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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항녕(전주대학교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장발장은행장)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7월 14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총격을 당했다 (AP Photo/Evan Vucci) 트럼프가 총에 맞았다. 20살 청년이 M16을 개조한 총으로 쐈다. 아직 저격을 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20살 청년이 M16을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사회라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대중들이 뽑아 놓은 지도자를 한 순간에 파멸시킬 수 있는 위험한 사회임이 다시 증명되었다. 150미터 거리에서 정조준을 해 사람을 쏠 수 있는 무기가 전국에 널려 있는 사회가 좋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미국 사회 위기의 한복판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총기사고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의민주주의는 무력하다. 로비를 통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총기상들에게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어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한 제도적 한계에 봉착해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코넷티켓 주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고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총기규제를 하기로 한 약속마저도 여전히 못지켜지고 있다. 총기상들이 원흉인데도 그들을 잡을 수 없을 때 등장하는 것이 대중을 호도할 수 있는 먹잇감을 던져주는 일이다. 총기사고가 났을 때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들에게 던져 주는 먹이감은 늘 인종주의였다. 그들은 총기사고가 유색 인종이거나 이민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말들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범죄율은 이민자보다 토착민의 비율이 더 높다. 경제학자 란 아브라미츠키의 연구에 의하면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 비해 수감될 확률이 60%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인종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이 논리는 잘 먹힌다. 공교롭게도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를 가장 많이 이용한 정치인이 트럼프이다. 그의 정치 논리의 한복판에는 늘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연설에서 총알이 날라오기 직전에도 그는 이민자들을 힐난하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가장 강력한 원동력도 인종주의였다. 그의 인종주의 발언과 정책들이 스윙보트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을 움직였고, 결국 당선되었다. 당선되고도 그는 줄곧 인종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국승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트럼프가 인종차별적 트윗을 한번 올릴 때마다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적 트윗이 20% 이상 증가했고, 아시아인에 대한 범죄는 8%가 올라갔다. 미국 국내의 문제야 우리가 걱정한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잘 해결되길 기도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다. 미국의 인종주의적 사고는 미국 국내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인종주의는 군사주의와 결부되어 대외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인종주의자 트럼트가 가장 강력한 총기사용 옹호자라는 사실도 우연은 아니다. 인종주의와 군사주의는 늘 쌍생아처럼 붙어다닌다. 바이든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대외정책에 관한 한 오히려 트럼프보다도 더 군사주의적이다. 바이든의 인도 태평양전략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군사주의적 전략이다. 중국과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그들의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 핑계를 대며 동맹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저격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워싱턴에서는 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나토 초대사무총장 라이오넬 이스마이(Lord Hastings Lionel Ismay)가 밝힌 것처럼 나토는 “소련을 밀어내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눌러 앉히기 위해” 고안된 조직이다. 구소련이 붕괴될 때 이미 이 조직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따라서 1991년 바르샤바 조약이 붕괴될 때 해체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NATO는 고르바초프에게 "동쪽으로는 1인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살아남았다. 우크라이나전쟁이 러시아의 침략전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 책임의 절반은 나토가 져야 한다.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끌어 들이고자 했다. 동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인 것을 넘어서서 북유럽과 우크라이나까지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끌어들였으면 안보라도 책임져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결국 처참하게 도륙당했다. 나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을 걸고 도박을 벌였으나 실패한 것이다. 이미 30만명 이상이 죽었다. 젤렌스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전쟁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그에게 있다. 그는 나토를 믿고 러시아에 지속적인 도발을 일삼았다. 국민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도박을 한 것이다. 전쟁은 그렇게 일어난다. 전쟁은 일말의 도적적 우위 따위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시작되면 전쟁의 논리로 진행될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도 그들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전쟁기계들에게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명이나 생존권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포린폴리시의 에이미 매키넌 기자는 이번 나토정상회의를 보고 이렇게 요약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돕고 있지만, 승리는 돕지 않는다”.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서 말라 죽어 갈 것이다. 나토는 절대로 러시아의 핵공격을 받을 각오를 하고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는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가엽게 여겨 그들의 정치적 타격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평화협정을 맺을 생각도 없다. 그저 우크라이나를 통해 그들의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러시아를 괴롭히는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할 모양새이다. 전쟁은 전쟁의 논리로 일어난다.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관이자 현실 정치가로 꼽히는 헨리키신저는 1차 세계대전을 “종말론적 메카니즘(doomsday machine)”의 결과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종말론적 메카니즘이란 동맹과 군사훈련 네트워크를 말한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과도하게 동맹과 군사훈련에 집착한 결과, 결국 전쟁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반면 그는 2차 세계대전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메시아적 팽창주의의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 1차대전이 군사주의적 메카니즘의 결과물이라면 2차대전은 과도한 이념의 결과물로 본 것이다. 전쟁의 당사자들은 서로 상대방이 구제불가능할 만큼 사악하다고 믿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정작 위험한 것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 아니라 그런 강고한 믿음체계 그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 불행하게도 ‘차가운 평화의 시대’는 가고 충돌의 무질서의 시대가 왔다. 전 지구적으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종말론적 메카니즘과 메시아적 팽창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은 여전히 주류는 아니지만 언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곳곳에서 득세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알렉스 로는 이번 나토회의를 ‘전쟁을 세계화하는 미국을 돕는 미개인들 모임’이라 칭했다. 미국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실제 전쟁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을 불러들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끔찍한 것은 이 ‘미개인들’ 모임에 참가한 윤석열 정부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두 가지 위험한 요인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왜 한일동맹과 실익과 상관없는 가치동맹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우크라이나 지원에 과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 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따로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그가 종말론적 메카니즘과 메시아적 팽창주의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나토회원국도 아니면서 올해도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했다. 그가 집권한 후 가장 처음 참가한 국제회의가 나토였다. 한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기도 했다. 나토에 참가한 그의 핵심 논리는 놀랍게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메시아적 팽창주의와 매우 닮아있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 절대악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메시아적이다. 침략국 일본이나 나토와 연결고리를 가치연대라는 추상적 이데올로기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도 메시아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그러나 그가 메시아는 아니다. 미국과 일본을 메시아적으로 숭배한다는 점에서 메시아적 광신도이다). 또한 한미동맹에 만족하지 않고 한일동맹, 나토확장까지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팽창주의적이다. 북러동맹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드를 아무리 방어용 무기라고 우겨도 상대편에게는 공격용이다. 러시아도 몇 번씩이나 러북동맹을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북러조약에 대한 대응으로는 이미 한미동맹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상 한일동맹도, 나토 지원도 별로 필요없다. 세계 7위 수준의 우리의 군사력이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 핵뿐이다. 핵은 일본도 주지않고, 나토도 주지 못한다. 나토를 끌어들인다고 해서 나토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토와 인도태평양 전략을 연결하는 것은 철저하게 바이든의 대중국전략이다. 물러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힘이 필요해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러사아로부터도 자신들을 방어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나토가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유럽에 대한 경제적 억지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한 동아시아 전장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가 나토를 위해 해야 할 일만 남는다. 전비를 대고, 군사비를 올리는 일이다. 국가를 전쟁형으로 만드는 것도 덤이다. 이번 정상회의 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330억 원에 달하는 새로운 지원을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위부대 노릇을 자처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부르짖으며 동맹강화와 과도한 군사훈련에 집착하고 있다. 이미 충분히 종말론적 메커니즘에 빠져들었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있다. 북한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남한을 침략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침략하기 이전 남북한 간에는 이미 200여 차례가 넘는 충돌이 있었다. 한반도전쟁 또한 종말론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지금 세계는 3차대전의 문턱에 와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쪽에 서 있다. 그러나 중동 수준의 국지전 이상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곳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 보유국이기 때문이다. 그가 메시아적 팽창주의자라는 사실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극우를 대변하는 기시다와 한 편을 먹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가 종말론적 메카니즘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간에 존재하던 어떤 충돌의 제어장치도 모두 없앴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오물풍선으로 시작된 남북한의 충돌이 종말론적 메카니즘의 전초전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과민함인가? 한반도는 전 지구적 전쟁기계들이 잔치를 벌이기 딱 좋은 곳으로 이미 변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들의 좋은 트로이 목마이다. 바이든과 기시다는 그를 전문용어로 ‘좋은 친구’라 부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트로이 목마가 방아쇠를 당길 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필 그가 대통령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 토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는 또 다른 종류의 총기이다. 여기 이 땅은 이미 총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미국만큼이나 위험하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원하면 무엇에도 아랑곳없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통제받지 않는 종말론적 병기이다. 총알이 어디로 날라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총알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켜갔듯이 우리에게도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7-16 | hrights | 조회: 881 | 추천: 21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갈등, 대결의 정치 반복되면 미래로 갈 수 없어” “합리적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 고통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 22대 국회개원과 관련하여 국무회의에서 했다는 말이다. 발언자가 누구인가를 빼고 본다면 이 말 자체를 갖고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러나 발언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이 말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진다. 역사상 최초로 탄핵받은 대통령이 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른바 “유체이탈화법”으로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주어가 빠진” 발언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유체이탈화법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탓”을 해야 할 대목에서 “남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위 발언을 보면 “유체이탈화법”은 물론이고 아예 언어파괴 수준으로 치닫는 것 같다. 언어가 “진실을 매개하는” 소통도구로서 전혀 기능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마주치게 되는 어느 정당의 플래카드도 정신을 사납게 한다. “안보는 여야가 없습니다.” 무슨 이런 뻔한 소리를 하고 있나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에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지만 뭐,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니까. 그러나 이런 펼침막을 대하면 막막해 진다. “언제까지 북한 옹호 할 겁니까?” 누가? 언제? 어디에서? 북한의 어떤 짓을? 왜? 어떻게? 플래카드 한 장을 읽으면서 질문이 속사포같이 쏟아진다. 명색이 여당인 정당이 국민들 대상으로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우선 기본적인 우리말 시험이라도 먼저 보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원인 없는 결과 없다. 아마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응한다고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유치한 말장난을 하는 모양인데, 차라리 이런 플래카드 내거는 돈과 시간을 아껴 탈북자 단체들이 북으로 올려 보내는 그 풍선들 부터 단속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 풍선에는 달러도 넣어 보낸다는데 그런 비용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탈북자들이 자기 돈 모아서 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동맹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정신 나갔다”고 질타한 야당의원이, ‘정신 나간’이란 표현을 썼다고 ‘국민의 힘’으로 부터 공격받는 현실도 우리를 웃프게 한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데는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이라고 했다는 어느 야당의원 발언도 실소를 자아낸다. 민주사회의 대표적인 공적(public) 조직인 정당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당화(私黨化) 시키는 발언이다. 혹시 이 말을 한 의원의 머리 속에는 ‘어버이 수령’ 비슷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강건한 봉건사상이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생각해 봐도 스스로 말이 안되는 질문까지 해보게 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평가할 때 대개 그들이 하는 말을 보고 그 사람 생각을 읽어내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맨 위 윤대통령 발언처럼 유체이탈화법을 쓰는 경우 언어는 더 이상 생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영국 BBC 방송은 이런 표어를 내걸고 있다. News is nothing without context. 직역하자면, “맥락 없는 뉴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맥락에도 닿지 않는 말을 그나마 ‘대통령의 말’이니 곧이곧대로 실어야 하는 뉴스업체 종사자들의 처지도 딱하지만, 그런걸 뉴스라고 앍어야 하는 시민들의 처지가 더 딱하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이미 많은 것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를 진영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말까지 심각하게 오염시키거나 희화화시키고 있다. 그 가장 큰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을 것이다. 취임 초기, 국가의 주요명운이 걸린 한미 외교를 ‘~ 날리면’ 수준으로 희화화 시킬 때부터 이미 조짐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갈등과 대결의 정치’ 책임을 야당에게 돌려 버리는 그의 유체이탈화법을 보면서는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말에 아무런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과연 정치가 이렇게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도 좋을 것인가? 정범구 위원은 장발장은행장입니다.
2024-07-08 | hrights | 조회: 513 | 추천: 5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권력의 공간, 동물원의 기원 오늘날 동물원은 모순과 애증의 장소다. 동물을 감금, 사육, 전시하는 ‘폭력’이 매일 자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올해 5월 코스타리카는 최초로 동물원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2013년 야생동물 포획·사육 금지법을 제정해 순차적으로 공영동물원을 폐쇄하고 있던 코스타리카에서 마지막 남은 두 공영동물원인 산호세의 시몬볼리바르 동물원과 산타아나주의 보전센터 두 곳 시설이 폐쇄된 것이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동물원 동물들은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츄어리로 가게 된다. 생츄어리에도 울타리는 있지만 상업적 거래와 전시를 하지 않고 동물이 생을 다할 때까지 보호하기 때문에 동물원과는 다르다. 동물원은 이제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노아의 방주’, 시민들을 위한 생태교육장의 역할을 내세우며 존재 이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인간종중심주의의 ‘트로피 룸’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기존 동물원의 무조건 폐지도 답이 아니다. 생츄어리가 대안이 되겠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 영화 <생츄어리>(감독: 왕민철, 2024)는 인간이 길들인 사육동물에 대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무거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 <생츄어리> 포스터 동물원은 많은 것들이 그렇듯 근대 유럽의 발명품이다. 유럽 대도시에 오늘날과 같은 동물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무렵이었다. 하지만 진귀한 동물을 한데 모아 사육하고 자랑한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인류는 동물을 먹이로 삼거나 동물의 힘을 활용할 용도로 가축화하는 한편 신기한 동물은 외교적 선물이나 정복과 약탈의 전리품으로 따로 관리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동물은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아니게 되었다. 늑대에서 가축으로 진화한 개는 인간의 반려가 되었고 소와 돼지와 닭은 인간의 식량이 되었다. 호랑이, 사자, 곰 같은 대형동물은 여전히 육체적으로 취약한 ‘털없는 원숭이 호모 사피엔스’에겐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맹수를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능력은 권력의 과시가 될 수 있었다. 권력의 상징으로 동물을 사육해온 역사는 동물원의 역사보다 오래다. 기록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예는 이집트 멤피스 인근 사카라에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2500년경 무덤 벽화에 그림과 상형문자로 영양, 가젤, 학, 개코원숭이, 비둘기, 따오기, 매 등을 사육했다고 적혀있다. 신성하다고 여겨진 개코원숭이, 매, 따오기 같은 동물은 미라로 만들어졌다.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 18왕조 투트모세 1세의 딸 해트세프수트 여왕은 홍해를 통과해 “푼트의 땅”(소말리아로 추정)으로 야생동물 수집 원정을 보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역사상 최초의 야생 동물 수집 기록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도 인더스강 유역 문명에서도 중국에서도 멕시코에서도 동물의 사육과 전시의 기록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로마제국처럼 원형경기장 동물쇼를 위해 이국동물을 대규모로 사육하지는 않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도 곰과 사자의 순회 동물쇼가 성행했고, 종교적, 교육적 목적으로 동물을 수집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의 동물학 연구서로 알려진 『동물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원정에서 정보와 표본을 그리스로 보내기도 했다. 거대동물에 대한 욕망과 권력의 결합은 로마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로마제국 황제들은 속주에서 공수해 온 동물을 원형경기장에 풀어놓고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원형경기장은 로마 시민들에게 오락과 여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제국의 지배자라는 우월감과 일체감을 심어주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원형경기장에 북아프리카, 중부 유럽, 서아시아 등에서 잡혀 온 코끼리, 사자, 표범, 곰, 호랑이 같은 동물들이 동원됐다. 검투사 경기나 전차 경기의 식전행사로 펼쳐진 동물 공연에서 검투사와 맹수가 맞대결을 벌였고, 맹수에게 밥으로 던져주는 식으로 죄수를 처형했다. 티투스 황제의 로마 콜로세움 개장식 때는 신에게 봉헌한다는 명목으로 동물 수천 마리를 살육하기도 했다. 동물 거래의 수요를 자극한 또 다른 요인은 외교적 선물로 동물을 주고받는 관행이었다. 1972년 4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역사적인 중국 첫 방문을 기념해 중국은 닉슨에게 수컷 판다 ‘싱싱’과 암컷 판다 ‘링링’을 선물했다. 중국의 판다 외교가 유명하지만 동물 외교는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다. 중세에는 로마제국과 같은 스펙터클은 사라졌지만, 외교적 선물로서 이국동물 교환은 계속 이뤄졌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들은 자국의 중심 도시에 동물을 사육하며 권력을 과시했다. 1600년대 유럽 세력이 인도양 세계에서 인도나 일본과 무역을 할 때 동물 선물은 양자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남아시아에서 코끼리는 왕권의 상징이자 전쟁터에선 유용한 무기였기 때문에 왕실은 코끼리의 유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력자가 동물 무역에서 교환을 장려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동물 소유와 권력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내는 증거다. 대항해시대의 메나주리  대항해시대의 도래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이국 야생동물의 수집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작동함을 의미했고, 이제 왕족과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상인도 자신의 정원에 이국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유럽 도처에 생겨난 동물 사육과 전시의 공간을 근대 동물원과 구분해 메나주리라고 한다. 근대 동물원은 동물정원(zoological garden) 혹은 동물공원(zoological park)을 줄여서 ‘주(zoo)’라고 부르는 반면, 근대 동물원 탄생 이전에 황제, 국왕, 귀족 등 유력자가 소유한 개인 동물원은 ‘메나주리(menagerie)’라고 구분해 부른다. 메나주리는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관리’, ‘통제’라는 뜻의 ménage에 ‘장소’라는 뜻의 rie를 합친 말이다. 글자 그대로 메나주리는 동물을 관리하는 장소를 뜻한다. 감금, 지배,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기준은 새로움과 신기함이었다. 먼 곳에서 온 특이한 동물, 돌연변이나 기형으로 노동에 활용되거나 식량이 될 운명에서 벗어난 동물 등이 메나주리에 갇혔다. 메나주리의 동물은 고대부터 가축과는 달리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종교 제의에 활용되는 등 문화적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16세기가 되면 유럽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국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메나주리는 왕과 귀족을 위해 조성된 것이었지만 점차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대항해 시대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이국동물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이국동물 수집에 필요한 물적·인적 네트워크를 작동하게 했다. 네덜란드 총독 마우리츠와 프레데릭 핸드릭이 세운 헤이그 메나주리, 잉글랜드의 헨리 1세가 만든 런던의 왕실 런던탑 메나주리, 루이 14세가 1665년에 새로 조성한 왕궁 베르사유의 정원에 만든 메나주리 등이 손꼽혔다. 네덜란드 총독 마우리츠(Maurice)와 프레데릭 핸드릭(Frederick Hendrick)은 이국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프레데릭 헨드릭은 헤이그 인근 Huis ter Nieuburgh 성(城)에 메나주리를 운영했다. 총독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것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162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중앙이사회에서 발행한 수입 희망 물품 목록에는 ‘진귀한 동물(rare gedierten)’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특히 몰루카, 암본, 반다의 아름다운 희귀종 조류의 수요가 많았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은 화식조와 앵무새 같은 조류뿐 아니라 코끼리, 표범, 야생염소 같은 인도양 동물들을 암스테르담과 헤이그로 실어 날랐다. 긴 항해와 낯선 기후를 견디지 못하고 동물이 죽거나 선상 화재가 발생해 동물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동물 지식의 축적과 분류학 가까운 곳의 동물부터 먼 이국의 동물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이 동물을 이해하는 방식은 근대 이전에는 실용적·의학적 실천이나 종교적 실천과 관련이 있었다. 병에 들게 하거나 낫게 한다는 기준으로 동물을 나눈다거나, 동물의 본성을 통해 종교적 가르침을 주입하고자 했다. 라틴어 ‘나투라(natura)’는 ‘자연’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물의 ‘본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세인들은 자연에서 사물의 본질과 창조주의 지혜를 찾으려 했다. 『동물지』(Bestiarium)는 동물에 대한 중세의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작자미상의 『동물지』는 10~15세기 동안 여러 판본으로 서양에서 읽혔던 동물의 상징에 관한 책이다. 『동물지』에서 늑대(Lupus)는 탐욕과 약탈의 상징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암늑대(Lupa)는 매춘부와 동일시되었던 반면, 비둘기는 성령, 펠리칸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추앙되었다. 인간이 피해야 할 악덕과 본받아야 할 덕성을 동물에 빗대어 설파한 것으로 당대인들이 공유하는 ‘길들여진 상징’ 속에서 동물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르네상스 후기부터 실존하는 동물의 분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콘라드 게스너(Konrad Gessner)의 『동물사(De historia animalium)』(1551~1558)는 근대적 동물 분류의 첫 시도 중 하나였다.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신앙은 실용적 목적이나 종교적 교훈의 재료로 동물을 보던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내면의 신앙을 중시하고, 성직자의 성경 강론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성경을 읽으라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설교는 창세기에 적힌 내용을 자연에서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낳았다. 천지창조와 대홍수를 문자 그대로 믿고 자연에서 흔적을 찾으려는 성서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의 가르침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를 심어줌으로써 지질학과 자연학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성서 문자주의의 또 하나의 측면은 중세 교회가 주해를 통해 성서에 부여하던 우화적 이미지를 폐기함으로써 식물과 동물을 자연에 존재하는 그대로 묘사하고 서술하도록 추동했다는 점이다. 이제 동물은 교훈, 신화, 전설, 예언, 점성술 같은 세계와 분리되어 창조주의 현명한 설계와 개별 창조로 태어난 다양한 피조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세계는 이성적인 신의 신성한 발명품이 되었고, 자연학(natural history)은 신의 설계를 탐구하는 학문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같은 성서에 바탕을 둔 자연사에 의하면 동물은 ‘가축’, ‘사나운 야생맹수’, ‘해치지 않는 야생동물’, 유니콘이나 리바이어던 같은 ‘의심스런 동물’ 등으로 구분됐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 신학과 자연학의 관계가 조화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서 보는 것처럼 자연학은 신의 설계를 밝히는 신성한 학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분류법을 의미하는 ‘Taxonomy’는 그리스어로 ‘배열하다’는 뜻하는 ‘taxis’와 ‘법, 질서’란 뜻의 ‘nomos’를 합친 말이다. 자연을 질서에 따라 배치한다는 의미다. 명명(naming), 기재(description), 분류(classification)로 구성되는 분류학의 세계는 완성을 모른다. 조류나 포유류는 거의 알려져 있고, 곤충류 특히 나비는 아름답기에 많이 연구됐지만, 바다생물, 미생물, 기생충은 덜 연구되었다고 한다. 매년 1만 종 이상이 새로 기재되고 있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종이 알려진 종보다 더 많다. 분류학을 곤란하게 만드는 더 근본적인 점은 분류 자체가 확고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류의 범주가 해체되고 재구성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분류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수단일 뿐, 복잡다단한 자연의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조류, 포유류, 양서류, 어류 같은 익숙한 분류 범주가 자연을 이해하는 단 하나의 정답일 리도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 분류학은 자연에 질서정연한 구조가 있다는 전제 아래 식물계와 동물계를 나누고, 분류의 하위 범주들로 계통을 세워 자연의 비밀에 도달할 사다리를 놓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근대적 분류학의 시조로 불리는 칼 폰 린네가 1753년 대작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를 완성했을 때 그는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이름을 붙이는 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자의식에 충만해 있었다. 린네가 속명과 종명의 이명법(二名法)을 도입하면서 긴 수식어구가 딸린 이름을 붙이는 초기의 다명법(多名法)은 사라졌다. 린네가 근대적 분류법을 체계화한 이래 식물과 동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함으로써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에 학자들은 매료됐다. 자연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식물과 동물을 수집하고 라틴어 학명을 부여했다. 때로는 아름다운 종에는 발견자 자신의 이름을, 추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종에는 경쟁자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린네의 동물 명명의 사례 찾아넣기) 자기애 넘치는 린네는 가장 좋아했던 식물 쌍둥이꽃(twinflower)에 ‘린나이아 보레알리스(Linnaea borealis)’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래 이 풀은 캄파눌라 세르필리폴리아(Campanula serpyllifolia)라고 불렸다. 애초에 분류법에서 이름과 실재 사이에 어떤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류학자의 작업이란 영원히 완결되지 않는 일이다. 사전에 끊임없이 새 단어가 추가되는 것처럼 분류학자의 목록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종이 추가된다. 분류학상의 오류가 정정되는 예도 많다. 린네의 목록도 오류가 수두룩했다. 린네는 박쥐를 영장류로 성게를 벌레로 분류했다. 오락과 과학의 동물원 메나주리와 구분되는 근대 동물원의 최초의 사례는 1752년 쉔브룬 궁전 동물원이다.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거주지인 비엔나 외곽에 설립된 이 동물원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시스 1세가 아내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동물 컬렉션을 선물하면서 성립했고 대중에게 개방되면서 비엔나의 사교와 문화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근대 동물원의 역할 중에서 대중오락의 중심이라는 기능이 쉔브룬 동물원에서 두드러졌다면, 또 다른 주요한 기능인 동물학, 분류학 연구의 장소로서의 동물원이라는 과학과의 연결성이 뚜렷한 동물원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동물원과 런던 동물원이었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동물원은 1793년 파리식물원(Jardin des plantes)에 동물들의 피난처를 마련하면서 생겨났다. 베르사유 메나주리는 왕실 소유의 동물원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혁명의 군중들이 1792년 베르사유를 습격했을 때 남겨진 동물들은 성난 군중들의 약탈 대상이 되었다. 군중들은 새를 잡아 구워 먹고 낙타를 팔아넘겼다. 인도 코뿔소 한 마리와 사자 한 마리를 포함해 고작 다섯 마리의 동물만 살아남았다. 왕의 소유물이었던 동물들은 폭군의 유물로 간주되었기에 처음에는 모두 죽여서 표본을 식물원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물원 관계자가 동물을 죽이는 것은 과학에 대한 범죄 행위라고 맹비난해 결국 동물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식물원으로 옮겨졌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약탈해온 동물들도 식물원에서 사육되었다. 파리식물원 내 동물원(Jardin des Plantes Ménagerie)은 나폴레옹 권력의 상징으로 공들여 지은 건축물들이 많고, 그 안에 육식동물, 초식동물, 새, 뱀 등으로 분류해 전시했으며, 동물 조각이나 회화와 함께 전시함으로써 동물원을 권력의 상징이자 종합예술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동물원 옆에 세워진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생틸레르를 비롯한 계몽주의 시대 자연과학자들의 연구기관으로 동물, 식물, 광물 아우르는 연구와 분류학, 비교해부학, 진화론 연구에서 대학들과 경쟁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파리 식물원 내 동물원은 동물의 형태와 습성을 관찰하고, 동물 실험과 해부를 통해 ‘과학적’ 연구를 하는 곳이라는 자의식이 넘치는 학자들의 전당이었다. 근대 동물원의 창시자와 지지자들은 귀족의 메나주리의 경멸받는 전제군주적 성격과 상업적 동물원에 따라다니는 수상한 오락의 낙인을 벗겨 내고, 동물원을 ‘공공성’과 ‘과학성’에 연결하고자 했다. 메나주리에서도 과학 연구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근대 동물원 창시자들은 의식적으로 동물원을 과학의 반석 위에 올려놓고자 했다. 예를 들어, 자크 앙리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Jacques-Henri Bernardin de Saint-Pierre)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으로 전환되기 전에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의 마지막 감독관(intendant)으로 재직한 인물로 『파리 식물원에 동물원을 설치할 필요성에 관한 비망록』에서 “자연에 대한 연구는 모든 인간 지식의 기초”라는 말로 식물원 옆에 동물원이 있어야 할 당위성을 주장했다. 여기서 과학 연구는 동물 행동, 해부학 연구에서 도덕 및 정치 철학 원칙에 이르는 자연법칙의 인식을 포괄하는 계몽주의적 원리에 따른 것으로 구상되었다. 죽은 동물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의 수행은 이중의 목적, 즉 사육 동물을 잘 돌보기 위한 목적과 동물에 관한 연구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특히 파리 식물원의 경우, 비교해부학에 무게 중심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동물 유해 표본을 소장했다. 19세기 자연학에서 비교해부학의 핵심적 위치 때문에 동물원에서의 과학적 관심은 역설적이게도 죽은 동물에 집중되었다. 특히 국립 자연사 박물관(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의 교수인 조지 퀴비에(George Cuvier)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해부학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규명하고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치켜세우는 인식은 국립자연사박물관 비교해부학 갤러리의 방대한 동물 유해 표본을 이끄는 인간 표본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비교해부학 갤러리> 사진: 염운옥 연구 공간으로서 동물원의 공공성은 동물을 공개하는 것을 통해 더욱 확보되었다. 도시민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온 동물원이 여가 및 오락과 교육의 이중적 기능을 하게 되는 사례는 런던동물원에서 잘 보인다. 1828년 개장한 런던동물원(London Zoo)은 도심형 동물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최초의 동물학회인 런던동물학회(Zoological Society of London)는 학회 설립 2년 뒤인 1828년에 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리젠트파크 안에 동물원을 세웠다. 런던동물학회와 런던동물원은 싱가포르의 개척자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Sir Thomas Stamford Raffles)가 파리 식물원의 자극을 받아 설립을 주도했다. 동물학회 부속 동물원으로 출발한 런던동물원은 다양한 동물 종을 보유하고 보존 사육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오락성보다는 과학 연구와 교육에 더 중점을 두었다. 런던 동물원 협회와 동물원의 설립자들은 이 기관이 동물의 생활 습관에 관한 연구를 포함하여 자연 연구의 모든 양상에 기여하도록 만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살아있는 동물에 대한 관찰은 주로 형태학 및 분류학 연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동물학과 분류학 발달의 결과, 종 분류에 따른 동물원 공간 배치를 중시했다. 19세기 유럽 주요 도시에 등장한 동물원은 동물의 감금과 사육을 매개로 권력과 오락과 과학이 결합된 공간이었다. 1870년대 런던동물원 지도 출처: https://www.mirror.co.uk/news/uk-news/gallery/london-zoo-colour-striking-1870s-13667604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7-03 | hrights | 조회: 659 | 추천: 4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2023년 9월 26일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하여 합헌을 선고하였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 유지, 존치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검찰과 법원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지속적으로 기소 및 처벌을 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보안법 2조 1항 반국가단체로 낙인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군사력을 통해 한반도를 공산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지속적인 안보위협 주체인 반면, 미군의 한국 주둔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방지하는 효과적 억지력으로 간주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반국가단체’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의, 주장과 유사하거나 그에 동조하는 경우 대한민국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에 위협이 되어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 국가보안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하는 적대적, 강압적 법으로 적대관계를 재생산하는 핵심도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이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에 있어  대화와 협력, 평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시키고 전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는 실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권교체와 사회주의 체제변형과 붕괴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회원국임에도 국가보안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그 공민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는 국제연합(유엔) 헌장 2조 주권평등 원칙과 주권존중 의무를 훼손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견고한 분단, 정전상태의 적대적 냉전체제의 산물로서 한국 민중의 불만과 저항을 억압하는 파쇼악법으로 더욱 공고히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한 처벌 위험이 항존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견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공민의 생각과 표현을 처벌하기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견은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적대적인 비방 주장 이외에는 대화와 토론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보안법 7조 소위 이적동조 규정의 처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미국은 제국주의, 미군철수, 한미연합훈련은 북침 핵전쟁연습  등 반미 주장을 할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반제자주 인민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자위적 억제력, 우리민족끼리 연방제로 통일 등 친북 주장을 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해 처벌되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절대로 하지 못하는 주장과 활동이 부지기수다. 국가보안법 7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주권자로서 의사의 형성과 의견의 개진을 할 수 없게 억압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상,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접근할 수 없고 차단된 상태로 오로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미국(한미동맹)의 대북적대정책에 따라 비난하고 폄훼하고 혐오하는 것 외에 달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상태다. 대한민국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가의 주인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의 의사와 요구에 따라 국가의 정책을 형성하고 대한민국의 발전과 대한민국 국민의 복리증진을 모색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키고 민주주의 실현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 이념에 반하여 오히려 그 위에서 국가와 사회를 규율하는 헌법 위의 악법이 되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과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과 의사표현 하나하나를 눈에 보이지 않게 얽어매는 검열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는 파쇼악법이다. 비정상, 몰상식, 반이성의 야만적 매카시즘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외세의 이익을 담보하는 파쇼악법에 굴종해온 노예와 같은 무권리상태의 족쇄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자주적, 민주적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강대한 힘을 구축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4-06-18 | hrights | 조회: 571 | 추천: 2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손흥민 선수에 대한 나의 팬심 손흥민 선수의 재계약 협상이 한창인지 몇몇 매체에서 1년이니 종신이니 연봉이 얼마니 하는 기사가 뜬다. 손흥민 선수가 올해 32살이라 축구 선수로는 나이가 좀 있다 싶지만, 최근 체력 관리 시스템을 보자면 아직 한창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팬들은 토트넘 구단이 손흥민 선수를 박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대뜸, “손흥민 선수 없었으면 토트넘은 EPL에서 강등권이야!”라고 반박한다. 그럴 법도 하다. 손 선수는 올해 17골을 넣었고 어시스트가 10개이다. 자신이 17골 넣고, 다른 선수가 골 넣는 데 10번 도움을 주었다는 말이다. 올해 5위를 한 토트넘 총 득점은 74점이니, 손 선수의 득점 17점을 빼면 50점대 중반이 되고, 이러면 EPL 강등권은 아니라도 하위권 팀이 된다. 하지만 팬심은 팬심으로 그쳐야 한다. 손흥민 선수가 없었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메웠을 것이고, 또한 다른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놀고 있었을리 없다. 따라서 74점에서 17골을 뺀 기록이 토트넘의 성적이 되리라는 추론은 이미 시작부터 오류이다. [손흥민 선수가 박수로 격려하고 있지 않은가! 시민 여러분 힘내라고!] K리그도 마찬가지 EPL 말고 K리그를 보자. 전주에는 ‘전북현대FC’가 있다. 가끔 우리 학교 운동장에 와서 연습경기도 하고, 전북FC를 후원한다는 음식점도 꽤 있다. 최강희 감독이 떠나고 이동국 선수마저 은퇴하자 전북 현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동국 선수는 10년 이상 전북현대에서 뛰면서 164득점을 올렸으니 말이다. 나는 그가 2006년 월드컵 예선인가에서 발이 접질리는 장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후 그가 회복하여 활약을 보여준 데 대해 팬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아무튼 최 감독과 이 선수가 떠날 무렵 나와 가까운 축구팬은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현대가 우승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난 손흥민 선수의 경우와 똑같이 대답했다. ‘다른 선수들은 뒷짐지고 있까니?’ ‘이동국 선수가 없다고 현대가 10명이 뛰남?’ 실제로 전북현대FC는 최강희 감독, 이동국 선수 없이도 2022년에 우승했다. 올해는? 음~ 조금 안 좋다. 역사적 상상, 하지만 이런 류의 생각이나 발상을 ‘역사적 상상’이라고 부른다.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상상이 나래를 펴는 걸 어쩌란 말인가! ‘역사적 상상’이란 역사를 무대로 펼치는 상상을 말한다. 말릴 사람은 없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때 좀 더 잘했으면…’ 할 수 있다. 좋은 자세이다. 이런 사람은 희망이 있다. 뒤늦게 인권연대를 알게 된 사람이 ‘진즉 회원 가입할 걸’ 하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다. 역시 건강한 시민의 마음이다. 헌데 역사적 상상은 역사학의 논제가 되지 못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따라서 역사학의 경험주의에 배치된다. 따라서 역사학도는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과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상을 역사학에서는 ‘허구적(가상적) 질문의 오류’라고 부른다. 요즘엔 역사학자 중에서도 ‘가상 역사(virtual history)’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반(反)-사실(counterfactuals)이라고 부른다. 그럴 수도 있다. 오늘날 세계를 만든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결과와 달랐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할 수 있다. 그게 다다. 무의미하다. 그냥 상상해보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 [웃는 아이들. 언젠가 써먹으려고 인터넷에서 담아놓은 사진. 미래를 위한 상상은 희망이다.] 현실을 박차는 상상! 물론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현실을 낯설게 돌아볼 수도 있다. 간혹 결과론적 해석을 피할 방편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다. 낯설게 하는 건 중요하다. 거리를 유지해야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험의 밀도와 비판 의식은 비례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을 낯설게 보려면, 낯섬을 느끼려면, 현실에 그만큼 밀착되어야 하고 파고들어야 한다. 오직 아는 만큼만 낯설 것이다. 결과론의 안이함과 그로 말미암을 폐해도 크다.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합리화를 피할 수 없다. 변화를 위한 운신의 폭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어떤 상황 전개에 대한 이해가 결과론인지 아닌지는 그 현실의 과정에 투철해야만 판단할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상상이 위안이 되고 또 필요하기도 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일일이 입에 담기 힘들만큼, 아이들에게 듣게하기도 보여주기도 민망할만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 부질없이 돌아볼만큼, 이 땅의 하루하루가 참담하고 답답하니 어찌 낭만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신 뒤돌아보며 지난 일을 두고 상상하지 말고, 앞을 보고 상상하자. 뒤를 보는 상상은 무의미하거나 오류를 낳지만, 미래를 향한 상상은 희망을 낳고 비전이 된다. 비(非)-역사적으로, 상상력은 온전히 미래로 향해보자. 우리가 그리는 편안하고 따뜻하고 함께 웃고 있는 세상을 그려보자. 그만큼 그 세상을 가로막는 현실에서 눈을 떼지 말고 한껏 단호해보자. 거듭, 과거를 상상하지 말고 미래를 상상하자. 미래는 이렇게 와 있는 법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6-11 | hrights | 조회: 541 | 추천: 7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거부를 위한 거부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2년 사이에 국회에서 의결한 법안에 대해 무려 14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국회 의결 법안을 거부한 적이 없었고, 노태우 정부 시절 7회, 노무현 6회, 이명박 1회, 박근혜 정부 당시 2회 거부권을 행사했던 것이 전부이다. 헌법상으로는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이 행정부로 넘어오면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공포하게 되어 있다. 다만 국회의 법률안이 행정부의 입장과 다를 때 행정부는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다. 일종의 입법부 견제용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에 국회에서 의결된 네 가지의 법률안에 대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외적으로는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국회에서 재의결하려면 국회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문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 전원이 참석해서 전원이 거부하면 사실상 재의결이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다 대통령 혼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를 이리 쉽게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대통령이 거부한 법률안 중에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관련 법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국가보훈기본법”(이하 기본법)은 대한민국의 독립, 호국, 민주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답과 그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법이다.(제1조) 그러면서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가. 일제로부터의 조국의 자주독립 / 나. 국가의 수호 또는 안전보장 / 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 라.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의 보호 등 공무수행.”(제3조) 이런 규정에 근거해 보훈은 대한민국의 ‘독립’, ‘호국’, 그리고 ‘민주’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국가적 보답이라는 해석이 일반화되었다. 이를 구체화시키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국가유공자법)을 제정해 ‘기본법’을 뒷받침하고 있다. 순국선열, 애국지사를 위시해, 전몰/전상/순직/공상군경, 각종 참전 유공자, 순직/공상 공무원 등을 포함해, 독립, 호국, 국민 보호 과정의 희생자와 공헌자를 예우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민주유공자의 범위가 너무 좁다 문제는 이 가운데 민주화 유공자의 범위가 대단히 좁다는 데 있다. 기본법에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고 그에 공헌한 이를 지원하고 그 정신을 선양해 국가통합에 기여한다’고 규정해 놓고는, 민주주의 발전의 사례를 4.19혁명 관련 사망, 부상, 공로자에만 한정하고 있다. 1995년에서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2002년에 “5.18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로 희생자 예우와 지원 규정을 추가했을 뿐이다. 독립과 호국 운동의 희생자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서는 광범위하고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자에 대해서는 4.19와 5.18 두 사건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대단히 불균형적이다. 이 두 역사적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면 모를까. 1980년 5월 18일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고, 박종철, 이한열 등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위태롭다. 그나마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굴러가고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민주화 운동 참여자와 희생자 덕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독립’과 ‘호국’은 대체로 과거의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 비해, 민주화는 대한민국의 미래에도 이어져가야 할 보편 가치이다. 그렇다면 4.19와 5.18 희생자에 대해서만 예우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 겪은 희생과 공헌 전반에 대해서도 예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민주유공자를 엄밀히 선정해서 국가가 제대로 예우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기본법’의 법적 완결성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해야 할 책무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그간 국회에서 발의되었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하던 이른바 ‘민주화 유공자법’을 21대 국회 마지막 시기에 다시 한번 본회의를 거쳐 입법 의결하게 된 것이다. 보훈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라 심각한 문제는 ‘기본법’의 내실을 더 충실하게 다져야 할 국가보훈부가 도리어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여러 이유를 댔다. 우선 민주유공자를 가려낼 명확한 기준이 없고, 부적절한 인물이 민주유공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으면 국가적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민주유공자가 교육적 혜택을 받게 되면 사회적 공정의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도 한다. 가령 동의대 사건 참가자가 민주유공자가 되면 희생자인 경찰과 가해자인 사건 참가자가 모두 국가유공자가 되는 모순이 발생하며, 이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할 때 다른 유가족이 극렬히 반발하리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생각하자니, 이것이 정말 대한민국 보훈부 장관의 발언인지 참으로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독립, 호국, 민주의 가치를 균형적이고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도리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보훈부 장관이 민주유공자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이고... 의결된 법령이 미비하다면, 유공자를 가려낼 더 명확한 대안적 기준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교육과 취업에서의 혜택은 이미 다른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도 받고 있으니, 민주유공자만이 특혜일 리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국가유공자가 되는 모순이 벌어진다지만, 독립운동가를 토벌한 친일파가 북한의 남침을 막았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되어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모순이다. 가령 간도특설대원인 백선엽은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친일파이지만, 북한의 남침을 막았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그리고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독립’이 보훈의 대표적인 가치라면서도 독립운동을 탄압했던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내세우는 모순은 왜 지적하지 않는가. 게다가 보훈부 장관이 국가보안법을 거론하는 모양새도 이상하다. 국가보안법을 유공자 여부의 기준으로 삼을 양이면, 차라리 국가보안법에 따라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감옥에 보내고 사형에 처한 이들과 그 가족을 국가유공자로 삼자고 주장하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앞뒤가 모순인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인정하지 않은 채 사실상 민주유공자 자체를 반대하는 듯한 발언은 어떤 정서에서 나오는 것인가. 내가 보훈교육연구원장 시절에 만든 <보훈문화총서>, 특히 『보훈학 개론』(제9권)과 『보훈, 평화로의 길』(제13권)의 일부라도 읽었다면, 도대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민주는 미래에도 보편적일 가치이다 가짜 민주주의자인지 아닌지 가려낼 장치는 얼마든지 있다. 당장 미비하다면 좀 더 준비하면 된다. 보훈부와 대통령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민주유공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잡고 있는 관련법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국가보훈부는 보훈대상자를 선정하는 세세한 장치들을 오랫동안 실험해 왔다. 대안을 제시하고도 남을 역량이 쌓여있다. 그런데 반대부터 하다니...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22대 국회에서 민주유공자법의 재의결을 시도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에 대해 ‘운동권 셀프 지원법’이라느니 비아냥대지 말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가 국가를 더 선도할 수 있도록 향후 재의결에 동의해야 한다. 민주주의만큼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가치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찬수 위원은 전 보훈교육연구원장입니다.
2024-06-05 | hrights | 조회: 671 | 추천: 5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권연대가 어느덧 창립 25주년이다. 자연스레 인권연대를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였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2003년 늦가을쯤이었다. 정확한 날짜야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래도 화요일이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한다. 당시 인권연대가 매주 화요일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한 선배와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그날이 화요일이었고, 그 선배는 자신이 일하는 시민단체에서 여는 집회 끝나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 시민단체 이름이 인권실천시민연대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한국은 참 폐쇄적인 사회다. 섬보다 더한 섬이라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국제문제에 참 관심도 없다. 많은 미국인들이 세계지도에서 미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른다며 미국인들의 지리지식을 비웃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럴 때마다 묘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나본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지도에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정도 지리지식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나무라는 건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대학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똑똑한 집단으로 평가받는 사람들한테서 “캐나다가 미국 서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헷갈린다”거나, “베트남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농담처럼 들리겠지만 100% 사실이다.) 그런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이라니. 한국 사람 가운데 팔레스타인에 가보기라도 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 것이며,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의문인데, 그런 ‘낯선’ 사람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쉬지 않고 ‘화요캠페인-이스라엘은 학살을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에 평화와 인권을’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캠페인을 한다고 하니 무척이나 낯설어보였다. 그렇게 인권연대라는 단체와 알게 됐다.  화요캠페인은 2004년 5월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딱 100회를 맞는 2006년 4월 캠페인을 마무리했다.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통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민간인 피해가 국제뉴스를 장식하는 2024년에 당시 캠페인을 다룬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이게 과연 20년 전에 쓴 게 맞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화요캠페인을 떠올릴 때마다 뚜라를 생각하게 된다. 1988년 일어났던 8888항쟁 당시 학생운동가로서 활동했고, 탄압을 피해 1994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뚜라는 당시 ‘버마행동’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참 열심히 활동했다. 미얀마 ‘민주화’ 이후로는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도 이루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이후 다시 총을 잡고 밀림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뚜라 사령관’이라니.  뚜라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캠페인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했던 말을 옮겨본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금도 한국에서 멀지 않은 버마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누군가 고문당하고 박해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팔레스타인과 미얀마, 뚜라를 생각하면 과연 세상에 진보란 있는 것인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런 과정에 인권연대라는 꾸준히 초심을 잃지 않는 단체가 있다. ‘인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권연대의 25주년을 축하한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4-05-22 | hrights | 조회: 615 | 추천: 8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1587년은 중국 만력제 15년이다. 역사학자 레이 황은 그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적었다. 만력제는 명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1587년 명나라는 여진족의 흥기를 대비해 뭐라도 했어야 하는 한 해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권력 이양에만 신경을 쓴 채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다. 장거정이라는 대학사와 척계광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은 결국 청에게 3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왕조를 넘겨주었다. 2년 만에 이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는 내내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며,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대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리를 지키고, 시간을 버틸 것이다. 아마도 2024년 윤 정부 3년차, 그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라인 사태가 터졌다. 윤석열 정부는 마음먹은 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결심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네이버가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결정하면 돕겠다.” 그는 여전히 기업이 앞서고 정부가 뒤를 봐주던 자유 무역 시대에 살고 있거나, 일본에게 나라를 갖다 바칠 결심을 했거나 둘 중 하나를 하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변화하는 세계에 대비할 생각은 아예 없다. 시대인식이 없는 정부만큼 위험한 정부는 없다. 기업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기업이야 자신들의 이익만 고려하여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면 되지만 정부는 당장의 이익 뿐만 아니라 국가의 100년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네이버의 소유권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지금이 경제안보 시기이다. 정부가 기업을 끌고 가는 시기이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화웨이는 미국 정부에 의해 고사될 뻔 했고, 중국 정부에 의해 생환했다. 네이버는 일본 총무성과 싸울 힘이 없다. 정부가 네이버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 네이버가 할 수 있는 일은 값이라도 후하게 받고 넘기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미 이 사안을 네이버라는 한 기업의 영업행위쯤으로 끝낼 심산인 듯하다.   이번 사안에는 미래 먹거리 문제의 핵심 사안인 플랫폼 기업 문제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라인은 거의 유일하게 해외에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플랫폼 기업이다. 이마저 내주면 한국 미래산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플랫폼 기업의 보호와 육성은 반도체를 뒤이을 미래산업의 주도적 먹거리와 관련이 있다. 일본이 문제 삼고 있는 데이터 주권문제는 AI 시대 주도권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미래의 핵심 먹거리와 관련이 있는 문제를 방치하는 이유의 바탕에는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세계 인식과 외교 행보가 있다. 라인사태를 지휘하는 총무성의 배후에는 일본의 우익들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 우익들의 이데올로기는 전범국가 일본을 지휘하던 전범들의 그것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규범에 의한 질서를 내세우며 한미일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가치 동맹을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겠다고 외치는 윤석열 정부의 세계 전략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는 라인사태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지금 가치외교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침략 외교를 하고 있다. 일본 우익은 두 가지 이념적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서구를 표준 모델로 삼고 자신을 서구의 일원이라 간주하며 다른 아시아 국민들을 멸시하는 인종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국가들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라고 판단하기 보다는 힘을 사용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군사주의적 성향을 띈다는 점이다. 라인 사태는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북아의 일원이 될 가능성을 엿보는 가늠자이다.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안보문제를 핑계로 힘으로 기업을 강탈하는 군사주의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축적되어온 인종주의적 혐한론이 깔려있다.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개인정보가 넘어가면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이 일을 추진한 그들의 논리의 핵심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그렇 수 있는 있는 국가이다. 일본에 있는 구글도 개인정보는 늘 수집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 기업에게는 그런 혐의를 씌우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전범 국가일 때부터 가져오던 식민주의적 습성이다. 일본 우익들은 여전히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우익들이 지금의 총무성을 지휘하고 있고, 총무성은 라인을 탈취하려 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윤석열 정부와 가치연대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 가치 동맹이라고 외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제국주의 일본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조국 대표가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 외무성은 “국제법상 일본 고유영토”라고 한국 정부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일프레임은 국익을 훼손”한다고 말 한 그날이었다. 확실히 윤대통령이 말한대로 윤정부는 기시다 정부의 좋은 친구이다. “늑대에게 완전한 자유는 양들의 죽음이다”라고 한 영국 평론가가 말했다. 늑대의 시간이 결국 다시 왔다. 그러나 늑대를 지키는 우리 정부는 양떼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들을 국익에 반하는 반일감정이라고 나무라고 있다. 확실히 지금 정부는 늑대의 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네이버 사태를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간접 체험하는 중이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5-14 | hrights | 조회: 1123 | 추천: 13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었다 지는 와중에 그가 떠났다. 4.19 혁명 64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4월18일 홍세화 선생이 눈을 감았다. 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의 그의 삶과 흔적을 기리며 그의 떠남을 슬퍼하였다. 장례식 기간에, 그리고 그 후에도 그를 추도하는 많은 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그 글들을 읽으며, 그리고 생전 고인과 이런저런 소소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새삼 그의 충만했던 삶이 부러워진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는 영광보다는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한 순간도 의미없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마치 리영희 선생이 만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하셨던 말처럼, "한 순간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갔다. 그가 세상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가 있다. "소유보다는 관계, 성장보다는 성숙"을 우리 사회가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1월, 절필을 선언하며 한겨레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이다. 그는 이 글에서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원들을 위한 교육에 초대받아 갔던 그는, 막상 그를 맞이한 조합간부들이 그를 앞에 둔 채 주식투자 얘기에 열을 올려 그를 당황하게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이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진보도 물신의 노예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청빈하다"는 말은 뭔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 되었다. 별다른 생업이 없던 정치인이 몇번의 국회의원 생활 후 수십억 재산을 갖게 돼도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한다. 오히려 수십년 국회의원을 하고도 전세집을 전전하는 정치인을 무능하다고 한다. 진보정치인입네 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코인이니 가상자산이니 하는 투기에 몰려들어도 잠깐 여론이 시끄러울 뿐 그의 재선에는 지장이 없다. 돈을 버는 일은 "능력" 문제일 뿐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약자 부조"라든가 "약자와의 연대"라는 것은 하품 나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기득권 동맹"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야권의 압승"이란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소유보다는 관계"라는 말보다는 "소유보다 연대(Solidarity)"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여러분들의 아파트 값을 올려드리겠다"는 것을 선거공약이랍시고 내논 어떤 국민의 힘 후보가 낙마하는 이면에 "내 아파트값 올라가면 내 자식들 집 장만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상식의 연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치가 이제 더 이상은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를 말하지 않고 더 많은 소유와 탐욕만을 조장한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장의 신화"도 이제는 "아재 개그"의 한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배가 곯아도 "올해 우리나라 GDP 몇%가 성장했다"는 소식에 뿌듯해 하던 개발독재 시대의 습관은 참 끈질기다. "목욕탕 물이 가득 차야 넘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의 눈속임도 진즉 약발이 떨어지지 않았나? 그리고 과연 성장의 끝은 어디인 것인가? 국민소득 100불의 저개발국가에서 35,000불의 "선진국"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가 타고 있는 사다리 윗칸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 뒤를 좇아야 하는 것일까? 노인 자살율 1위, 세계 최저 출생율 등의 기록을 훈장처럼 달고? 경쟁과 성장만을 외치며 살아온 한국사회가 잃은 것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경쟁 상대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를 같이 사는 동반자로서의 이웃, 인간에 대한 예의 말이다. 인간과 이웃에 대한 예의를 그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던 그가 갔다. "나 하나만을 고집하면 주변 전체가 적이 되지만 나 하나를 양보하면 주변 전체가 이웃이 된다" 홍세화 선생이 전파하고자 했던 똘레랑스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좋은 그의 미소가 벌써 그리워진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
2024-05-07 | hrights | 조회: 1077 | 추천: 16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전스홀 박물관(Surgen’s Hall)은 에든버러에 있는 의학박물관이다. 16세기에 설립된 명문 의과대학인 에든버러 왕립 외과의 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 of Edinburgh)의 자연물과 인공물 컬렉션에서 출발해 공공박물관이 되었다. 어두운 빛깔의 석재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서전스홀은 당대 스코틀랜드의 유명 건축가 윌리엄 플레이 페어(William Playfair)의 건축이다. 왕립 외과대학의 교육을 위한 해부학과 병리학 표본, 수술기구와 의료 장비에 더해 해부학자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와 외과학 교수 찰스 벨(Charles Bell)의 기증으로 컬렉션이 너무 방대해지자 1832년 지금의 건물을 지어 공공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전시실은 2015년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친 후 재개관한 것이다. 1839년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람자는 10,256명이었고, 최근에는 연간 일반 방문객은 약 87,000명 정도라고 한다. 관광명소까지는 아니지만 에든버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서전스 홀 박물관> 사진: 염운옥 고풍스런 파사드를 지나 중정으로 들어서면 청동 조각상을 만난다. 의료 종사자 네 명을 등신대로 형상화한 이 동상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헌신적으로 방역에 종사한 NHS 의료 종사자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다. 조각가 케니 헌터(Kenny Hunter)의 작품 〈당신의 다음 숨결(Your next breath)〉로 2022년 제막되었다. 최전선에서 환자를 돌보고 근무 교대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함께 겪어온 팬데믹 위기를 돌아보고 전세계 의료진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새기게 된다. <케니 헌터 '당신의 다음 숨결'> 사진: 염운옥 서전스홀 박물관은 의과대학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은 5층짜리 좁고 높은 전시실에 병리학, 외과학, 해부학, 생리학, 치과학, 첨단 의료 기술 등으로 주제를 나눠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입구에는 해부극장(anatomical theatre) 모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외과학 소개 영상을 본다. 전시는 고대 외과술부터 최신 의료 장비에 이르기까지 외과학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외과수술 때 근육 벌리는 힘의 세기 어느 정도인지 레버를 관람자가 직접 당겨보게는 하는 체험 전시도 있고, 다빈치 수술 로봇은 직접 실연해볼 수도 있다. 인체 표본이 많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로 내부 전시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물과 인간의 장기와 몸의 일부를 방부액이 든 병에 넣은 표본이 수없이 진열되어 있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생물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파헤치려는 의학 지식의 권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도축된 소나 돼지를 매달듯 머리부터 갈고리로 매달린 인간 해골도 걸려 있다. 과학과 의학 진보의 제단에 봉헌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무수한 시신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박물관인가 아니면 무덤인가. 박물관의 어원인 뮤제이온(Museion)이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마우솔레움(Mausoleum)과 어원적으로 멀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해부학은 근대성의 핵심 중 핵심이다.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즉 “과감히 알려고 하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서간집〉(기원전 20년)에 처음 썼고,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4년)에서 인용하면서 계몽주의의 표어가 되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인체 내부를 향하고 낱낱이 해부한다는 것은 미지의 영역을 남기지 않고 대상을 철저하게 알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부학이야말로 계몽의 정신을 상징한다. 죽은 인간을 카데바(해부용 시신)으로 만들어 해부대, 해부극장, 의학박물관에 놓이게 한 것은 바로 계몽의 정신이었다. 근대 초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해부극장에서는 베살리우스가 학생과 대중을 모아놓고 공개 해부를 실연했다. 17세기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해부극장은 교양과 오락의 두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는 독특한 시민문화의 장소였다. 레이덴 대학의 해부극장은 겨울 시즌의 시민 오락의 중심이었다. 의학자들에게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곳인 동시에 일반 시민에게는 시체 해부를 직접 보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곳, 엄숙한 과학적 관찰과 카니발적 오락이 결합된 장소가 근대 초 해부극장이었다. 관람자는 한편으로는 죽음을 밝히는 과학의 힘을 엄숙히 관찰하고 메멘토 모리를 마음에 새기는 동시에 시신 해부를 직관하며 호기심을 만족시켰다. 교양과 과학을 추구하는 계몽의 정신이 인간 시신을 해부대와 박물관에 놓이게 했다. 에든버러는 해부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도시였다. 일찍이 해부학이 발달했던 이 도시는 악명높은 버크와 헤어(Burke and Hare) 사건의 무대였다. 당시 카데바로는 사형수의 사체를 썼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이에 착안한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해부용 시신을 조달해 큰 돈을 벌기 위해 16명을 납치·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1832년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서 해부법(Anatomy Act)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법은 시체 도굴과 매매를 금지하고 당사자와 친족의 동의를 명시하는 등 해부용 시신 공급에 대한 윤리적 규정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하지만 해부법은 불법적인 시신탈취를 완전히 막지 못했고 범죄자의 시신을 무연고자 빈민의 시신으로 대체했을 뿐이었다. 빈자의 시신이 해부실습용으로 제공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버크와 헤어 사건은 2010년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 '버크 앤 헤어' 포스터> 시신 도둑이자 살인자 버크와 헤어가 처형된 후 버크의 데드마스크와 그의 가죽으로 만든 포켓북은 서전스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버크의 해골은 에든버러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유해의 경우는 전시대에서 내려 수장고로 보내는 것이 최근 박물관의 추세이다. 버크와 같은 악명높은 범죄자의 시신이나 런던 헌터 박물관(Hunterian Museum)의 아일랜드인 거인 찰스 번(Charles Byrne)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생전에 전시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여성 사르키 바트만(Saartje Bartman)의 경우는 탈식민화의 맥락에서 유해반환이 실현된 경우였다. 대부분의 의학박물관에 전시된 인간 장기, 분리된 신체 일부는 누구의 소유인지 명시되는 경우가 드물다. 의학박물관에 시신의 일부가 놓일 경우 윤리적 이유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료 윤리에서 익명성 유지는 사생활 보호와 환자 개인 이력이 의사에게 미칠 수 있는 편견을 최소화해야 하기 위해 중요하다. 전형적인 의학박물관인 서전스홀 박물관에서는 의료 윤리의 관점에서 익명성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여기 전시된 신체 부위의 대다수는 익명이다. 신체 부위의 명칭과 전형적이거나 병리학적인 것을 기록하는 캡션의 형식이 정해져 있다. 이름, 출처 같은 개인 정보는 목록에는 기록되지만 전시 설명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한 남성의 머리 표본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Specimen GC12334. 상악골, 머리 관상동맥 부분의 앞쪽 부분, 왼쪽 부비동의 암종으로 인한 얼굴의 궤양을 보여주며, 현미경으로 재검사했을 때 세포 확산성 종양 성장이 확인되며 구상세포암 또는 육종일 가능성이 있다.” 이 표본은 찰스 벨 컬렉션의 일부로 1824년 왕립 외과의 대학이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환자의 사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남자의 머리 부분은 방부제로 채워진 커다란 원통형 유리병에 들어 있다. 종양이 그의 얼굴을 심하게 변형시켰고 비강과 구강의 연조직을 침범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병리학적 표본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떠올리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방부제로 인해 얼굴과 머리카락은 옅은 노랑색이다. 눈이 감겨 있어서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비인격화와 익명성은 구체적 인간을 지우고, 추상적 보편적 인간 신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익명성의 전제 위에서 ‘사람’, ‘개인’은 ‘표본’, ‘유물’이 된다. 오랜 시간 세월에 거쳐 형성된 이 의학박물관은 카데바가 된 이름 모를 환자, 빈자, 무연고자, 범죄자의 몸 위에 세워져 있다.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30 | hrights | 조회: 781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