를 보내거나, 네투레이 카르타가 소집하는 활동, 집회,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유대인 메시아가 도래할 때까지 유대인 자신들의 국가를 갖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국가는 신에 대한 반역이라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평화적 해체를 요구한다. 회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데 자주 참여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들은 런던, 뉴욕, 예루살렘 등의 도시에서 퓨림 축일 등 유대교 기념행사 등에서 일상적으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운다. 네투레이 카르타 지도자 랍비 모세 허쉬(1930~2010)는 생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모세 허쉬와 야세르 아라파트의 관계는 아라파트가 튀니지에 거주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허쉬는 유대인 문제에 관한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허쉬는 시온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이중적인 행위를 하는 아구다트 이스라엘 등 초정통파 유대인 단체들을 비난했다. 이스라엘 건설 이후, 네투레이 카르타는 더욱 고립되었지만 부유한 초정통파 하시디 집단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시디 집단의 후원으로 네투레이 카르타는 이스라엘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을 견딜 수 있고, 자선기금 분배를 활용해서 이스라엘 국가로부터 보조금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초정통파 하시디 후원 덕택에 네투레이 카르타는 이스라엘 내 정치적 기반 및 공식적인 관계가 거의 없는 자급자족 공동체로 존재한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유대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고, 신은 메시아가 도래할 때까지 유대 국가 창설을 금지했다.’라고 믿는다. 이러한 네투레이 카르타의 신학적 견해를 공유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도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주장하는 등 과격한 행동 때문에 네투레이 카르타와 거리를 두었다. 반면 네투레이 카르타는 자신들과 종교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이단자로 배척하며, “아랍인이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에서 유대 공동체가 소수자로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2023년 1월 30일. 네투레이 카르타 뉴욕시위 : 출처 - (Neturei Karta facebook 게시물) 2023년 1월 9일, 예루살렘과 베이트 쉐메시 출신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 3명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중심지 서안 소재 제닌 난민 캠프를 방문해서 이스라엘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이슬람지하드 대원들과 파타 대원들을 만났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경찰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을 불법 방문한 혐의로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 3명을 조사했고,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 극우파 이타마르 벤 그비르는 이 3명을 시리아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7월 15일 미국인 랍비 이스로엘 와이스 등 네투레이 카르타 대표단 4명이 이집트를 통해서 가자로 들어가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야를 만나고, 의료 지원 물품, 트럭 등을 전달했다. 이 때 랍비 와이스는 “우리는 당신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당신들과 함께 소리쳐 운다. 여기는 당신들의 땅이다. 이 땅은 불법적으로 부당하게 훔친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 사람들이 유대교의 이름과 우리의 정체성을 납치했다.”라고 주장했다. 랍비 와이스는 2006년 12월 11일, 이란에서 개최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계적 비전을 검토하는 국제회의’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 국제회의에서 그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 출신이고, 아버지는 헝가리 출신이다. 홀로코스트 동안 그의 조부모, 아주머니, 삼촌 등 많은 가족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 국제회의에 참가한 이유를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아랍세계와 무슬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검은 코트 깃에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로 “유대인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팔레스타인 국기, 빨간 금지선이 그어진 이스라엘 국기가 위아래로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시온주의자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조차도 네투레이 카르타를 지나친 극단주의자로 간주한다. □ 시온주의자-샤스당: 세파르디&미즈라히 이익 확보 이스라엘 세파르디 최고 랍비를 역임한 이라크 출신의 오바디아 유세프(1920~2013)가 1984년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들이 지배하는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중동 출신의 세파르디&미즈라히를 독립시켜 ‘세파르디 수비대’를 뜻하는 샤스당을 창설하였다. 샤스당 창당 이유는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에 투표하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들이 의원직을 독점한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샤스는 세속주의와 유럽계 초정통파의 패권에 반대하여 세파르디&미즈라히의 종교적 유산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일어났다. 선거 기간 동안 샤스의 구호는 “고대의 제왕적 영광을 회복하기, 우리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 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구호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조상들의 영광스런 유산을 되찾고, 현재 직면한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종식시키고, 차별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파르디 초정통파는 공동체 랍비들이 수백 명에 달하고,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하지만, 이스라엘 미즈라히 사회의 비초정통파 대중들과 강력한 유대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세파르디&미즈라히들의 지지를 배경으로 샤스당은 1984년 4석(3.1%, 63,605득표), 1988년 6석(4.7%, 107,709득표), 1992년 6석, 1996년 10석, 1999년 17석(13%, 430,676득표) , 2003년 11석, 2006년 12석, 2009년 11석, 2013년 11석, 2015년 7석, 2019년 4월 8석(5.99%), 2019년 9월 9석(7.44%), 2020년 9석(7.69%), 2021년 9석(7.17%), 2022년 11석(8.25%, 392,964득표)을 획득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샤스당의 활동을 통해서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치에서 독자적인 커다란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게다가 샤스당이 초정통파가 아닌 일반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의 표를 흡수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초정통파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 샤스 당의 주요 이념은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의 종교적,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샤스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주민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종식’시키고, ‘전통적인 미즈라히 유대인들의 고대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정통파가 아닌 일반 세파르디&미즈라히도 샤스를 지지한다. 2010년 이스라엘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 당은 시온주의 운동의 최고 상부 조직인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가입함으로써 적극적인 시온주의자로 나섰다.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달리, 샤스는 ‘종교적 신념과 시온주의 사이에 모순이 없다,’라고 간주한다. 아쉬케나지 초정통파 유대 정당들인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데겔 하토라는 이러한 샤스당의 적극적인 시온주의자 정책을 거칠게 비난하였다.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샤스도 좌파 및 우파 정부에 참가하였다. 샤스의 선택 기준은 세파르디와&미즈라히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부가 더 큰 이익을 주느냐였다. □ 비시온주의자-토라 유대교 연합당: 아쉬케나지 이익 확보 1992년 아쉬케나지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데겔 하토라(1988년 미트나그디가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독립하여 창설됨)가 동맹하여 토라 유대교 연합당을 만들었다. 이들은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가입하지 않았다. 토라 유대교 연합은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1994년 4석, 1996년 4석, 1999년 5석, 2003년 5석, 2006년 6석, 2009년 5석, 2013년 7석, 2015년 6석, 2019년 4월 8석, 2019년 9월 7석, 2020년 7석, 2021년 7석, 2022년 7석을 차지했다. 이 정당은 비시온주의자로 분류되며, 이스라엘 정부에서 원칙적으로 차관직만 받아들이며, 교육과 사회복지, 초정통파의 병역 문제 등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샤스와 마찬가지로, 토라 유대교 연합이 꾸준히 의회 의석의 확보한다는 것은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가 이스라엘 정치에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민과 더 독실한 공동체의 높은 출산율도 일정하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라 유대교 연합도 이스라엘 정치에서 아쉬케나지 초정통파의 이익 확보를 위해서 활동한다.
2023-02-21 | hrights | 조회: 1559 | 추천: 2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38년 어느 날 런던 동물원에서 오랑우탄 제니를 만났다. 제니는 보르네오에서 온 세 살짜리 암컷 오랑우탄으로 런던 동물원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오랑우탄이었다. 제니는 난방이 들어오는 우리에 갇혀 인간처럼 옷을 입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제니가 다윈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다윈이 본 제니는 기록에 남았다. 다윈은 오랑우탄과 인간의 공통점을 눈여겨보았다. 제니를 관찰한 다윈은 인간 어린아이와 닮은 오랑우탄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나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화적 연속성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노트에 적었다. 후일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유인원 관찰이 흥미로운 이유는 감정 표현이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기쁨, 즐거움, 애정을 표현할 때면 인간도 유인원도 입술을 내밀고 웃는 소리를 내고 눈을 반짝일 뿐만 아니라 고통, 슬픔, 고민,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까지도 똑같다고 했다.   오랑우탄은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서만 서식하는 대형 유인원이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고대 말레이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얼굴과 몸이 털로 가득 덮여 있고, 숲속 나무 위에 살며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한 이 유인원을 고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현지인들은 ‘uraŋutan’, ‘wuraŋutan’, ‘uraŋuta’ 이라 불렀다. 이를 들은 유럽인들이 ‘Orang Outang’, ‘Ōran ootan’이라고 적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성성(猩猩)이’이라고 불렀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1630년대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왔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당시까지 유럽에 알려진 모든 대형 유인원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였다. 놀랍게도 pygmy, Indian satyr, pongo, jocko, barris, drill, smitten Quioias Morrou, salvage 같은 용어가 오랑우탄과 같은 의미로 쓰였고, 오랑우탄과 침팬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오랑우탄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오랑우탄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일 뿐만 아니라 유럽어, 아시아어, 아프리카어가 혼재하는 언어적 혼란과 동남아시아에 사는 오랑우탄과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가 구분되지 않는 지리적 혼동은 오랑우탄이 유럽에 던진 충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오랑우탄이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이유는 유럽인의 인식체계에 들어온 이 낯선 동물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몹시 곤란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불길하게 상기시키는 이 생명체를 늑대소년 같은 야생인간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원숭이에 가까운 종이라고 하면 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8세기는 ‘오랑우탄의 세기’라고 할 만큼 오랑우탄 연구는 이 시기 자연사와 비교해부학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니콜라 클로드 파브리 드 페이레스크(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는 아프리카와 지중해 여행을 통해 오랑우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 동물은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제3의 종”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오랑우탄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구분선을 명확히 그음으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오랑우탄이 쏘아 올린 질문이 계몽주의 시대 자연학과 인간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오랑우탄은 어떻게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상업 네트워크는 유럽에 아시아 오랑우탄에 관한 지식이 전해지는 주요 루트였다. 오랑우탄이란 말을 책에 써서 처음 소개한 학자는 야코부스 본티우스(Jacobus Bontius)였다. 레이덴 태생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로 바타비아에서 활동했던 본티우스는 저서에 오랑우탄에 관한 묘사와 삽화를 남겼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이 놀라운 괴물이 직립해 걸어 다니는 것을 자신이 직접 여러 번 목격했으며, 자바인들에 의하면 오랑우탄은 말을 할 줄 알며, 혐오스러운 욕정을 만족시키려고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관계하는 인도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Jacobus Bontius, Engraving of a orangutan, 1658, Wellcome Collection L0032838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럽 최초로 살아있는 유인원을 관찰하고 책에 쓴 사람은 네덜란드 의사이자 암스테르담 시장이었던 니콜라스 튈프(Nicolaes Tulp)였다. 『의학적 관찰』(1641)의 한 장(章)을 할애해 오랑우탄에 관해 썼다. 오랑우탄을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라고 표현하고, ‘인디언 사티로스(Indian satyr)’와 같은 존재라고 적었다. 이런 동일시는 고대 로마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Claudius Aelianus), 16세기 스위스 의사 콘라드 게스너(Conrad Gesner)로 이어지는 유럽 박물학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튈프가 관찰한 오랑우탄은 1630년 한 네덜란드 상인이 들여와 헤이그의 오라녜공 프레데릭 핸드릭(the Prince of Orange Frederick Hendrick)의 메나주리에서 사육한 개체였다. 튈프는 신체적 특징을 조사했을 뿐 아니라 컵을 사용해 물을 마시고 잠잘 때 베개와 담요를 사용하는 것 같은 행동에 주목해 마치 ‘가장 교육받은 사람’ 같았다고 적었다. 튈프는 오랑우탄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면서도 고전 문헌에서 읽은 ‘호모 실베스트리스’, ‘인디언 사티로스’라고 판단하고, 전통에 기대어 신빙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택했다. 계몽의 시대라고 하지만 경험적 관찰은 아직 고전의 권위를 이기지 못했다. 튈프의 책은 한 페이지 전면을 할애해 오랑우탄 판화를 실었고, 이 판화 덕분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었다. 판화에서 오랑우탄은 늘어진 젖가슴에 다소곳한 태도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는 여성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튈프의 판화는 과학 논문과 대중 여행기에서 수없이 복제·유통되었다.   Nicolaes Tulp, Homo Sylvestris, Observationes Medicae, 1641 출처: 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4.   사체 해부를 통해 오랑우탄의 정체에 대해 해부학적 결론을 내놓은 학자는 페트루스 캄퍼르(Petrus Camper)였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해부학자 캄퍼르는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해 밝혀낸 결과를 1779년 영국 왕립학회 학술지 『철학논문집』에 실었다. 캄퍼르의 논문 「오랑우탄의 발음기관에 관한 설명」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답이 되었다. 이 논문에서 캄퍼르는 오랑우탄의 언어사용과 인간과의 교접 가능성을 전면 부정했다. 후두부의 구조상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생식기도 인간보다 개와 유사하다고 밝힘으로써 인간과 오랑우탄의 성교와 번식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캄퍼르가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할 수 있었던 배경은 177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네트워크를 통해 네덜란드 총독의 메나주리로 공급된 아시아 오랑우탄의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과학적 관찰과 해부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호기심 많은’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오랑우탄에 관한 기사는 정기적으로 신문에 실렸고, 런던의 커피하우스 같은 새로운 사교와 공론의 공간에 오랑우탄이 전시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오랑우탄은 살아서는 왕과 귀족의 메나주리, 커피하우스, 동물원에서 사육·전시되었고, 죽어서는 해부대 위에 올랐다가 표본이 되어 자연사박물관에 안치되었다. 오랑우탄의 본성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되고, 유럽 동물원에 대중의 구경거리로, 자연사박물관에 해부학 표본으로 안치되는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동물성과 인간성에 관한 논쟁은 유럽과 비유럽 사이에 구축된 수많은 연결망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유럽과 비유럽의 연결은 인간과 인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유인원의 글로벌 교환으로도 드러났다. 인간과 같은 ‘사람과(Hominidae)’의 친척 오랑우탄이 아직도 동물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Charles Darwin, Notebook, 1838. Lines 79 & 196–197. http://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eywords=boast%20of%20his%20proud&pageseq=69&itemID=CUL-DAR122.-&viewtype=text 2)찰스 다윈, 김성한 옮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사이언스북스, 2020), 206-211쪽. 3)Wayan Jarrah Sastrawan, “The Word ‘Orangutan’: Old Malay Origin or European Concoction?,” Bijdragen tot de taal-, land-en volkenkunde/Journal of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of Southeast Asia 176.4 (2020), pp. 536-539. 4)성성(猩猩)은 전근대 한자문화권의 고전들에 기록된 인간을 닮은 동물의 통칭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침팬지를 흑성성(黑猩猩), 보노보를 왜성성(倭猩猩), 고릴라를 대성성(大猩猩), 오랑우탄을 홍성성(红猩猩)이라고 한다. 5)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The Orangutan, Savagery, and the Borders of Humanity in the Global Enlightenment,” History of the Human Sciences 32.4 (2019), p. 82. 6)M. C. Meijer, “The Century of the Orangutan,” New Perspectives on the Eighteenth Century 1 (2004), pp. 62–78. 7)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3. 8)튈프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의 주인공이다. 9)라틴어로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는 ‘숲(sylva)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야만(savage)과 숲(sylva)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다. ​ 10)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p. 82-83. 11)Petrus Camper, (1779) ‘Account of the Organs of Speech of the Orang Outang’, Philosophical Transactions 69 (1779), pp. 139–159. 12)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93 13)사람과(Hominidae)는 사람,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을 포함하는 영장류의 한 과이다. 대형 유인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는 침팬지와 보노보다. 14)Jacobus Bontius, “Historiae naturalis et medicae Indiae orientalis [Natiral and Medical History of East Indies],” in W. Piso, De Indiae utriusque re naturali et medica libri quatuordecim [On the Natural and Medical Things of Both Indies in Fourteen Books]. (Amsterdam: Lodovicum et Danielem Elzevirios, 1658).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염운옥 #오랑우탄이쏘아올린질문 #칼럼
2023-02-13 | hrights | 조회: 1315 | 추천: 5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광기의 자유 권력과 광기의 결합만큼 결정적인 위험이 있을까? 여기에 돈벌이의 기회 조작까지 더해지면 타는 불에 계속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광기가 더욱 솟구쳐오른다. 게다가 거기에 현존하는 거대 정치권력의 뒷배가 작용하면 완벽하게 인간성이 소멸하고 정치가 실종된다. 2023년 2월 4일에 방영된 《뉴스타파》의 <정치깡패가 된 ‘아스팔트 유튜버’>를 시청하고 난 뒤, 예상을 뛰어넘는 사태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극우 유튜버들의 작태들을 대략 알고 있긴 했으나, 단편적이나마 정돈된 영상을 통해 그 실상을 접하고 나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노골적이고 비합리적인 광기의 폭력에 휩쓸리고 말았는가, 하는 절망감이 일순간 나의 심정을 억누르면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불어 어떻게 만든 민주 사회인데, 하는 심정에 분노가 치솟으면서 폭력에는 폭력 외에 다른 치유책이 없다는 확신이 나의 심사를 지배하기까지 했다. 출처 - 뉴스타파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대통령 윤석열 씨의 집권이 이런 ‘정치깡패 유튜버들’의 활동에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연설 때면 대통령 윤석열 씨가 왜 그렇게 자유를 거듭 강조하는지 알쏭달쏭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뉴스타파>의 저 영상을 보고서 그 이유와 내용을 짐작하게 되었다. 내심 논리 비약이길 바라지만, 그가 말하는 자유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시체 팔이” 운운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김상진이라는 인물이 주도하는 ‘신자유연대’라는 단체의 이름에 들어있는 ‘자유’와 같다는 것, 말하자면, 극우 보수 무리가 말하는 자유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른바 민주주의를 외치는 진보 세력은 알고 보면 친북 좌파 빨갱이 간첩의 집단들이다. 그리고 그 수장은 문재인이고 이재명이다. 그 증거는 한반도 평화를 빌미로 북한과 중국에 예속되어 미국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고 친일을 범죄시한다는 것이다. 멀쩡한 우리 공무원을 탈북자로 만들어 죽이는 게 그 증거다. 언필칭 민주 세력이라는 이 집단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자유는 엉터리고 위장일 뿐이다. 이 세력들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예 함께 할 수 없는 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 집단을 철저히 적으로 여겨 척결하는 길만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이 적들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척결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이고, 검찰 권력을 곳곳에 정치권력으로 확대해 정확하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검찰 공화국’이니 ‘검찰 독재’니 하는 말은 우리가 잡은 기회를 정당화하는 말이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달가워해야 한다. 저들에게 조그마한 틈을 보여서도 안 된다. 내가, 우리가 집권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왜 영수 회담 운운하는 짓을 하지 않았겠는가. 적과 마주 앉아, 더군다나 국정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의 힘을 내세워 협치 운운하는데,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어떻게든 아차 했으면 질 뻔했던 적의 두목인 이재명을 감옥에 잡아넣어야 한다. 그 인간을 살려 두면 종북 좌익의 준동을 막는 일이 힘들어진다. 만약 다음 대선에 정권을 넘겨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로지 죄를 법으로 정당하게 다스렸을 뿐 죄를 지을 수 없는 우리를 오히려 잡아넣지 않겠는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나와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걸 눈치채도록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실수를 했건, 무슨 일을 벌였건, 무슨 일이 벌어졌건 간에 결단코 의무를 다하지 못해 잘못했다고 사과하거나 잘못 실수를 저질렀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딱 잡아떼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저것들이 뭐 어쩌겠는가. 의혹이니 뭐니 아무리 떠들어도 겁내지 말고 오히려 역공을 취해야 한다. 우리가 쥐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고발하고 고소해서 겁을 주고 몰아붙여 입을 다물게 하고 굴복시켜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못 살겠다고 나설라치면 전번 정권의 탓이라고 몰아붙여야 한다. 막강한 언론들이 다 우리 편이지 않은가. 재벌 기업들이란 본래 정권에 아부하기 마련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고, 게다가 그동안 내가, 우리가 많이 봐주었잖아. 언론과 재벌을 장악하면 그걸로 얼마든지 우리의 뜻을 펼칠 수 있잖아. 최대한 함께 보조를 잘 맞추도록 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어떻게 통치 권력을 거머쥐었는가. 국민이 나를, 우리를 선택한다고 해서 가능하겠는가, 신적인 운명이 나를, 우리를 택했으니까 가능했다. 그러니 아예 걱정해서는 안 된다. 나의, 우리의 통치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줘야 한다. 무조건 밀어붙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방해되는 자가 있으면 눈치 볼 필요 없이 틀림없이 제거해버려야 한다. 나를,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놈들은 철저히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거짓말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경선 때건 대선 때건 무슨 공약을 내세웠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게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이고, 진정한 자유다. 김정은이 핵무기 좀 있다고 나를, 우리를 내놓고 함부로 욕하는데, 가만두면 도저히 안 된다. 전쟁을 겁내면 안 된다. 선제공격,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먼저 쳐야 한다. 확실한 우리 편이 있지 않은가. 미국도 있고 일본도 있고 나토도 있지 않은가. 내가, 우리가 나토에 괜히 갔겠어? 일단 미국 바이든에게 전술 핵무기 배치해 달라고 하고, 안 되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는 거야. 중국이 문제라고? 중국과의 교역? 지금 교역이 문제야? 자유가 문제지. 좌고우면하지 않는 자유, 조금이라도 나, 우리를 비방하고 말 안 듣는 놈은 안에서건 밖에서건 다 적이야. 작건 크건 적은 무조건 척결해야 해. 그게 자유야. 그게 자유 민주주의야. 진보주의적 자유 워낙 불안하고 갑갑한 마음에 잠시 흥분했다 싶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악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악이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했다. 잘못된 짓인 줄 알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하고 말았다는 건 소크라테스에게 통하지 않는다. 잘못된 짓인 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나쁜 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짓을 할 때, 그 짓이 잘못된 것임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하는 짓이 잘못된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 과연 제대로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만약 알 수 있다면, 그 앎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 사는데도 올바르거나 잘못된 짓이 성립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과 전혀 상관없이 올바르거나 잘못된 짓이 성립할 수 있을까? 여러 전제들을 고려해 따지게 되면 복잡하겠지만, 단적으로 보면 복잡할 게 없다. 내가 하는 행위가 남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 올바르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짓이 올바른지 잘못된 것인지의 기준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찾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온갖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겠지만, 올바름과 잘못됨에 관한 기준을 찾기 위해 고려해야 할 일은 일단 간단하다. 내가 하는 짓이 남에게 득이 되면, 내가 하는 짓은 올바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짓이 남에게 해가 되면, 내가 하는 짓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이 무엇이며, 해가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문제다. 이를 정확하게 분별했다 할지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남에게 득이 되는 게 분명하다고 해서 내가 그 일을 남에게 함부로 권유하거나 심지어 강권하거나 강제로 시킬 수 있는가? 남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내가 남에게 강제로 하도록 하는데도, 과연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득이 될 수 있을까? 남의 자유를 빼앗으면서까지 그 사람에게 득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달리 말하면, 내가 올바른 짓을 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만약 누구에게나 자유가 가장 큰 득이라면, 이는 아예 불가능하다. 묘하게도 누구나 자유를 추구한다. 자유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데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 여긴다. 그래서 자유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득이고, 따라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만큼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유조차 근원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만 의미 있게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자유롭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만큼 나의 자유의 폭이 더 커지지 말란 법도 없다. 실제로는 오히려 그런 법이고, 그래서 자유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남도 자유롭고, 남이 자유로운 만큼 내가 자유로우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는 자유에 관한 이상적 상황이다. 묘한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상을 포기할 자유가 없다. 어렵게 들리겠지만, 오로지 남들과의 관계에서만 나의 자유가 성립한다고 할 때, 자유롭지 않은 남들을 통해서는 나의 자유가 성립할 수 없다. 남을 마음대로 부리는 데서 나의 자유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남들을 존중할 때 나의 자유가 제대로 성립한다. 자유는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형식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 자유는 실질적인 내용을 통해서만 제대로 성립한다. 자유는 근본적으로 행동의 자유지만, 자유로운 행동은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새로운 여건을 창조할 때 그 실질을 확보한다. 남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을 때, 그런 남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사는 나의 자유가 더 풍부하게 실질을 획득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과 창조적인 행위의 공동체를 통해서만 실질적인 자유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현실화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자들을 일컬어 진보주의자라 일컫는다. 그래서 진보주의와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원적으로 일치한다. 진보주의자는 더 나은 미래의 현재를 향해 상상한다. 이때 더 나은 미래의 현재는 창조적인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현재다. 진보주의자는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그 전제 위에서 그 제한의 폭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런 까닭에 진보주의자는 평등을 지향한다. 평등은 자유와 전혀 대립하지 않는다. 불평등이야말로 자유를 위협한다. 불평등한 자유는 텅 빈 형식에 따른 자유일 뿐, 실질적인 자유가 아니다. 실질적인 자유에서 실질은 배타적인 소유와 처분을 통한 향유를 넘어서는 데서 주어진다. 함께 향유 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결과물들, 예를 들어 예술과 문학, 학문과 기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종교 등을 향유 하는 데서 자유의 실질이 주어진다. 배타적인 나의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는 자는 제대로 된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는 누구든지 나의 적이라고 여기는 자의 입에서 발설되는 자유에 대한 강조는 무지와 확증 편향에 따른 것으로서 자유의 실질을 파괴한다. 남들을 지배하는 권력만이 자유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하는 자의 자유는 남들은 물론이고 저 자신마저 노예로 만든다. 이러한 자의 생각이 뭉쳐지게 되면 자신만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자유를 자신에게 일관되게 맞추어야 한다는 파쇼적인 사상이 된다. 파쇼는 자유주의의 적이고, 더욱이 진보주의의 적이다. 최대한 보편적인 실질의 평등을 통해서만 실질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자는 그런 만큼 자유를 훼손하는 자다. 현행법은 현실 권력의 충돌과 타협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갖는 현행법의 권위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등과 자유의 일치를 방해하는 법은 그런 만큼 배타적인, 자유 아닌 자유를 위한 것이기에 수정되어야 하고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의 궁극적인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의 한계를 무시하고 현실 권력의 법을 절대적인 양 내세우는 자는 실은 법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거머쥔 현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고자 법을 악용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자신의 배타적인 유불리를 따져 배타적 · 선택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데서 나타난다.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수요산책 #조광제 #자유 #민주주의 #광기 #칼럼
2023-02-08 | hrights | 조회: 551 | 추천: 3
석미화 / 평화활동가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풍경은 언제나 회한과 기대가 교차한다. 해가 바뀌는 그 시간엔 눈썹이 하얗게 셀까봐-물론 그 말을 믿는 나이는 지났지만-왠지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늘 자정을 넘겨 잠을 청한다. 하긴 음력 섣달그믐날 밤 풍속이니 상관없겠다만. 밤을 밝히며 지난해에 미처 못한 일들을 꺼내 본다. 그중에는 주변에 감사 인사 드리기도 있고, 또 그해에 꼭 쓰겠다고 마음먹은 글쓰기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미처 하지 못한 글쓰기 숙제 하나를 꺼내 보기로 한다. 비록 해를 넘겨 쓰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2022년 한베수교 30주년에 대한 짧은 생각을 이제야 긁적여 본다.   출처 - 아주경제 2022년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지난 12월 초에는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이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로 나갈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수교일인 12월 22일 기념 리셉션과 정부 행사가 이어지며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거창했지만, 정작 ‘한베수교 30년’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려는 노력은 찾기 어려웠다.   1975년에 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베트남과의 교류를 끊지만 91년 소련 붕괴 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북방정책’으로 92년 다시 수교를 맺는다. 나는 지난 활동 속에 수교와 베트남전쟁을 키워드로 과거 어떤 기사가 등장했는지 검색해 본 일이 있다. 한국과 베트남 양국 관계에 베트남전쟁과 수교가 상호 어떤 영향을 미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다. 수교는 한베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수교 협상 테이블에 양국의 과거사가 주요 의제로 오른 것은 아니었다.   99년 이후 베트남전쟁은 한국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수교 전후 시기에는 달랐다. 라이따이한, 국군포로, 그리고 난민에 대한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라이따이한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가난과 동정, 이산의 슬픔을 강조하는 신파가 많았다. 베트남에 한국군 생존 포로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수교가 이루어짐으로써 부산 ‘월남난민보호소’ 표정을 다룬 기사도 보였다. 보트피플로 한국에 들어온 남베트남인들이 수교 후 송환될 것을 걱정하는 기사였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고엽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장시간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건이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양 국가 간 정상회담과 공식적인 외교 행보가 이어질 때마다 과거사 문제는 항상 언론에 등장했다.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은 한국과 베트남의 꾸준한 교류와 수교로 인한 공식외교 속 과거사에 대한 조명, 사회 민주화와 참전군인의 기억 투쟁이라는 복잡한 지형 속에서 그 흐름을 타고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사회적 성찰의 기회로 만든 것은 지속적인 후속 보도와 시민사회의 관심이었다.   그보다 앞선 90년 월간 <말>의 ‘민간인학살’ 보도로부터 불과 2년 후 한베 수교가 이루어졌지만 양국의 과거사가 폭넓게 조망되지 않은 점은 의아하면서도 아쉽다. 민주화 이후 참전군인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속에도 언론들은 베트남전쟁의 어두운 유산에 대해 외면했다. 참전군인의 기억투쟁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온 그간의 과정을 보상받고,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반사적으로 ‘보상’과 ‘명예’에 집중해왔다. 지금도 대한민국 방방곡곡 ‘월남참전기념탑’이 세워지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만든 공법단체 ‘월남참전자회’ 소속 참전군인 40여 명은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과 베트남 전사자에 대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 58주년 월남참전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참전기념식’이라니... 종전과 더불어 평화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6.25도 전쟁 발발일로, 월남전도 전쟁 참전일로 기억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   출처 - 네이버블로그 수교 이후의 보도를 모니터하며 느낀 것은 한국과 베트남이 과거사에 대해 의식하고 있으나, 해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적으로 만났던 양 국가 간에는 역사적 성찰 없이 ‘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실리적 입장만이 난무하다. 수교 30년, 시장과 경제, 외교, 명예를 강조하는 저마다의 ‘기념’ 사이에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수교 30주년에 우리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자화상이 아닐까.     #인권연대 #사람소리 #수요산책 #석미화 #한베수교 #한국 #베트남 #단상
2023-01-10 | hrights | 조회: 802 | 추천: 5
이윤 / 경찰관 40대 중반까지는 1년에 한두 번 크게 화를 냈다. 주로 상대가 (내 기준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제 고집을 부릴 때 화가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조리함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는, 어릴 적 들었던 출처 불명의 말이 불쑥불쑥 마음을 헤집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하면 옳다는 기준이 나였다는 것부터가 부조리했다. 40대 후반부터는 철이 들었는지 그나마도 화를 잘 안 내고 있다. 화가 나려고 할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사람 하는 일에 한 가지 길만 옳은 것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밀어붙일 수도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출처 - yes24 아버지의 해방일지 최근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을 읽었다. 화자 아버지의 ‘오죽하면 글겄냐’, ‘긍게 사램이제’, ‘다 사정이 있겄제’라는 세 문장은 관용과 이해의 표현이었고, ‘그럴 수도 있지’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소설 속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산 사람에게서 연상되는 단단하게 날 선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념과 사상의 뿌리에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항꾼에’라는 사투리가 그 추측을 뒷받침한다. 스스로는 유물론자이며 사회주의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박애주의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었지만, 다른 이를 돕고 보듬으며 맺은 관계의 덩굴은 장례식장에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분의 딸처럼 냉정한 합리주의자 범주에 포함되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반성도 되었다. 그래도 읽는 중에 4번 정도 눈물을 훔칠 정도면 감성이 아주 말라버리지는 않은 것 같아서 좀 안심했다.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50대 중반 갱년기 증상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다. 언론을 통해 보는 요즘 세상은 증오, 분노, 탐욕으로 가득하다. 간혹 돈쭐내는 미담기사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사 대부분에서는 각박함을 넘어 두려움까지도 느껴진다. 이태원 참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 등에 대해서도 증오와 비난, 모욕을 표현하는 반응이 많고, 심지어는 오피니언 리더라는 분들도 부정적 반응에 동참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자식팔아 장사한다’라고 한 정치인도 있었고, 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승하차 시위에 시위 전철역을 무정차 통과하라는 서울시 결정도 있었다. 총파업을 하는 화물연대를 ‘사회 악의 축, 암적인 존재들’이라고 한 정치인도 있었다. 사람들에겐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러니 내가 불편하고 힘들다고 해서 너무 각박하게 몰아세우기보다 ‘오죽하면 글겄냐’라는 마음으로 보듬어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똘레랑스 프랑스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무척 많다고 한다. 소방관, 교사, 판사도 파업하고, 심지어 경찰도 파업 때문에 힘들어서 파업한다고 한다. 파리 곳곳은 파업과 시위로 예상치 못한 불편과 불친절과 비효율이 넘쳐난다고 한다. 며칠 전 파리에서 쿠르드족 대상 총격 사건이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이 때문에 시위대가 차량을 뒤집거나 불태우고, 경찰에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영상이었다. 만일 요즘 한국에서 그런 폭동에 가까운 시위가 있었다면 난민에 대한 혐오와 그들을 받아들인 정부에 대한 비난, 주동자 색출과 처벌 요구가 각종 미디어 및 SNS에 흘러다녔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의 프랑스발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다. 파업과 시위가 많아도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이 내가 될 수도 있잖아’라며 서로 감내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불평할지언정 비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 프랑스인의 가치관을 잘 표현한 단어가 ‘똘레랑스’다. 똘레랑스는 우리말로 ‘관용’이라고 번역되지만,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ㆍ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한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푸는 자비나 관대한 마음이라기보다는 ‘나와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도 있겠다’라고 인정하는 마음에 가깝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타인의 사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해하고 인정하려면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는데, 대화보다는 자기 주장의 목소리만 커지는 모양새라 안타깝고 불안하다.
2023-01-03 | hrights | 조회: 616 | 추천: 11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새벽부터 아침 녘까지 내린 눈이 쌓였다. 올해는 눈 소식이 잦은 듯한데, 출근길을 걱정하는 어른과 달리 신이 난 아이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며칠 전, 걸음마를 뗀 듯한 아이 한 명에 네 명의 어른이 둘러싸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웃던 생각이 났다. 나 어릴 때는 서너 명의 아이들이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칭얼대곤 했으니까.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으며 빙판이 졌는데 그 위로 쌓이는 눈을 보자니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런데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란 참,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니…. 그래도 지금 할 일은 눈을 쓸어야 하는 것, 그렇게 서둘러 3층에서부터 쓸어내린 눈은 대문 앞에 한가득 쌓였다. 이른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차도와 학교 앞 거리는 눈이 깨끗이 치워졌다. 그런데 학교 앞 신호등 앞에 있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아이는 제 몸집만큼 커다란 눈뭉치를 들고 있고 한 아이 옆에는 그만한 눈뭉치가 있었다. “쟤들이 저걸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생각하며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신호등이 바뀌니 두 아이는 낑낑대며 그것을 옮기려고 애를 썼다. 잘못해서 눈뭉치가 깨지기라도 할까 싶어 행동에는 조심스러움마저 있는 게 아닌가. 길 건너온 아이들한테 너희 몇 학년이니 물으니 3학년이요 그런다. “그거 집으로 가져가는 거야?” “네.” “무겁지 않아?” “무거워요.” 하며 웃는다. “손도 시려워요.” 아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오가는 어른들이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든다. “그걸로 뭐하려고?” “어디로 가져가는 거냐?” 출처 - 저자 눈이 많이 내린 아침 뉴스는 내 집 앞 눈 쓸기, 출근길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을 쉴 새 없이 안내했다. 빙판길 행동요령도 잊지 않았고, 방한 차림 얘기도 빼지 않았다. 덕분인가, 도로 주변으로 군데군데 보이는 흰눈 빼고는 눈이 왔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데 눈이 내린 날의 즐거움을 아이들은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에서 굴린 제 몸집만큼 커다란 눈 뭉치를 집으로 가져가려는, 힘에 부친 일을 하면서도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노고는 제 집 앞에서 살아나겠지. 위아래로 눈뭉치를 잇고, “야, 눈사람이다!” 하고 환호했을까? 그런데 눈 코 입은 무엇으로 그렸을까?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도 눈사람 하나 만들어야겠다 생각하며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두 아이가 대문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해 쌓아놓은 눈을 이리저리 헤집어 놓아 다시 쓸어야 할 판이다. “너희 여기서 뭐하는 거야?” 놀이에 열중하던 아이들이 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더니 저희들이 한 짓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움찔하며 대답을 못 한다. 할머니 집에 왔다 쌓인 눈을 본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희들의 놀이를 즐기던 것이다. 놀 줄 아는 아이들의 예술 행위는 담벼락 위로 오리 조각상들을 올려놓았고, 한겨울의 회색빛 골목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다. 출처 - 저자 2. 엄마의 시간이 자꾸만 깜박인다. 좀 전에 한 일은 기억나지 않고 오래전 일은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딸내미는 자꾸 소리가 커진다. 예쁘고 멋쟁이던 엄마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싸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가 늙어가네 싶어서. 그런 우리 엄마가 늙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기운이 없어 힘들다 하고, 글씨를 쓰려고 해도 자꾸만 손이 떨려 글씨가 삐뚤어져 쓰기가 싫다고 한다. 자꾸 기억이 나지 않아 밖에 나가면 흉잡힌다고 나가는 일도 싫어하는 엄마가 집에 찾아온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걸 들으니 두 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려면 “이제 죽을 나이에 무슨 병원이야!” 하면서도 의사 앞에서는 소녀처럼 말한다.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네요, 고맙습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아이들이 만드는 눈사람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담벼락에 올려놓은 오리 조각상을 보면서는 감탄을 한다. “아이들 솜씨가 어째 저리 좋으냐! 정말 이쁘지 않냐! 애들이 진짜다!” 3. 열 살 꼬맹이들의 삶의 속도는 어떤 걸까? 지금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의 삶은 현재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삶의 속도보다는 천천히 갔으면 싶다. 자꾸만 옛일이 생각나는 엄마의 삶의 속도는, 지금 이 시간에 옛일을 추억하는 만큼 좀 더 느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며칠 남지 않은 2022년, 내일을 걱정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의 속도는…. 서녘으로 넘어가는 해가 자연스럽게 살라고 하는 것 같지만….
2022-12-28 | hrights | 조회: 550 | 추천: 3
: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레토릭의 운명은? 홍미정 / 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 팔레스타인 국가란 신기루 이스라엘의 정치 일정에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협상가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언급했을 때, 그것은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시민권 요구를 선제적으로 침묵시키고 원천 봉쇄하기 위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서안과 가자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은 이스라엘 정치의 장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합리적으로 축출하는 활용도 높은 레토릭으로 활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 협상가들이 언급하는 서안과 가자 지역에 위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는 신기루다. 2022년 8월 30일, 하이파대학, 지리&인구학 교수 아르논 소퍼는 이스라엘군 라디오 방송에서 이스라엘이 소수 지배 민족으로 전락할 인구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서안과 가자 포함)에 전체 인구에 대한 유대인의 비율은 47% 이하다. 평균적으로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더 젊고 더 빠르게 증가한다. 이는 민주주의에 위협 요소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소퍼 교수는 서안과 가자를 유대 국가 이스라엘 영역에 위치시켰다. 사실, 미국이 중재한 1979년 3월 이스라엘/이집트 국경 획정 협정, 1994년 10월 이스라엘/요르단 국경 획정 협정은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와 서안을 이스라엘 영역으로 규정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은 명시하지 않았다. 결국, 이 협정들로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와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 권리를 승인하였다. 2021년 이스라엘 중앙통계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서안 정착촌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총 9백 44만 4천 명이다. 이 가운데 유대인 6백 98만 2천 명(74%), 아랍인 1백 99만 명(21%), 기타 47만 2천 명(5%)이다. 2021년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서안과 가자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은 총 5백 22만 명이다. 이 가운데 서안 거주 팔레스타인인 3백 12만 명, 가자 거주 팔레스타인인 2백 10만 명이다. 2022년 12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하여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UNOCHA)과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는 2020년 30명, 2021년 349명, 2022년 222명을 포함하여, 2008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18일까지 6,211명이다. 2022년 12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보고서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인들 사망자는 2020년 3명, 2021년 11명, 2022년 19명을 포함하여 2008년 1월 24일부터 2022년 11월 15일까지 282명이다. 위와 같이 팔레스타인 사망자와 이스라엘 사망자 수는 압도적으로 불균형하다. 이것은 1948년 5월 이스라엘 창설과 동시에 발발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75만 8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축출한 이후 계속되는 장기 지속적인 저강도 전쟁으로 진행되는 팔레스타인 인구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유대 인구 증대 정책으로 전 세계로부터 유대 이민자들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 통계는 아래 표 [이스라엘 유대 이민자]와 같다. 2022년 12월,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로의 이민을 추진하는 유대기구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 1일~12월 1일까지 이스라엘은 유대기구와 이스라엘 알리야 통합부의 지원으로 러시아 출신: 37,364명, 우크라이나 출신: 14,680명 등 95개국 출신 유대 이민자들 7만 명을 수용하였다. 이렇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인들의 장기 지속적이고 불균형적인 영토 및 인구 분쟁에 대하여 아랍국가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협력 관계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아랍, 이슬람의 대의는 없다. 2022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총리 지명자 베냐민 네타냐후는 사우디 소유 위성 채널 알 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목표는 2020년 체결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의 관계 정상화 협정을 확대하여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사우디 관계정상화 협정이 이스라엘과 아랍세계 사이에 전면적인 평화 구축에 비약적인 발전을 초래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내를 변화시킬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2020년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수단을 미국의 테러 후원국 명단에서 빼기 위해서 수단을 대신해서 트럼프가 요구한 배상금을 지급함으로써 이스라엘/수단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등, 이스라엘/아랍국가들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에 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과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출처 : reuter □ 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구심점이 될 것인가? : 파타와 마흐무드 압바스/하마스와 이스마일 하니야, 무함마드 다흘란 파타 의장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UAE 관계 정상화 협정 추진에 반대하면서, 2020년 5월, 2020년 6월 두 차례 UAE의 코로나 의료지원을 거부하였다. 이에 대하여 2021년 1월 13일, 파타 중앙위원회 부의장 마흐무드 알룰은 “UAE의 의료지원은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합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달래고,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UAE로 도주한 무함마드 다흘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타 소속 무함마드 다흘란은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가자의 실권자였으나, 2007년 파타/하마스 내전(118명 사망)에서 하마스에게 패하여 가자로부터 축출당했다. 이후 다흘란은 서안에서 활동하던 중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의 경쟁자가 되었고, 야세르 아라파트를 독극물로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2011년 파타로부터 축출되어 UAE로 도주한 상태에서 2016년 불출석 재판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2017년 7월, 다흘란은 2007년 파타/하마스 내전에서 최대의 적이었던 하마스와 권력 공유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 맞서 하마스와 한 편이 되었다. 이 권력 공유 협정에서 하마스는 가자의 보안 통제권을 행사하고 다흘란은 가자로 귀환하여 외교 관계를 담당하기로 약속하였다. 다흘란은 2020년 이스라엘/UAE 관계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UAE 사이에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을 비난하면서 UAE 코로나 의료지원을 거부했으나,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2020년 12월, 202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UAE의 의료지원을 수용하였다. 2021년 1월 13일,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우리는 어떤 국가를 통해서든 인도적 지원을 받는 것을 환영하며, 어떤 지원도 정치적인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고 있다.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핑계로 UAE의 의료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다흘란은 팔레스타인 선거 출마를 강력히 원하며, 우리는 그의 출마를 개의치 않는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흘란의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중동 판짜기에서 이슬람주의자 정당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 대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한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이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10월 13일 알제리에서 파타와 하마스가 화해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 파타(파타 중앙위원회 위원- 아잠 아흐마드)와 하마스(정치국장-이스마일 하니야)등 14개 파벌이 2007년 하마스/파타 내전 이후 15년 동안 계속된 불화를 종식 시키기 위하여 화해 협정, 알제 선언에 서명하고 팔레스타인 수반선거와 의회 선거를 2023년 10월 안에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이전 파타/하마스 협정들과 마찬가지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전에도 이집트와 카타르가 중재하는 여러 차례의 파타/하마스 협상이 있었다. 2008년 사나 선언, 2012년 파타/하마스 도하 협정, 2014년 가자와 카이로 협정, 2017년, 2020년 카이로 협정 등 다양한 수준의 파타/하마스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파타와 하마스 사이의 불화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파타/하마스 협정의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수반&의회 선거를 회피하는 압바스 수반의 권력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9월/12월에 두 차례 걸쳐 실시된 라말라 소재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센터의 수반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인 69%/69%는 수반&의회 선거를 지지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 57%/63%는 수반&의회 선거가 가까운 장래에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상 후보 대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와 이스마일 하니야가 양자 대결한다면 압바스 지지 38%/36%, 하니야 지지 53%/54%로 대답했다. 마르완 바르구티와 이스마엘 하니야가 양자 대결한다면 바르구티(2002년 이후 이스라엘 감옥, 종신형)지지 65%/61%, 하니야지지 33%/34%로 대답했다. 다자 대결 구도에서 마흐무드 압바스가 출마하지 않는다면, 마르완 바르구티지지 41%/39%, 이스마엘 하니야지지 17%/17%, 무함마드 다흘란지지 5%/5%, 야히야 신와르지지 4%/4%, 무함마드 시타야지지 3%/3%다. 압바스 수반의 업무 수행에 대한 만족도는 26%/23%인 반면, 불만족도 71%/73%라고 대답했다. 압바스 수반에 대한 사임 요구는 서안에서 73%/73%이고 가자에서 77%/79%였다. 위의 수반 선거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로 볼 때, 팔레스타인 대중들은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 뿐만 아니라,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하니야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 다수 대중들은 압바스 수반의 사임 요구하며, 하니야는 종신형을 받고 20년 이상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는 파타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상황이다. 결국, 마흐무드 압바스와 이스마일 하니야가 각각 파타와 하마스를 대표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합 구심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22년 9월/12월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 여론 조사는 다음과 같다. 모든 파벌이 참여한 가운데 의회 선거가 실시된다면, 34%/34%는 파타에 투표, 32%/34%는 하마스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공정한 선거가 실시된다면, 어느 파벌도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2022년 9월/12월 여론조사에서 2국가 해결안(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지가 37%/32%였으나, 64%/69% 이상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으로 인해 2국가 해법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단일 국가, 즉 2민족 1국가 해결안 지지가 30%/26%였으나, 67%/71%는 2민족 1국가 해결안을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인들 46%/48%는 자치정부 해체를 지지하였다. 86%/81%는 자치정부가 부패했다고 주장했고, 73%/69%는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부패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안보적, 경제적 여건 때문에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들 29%/30%가 이민을 원하고, 서안에서 23%/20%가 이민을 원한다. 팔레스타인인들 48%/72%는 자치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의 투쟁을 지지하였다. 127개 지역에서 성인 1,270명을 대면 인터뷰한 9월 여론조사와 120개 지역에서 성인 1,200명을 대면 인터뷰한 12월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3%에서 대체로 비슷하지만, 크게 다른 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단체 지지가 24% 정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12월 여론조사는 72%가 라이온스 덴과 같은 무장단체 결성을 지지하였고, 79%는 이 무장단체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항복하는 것에 반대한다. 87%는 자치정부가 이 무장대원들을 체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59%는 무장단체들이 서안에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12월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지지가 높아진 이유는 단기적으로 11월 1일 이스라엘의회 선거 결과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등 극우파의 승리 및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타난 친팔레스타인 장면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명분과 점령에 저항할 권리 주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격화되는 팔레스타인인 축출과 유대인 이주 정책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점령정책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능과 부패, 하마스의 부패 등 악화되는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 지쳐 팔레스타인인들이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 다수는 두 국가 해결안이든, 한 국가 해결안이든 정치적 해결안들을 성취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무장 투쟁과 자치정부 해체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어느 정치인도, 파벌도 팔레스타인인 통합의 구심점을 창출하기 위한 핵심적인 내부 동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스라엘/아랍국가들의 관계 정상화 등 역내의 정치 변동과 함께 외부의 강력한 후원을 받는 파벌이나 후보자가 등장한다면, 그 파벌이나 후보자가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연합정부 2022년 11월 1일 이스라엘 의회 선거 결과 새로운 정부 구성권을 획득한 베냐민 네타냐후는 12월 15일 미국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주권이나 안보권이 없는 오직 제한된 자치권을 제안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 일정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신기루를 제거하였다. 게다가 12월 21일 저녁 그는 연합정부 구성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극우파 종교적 시온주의자당에게 서안 전역에 위치한 불법적인 이스라엘 정착촌 전초기지를 합법화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제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연합정부는 복잡한 셈법에서 나온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레토릭 조차도 버리고, 이스라엘 정치 일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12월 21일 우파 리쿠드당 당수 베냐민 네타냐후는 120석 중 32석을 확보한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14석을 확보한 극우파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11석을 확보한 초정통파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당, 7석을 획득한 초정통파 아쉬케나지 유대인을 대표하는 통합토라유대당과 함께 극우파 연합정부 구성 사실을 대통령 이츠하크 헤르조그에게 통보하였다. 12월 22일 퇴임하는 총리 야이르 라피드는 “후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정부를 구성했다”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 연합정부에서 종교적 시온주의자당 소속의 극단주의 매파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내무부를 대체하는 국가안보부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이끄는 국가안보부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맞서 서안에 배치될 이스라엘 국경 경찰을 지휘하는 업무도 수행할 것이다. 그는 2022년 4월 20일, 유대교의 유월절과 이슬람교의 라마단이 겹치는 예민한 시기에 이스라엘 깃발을 든 극우파 이스라엘인 약 1천 명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치며 예루살렘 구도시로 들어가려다가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이 행진을 저지하는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이스라엘 시민권자 추방 등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또 2022년 이스라엘 의회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할 특징은 5석을 획득한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이다. 2021년 1월, 라암당은 2020년 3월 선거 15석 획득하여 제3 정당의 지위를 얻었던 아랍 공동 명부에서 탈퇴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아랍 통합을 붕괴시켰다. 라암당 대표 만수르 압바스는 2022년 12월 7일 103 FM 라디오에서 네타냐후 연합정부가 제안한다면 기꺼이 우파 연합정부에 합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 21일, 만수르는 이스라엘이 유대국가로 창설되었으며, 앞으로도 유대 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가자를 통치하는 이슬람주의자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최근 아브라함 협정 등 변화되는 역내 정세의 변화에 발맞추는 이슬람주의자 라암당은 인종, 종교, 정치 이념의 경계를 넘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협력 가능하다는 상당한 개방성 내지는 기회주의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파 이스라엘 정부는 이슬람주의자 라암당 및 아브라함 협정 체결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진 다흘란과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 정책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의 무장 공격 등 점령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비무장 투쟁 혹은 무장 투쟁은 확실한 외부 후원자가 없는 상태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으며,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에 직면할 것이다.  
2022-12-27 | hrights | 조회: 1005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