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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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이찬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입만 열면 “야 내가 나이 마흔에…”라고 너스레를 떠는 선배가 있었다. 경상도 사람이어서 사투리가 심했는데, 내게는 꽤나 희극적으로 들렸다. 나이 마흔을 한참 넘기고도 한동안 그 말을 애용하던 선배는 어느 날 갑자기 신문사를 그만뒀다. 무슨 개인 사업을 한다는데 만나보질 못해서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불현듯 그 선배가 생각난 건 내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서였다. 이젠 만으로 쳐도 꼼짝없이 넘어버린 그 숫자의 무게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생각해보면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있고,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도 있지만, 나이 마흔을 주제로 뭔가 그럴듯하게 읊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막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감수성이 막 40대에 접어든 이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멋대로 추측하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가는 세월이 쏜살같이 느껴진다는 말 속엔, 감수성이 무뎌진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기성세대가 됐나봐.” 휴게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한 입사 동기가 지나가며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촛불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는 말이었다. 그렇지, 나이 마흔이면 이제 확실히 기성세대가 됐다는 뜻이지. 이미 만들어진 세대라는 뜻이니까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세대라는 함의가 담겨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가진 것이 많아지고, 가진 것이 많아지면 지키고 싶어진다. 보수화한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은데도 보수화하지 않는 사람은 몸으로든 머리로든 특별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촛불집회의 불을 처음 지핀 것은 10대들의 감수성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0교시 수업에 시달리다 겨우 대학에 들어갔지만 취직도 못하고 빌빌거리다 10년 전 학교급식으로 먹은 쇠고기 때문에 광우병에 걸려 대운하에 뿌려질 세대”라며, 이 사회의 하층민으로서 처지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아이들이 시위를 하다니, 좌우 할 것 없이 기성세대들은 모두 놀랐다. 우리의 상식 속에서 그건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유관순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다 투옥된 것이 17살 때였고, 김구가 동학의 ‘아기접주’가 된 것이 18살 때였다. (픽션이지만) 로미오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 줄리엣의 나이는 14살이었다. 4·19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중·고생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10대들을 시장에 내다 팔 상품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완성품이 될 때까지 10대들을 끊임없이 닦달한다. 모든 판단과 행동은 대학 입학 이후로 유예된다. 요즘엔 대학에 입학해서도 상품화 과정이 계속되기 때문에 취직 이후로 유예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30대가 되도록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10대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육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10대들의 매체인 인터넷 덕분이다. 자기들이 정권을 교체했다고 우쭐했던 조중동은 혼쭐이 났다. 잠깐, 더 이상 옆길로 새지 말고 다시 나이 얘기로 돌아와 보자. 나이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심각한 지체현상과 조기퇴출 현상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미 육체적으로 성인인 아이들을 애 취급하며 사회 진출을 막고 있는 반면, 어른들은 40대가 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배우로 치면 늦깎이로 어렵사리 데뷔했는데, 조기 은퇴를 강요당하는 꼴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 인간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치를 우려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겠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이 마흔에…”를 입에 달고 다니던 선배도 이 점이 억울했을 것이다. ※아직 어린놈이 웬 나이 타령이냐고 생각하신 분들께는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96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제1막 내 방이 밝으니 어머니 방도 밝은 줄 안다 아내의 성화에 결국 수퍼엘 갔다. 베란다의 전구가 망가진 지 한 3년쯤 되었는데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은 꼭 갈아 끼워야 겠다는 것이다. 동그란 백열전구를 고르면서는 먼저 몇 촉짜리인가를 확인 한다. 백 촉짜리와 육십 촉짜리 두 종류가 있다. 아쉽다. 나는 제일 전기소비량이 적은 삼십 촉짜리 백열등을 사고 싶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요즘도 그런거 나와요?”라고 내게 반문한다. 전기 배선이 엉망인 방두칸짜리 초가집에서는 꼭 삼십 촉 백열등을 사용했다. 필라멘트가 너무 잘 끊어지고 때론 터지기까지 해서 전기 소켓트의 스위치를 돌리기도 두려울 정도였지만 어머니는 밝기가 두 배인 육십 촉짜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그 이유는 당연히 다달이 거두어 가는 전기세 때문이었다. 실제로 어쨌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전기세의 반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게 틀림없다. 전구가 금방 소모되는 탓에 나는 아버지의 술심부름보다 더 많이 어머니의 전구 심부름을 한 것 같다. 날 저무는 산길을 넘어 심부름을 다니면서 나는 지금처럼 늘 몇 촉짜리 전구인가를 확인하곤 했다. 전구 한 알을 사려고 들른 슈퍼에서 삼십 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보다 나는 너무 밝은 곳에 산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고향집에서 짧은 형광등 한 알에 밤을 의지하고 계신 어머니의 밤을 생각해 보지만 그 방이 얼마나 어두침침한지는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밝게 살고 있으니 어머니의 방도 필요한 만큼 밝겠지 하는 생각으로 산다.     제2막 제 등이 따시니 백성등도 따신 줄 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중동산 두바이유의 현물 시세가 이미 130달러를 넘어섰고 갖가지 이유 때문에 200달러까지 치솟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시작 되었고 노선버스의 운행도 줄일 예정이다. 각종 원자재 값의 상승으로 물가는 치솟고 심지어 목욕탕의 온수마저도 데우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이 세계의 거의 전부를 움직이는 에너지인 석유 값의 폭등이 불러온 결과이다. 지난해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적어도 지구가 망하기 전까지 한번 오른 석유 값이 제자리로 환원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국제 유가의 폭등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니 적절한 대책도 있었어야 마땅하고 앞으로도 한참 치솟을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근데 지금의 mb정부, 뭐가 없다. 화물연대의 파업이후 물류가 세상을 멈추게 할 조짐을 보이자 긴급하게 대책회의라는 건 하는데 특별한 알맹이는 없다. 고통을 분담하자고 화주들을 회유 하거나 불법파업 엄단한다고 노조원을 협박 하는 거 외엔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노선의 감축을 예정한 지역 버스운송조합의 발표에도 역시 은근한 협박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어쩌랴 치솟는 물가를 협박과 회유할 대상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허긴 정부와 청와대의 구성을 보면 이해할 만은 하다. 자기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혹은 부동산 재테크를 위해 위장 전입 몇 번쯤은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 것이다. 자기가 논문 표절을 하거나 농지법 위반을 관행처럼 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런 줄 알 것이다. 자기가 한 30억쯤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쯤은 다 있겠지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관행처럼 행한 깜도 안 되는 탈법을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초 얘기꺼리도 되지 않는 불쌍한 백성들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는 기름 값에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원성에도 고작 몇 십만 원쯤 더 소요되는 그들의 고급승용차는 멈출지를 모를 것이고 인상률 7%에 다다른 서민물가 상승의 원망도 어린아이의 칭얼거림 쯤으로 들을 것이다. 4.15 교육대책을 내놓았던 교과부의 수장께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쌈빡하게 아이들 공부 시킬 텐데 왜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서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하지 않던가. 오죽하면 그들이 미국 가서 대접받는 쇠고기가 값 싸고 질 좋다고 박수치며 수입협상 해놓고는 어린학생들 촛불 들게 만들까. 누군가의 전언에 의하면 아직도 그분들 촛불의 의미를 전혀 감 잡지 못하셨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제3막 추기급인 제 마음을 표준삼아 남의 마음을 추측한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눈 내리는 한 겨울 따스한 방안에서 여우 털을 입은 임금이 신하에게 묻는다. “올해날씨는 참 이상하다 사흘 동안이나 눈이 쌓였는데도 날씨는 봄처럼 따뜻하니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신하가 정중하게 직언을 한다. “현명한 군주는 자기가 배부르면 누군가 굶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자기가 따뜻하면 누군가 추위에 떨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자기 몸이 편안하면 누군가는 지쳐 피곤하지 않은가를 걱정 한다”고. 호랑이 담배 한참피고도 남을 2500년 전 중국의 춘추시대의 얘기이다. 그나저나 지금 청와대에는 이런 말을 대통령에게 건네줄 참모나 제대로 있는 것일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20 | 추천: 0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2003년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오렌지팜 지역을 취재했다. 오렌지 팜은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 빈민지역인 소웨토에서도 쫓겨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황량한 벌판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여기엔 80만에서 15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당엔 큼직한 플라스틱 박스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빛바랜 집들에 비해 플라스틱 박스들은 설치 한지 얼마 안 된 것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도 계량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것보단 좀 더 크고 복잡해보였다. 바로 선불제 수도계량기(Pre-paid Water Meter)였다. 미리 돈을 내고 카드를 사서 그 돈만큼의 물만 공급받을 수 있는 장치다. 가난한 이들에게 수도요금을 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요하네스버그의 수도회사가 도입한 시스템이다. 요하네스버그의 수도가 민영화 된 것은 2001년부터다. 오랜 백인통치를 끝내고 만델라 정권이 들어섰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은행은 세계화란 이름으로 남아공에 대한 개발을 지원하면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그 중 하나가 물의 민영화다. 요하네스버그의 상수도사업은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 수에즈의 수중(요하네스버그 워터)에 넘어갔다. 요하네스버그 워터는 상수도 사업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도 깨끗한 물을 공급할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수도망을 확대하고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동네에 선불제 수도계량기부터 설치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수도요금을 떼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더 많은 물을 더 효율적으로 더 깨끗하게 공급하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요하네스버그 워터가 진출하기 전 오렌지팜 사람들에게 수도요금은 사실상 공짜였다. 마을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거나, 집에 수도가 있는 경우면 그냥 썼다. 다만 돈을 내지 못했을 뿐이다. 남아공의 상수도가 민영화되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집단 콜레라 발병이 늘었다는 점이다. 요하네스버그 중심가 근처의 대표적 빈민 밀집지역인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의 판잣집들은 주스케이 강 근처에 몰려있다. 수도공급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더러운 강물을 생활용수로 이용했고 그 결과 콜레라 발생이 증가한 것이다. 이들에게 요하네스버그 워터의 깨끗한 수돗물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지역엔 선불제 수도계량기 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BLUE GOLD... 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앞으로 닥쳐올 물 부족 시대를 대비해 앞 다투어 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석유보다 더 비싼 물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라 아주 큰 이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상품, 즉 ‘푸른 황금’이다. 물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이를 돈벌이로 삼겠다는 발상은 전문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에 우리라고 예외일 수 있으랴. 쇠고기 장관고시가 강행되던 지난 달 29일, 이명박 정부는 물 민영화를 본격화하는 계획을 제출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 상수도 통합 전문기관 관리계획’을 제출하고, 155개 시도지역의 상수도망을 고려, 3~15개 자치단체를 권역별로 광역화해 수자원 공사 등과 같은 전문기관이 관리하고 7개 특별시, 광역시는 경영혁신 후 자율적 판단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사화를 추진한다는 게 뼈대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지난 2003년 물 사유화 문제를 취재할 때 우려했던 것이 이제 우리 눈앞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말대로 ‘값싸고 좋은 쇠고기’는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싸면 안마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실용적인, 너무나도 실용적인 발상 앞에서 왜 난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걸까. ps. 그나저나 물 값이 오르면 청계천에 흘려보내는 수돗물은 어떻게 할 건지 그건 좀 궁금하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55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내가 가진 가치나 철학과 너무나도 다른 방식의 가치나 철학을 만나게 되어 종종 놀라게 된다. 얼마 전 학교에서 화장실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가 아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사용과 관련하여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다. 내용은 아이들이 강낭콩을 심고 물을 주기 위해 화장실을 이용할 때 흙을 남성 소변기에 아무렇게나 버려 고장문제가 있으니 4학년(강낭콩을 심는 것은 4학년의 학습내용이므로) 아이들의 화장실 사용에 대하여 지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관련 과목의 수업을 진행하다가 화장실에서 강낭콩에 물을 주는 방법과 배관에 대한 설명도 하면서 우리가 잘 사용하면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힘이 덜 드니 그 분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긍하거나 누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 하며 웅성거리는데 한 아이가 대뜸 그 아주머니는 돈을 받지 않느냐며 마치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내게 반문을 하였다. 난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11살의 그 아이는 우리 반의 회장이고 나름 학년에서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아이로 인정받는 아이인데 이 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아이의 마음에 따뜻한 인간애를 심어줄 수 있을까와 돈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가치화하려는 시각 앞에서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언행은 어른이나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철학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업적위주의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돈이고 능력뿐인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한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남을 이겨서 공부를 잘 해서 1등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부자로 잘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가? 그 외에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이라든가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한다든가 약하고 어려운 친구를 도와야 한다든가 나만이 아닌 남들도 모두 함께 잘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가? 사회는 또 어떤가? 대중 매체와 인터넷에서 대 놓고 돈이 최고의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1%’나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는 너무나도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아 덕담 정도의 말로 치부되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오로지 10%의 잘하는 학생만을 염두에 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사진은 수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뒤 교실에 남은 학생.   사진 출처 - 한겨레    학교는 또 어떤가? 이번 4·15 학교자율화조치의 내용을 보면 경쟁을 심화하는 조치 일색이다. 자율형 자립고의 확대와 대학 입시의 자율화 방안, 그리고 말 많았던 영어공교육화와 ㅇ교시 보충학습 확대, 그리고 심야보충학습 강화와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통한 우열반 편성 등 사교육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정책만 양산하며 말로는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인다고 한다. 2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학교환경에서 학급당 인원수와 학교시설에 대한 투자에 대하여는 논하지 않고 실효성 없는 정책의 남발만을 일삼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체육교과서를 보면 그 학년에서 학습해야할 운동을 필수와 선택으로 구분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필수는 반드시 학습해야하는 것이고 선택은 교사의 선택에 따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데 필수에 수영을 하라고 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학교환경에서 어떻게 수영학습을 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알다시피 몇 안 되는 시설 좋은 학교를 제외하고는 수영학습은 진행할 수가 없다.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따른 것이 아닌 학교라는 공교육 체계를 통해서 한 인간이 갖추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을 배우게 하고 경험하게하고 느끼도록 해주어야함에도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OECD 국가 중 사교육비 지출 1위와 학교 교육비 가계 부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오로지 10%의 잘하는 학생만을 염두에 둔 정책만을 만들고 있다. 또 1인이 100만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1% 안에, 우수한 그 1인이 바로 내 아이가 될 수 있다는 확률적 오류를 범하면서 사교육에 목숨을 걸도록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인적 자본이 가장 큰 자산인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90%의 학생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한번 가보았는가? 소수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제외한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 이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말이다. 지금의 정책은 10%에게나 90%에게나 모두 지는 정책이다. 그런데 정부는 4·15 학교자율화조치를 통해 이를 더 심화시킨다고 하니 도대체 그 끝은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종종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을 접하면 흥분하고 이유가 무엇인지 뜨겁게 논하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고 하면 혀를 차며 안쓰럽게 생각하고 남의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일은 자식을 둔 부모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다르며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각자가 지닌 능력도 다르다. 다 알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다른 사람들이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모두 소중하며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할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다.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 각자가 가진 능력을 겨루는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닌 살아가는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과 지향하는 삶, 추구해야하는 가치와 철학에 대해서 교육을 중심으로 놓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럴듯한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인식되는 그런 철학과 가치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중심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우리는 몇 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중 개인적 경험과 관심도에 비추어 눈에 띄는 것으로는 여성가족부의 보건복지부로의 편입, 기업 친화적 규제 풀기 중 성평등 관련 규정의 완화를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 국민의 건강권을 우리의 입장이 아닌 남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는 것과 아이들을 끊임없이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바로 그 아이들이 그렇게는 살 수 없노라고 좀 더 인간적으로 살고 싶노라고 촛불집회를 통해서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나는 이 모습에서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보았다. 그리고 한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 사람의 한걸음을 중시하는 사회를 꿈꾸어도 될 것 같았다. 이 꿈의 실현은 결국 그 사회가 가진 가치와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40 | 추천: 0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온통 소고기에만 관심이 쏠린 요즘, 때늦게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얘기하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하여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수도권에 한정한다면 뉴타운과 집값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란 희망이 수도권 전역을 뒤덮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70년대처럼 마을길을 넓히고 집을 없애는 방식을 택하였다. 시민들은 자신이 소유한 자산 가치를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총선에서 수도권 주민들이 70년대 개발 독재 세력을 지지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멀쩡한 집 없애고 길 넓히는데 그들 보다 더 솜씨 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후 뉴타운 공약이 문제되자 야당은 마치 그것과는 무관한 것처럼 행세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뉴타운과 관련하여 여야의 구별이 없었다. 찍을만한 야당 후보가 없던 강남과는 달리, 강북에 있던 우리 동네에선 현역 의원이 야당 후보로 나왔고 선거전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선거 직전에 받은 홍보물에서 여당 후보의 공약과 야당 후보의 공약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집 허물고 큰 길을 내겠다는 내용은 같았다. 단지 현역 의원의 선거 공보물이 좀 더 세련되게 보였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야당 후보를 찍을 이유는 없었다. 양쪽이 똑 같은 일을 한다고 나선 마당에 그 일을 잘할 것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을 통해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산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시민들이 자산 가치의 상승을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고, 다음 세대의 생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강남에 집을 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유 역시 그걸 통해서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은 사라졌다. 정규직의 평균 근무 기간도 10년을 넘지 못한다. 30대에 취업한 사람은 40대 무렵에 회사에서 나와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영업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이마저도 어렵다. 60세가 넘어 은퇴를 하더라도,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동을 통하여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시민들은 자산(資産)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집값이 계속 오르는 지역에 집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하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집값 상승과 뉴타운 개발을 갈망하는 것을 단지 탐욕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유럽 사회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황금 등의 자산에 집착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문제는 모든 시민들이 이렇게 행동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에 있다(집에 대한 이 열풍이 사회에 이롭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고,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배우는데 소홀해지게 된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로서는 힘들게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마음은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고 그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에 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숙련 근로자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그러한 근로자가 필요한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유는 뉴타운 공약 때문이 아니다. 야당에게 뉴타운 공약 외에 다른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당의 실수에 기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한다면, 지난 10년간 여야의 정책과 지향점은 다르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고, 그로 인한 피해를 누가 입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시민들은 민주주의나 사회 진보보다는 자신의 자산을 축적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야당이 지지를 받기 위해선 시민들의 아픈 경험을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근로를 통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설혹 자산이 충분치 않더라도 은퇴 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에만, 집값에 관한 현재와 같은 과도한 집착을 없앨 수 있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진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656 | 추천: 2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ㆍ미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정부측 해명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정부 스스로, 30개월 이상의 소를 수입하는 전제조건이 된 미국의 강화된 사료조치 내용을 오역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에게 그가 오히려 사료조치를 오해한 것이라고 몰아붙이던 정부측 실무자의 기백은 온데간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unless’(~가 아니라면)를 ‘even though’(~에도 불구하고)로 오역했다는 것이니 변명할 염치가 없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 ‘괴담유포자’들은 영어몰입교육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ㆍ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을 다루는 정부 관계자들의 영어실력이 이 정도이니 영어몰입교육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는 우려가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영어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협상단에 포함된 사람 중에 정상적인 상황에서 ‘unless’와 ‘even though’를 착각할 사람은 없다. 협상단 멤버들은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보다 아마도 영어를 더 잘할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을 뿐이고, 송기호 변호사는 사안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바라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또 송기호 변호사가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국제통상법 문제에 대하여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것이 적절한 문제제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오역 사건은 영어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키워주는 교육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오른쪽)가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조치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오역 사건에서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었다. ‘언론친화적’(press friendly)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몸소 설명해 주고 있는 이동관 대변인은 오역과 관련해 “본질과는 관련없는 우리측의 실무적인 실수”라고 해명했다. 실무적인 실수라는 것이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실무(實務)’란 “실제의 업무나 사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대체 정부가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실무’가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러기에 이명박 정부는 내각도 ‘실무형 내각’으로 구성하지 않았던가. 솔직히 실수라고 인정할 것이지 거기에 왜 ‘실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가.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실무’ 내지 ‘실무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내 실수가 아니고 아랫사람이 실수한 것입니다”라는 문맥에서 주로 쓰였다.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내정자 시절 허위경력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자 실무자의 실수라고 했고, 창조한국당 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도 선거공보에 인쇄된 허위경력은 실무자 착오로 기재된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가 재산을 축소신고한 것도 실무자 실수였다. 실무자가 실수를 저지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윗사람들은 실수한 것이 없고, 실무자들만 늘 일을 저지를까. 그 답은 2008년 OECD 통계연보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연간근로시간은 2005년보다 3시간 늘어나 2357시간을 기록했다. OECD 평균 1777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렇게 일을 많이 하니 실무자들이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앞으로는 실무자들 탓으로 돌리지 말고 본인 탓을 하는 높은 분들을 많이 보았으면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95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취임 70여일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28%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임기 초에 이처럼 지지율이 떨어진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추세를 보건대 지지율의 하락은 앞으로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처럼 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0교시와 심야 자율학습으로 대변되는 ‘교육 자율화’ 정책과 광우병 발생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미국으로부터 뼈 채로 전면 수입키로 한 정책이 민심을 극도로 자극한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비롯하여 대운하 추진 등 이명박 정부가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계속 펼쳐가려는 모습에서 불안감을 크게 갖고 있었던 터에 교육자율화며 쇠고기 수입 검역주권 포기 등이 불에 기름을 얹은 격이 되었던 것이겠죠. 그런데 이 성난 민심의 표출 한 가운데에 10대 여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정당이나 단체에서 조직하지 않은 촛불시위에 1만 명에서 2만 명이 모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중에 상당수가 여중고생이라는 사실도 더욱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촛불시위 참여를 놓고 여러 집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교육 당국에서는 감시요원까지 파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10대들이 이처럼 행동의 전면에 나서게까지 이르게 한 어른 입장에서 너무도 부끄러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정책들이 교육이든 먹거리든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활과 건강에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인데 아이들의 안전이나 건강 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어른들의 정치적 행위 및 정책들이 너무도 한심한 수준이어서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오죽하면 아이들까지 나서겠는가!’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시위에서 발언하는 10대들의 이야기는 예상 외로 야무지고 당찹니다. 그들은 절박하고도 당연한 요구를 어른들과 대통령을 향해 합니다. 너무도 쉽게 대통령을 향해 욕을 하며 탄핵을 요구하는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도 이제 대통령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지난 대선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져서 안 된다고 학교 친구들이 이야기 한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상식에 기초한 전제도 당연히 깔면서 말이죠. 초등학생들이 장차 겪게 될 교육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벌써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지난 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한 학생이 인터넷 용어 ‘2MB’ 를 이용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어쨌거나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갖는 아이들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이처럼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집단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그런데 대학생들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소위 대학생이 되려면 일정한 경제적 능력이 되는 가정이라야 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그들의 계급적 기반이 이미 상층부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겠죠. 대입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해 죽어라고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며 또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여 미처 세상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더구나 앞으로 본인들의 취업문제에만 골몰하게끔 사회시스템이 만들어 놓았으니 그로부터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앞으로의 삶의 시간이 지금의 대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을 10대들이기에, 그리고 교육환경 및 급식환경이 얼마나 나빠지게 될 것인지를 뼈저리게 몸으로 느낄 그들이기에 본인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찾기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설 수 있게 된 연유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10대들의 반란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또 앞으로 이들이 유권자가 되었을 때 어떤 투표행태를 보일지가 무척 관심을 끕니다. 본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얼마나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스스로 확인한 마당에 장차 그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이들의 등장에서 약 15년 전쯤 서태지의 등장으로 문화적 충격이 생길 무렵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왔던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부제-더 이상 탄원은 없다, 돌파하라)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전복적 상상력을 외치던 그때의 메시지가 약 15년의 세월의 간극을 두고서 갑자기 현실화되어 튀어나왔다는 생각에 약간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물론 지금의 10대 부모가 386세대여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의 정치의식이 이 상태로 발전해 나간다면 20대 투표율이 하향곡선에서 상향하여 V자를 이룰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로 암울하고 걱정거리가 많은 상황이지만 10대에게서 희망의 싹을 보니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이 됩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23 | 추천: 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험설계사로 이직한 분이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박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정에 여러 일이 겹치며 늘어난 가계의 부담을 해결할 길이 없어 고민 끝에 다른 길을 찾은 것이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며 묵묵히 일해 왔던 모범적인 일꾼이었기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직 이후 그 분을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보험설계사 교육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가치관이었다.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로 꿈을 잠시 접기는 했지만 인생의 성패를 경제력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에 꽤나 마음이 상한 눈치였다. 이 어찌 보험회사 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성공과 실패만 존재하는 단순한 로또식의 인생, TV만 켜면 나오는 드라마의 진부한 세계관이 아니던가.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국민들이 허망한 욕망의 바벨탑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난 4월 9일 총선이라는 한 편의 어이없는 드라마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돈 몇 푼 쥐어주고 표를 구걸하던 소박한(?) 돈 선거는 옛말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표 먼저 주어 당선되면 돈 벌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진보(?)한 뉴타운 공약을 보라.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가난과 사랑, 그리고 재채기란다. 하나 더하자면 ‘무식’이 아닐까? ‘무식’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지혜의 부족, 철학의 부족을 의미한다. 기술자의 기능, 회계사의 계산능력, 변호사의 법전 암기능력이 탁월하다 해서 지혜롭다 하지 않는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철학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치판단 없이 얻은 평화와 행복은 거짓이다. 젊은이들에게 욕먹을 일이겠지만, 나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 우리사회가 좀 더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집값이 올라 손에 몇 푼 쥐는 것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넓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굴리는 것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빈민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나눔의 집’이라는 단체가 있다. 최근 그곳에서 20대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실무자에게는 성장과정 내내 자신과 비교되었던 사촌형제들이 있는데,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올 해 초 명절에도 친척들은 대학 졸업 뒤 대기업에 취직한 그 사촌형제들을 칭찬하던 끝에 자신에게도 연봉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고 한다. 느닷없는 물음이었지만 거침없이 사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액수의 연봉을 밝혔고, 어릴 적 내내 자신을 옥죄던 자격지심 같은 것은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당당할 수 있었던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정치권의 향방과 무관하게 진보적 가치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수자들의 신음소리 역시 여전하며,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그 세상을 향해 다른 질서를 외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06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찬이는 올해 특수학급의 3학년 학생이다. 찬이를 본 것은 2년 전 학년 초에 화장실에서였다. 지적 장애에 걸음이 많이 불편한 두 다리의 장애를 가진 학생으로 젖은 바지를 어쩌지 못해 엉거주춤 서있었고 그 옆에 할머니가 계셨다.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느껴서 찬이에게 다가갔지만 찬이는 완강히 도움을 거절했고 할머니는 난감한 얼굴로 우리를 보셨다. 그때 우리에게 너무 어눌한 표현으로 마지못해 묻는 말에 대답을 했던 소극적인 찬이를, 최근에 복도에서 마주쳤다. 찬이는 밝은 얼굴로 복도를 씩씩하게 지나갔다. 학교생활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몇몇 교사들과 함께 찬이를 특수학교로 전학을 보내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편한 두 다리로 학교생활을 해나기 힘들 것 같았고(계단과 화장실 등), 표현이 많이 어눌해서 학급 학생들 사이에 적응 또한 힘들어 보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서 소변을 보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몇 달도 되기 전에 학교에서 볼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이는 이러한 우리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했는데, 학급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생활했고, 복도에서도 밝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교사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찬이는 적응을 잘해나갔다.   청주 금천초등학교에서 열린 통합교육 사례 발표회에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들이 이 함께 어울려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교사들은 장애를 가진 찬이를 과도하게 보호하려고 했었고, 찬이를 위하는 방식으로 분리되는 교육방식을 택하는 “특수학교 교육”을 생각했었다. 학교는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만남”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이질적인 타인에 대한 인정과 용납의 능력을 갖도록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를 가진 학생은 사회적응력을 높이고, 비 장애학생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참다운 통합교육은 장애를 가진 학생이 비장애 학생들과 교류를 하면서 생활해 나가도록 기다리면서 지켜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 데 떠난 탁이도 그러했다. 탁이는 자폐에 지적 장애를 지닌 학생이었다. 신입생으로 입학한 탁이는 잦은 지각과 결석, 학급에서 학생들의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수시로 학교를 뛰쳐나가 자전거로 학교 주위를 위험스럽게 다녔고, 학교 안에서는 교사식당과 시청각실 등 각종 특별실 앞에 대변을 보곤 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탁이는 학교생활이 1년이 지난 후에 졸업한 초등학교의 학생들에게서 돈을 빼앗았고, 같이 생활하는 특수학급의 여러 학생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보여 교사들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탁이의 격리만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탁이에게 전학을 권했고, 학교를 떠나보냈다. 이후 탁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가끔씩 학교 주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탁이를 보면서 그때 우리가 조금 더 기다려 주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510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 정부 한 달 만에 많은 이들이 피로감을 토로하고 있다. 인수위의 설익은 영어몰입교육 정책 탓일까. 고소영, 강부자 내각 탓이 훨씬 커 보인다. 형님공천 파동에 출범 한 달 만에 맞이한 총선에선 심판론 마저 등장하였다. 대선 때 대표 공약이었던 경부 대운하 건설은 앞날이 구만리 같다. 총선에서는 명함조차 못 내밀었다. 지지하였던 국민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오죽 실망하였으면 국정파탄 노무현 심판론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봉하 마을에 관광열풍이 불고 있을까 싶다. 까짓 것 한 달 남짓 겪은 일들이야 대통령 초보자로서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서 생긴 이런 저런 시행착오로 볼 수도 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총선에서 한 번 더 믿고 밀어주면 심기일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이게 시행착오가 아니라 진정한 본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시행착오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전봇대, 남대문, 톨게이트, 정부부처 TF팀 해체 관련 소위 ‘MB’말씀은 소위 시이오(CE0)형 리더십의 세심한 현장 챙기기라고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사기업의 시이오(CE0)형 리더십이 왠지 불안하고 무섭다. 친기업 정부가 되어 기업이 원하는 규제는 모조리 풀겠다는 ‘비지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정책이 참모습이다. 노사관계 법질서 확립이 시급한 과제란다. 가뜩이나 허리띠 졸라매고 있는데 분배는 나중에 알아서 할 테니 괜히 소란 피우지 말란다.   747 성장의 그날까지 ‘하면 된다. 잘 살 수 있다’라고 선동을 늘어놓는다. 60, 70년 개발독재의 망령이 무덤에서 부활한 느낌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반대 집회에 백골단 투입, 집회시위 강경대응, 대운하 반대 교수들에 대한 정치사찰 소식을 듣자니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떠오르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머슴 노릇은 차라리 쉬워 보인다. 땅도, 집도, 돈도 없는 서민들이 불평 불만하다가는 국민 노릇하기가 참으로 힘들 것 같다. 경기둔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여당의 총선 승리로 ‘성장중심’의 MB노믹스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약과다 싶다. 그나저나 ‘포스트 박정희’가 되고 싶은 MB집권 5년의 역사적 운명은 어떨까. 가설이지만 피력해본다. 그러하리라 확신한다.   MB 노믹스는 수정되지 않는 한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파국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박정희의 성장지상주의를 외쳐본들 현실의 경제 환경이 그때와 다르다. MB 노믹스의 기본은 신자유주의 정책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공공의 분야를 줄여서라도 세계적 차원의 자본의 수익성을 보장해준다. 규제완화, 자유무역, 민영화가 특성이다. 박정희는 그 정반대였다. 국가 주도의 관치경제, 보호무역 아래 수출 위주의 성장이었다. 신자유주의 아래 박정희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포스트 박정희의 747 성장도 없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수익성 앞에 서민보호 정책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소위 초일류기업의 글로벌 경영과 서민경제는 상극이다. 글로벌 성장 뒤에 서민의 주름살만 늘어난다. MB 노믹스 아래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될 뿐이다. 행여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한 경부 대운하 건설은 파국을 재촉할 뿐이다. 서민경제의 피폐는 명약관화다. 민중이 대대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권이 스스로 자초한 경제위기를 민간독재로 정면 돌파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민중은 등을 돌린다. 위기 탈출을 위해 박정희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수법을 차용하기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다. 일응 형식적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존중해온 소위 좌파민간정부의 유산이 넘기에 만만치 않은 높은 벽으로 다가선다. 세계경제와 연동된 환경에서 경제위기가 도래할 경우 민간독재체제로 나아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민중들의 민주주의 투쟁역량이 신자유주의의 경제위기가 도래한 어느 경우에도 독재의 도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의 늪에 빠진 중남미 나라들에서 전과 같은 독재의 회귀는 없었다. 군부의 개입도 어려웠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예에서 보듯 자유무역과 민영화를 통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의 양극화만 심화시켰고 위기상황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적 저항으로 좌파정권이 등장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중남미 좌파블록이 강화되고 있는 형세다.   한국경제의 불황과 위기가 극심해지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하는 한 위기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소위 MB 노믹스로는 대선에서 지지하였던 고달픈 서민들의 경제현실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 벌써부터 국민들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 민중의 저항이 서서히 궤도를 따라 오르고 있다.   부자와 재벌에게 특혜를 주는 성장지상주의는 박정희를 꼭 빼닮았다. 복지와 분배는 안중에도 없다. 서민을 위한 민생경제는 부자와 재벌을 위한 성장경제의 떡고물에 불과하다. 747 성장정책의 수정 없이 민중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참으로 걱정된다.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하지 말고 저항을 불러오지 않았으면 싶다. 지금처럼 그대로 가면 위기 탈출구는 없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6 | hrights | 조회: 49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