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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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그럴 거 모르셨어요?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예상 했던 일들이 아닌가?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때 아닌 괴담이 떠돌았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어찌어찌 교육정책이 바뀔 것이다 하는 내용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중학교에도 0교시가 생긴다거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11시 이전엔 집에 못 온다거나 놀토와 방학을 없애고 학력평가 시험을 매주 단위로 치른다거나 하는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루머수준의 얘기들이어서 뾰루퉁 입이 나오도록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넋두리를 웃어 넘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사고 및 특목고 300개 설립, 영어 공교육 강화. 고교등급제의 실질적 부활 등은 이미 공약사항이어서 아이들을 얼마나 학습지옥으로 몰아붙일지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이니 새 정부 들어 “어륀지”로 상징되는 영어 몰입교육시행 과정의 파행이나 중학교 1학년의 학력 진단평가와 그 후폭풍(사실 이것은 쓰나미에 가깝다. 몇 개 틀리지도 않았는데 강북에 사는 아이가 강남에 가면 하위권이다. 그러니 사교육의 유혹을 떨쳐버릴 부모는 사실상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었던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건이나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옥고를 치룬 강정구 교수의 사건 당시 3.500여명의 보안경찰들이 환호 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는 그들이 새 정부 들어 얼마나 많은 공안 사범들을 만들어 내고 잡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경찰의 분위기가 그러하니 정보과 형사들이 대운하 반대 서명을 한 교수들에 대해 사찰을 감행 하거나. 유력한 야당 공동 선대위원장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이 딱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백골단 부활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애초에 대규모 삽질을 공약 했으니 이전 정부에서 대운하에 부정적 의견을 개진했던 논문들을 폐기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며 대운하 기획단을 꾸려 내년 4월 착공을 목표로 은밀히 뛰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지 않고 그들이 만들었다는 대규모 홍보단의 터무니없는 광고가 총선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흩뜨려 놓을 것인가도 감당할 만하다. 작심한 듯 쏟아내는 고위급 관료들의 강경 대북발언들은 철저하게 “상호주의에 입각한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일이라 생경하지 않고 “고소영”내각 “강부자”내각으로 일컬어지는 땅투기 전문 머슴들의 정부 장악도 그리 낯설지 않다.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위직 공무원인 사촌형은 쌓아놓은 재산이 없어 머슴짓 못하겠다고 울분을 터트리고 새로 영어 학원에 아이를 등록시킨 학부모는 이게 사교육비 줄이는 일이냐며 한탄하고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에 암 치료를 포기한 구멍가게 아저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더니 지들 경제만 살리는거 아니냐며 분노한다.   “그런 거 모르셨쎄요?”    새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귀가 솔깃했던 정책 중에 서민생활 안정 대책 이라는게 있다. 굳이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일단 어감에서 주는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친근함도 호감이 가고 통 크게 **류로 따지면 약 20여개정도 관리가 되어도 충분할 것을 무려 50여개까지 확장 한다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정리해보자. 서민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우선 곡물류, 채소류, 육류, 과일류, 주류 등의 먹거리비용이 있어야겠고 대중교통비와 각종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포함하는 교통비, 우리아이 쪼다 만들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학원비와 학교 운영비등을 포함하는 교육비, 의료보험료와 국민연금, 수도, 전기, 가스. 어쩌다가 발부받는 교통위반 스티커를 포함하는 공과금. 집 살 때 은행에서 꾼 돈이 있으니 연리 7%로 꼬박꼬박 나가는 은행융자금과 사무실임대료, 관리비를 포함하는 주거비. 메이커는 아니라도 철마다 한두 벌씩은 사 입는 의류비. 사실 정부에게 관리해달라고 요구하기 미안한 가족 여가비(박물관. 놀이동산. 각종 공원 등의 입장료)나 외식비의 일부도 거기에 포함되면 좋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대략 이정도 목록에 의료비정도를 포함한 서민 생활대책 안정 이라면 그럭저럭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실용정부의 혜택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진짜 몰랐다 이른바 서민생활안정 대책에 포함된 품목이 발표된 날 애초 나의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는 의구심 “해도 너무하네”하는 분이 치밀어 오른다. **류로 통칭되는 품목이 아니라 아주 친절하게도 단일품목으로 바리바리 싸주셨다. 쌀, 밀가루, 식용유 등 먹거리 23가지. 의류는 달랑 바지 한 가지. 화장지, 유아용품, 세제 등 그야말로 생필품 6가지. 참 열거하기도 치사하다. “발표된 52개 품목은 정부가 관리할 테니 나머지 필요한 수백 가지는 돈 많이 주고 알아서 해결 하세요. 능력이 안 되시는 분들은 꼭 요거만 먹고 싸세요”하는 말과 똑같지 않는가? 그럴 요량이었으면 아예 상표까지 정해주시던지. 이명박 대통령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통해 “공무원은 주인인 국민의 머슴”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내가 부리는 머슴이 “꼭 이것만 처 드세요”하며 차려주는 밥상을 군말 없이 처 드시는 주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말 뿐인 주인노릇하기가 여간 속 터지는게 아니다. 무식한 국민들 세계시민으로 만들려고 영어 몰입교육으로 난리를 치더니 돈 못 버는 국민들 땅 파서 부자 되는 법 알려준다고 대운하 삽질을 예고하더니, 그도 안타까운지 시대를 잘사는 사람들의 표본을 보인다며 39억짜리 내각 만들더니 그 분들이 이젠 더 불쌍한 국민들 위해 밥상의 반찬 까지 관리 하겠다 하니 “그대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쪼그라들고 그대 등 뒤에 서면 한 없이 끓어오르는”국민의 마음은 감지를 하실런지. 빗겨 때려도 전치4주라고 대충이번 총선이 끝나면 180여석 이상을 가져갈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행태가 눈에 선하다.   물가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한 물가안정대책은 결국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진 출처 - 이코노미21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각종 규제 법안들. 사학비리 줄이자고 만들어놓은 사학 관계법. 언론시장의 비정상적 유통과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신문법, 방송법등이 국회 합의 또는 날치기 정도로 개악될 것이고 더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남북 교류 협력법등의 통일 관련 법안들도 개악될 것이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백두산 관광, 남북한 장성급, 고위급 회담은 열리네 마네 할 것이고 경제 살리겠다고 내려버린 법인세. 부동산세를 포함한 각종 직접세의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세금을 신설 할 것이다. 거기다가 국민연금 시원치 않으니 없던 일로 하십시다 얘기 나올 것이고 의료보험 재정 파탄이니 민간보험 강화하자 할 것이고 당연히 대운하 관계법은 만들어 질 것이고... 그 외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국민 감시 관리 감독 기능들을 최대한 활용할 터이니 이 쓰린 가슴 달래려고 들이키는 막대한 소주 소비량을 국민의 간이 어찌 감당할까(다행히 소주는 이번 관리 품목 안에 있다. 거기다가 해장 하라고 콩나물까지. 참 감읍할만한 배려) 올해 찬바람 부는 가을쯤 또 순도 100% 서민들의 입에서 현 정부 여당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 예상하는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예상치 못하는 일이라면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 말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럴 거 모르셨쎄~~요?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05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지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난 느낌이 들어간다. 정권교체가 물리적으로 한 달여 남짓한데도 그렇게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 국민의 정부와 특히 참여정부에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 지탄받았던 온갖 악재들이 불과 한 달여 만에 실용정부에서 그 진수의 맛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에서 초롱초롱한 풋내기 대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학습효과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곧잘 수업시간에 나는 말하곤 한다. 나한테 배워가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지식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깨우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나를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이, 교과서를 통해서 익힌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여러분들은 그 덫에 빠져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하여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못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은 왜 배우고 학습하는가. 나는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어서 정확한 내용을 구사하긴 힘들지만, 상식적으로 학습의 목적은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알게 되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동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배운다. 배워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무익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간파해 내는 것이 학습의 효과라 본다. 인간이 동물들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차이점도 클 것으로 생각된다. 생쥐가 미로의 길을 수없이 헤매고 반복하다가 탈출구를 찾아서 나가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서 점점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시행착오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제대로 학습을 하면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고등동물로 분류되는 소위 지식인들은 더욱 그러하리라고 본다.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국가의 정권을 쥔 사람들은 과거의 학습효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를 다스리겠다고 하면서 국민을 겉보리 보듯이 무시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나라는 절단 나고 파탄의 늪 속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모두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그렇게 국민의 절대적 지지로 선출된 권력이 보여주는 작금의 행태는 무엇인가. 이 정권은 서민들이 잘사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자신과 동종 분류기준에 속하는 대한민국 1%에 들어가는 ‘강부자’ 사람들 일색으로 장관을 임용하였다. 인사는 코드가 아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임명하겠다고 하더니 인사 파이프라인이 ‘고소영 에스라인’ 이라는 코미디 같은 기사가 줄이어 나왔다. 경제 살리기를 하겠다는 미명하에 그토록 참여정부에서 비난해왔던 도덕적으로 하자가 큰 사람들, 특히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서 탈법․불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을 대통령의 측근 사람들로 대거 들이 밀었다. 심지어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나는 장관 후보자들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뻔뻔스러운 행태를 반복하는지... 이 정권은 지난 10년간 정권 교체를 준비해왔다고 호언하여 왔다. 준비된 정권으로 경제 살리기를 하겠다고 떵떵거렸다. 그런데 그 준비되었다는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참여정부 등에서 질타 받았던 온갖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하는 시행착오의 준비였다.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학습을 통하여 잘못된 시행착오의 기술과 대통령 당선이라는 성취에 몰입하여 불필요한 ‘승부사의 오기’만을 반복하여 습득한 것이었다. 생쥐도 시행착오를 통하여 가장 효율적인 통로를 찾아내는데 그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제 그 끝에는 ‘또 속았다’ 한숨과 절망으로 시퍼렇게 멍들어 가는 국민의 냉가슴이 있을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97 | 추천: 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년 9월 10일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그런 연유로 작년 가을에는 특히 그즈음해서 자살관련 언론 보도가 유난히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2005년 자살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며, 특히 2000년대 들어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 최근 20년간 자살률 증가속도와 노년층 자살률 분야에서도 한국이 각각 1위를 차지했고, 또 회원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여성 자살률이 증가추세라고 한다.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에 이어) 자살이 최근까지 4위를 차지하며, 자살 사망률 증가속도는 최근에 올수록 급증한다. 자살자가 1995년에 4,840명, 2000년에 6,460명이던 것이 2005년에는 12,047명, 즉 5년에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0년에 11,844명에서 2005년엔 7,776명으로 34.3% 줄었다. 즉, 2005년 현재, 자살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1.5배인 것이다. 연령별로 보면, 1993년과 비교해서 2005년의 경우,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 증가율이 2배 미만이다가, 40대와 50대는 2배 내지 2.5배 증가했고, 노년층인 60대 이상의 자살률은 3배 이상 증가, 특히 85세 이상의 자살률이 5.3배로 가장 크게 증가하였다. 아울러, 생산 활동이 가장 왕성한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자살이 차지하며, 60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전체의 30.3%로, 중년 남성의 자살사망률 23.8%를 크게 웃돌고 있다. 노년층의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노인부양이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맡겨져 오다가 가족 통합이 약화되면서 그 충격을 노인들이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염세비관, 빈곤, 낙망 등의 신변 비관이 2002년엔 전체의 49.4%를 차지했던 것이 2003년 55.6%, 2004년 55.5%로 꾸준히 상승했다(신변 비관, 병고, 치정과 실연, 가정불화 순). 남녀별로는 남자의 자살사망률이 여자의 자살사망률보다 약 2배 정도 높았고, 연령별 자살 사망자수는 한창 일할 중견인 40대가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는, 2003년-2006년의 경우, 일반봉급자 자살이 전체 직업군의 7.3%로 가장 많았고, 농업 종사자가 전체의 6.7%, 노동자가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자살 사망자 중에서 무직자가 거의 60%에 육박한다. 이러한 자살은 개인 탓이라기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불평등구조 탓이 크다. 염세비관에 의한 자살은 2005년의 연령별 자살 원인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세 이하의 경우가 57.9%로 염세비관으로 자살하는 생애주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고, 그 다음이 21세-30세(52.8%)였으며,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었다. 반면, 20세 이하 염세비관 자살은 2002년 41.9%, 2003년 53.8%, 2004년 56.6%, 2005년 57.9%로 매년 증가했다.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무엇에 대해 그리도 비관하는지 우리 모두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세계자살예방의 날인 지난해 9월 10일 경남 마산시 월영동 경남대 앞에서 경남자살예방협회 관계자 및 학생들이 생명존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어, 자살방지 대책으로는 (1)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정신질환 조기발견과 치료, 재활체계 등의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사회적 지원 프로그램 강화, (2) 건강한 경제 기반 구축, 사회의 불안정성 감소, 도박과 범죄 등 사회병리 감소를 통한 이기적 자살 방지, (3)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한 가정과 학교의 노력, (4)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의 극단적 표현으로서의 자살을 대신할 수 있는 종교 및 문화의 역할 회복 등이 제시되며, 아울러, 남겨진 가족에 대한 정신·심리상담 및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역시도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자살 시도자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친 사람의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방안,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함께 참여하는 ‘생명존중 인식개선 캠페인’ 실시, 자살방지 긴급 상담전화 요원 확충, 자살관련 유해사이트 감독 강화, 농약 농도 하향조정, 건물·다리 등에 자살방지 펜스 설치 의무화, 초·중·고에서의 자살예방교육 확대 등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고민 중이다. 미국은 정부 산하 자살예방센터에 매년 1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고 일본도 후생노동성이 자살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모색하여 2006년 6월 21일에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자살대책은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음을 감안하여” “국가, 지방 공공단체, 의료기관, 사업주, 학교, 자살의 방지 등에 관한 활동을 실시하는 민간단체, 기타, 관계하는 자의 상호 밀접한 제휴 하에 실시되어야 한다”며 국가의 책무, 지방 공공단체의 책무, 사업주의 책무, 국민의 책무 등을 규정하고 있고, 의료 제공 체제의 정비, 자살발생 회피를 위한 체제의 정비, 자살 미수자에 대한 지원, 자살자의 친족 등에 대한 지원, 민간단체의 활동에 대한 지원 등을 강구하도록 했다. 이런 사례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경우에도 안명옥, 황우여 등의 국회의원 10인이 자살예방법안을 안명옥 의원 대표발의로 2006년 9월 19일에 발의한 바 있었다. 2008년 현재도 아직 의안계류 중인데 올해 4월 안에 통과되지 않으면 다시 발의해야 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등이 수정안을 준비하여 다시 발의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일본의 사례처럼 이젠 정부가 나서서 자살예방법을 입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 자살예방을 위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인권단체들도 힘을 보태주어야 할 것이다. 자살예방은 이젠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사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해 몇 년째 추진하고는 있지만 역부족 아닌가? 인권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 생명권을 지키는 일에 인권단체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정부 및 국회에 압력을 가하고 시민사회 내에 생명권 의식을 확산시킨다면, 주위의 안타까운 자살이 줄어들고 자살예방법이 제대로 입법화되고 제도화되는데 꼭 필요한 원동력 내지 추진력을 보태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 5분에 1명씩 자살 시도가 이루어지는 등,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자살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방치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급한 ‘인권 문제’가 또 있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64 | 추천: 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국민교육헌장이란 게 제정된 1968년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인가 수업이 끝난 후 담임 선생은 국민교육헌장을 큰 소리로 다 외운 학생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먼저 할 사람부터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세 번째로 손을 들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시선을 뒤로 하며 자랑스럽게 교실 밖으로 나왔다. 첫 번째 두 번째 손을 들었던 학생들이 중간에 틀려 다시 해야 했으니 틀리지 않고 제대로 외운 건 내가 처음이었다. ‘민족중흥’이니 ‘인류 공영’이니 ‘상부상조’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들을 앵무새처럼 외워댄 게 뭐 그리 자랑스러울 게 있을까마는 초등학교 3학년 꼬마에게야 남보다 빠른 암기력을 과시하고 남보다 먼저 집에 가는 게 일단 기분 좋은 일이었을 터다. 게다가 하나가 더 있었다. 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국민교육헌장을 낭송했을 때 담임선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잘 했어. 넌 애국자다.” 애국자라니... 드디어 나도 안중근 의사나 이순신 장군 같은 애국자 반열에 오른 거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었을까. 국민교육헌장이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던 일제의 교육칙어를 본뜬 것이고 군국주의의 잔재이며 온 나라를 병영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박정희 통치 이념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이나 지나 대학생이 된 후다. 적어도 그 이전까지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남보다 빨리 외운 애국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았다. 자긍심을 가지고 뭘 했냐고? 이를테면 이런 거다. 그 시절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 애국가가 울려나왔고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그럴 때 나는 단 한 번도 자리에 앉아서 개긴 적이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자리에 일어나 다소곳이 가슴에 손을 얹곤 했다. 속으로 딴 생각을 할지언정 그 경건한 애국 의식을 거부한 적은 없다. 또 있다. 매일 저녁 여섯시가 되면 국기하강식이란 게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보며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을 때 난 한 번도 이를 무시하고 그냥 간 적이 없다. 내 눈길이야 앞에 있는 아가씨 뒤태에 머물지언정 손은 늘 가슴에 가 있었다. 그 뿐인가. 뻑 하면 열렸던 반공궐기대회에 전교생이 동원될 때도 몸이 아프다든가 바쁘다든가 핑계를 대며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다. 뒷줄에 서서 친구들하고 장난질을 칠망정 나는 늘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의’ 현장에 함께 했다. 그런 대회에는 늘 머리에 띠를 두르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아저씨들이 손가락을 깨물어 쓰는 글씨가 무슨 내용인지 저 공설운동장 뒤편에 서 있던 나로서야 알 수가 없었지만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고통을 감수하는 그 아저씨들의 절절한 애국심이야 모를 리가 없었다. “정말 대단한 애국자들이야.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다니...” 나는 마치 내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기라도 하듯 슬그머니 감싸 쥐며 그 아저씨들처럼 애국적이지 못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곤 했다.   1978년 국기하강식에 맞쳐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시민들 사진 출처 - 뉴시스 그 시절에는 또한 애국애족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제재가 가해지곤 했다. 온 나라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싸우는 마당에 서양 사람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기타를 퉁겨대고 춤이나 추는 젊은이들도 당연히 제재 대상이 됐다. 역시 퇴폐적인 서양 풍조에 물들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아가씨들도 즉심에 걸려 유치장에 갇히곤 했다. 맹세하건대 그 시절 나는 길 가던 청년의 장발을 자르고 아가씨들의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던 국가 권력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 그런 게 다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믿을 만큼 애국자였던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의 애국심을 일깨우는 노래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방송을 타곤 했다. 아침마다 들리는 ‘새마을노래’, 6월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던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하는 6.25 노래, ‘싸우며 일하고 일하며 싸우는’ ‘향토예비군의 노래’, 그리고 ‘백두산의 푸른 정기’가 ‘이 땅을 수호하’던 ‘나의 조국’ 같은 노래들은 달리 배운 적도 없건만 어느 틈엔가 내 입에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늘 하루에 몇 번씩은 애국자가 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극장에서 애국가가 사라지고 국민교육헌장도 잊혀가고 국기하강식도 없어졌고 그 흔하던 궐기대회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새마을노래나 ‘나의 조국’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경우도 없다. 툭 하면 사람들을 불러내 애국자로 만들어내던 강제 사항들이 사라졌으니 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애국자 노릇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애국자 행세를 할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난리를 치는 모양이다. 월드컵 때가 되면 매일 원수처럼 싸우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함께 어깨를 걸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너나없이 독도를 사수하는 애국자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가. 한때 담임선생이 인정한 애국자였던 나지만 언제부터인가 애국이란 말이 조금도 나를 감동시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 애국이라 믿었던 게 애국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까닭도 있고, 그 시절부터 누구보다 앞장서서 애국을 설파하고 국가관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자기 자식 군대 빼내고 이중 국적 얻기 위해 원정출산하고 부동산투기로 돈을 벌어온, 누구보다 반애국적 반국가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 때문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제 국가라는 존재보다 나라는 존재, 혹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훨씬 더 가치 있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란 걸 깨닫게 된 까닭이다. 권정생 선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 깊이 감동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645 | 추천: 0
- 대안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러기 아빠의 쓸쓸한 죽음….’ ‘기러기 아빠 주검 뒤늦게 발견’ 잊혀질만 하면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던 ‘기러기 아빠’ 얘기는 어느 새 우리 사회에서도 진부한 소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조기유학이 늘어나면서 일반적인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주위에서 조기유학을 보내거나 아예 전 가족이 이민을 떠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 부유한 편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우리 동네에서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반 친구들 가운데 1년에 한두 명씩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꼭 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학을 떠난 친구와 두어 달 동안 인터넷으로 이러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겼다며 아쉬워하던 아이의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낀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기러기 아빠에서 독수리 아빠와 펭귄 아빠를 거쳐 참새 아빠 등으로 세분화, 다양화(?)되는 이런 현실은 내게 그 실체를 콕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분명 문제성 있는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문제에 그리 큰 관심을 두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삶과는 별개의, 동떨어진 세상의 얘기라는 생각에서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꿈에도 꿔보지 않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맙소사, 이젠 그게 아니다. 아내가 아이들의 유학 얘기를 꺼낼 때만 하더라도 ‘우리 처지에’ 하는 생각으로 눙치고 지나갔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스스로도 공부할 나이는 지났다며 수없이 머리를 두 손으로 싸매던 아내가 대형사고(?)를 치고만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법 운도 따랐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공부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나설 때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며 얕잡아 본(?)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전직 간호사 경력을 활용해 이러저런 시험을 친다고 준비하더니만 떡하니 생각도 못했던 호구지책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 나가는 아내의 모습에 예전의 그를 다시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아내의 새로운 변신은 내 삶의 행로도 다시 수정케 하는 놀라운 결과를 낳고 있다. 내심 조금씩 삶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셈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마다 대답은 대개 아내의 생각에서 결론을 맺게 된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숨 막히는 곳에서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 좀 모자라더라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그런 류의 생각이다. 문제는 그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부모의 역량이 평가받는 시대에 아내는 어떤 놀라운 힘으로 그 일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경제 지금도 아내와는 이 문제를 두고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하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지. 유학의 대상이 꼭 미국일 필요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선택 가능한 곳이 그 곳일 뿐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을 해가고 있는 편이다. (지금의 월급으로는 네 아이의 영어학원비도 댈 수 없는 판이니 경제적으로도 타산이 맞는 일이긴 하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데까지 진척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롯한 개인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등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현실 회피’라는 열패감으로 괴로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새로운 세상과 부닥쳐야 한다는 점에서 오는 두려움도 적지 않다. 아내의 계획대로라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나는 예의 기러기 아빠, 아니 펭귄 아빠가 되어야 할 판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어 1년에 한두 번 만나기 힘들다는. 이런 마당에 새로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기러기 아빠를 더 두고 볼 수 없어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염장을 지른다. 문제는 영어 교육만이 아닌데도 말이다. “저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은 어쨌든 한동안은 ‘펭귄’으로 살아가야 할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수없이 대안을 고민하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써왔음에도 결국은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야만 하는 현실에 서글퍼지는 요즘이다. ‘참새 아빠’에서 더 분화돼 또 무슨 아빠가 나타날지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은 정녕 힘든 일일까. “학부모들의 허리가 휠 정도로 부담되는 사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어 교육만 국가가 책임지고 해 줘도 가슴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더 이상 방송이나 신문에서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던져주고 싶다. “문제는 그게 아냐, ○○야!”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581 | 추천: 1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KTX를 타고 그의 고향 경남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야~, 기분 좋다”고 외치는 그의 표정은 상기되어있었고 모처럼 여유가 넘쳐 보였다. 슬리퍼에 셔츠 차림으로 집 앞에 나선 그의 모습은 ‘놈현스러운게’ 아니라 노무현다워 보였다. 이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 그의 5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의 바람대로 제 발로 걸어서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만은 일단 이룬 셈이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이룬 여러 성과와 노고를 생각한다면 박수를 쳐드리고 싶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다. 그가 남겨놓은 숱한 논란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내세운 주요정책 때문에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 있어 박한 편이다. ‘노명박’, ‘이무현’이란 우스갯소리도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 활동 2개월이 참여정부 5년을 겪은 듯 피곤하다는 얘기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유사점을 찾기도 하고, 개혁과 실용이라는 차이를 지적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미FTA가 그렇고 이라크 파병이 그렇다. 아마 많은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게 된 대표적인 정책들일 것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사이익으로 삼아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실용과 성장주의를 내세우며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는 셈이다. 오히려 더 서두르는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는 4월 미국 방문에 앞서 한미FTA 국회비준동의안을 처리하겠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는 얘기도 들리고, 이라크 쿠르드 지역 석유개발을 따낸 것을 자랑하며 앞으로 자원외교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라크 쿠드르 유전개발의 경우 현재 불안정한 이라크나 쿠르드 상황에서 유전개발권 보호를 이유로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간을 또 연장하는 수순으로 가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동안 국정수행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비판문화 형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있어서 참여정부의 기조와 다르게 갈 경우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분명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그의 목소리가 이명박의 목소리와 얼마나 차별성을 가질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후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환영행사가 끝난 뒤 사저로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친노그룹으로 불리는 한 의원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보다 전직 대통령의 임기가 더 길다’고. 분명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직 그의 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책임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TV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무실 한 쪽벽에 간직하고 있던 2002년 그를 지지해준 국민들의 편지와 사진들이다. 그 속에 담긴 지지자들의 마음을 아직 잊지 않았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537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제안했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영어학원의 설레는 들썩임을 이미 누구나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기러기 아빠를 몰아내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더 많은 기러기 가족을 양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학교 현장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인수위의 한심함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정책을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해당자들의 의견수렴은 물론 세심하고 정확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져야하고 신중한 계획아래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수위는 학교의 영어교육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안다면 그런 정책을 그 여파나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그토록 쉽게 발설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영어몰입교육을 운운하기 이전에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몰입교육을 하는 나라는 오랫동안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나 핀란드처럼 다민족 국가로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통해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단일민족국가이고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이라는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즉 영어를 소통수단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능숙한 영어실력의 보유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열쇠인 것처럼 생각하는 인수위의 태도에 굳이 일본과 필리핀의 경우를 비교의 예로 들지 않더라도 영어가 그 기준이 되지 못함을 인지할 것이다. 영어권 국가들이 세계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지구화시대에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영어가 국제적 소통의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국제적 소통 언어인 영어를 필요로 하는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전 국민이 영어배우기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단지 국가는 필요에 따라 영어 배우기를 원하는 국민이 있다면 어떤 장애도 없이 쉽게 영어를 배우도록 그 여건과 환경을 제공해주면 된다. 그리고 인수위가 영어교육만이 아닌 교육의 목표를 큰 틀에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틀 속에서 영어교육도 자리매김해야하는데 인수위는 현재 행하고 있는 교육의 목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영어교육을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의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현재 상황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여타 과목의 수업 내용의 깊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모든 국민을 우매화시키는 것이고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 창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여론의 반대로 영어몰입교육이 해프닝이 되었지만 인수위의 영어교육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을 주당 1시간 더 늘인다고 영어실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럴 경우 주당 수업 시간수가 바뀌든가 다른 과목의 시간을 줄여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경우 현재의 많은 주당 수업시간도 문제인데 더 늘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후자의 경우 어느 과목의 시간수를 줄이느냐의 문제가 남게 된다. 여러 과목-특히 국어-을 통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인데 인수위의 생각대로 시행하다가는 영어만 할 줄 아는 국제적 미아를 만드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미국의 속국이니 51번째 주니 하는 비판을 듣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림 출처 - 한겨레21  공교육의 강화가 아닌 영어 사교육의 강화! 기러기 아빠가 아닌 기러기 가족, 펭귄 가족의 확대! 그리고 영어 사교육을 통한 심화되는 교육의 양극화! 그로 인한 부의 대물림 등...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파장을 손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인수위는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는 것일까? 진정 공교육의 강화를 원한다면 공교육에 돈을 풀어라! 2, 30년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학교 환경에서 지구화시대를 논하고 어학을 배우기 위한 Lab실 하나 없는 학교 환경에서 영어몰입교육 운운하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지금의 학교 현장과 기초 없는 건축이 대비되면서 현실성 없고 대책 없는 정책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면서 말만 공교육 강화란다. 이제라도 인수위는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깨달아야한다.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아주 신중하면서도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지난한 일련의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교육의 중심, 교육의 목표를 잃지 않아야한다. 불도저를 교육에 들이대지 말아야한다. 밀어붙인다고 되지도 않을뿐더러 잘못 밀어붙이고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감내해야하는지를 생각해봐야한다. 이번 영어몰입교육 사태를 교훈삼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열린 마음으로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를...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544 | 추천: 0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히 비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치를 혐오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인’, 혹은 정치지향적인 사람도 혐오하곤 했다. 이런 정치포비아는, 나와 같은 세대라면 지금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일종의 암묵적 합의 같은 거였다. 직접적으로는 운동을 출세(정치와 동의어로 인식되는)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부류에 대한 경계가 작동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4‧19 세대의 정치적 행보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으려했던 386 세대의 순교자적 의식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 생활의 핸디캡이 될 것을 알면서도 정치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386 세대 역시 나이가 들어 학생운동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또한 학생운동 역시 정치의 일환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을 얼굴로 내세운 386 세대(일부)의 정치 참여는 4‧19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끝을 맺고 있다. 정치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켰던, 덕분에 정치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불식하는데 도움을 줬던 민주노동당은 지금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누가 뭐래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는 ‘진보’가 잡고 있었다. 민주화는 시대의 명령이었고, 민주화 인사라는 칭호는 훈장이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 헤게모니는 안티테제로서의 헤게모니였다. 모든 안티는 대상이 사라질 때 힘을 잃는다. 헤게모니의 꼭지점은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였다. 부패척결을 내세운 시민단체들의 이 운동은, 역설적이게도 이 운동이 시들해진 2004년 총선에서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역사는 강물과 같아서 한번 트인 물꼬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범사회적인 개혁 드라이브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고, 2004년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상 최초의 진보정당 원내 진출은 이런 개혁 드라이브의 맥락에서 가능했다. 이렇게 말하면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슬프게도, 민주노동당의 강령이 국민들을 설득한 결과가 아니었고, 노동자들이 노동자 후보를 찍는 계급 투표의 결과는 더 더욱 아니었다. 부패와 무능으로 표상되는 기존 정치권의 대안으로 국민들은 새 얼굴, 새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 역사상 최대의 물갈이가 이뤄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다시 말해 진보정당의 최초 원내 진출은 민주노동당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관계법 개정도 시민단체를 비롯한 범진보세력(물론 민주노동당도 포함되지만)의 노력의 결과였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굳이 민주노동당의 자력 운운하는 이유는 작금의 민주노동당 상황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분열’돼 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착잡하다. 그러나 ‘분열’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안된다. 분열이란 내부 토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싸움을 지켜보는 대다수 구경꾼들은 싸움 자체를 즐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싸움 자체보다는 싸우는 이유가 더 중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싸움 이후가 더 중요하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더욱 강도 높은 내부 토론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토론을 외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조승수 전 의원의 발언 같은 민주노동당원들의 공개적인 발언이 진작부터 더 많이 나왔어야 한다. 이른바 진보정당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렸어야 한다. 그동안 국민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어하는지.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대표와 다른 비상대책위원들이 지난 2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총사퇴를 발표한 뒤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진보가 새로운 사회의 이미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분석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구 혹은 보수는 정확히 그 빈틈을 파고 들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난리를 쳤다.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흔들어댔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정리 등에만 매달리는 이념정부라서 그렇다는 각주도 달았다. 결국 21세기판 ‘못살겠다 갈아보자’ 캠페인은 성공했다. 수구세력의 악다구니가 통할만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 이념적 체력이 허약하다는 점은 통탄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더욱 통탄할 일은, 진보에게는 이렇게 취약한 논리의 자기 프로그램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사노맹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윤아무개씨가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법정에서 당당하게 외쳐 화제가 됐다. 지금 진보진영은 그때보다 얼마나 발전한 걸까? 사회주의라고 선언적으로 말하는 게 용기 있게 보였던 시절보다 얼마나 더 깊이가 생겼을까? 웬 이념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내가 원하는 사회가 사회주의인지, 사민주의인지, 아니면 제3의 길인지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가지로 정리된다면 사회 각 분야별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토론해야 한다. 강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다. 강령에 동의하지 못하면 따로 당을 만드는 게 낫다. 그 과정을 당원 및 국민들과 적절히 공유할 수 있다면, 작금의 위기는 오히려 약이 될 것이다. 정치를 혐오했지만 나는 늘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540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1980년대 중반 나는 지방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 여름방학 내내 전국체전 식전 행사 준비를 위하여 학교 근처 운동장에서 마스 게임 연습을 하였다. 2학기에도 10월 전국체전 때까지 오전 수업을 마친 후에는 그 연습을 해야 했다. 2학년 때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3학년 때에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방과 후 10시 30분까지 야간자습을 했다. 그것이 내가 대학 입시를 위하여 한 준비의 대부분이었다. 그 무렵에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모든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다. 언론은 학생들의 ‘학원에서의 학습권’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단지 학교가 학생들을 오래 붙잡고 공부를 시켜 주기를 원했다. 내가 살던 도시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고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연합고사 성적 하나로 인문계 고교의 진학 여부가 결정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특별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그 때도 과외는 할 수 없었다. 인문계 고교 진학이 결정된 이후 학생 자신이 학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당시 나는 동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었음에도, 버스로 20분 이상 걸리던 곳에 있던,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된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별 불만 없이 그 고등학교를 다녔고, 부모님 역시 그 것 때문에 나의 장래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찬가지였다. 그 무렵에도 과학 고등학교란 것이 있었다. 그 곳은 과학기술대학교와 같은 특성화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입학하였다. 실제 그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이공계통의 전공을 선택하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합격 여부는 내신 등급, 학력고사 성적, 논술시험 등의 성적으로 결정되었다. 현재 제도와의 차이점은 논술시험 점수 편차가 매우 낮았다는 것, 학력고사의 과목 수가 많고 문제 유형이 비교적 단순했다는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논술시험의 점수 편차는 1, 2점이었다. 문제 역시 기초적인 작문 실력을 보는 정도였다. 따라서 대학들은 내신 등급과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야 했다. 당시에도 서울의 어떤 지역의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얘기는 있었다. 그러나 대학이나 언론이 학교 간 학력 편차나 대학의 학생 선택권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고교평준화 시행계획이 발표된 1973년 3월 1일자 한국일보  신문  1980년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나처럼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를 나와 단답식의 학력고사를 치른 후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독재 정권이라는 어두운 환경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었음에도, 학생들은 자기 돈으로 인문사회학 책들을 사서 읽고, 당시 막 판매되기 시작한 퍼스널 컴퓨터를 익히고 공부하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였던 학생들은 생활비를 벌며 자신의 공부를 해야 했었다. 그렇게 공부했던 평준화 세대들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지금 당연한 것처럼 얘기되는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등과 같은 기초적인 민주주의 제도, 과거사 청산 등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그들이 없었더라도 지금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다시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 때 평준화 세대들은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고,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 구조가 바뀔 수 있었던 것 역시 평준화 세대의 공이었다. 평준화 세대들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희망과 그들이 익힌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하였다. 요즈음 교육 제도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교 평준화 정책과 대학 입시에 관한 것이다. 그 어지러운 논의를 보면서 나는 궁금해지곤 한다. 평준화 정책 및 획일적인 대학 입시 제도가 철저하게 관철되던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하였던 평준화 세대들이 그렇게 실패작이었던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이룩한 발전 중 상당수는 그들의 몫이다. 요즈음 거론되는 평준화 정책의 단점이 나타난 이유는 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부족하였던 관료와 학자,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평준화 정책의 올바른 운용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 입시 제도를 수차례 바꾸고 특수목적고의 편법적 운용을 방임함으로써 평준화 정책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정책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점이 고교 평준화 제도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사실, 나는 교육에 관하여 문외한이다. 따라서 내가 교육 제도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말한다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다만 요즈음 교육에 관한 논의를 보면서, 자신의 품질(?)과 인재로서의 적격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평준화 세대로서 나름대로의 변명을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540 | 추천: 0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당신이 중대한 범죄의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다. 결백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에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한다. 어차피 죄를 짓지 않았으면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 것일까? 대체로 80~90% 정도의 신뢰도가 있다고 한다. 우리 말의 십중팔구라는 말이 있듯이 거짓말탐지기는 매우 신빙성이 높은 조사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저 80~90% 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의문이 든다.  범죄수사와 관련한 위 통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다음 전제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위 통계는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작성된 것이어야 한다. 형사처벌이 전제되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과 형사절차에서 이루어지는 거짓말은 도저히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 부모님께 거짓말하는 것과 수사기관에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긴장되겠는가.  둘째,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에 관해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거나 매우 부족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탐지기가 적어도 범죄 입증과 관련해 매우 신뢰성이 높다는 통계는 상당한 정도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원이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라고 하겠다. 문제는 이처럼 신뢰도를 의심하기에 충분한 조사가 우리 나라에서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것을 전제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진술거부권을 사실상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가능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검사관이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피의자 진술의 진위 여부를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수사기관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시 대상자의 동의를 받기 때문에 진술거부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BBK 사건의 김경준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했다는 보도를 보고,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김경준이 거짓말이 했구나”였다.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는 것은 더 큰 의심을 낳기 때문에 피의자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형사절차의 기본적 원리에도 반한다. 수사를 하더라도 범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피의자에 대한 수사절차를 종결해야 한다. 그런데 거짓말탐지기라는 과학적(?) 수단을 동원하여 피의자의 내심까지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 속마음이야 말로 양심의 기초이며, 인격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사람의 속마음을 거짓/진실로 임의로 구분하여 버린다. 이러한 점 때문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그 신뢰성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형사절차에서는 실시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프리카 일부지역에서는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새알을 주고 받도록 했다고 한다. 진범이 가장 긴장하고 있을 것이므로 새알을 깨뜨리는 사람이 진범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소 뭐든지 잘 깨뜨리고 부수는 편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역시 새알 주고받기의 진화된 버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23 | hrights | 조회: 60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