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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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권연대가 어느덧 창립 25주년이다. 자연스레 인권연대를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였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2003년 늦가을쯤이었다. 정확한 날짜야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래도 화요일이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한다. 당시 인권연대가 매주 화요일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한 선배와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그날이 화요일이었고, 그 선배는 자신이 일하는 시민단체에서 여는 집회 끝나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 시민단체 이름이 인권실천시민연대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한국은 참 폐쇄적인 사회다. 섬보다 더한 섬이라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국제문제에 참 관심도 없다. 많은 미국인들이 세계지도에서 미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른다며 미국인들의 지리지식을 비웃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럴 때마다 묘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만나본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지도에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정도 지리지식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나무라는 건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대학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한국사회에서 나름대로 똑똑한 집단으로 평가받는 사람들한테서 “캐나다가 미국 서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헷갈린다”거나, “베트남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농담처럼 들리겠지만 100% 사실이다.) 그런 나라에서 팔레스타인이라니. 한국 사람 가운데 팔레스타인에 가보기라도 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 것이며,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의문인데, 그런 ‘낯선’ 사람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쉬지 않고 ‘화요캠페인-이스라엘은 학살을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에 평화와 인권을’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캠페인을 한다고 하니 무척이나 낯설어보였다. 그렇게 인권연대라는 단체와 알게 됐다.  화요캠페인은 2004년 5월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딱 100회를 맞는 2006년 4월 캠페인을 마무리했다.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통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민간인 피해가 국제뉴스를 장식하는 2024년에 당시 캠페인을 다룬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이게 과연 20년 전에 쓴 게 맞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화요캠페인을 떠올릴 때마다 뚜라를 생각하게 된다. 1988년 일어났던 8888항쟁 당시 학생운동가로서 활동했고, 탄압을 피해 1994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뚜라는 당시 ‘버마행동’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참 열심히 활동했다. 미얀마 ‘민주화’ 이후로는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도 이루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이후 다시 총을 잡고 밀림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뚜라 사령관’이라니.  뚜라는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캠페인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했던 말을 옮겨본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금도 한국에서 멀지 않은 버마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누군가 고문당하고 박해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팔레스타인과 미얀마, 뚜라를 생각하면 과연 세상에 진보란 있는 것인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런 과정에 인권연대라는 꾸준히 초심을 잃지 않는 단체가 있다. ‘인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권연대의 25주년을 축하한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4-05-22 | hrights | 조회: 251 | 추천: 8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1587년은 중국 만력제 15년이다. 역사학자 레이 황은 그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적었다. 만력제는 명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1587년 명나라는 여진족의 흥기를 대비해 뭐라도 했어야 하는 한 해였다. 그러나 만력제는 권력 이양에만 신경을 쓴 채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다. 장거정이라는 대학사와 척계광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은 결국 청에게 30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왕조를 넘겨주었다. 2년 만에 이루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는 내내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지 않을 것이며,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대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자리를 지키고, 시간을 버틸 것이다. 아마도 2024년 윤 정부 3년차, 그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라인 사태가 터졌다. 윤석열 정부는 마음먹은 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결심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네이버가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결정하면 돕겠다.” 그는 여전히 기업이 앞서고 정부가 뒤를 봐주던 자유 무역 시대에 살고 있거나, 일본에게 나라를 갖다 바칠 결심을 했거나 둘 중 하나를 하기로 마음 먹은 듯하다. 변화하는 세계에 대비할 생각은 아예 없다. 시대인식이 없는 정부만큼 위험한 정부는 없다. 기업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기업이야 자신들의 이익만 고려하여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하면 되지만 정부는 당장의 이익 뿐만 아니라 국가의 100년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네이버의 소유권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지금이 경제안보 시기이다. 정부가 기업을 끌고 가는 시기이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은 죽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화웨이는 미국 정부에 의해 고사될 뻔 했고, 중국 정부에 의해 생환했다. 네이버는 일본 총무성과 싸울 힘이 없다. 정부가 네이버가 알아서 하라고 하면, 네이버가 할 수 있는 일은 값이라도 후하게 받고 넘기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미 이 사안을 네이버라는 한 기업의 영업행위쯤으로 끝낼 심산인 듯하다.   이번 사안에는 미래 먹거리 문제의 핵심 사안인 플랫폼 기업 문제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라인은 거의 유일하게 해외에서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플랫폼 기업이다. 이마저 내주면 한국 미래산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플랫폼 기업의 보호와 육성은 반도체를 뒤이을 미래산업의 주도적 먹거리와 관련이 있다. 일본이 문제 삼고 있는 데이터 주권문제는 AI 시대 주도권과 관련이 있다.    정부가 미래의 핵심 먹거리와 관련이 있는 문제를 방치하는 이유의 바탕에는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세계 인식과 외교 행보가 있다. 라인사태를 지휘하는 총무성의 배후에는 일본의 우익들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 우익들의 이데올로기는 전범국가 일본을 지휘하던 전범들의 그것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규범에 의한 질서를 내세우며 한미일 공조체제를 바탕으로 가치 동맹을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겠다고 외치는 윤석열 정부의 세계 전략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는 라인사태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본은 지금 가치외교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침략 외교를 하고 있다. 일본 우익은 두 가지 이념적 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서구를 표준 모델로 삼고 자신을 서구의 일원이라 간주하며 다른 아시아 국민들을 멸시하는 인종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국가들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라고 판단하기 보다는 힘을 사용하여 지배하고자 하는 군사주의적 성향을 띈다는 점이다. 라인 사태는 일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북아의 일원이 될 가능성을 엿보는 가늠자이다. 일본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안보문제를 핑계로 힘으로 기업을 강탈하는 군사주의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축적되어온 인종주의적 혐한론이 깔려있다.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개인정보가 넘어가면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종주의적 사고가 이 일을 추진한 그들의 논리의 핵심이다. 그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그렇 수 있는 있는 국가이다. 일본에 있는 구글도 개인정보는 늘 수집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 기업에게는 그런 혐의를 씌우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전범 국가일 때부터 가져오던 식민주의적 습성이다. 일본 우익들은 여전히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우익들이 지금의 총무성을 지휘하고 있고, 총무성은 라인을 탈취하려 하고 있다. 지금 일본은 윤석열 정부와 가치연대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 가치 동맹이라고 외치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제국주의 일본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조국 대표가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 외무성은 “국제법상 일본 고유영토”라고 한국 정부에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일프레임은 국익을 훼손”한다고 말 한 그날이었다. 확실히 윤대통령이 말한대로 윤정부는 기시다 정부의 좋은 친구이다. “늑대에게 완전한 자유는 양들의 죽음이다”라고 한 영국 평론가가 말했다. 늑대의 시간이 결국 다시 왔다. 그러나 늑대를 지키는 우리 정부는 양떼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들을 국익에 반하는 반일감정이라고 나무라고 있다. 확실히 지금 정부는 늑대의 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네이버 사태를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을 간접 체험하는 중이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5-14 | hrights | 조회: 661 | 추천: 13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었다 지는 와중에 그가 떠났다. 4.19 혁명 64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4월18일 홍세화 선생이 눈을 감았다. 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의 그의 삶과 흔적을 기리며 그의 떠남을 슬퍼하였다. 장례식 기간에, 그리고 그 후에도 그를 추도하는 많은 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그 글들을 읽으며, 그리고 생전 고인과 이런저런 소소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새삼 그의 충만했던 삶이 부러워진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는 영광보다는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한 순간도 의미없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마치 리영희 선생이 만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하셨던 말처럼, "한 순간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갔다. 그가 세상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가 있다. "소유보다는 관계, 성장보다는 성숙"을 우리 사회가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1월, 절필을 선언하며 한겨레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이다. 그는 이 글에서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산다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원들을 위한 교육에 초대받아 갔던 그는, 막상 그를 맞이한 조합간부들이 그를 앞에 둔 채 주식투자 얘기에 열을 올려 그를 당황하게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이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진보도 물신의 노예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청빈하다"는 말은 뭔가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는 말이 되었다. 별다른 생업이 없던 정치인이 몇번의 국회의원 생활 후 수십억 재산을 갖게 돼도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한다. 오히려 수십년 국회의원을 하고도 전세집을 전전하는 정치인을 무능하다고 한다. 진보정치인입네 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코인이니 가상자산이니 하는 투기에 몰려들어도 잠깐 여론이 시끄러울 뿐 그의 재선에는 지장이 없다. 돈을 버는 일은 "능력" 문제일 뿐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약자 부조"라든가 "약자와의 연대"라는 것은 하품 나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기득권 동맹"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야권의 압승"이란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소유보다는 관계"라는 말보다는 "소유보다 연대(Solidarity)"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여러분들의 아파트 값을 올려드리겠다"는 것을 선거공약이랍시고 내논 어떤 국민의 힘 후보가 낙마하는 이면에 "내 아파트값 올라가면 내 자식들 집 장만은 어떻게 하나" 하는 상식의 연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치가 이제 더 이상은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를 말하지 않고 더 많은 소유와 탐욕만을 조장한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장의 신화"도 이제는 "아재 개그"의 한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배가 곯아도 "올해 우리나라 GDP 몇%가 성장했다"는 소식에 뿌듯해 하던 개발독재 시대의 습관은 참 끈질기다. "목욕탕 물이 가득 차야 넘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의 눈속임도 진즉 약발이 떨어지지 않았나? 그리고 과연 성장의 끝은 어디인 것인가? 국민소득 100불의 저개발국가에서 35,000불의 "선진국"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가 타고 있는 사다리 윗칸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 뒤를 좇아야 하는 것일까? 노인 자살율 1위, 세계 최저 출생율 등의 기록을 훈장처럼 달고? 경쟁과 성장만을 외치며 살아온 한국사회가 잃은 것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경쟁 상대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를 같이 사는 동반자로서의 이웃, 인간에 대한 예의 말이다. 인간과 이웃에 대한 예의를 그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던 그가 갔다. "나 하나만을 고집하면 주변 전체가 적이 되지만 나 하나를 양보하면 주변 전체가 이웃이 된다" 홍세화 선생이 전파하고자 했던 똘레랑스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좋은 그의 미소가 벌써 그리워진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
2024-05-07 | hrights | 조회: 567 | 추천: 15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전스홀 박물관(Surgen’s Hall)은 에든버러에 있는 의학박물관이다. 16세기에 설립된 명문 의과대학인 에든버러 왕립 외과의 대학(Royal College of Surgeons of Edinburgh)의 자연물과 인공물 컬렉션에서 출발해 공공박물관이 되었다. 어두운 빛깔의 석재로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서전스홀은 당대 스코틀랜드의 유명 건축가 윌리엄 플레이 페어(William Playfair)의 건축이다. 왕립 외과대학의 교육을 위한 해부학과 병리학 표본, 수술기구와 의료 장비에 더해 해부학자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와 외과학 교수 찰스 벨(Charles Bell)의 기증으로 컬렉션이 너무 방대해지자 1832년 지금의 건물을 지어 공공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전시실은 2015년 대규모 리모델링을 거친 후 재개관한 것이다. 1839년 의료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람자는 10,256명이었고, 최근에는 연간 일반 방문객은 약 87,000명 정도라고 한다. 관광명소까지는 아니지만 에든버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서전스 홀 박물관> 사진: 염운옥 고풍스런 파사드를 지나 중정으로 들어서면 청동 조각상을 만난다. 의료 종사자 네 명을 등신대로 형상화한 이 동상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헌신적으로 방역에 종사한 NHS 의료 종사자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다. 조각가 케니 헌터(Kenny Hunter)의 작품 〈당신의 다음 숨결(Your next breath)〉로 2022년 제막되었다. 최전선에서 환자를 돌보고 근무 교대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함께 겪어온 팬데믹 위기를 돌아보고 전세계 의료진에게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새기게 된다. <케니 헌터 '당신의 다음 숨결'> 사진: 염운옥 서전스홀 박물관은 의과대학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은 5층짜리 좁고 높은 전시실에 병리학, 외과학, 해부학, 생리학, 치과학, 첨단 의료 기술 등으로 주제를 나눠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입구에는 해부극장(anatomical theatre) 모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 앉아서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외과학 소개 영상을 본다. 전시는 고대 외과술부터 최신 의료 장비에 이르기까지 외과학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외과수술 때 근육 벌리는 힘의 세기 어느 정도인지 레버를 관람자가 직접 당겨보게는 하는 체험 전시도 있고, 다빈치 수술 로봇은 직접 실연해볼 수도 있다. 인체 표본이 많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로 내부 전시실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동물과 인간의 장기와 몸의 일부를 방부액이 든 병에 넣은 표본이 수없이 진열되어 있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생물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파헤치려는 의학 지식의 권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도축된 소나 돼지를 매달듯 머리부터 갈고리로 매달린 인간 해골도 걸려 있다. 과학과 의학 진보의 제단에 봉헌된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무수한 시신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박물관인가 아니면 무덤인가. 박물관의 어원인 뮤제이온(Museion)이 거대한 무덤을 뜻하는 마우솔레움(Mausoleum)과 어원적으로 멀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해부학은 근대성의 핵심 중 핵심이다.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즉 “과감히 알려고 하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서간집〉(기원전 20년)에 처음 썼고,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1784년)에서 인용하면서 계몽주의의 표어가 되었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인체 내부를 향하고 낱낱이 해부한다는 것은 미지의 영역을 남기지 않고 대상을 철저하게 알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부학이야말로 계몽의 정신을 상징한다. 죽은 인간을 카데바(해부용 시신)으로 만들어 해부대, 해부극장, 의학박물관에 놓이게 한 것은 바로 계몽의 정신이었다. 근대 초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해부극장에서는 베살리우스가 학생과 대중을 모아놓고 공개 해부를 실연했다. 17세기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해부극장은 교양과 오락의 두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는 독특한 시민문화의 장소였다. 레이덴 대학의 해부극장은 겨울 시즌의 시민 오락의 중심이었다. 의학자들에게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곳인 동시에 일반 시민에게는 시체 해부를 직접 보려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곳, 엄숙한 과학적 관찰과 카니발적 오락이 결합된 장소가 근대 초 해부극장이었다. 관람자는 한편으로는 죽음을 밝히는 과학의 힘을 엄숙히 관찰하고 메멘토 모리를 마음에 새기는 동시에 시신 해부를 직관하며 호기심을 만족시켰다. 교양과 과학을 추구하는 계몽의 정신이 인간 시신을 해부대와 박물관에 놓이게 했다. 에든버러는 해부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도시였다. 일찍이 해부학이 발달했던 이 도시는 악명높은 버크와 헤어(Burke and Hare) 사건의 무대였다. 당시 카데바로는 사형수의 사체를 썼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이에 착안한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해부용 시신을 조달해 큰 돈을 벌기 위해 16명을 납치·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1832년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서 해부법(Anatomy Act)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법은 시체 도굴과 매매를 금지하고 당사자와 친족의 동의를 명시하는 등 해부용 시신 공급에 대한 윤리적 규정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하지만 해부법은 불법적인 시신탈취를 완전히 막지 못했고 범죄자의 시신을 무연고자 빈민의 시신으로 대체했을 뿐이었다. 빈자의 시신이 해부실습용으로 제공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버크와 헤어 사건은 2010년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 '버크 앤 헤어' 포스터> 시신 도둑이자 살인자 버크와 헤어가 처형된 후 버크의 데드마스크와 그의 가죽으로 만든 포켓북은 서전스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버크의 해골은 에든버러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유해의 경우는 전시대에서 내려 수장고로 보내는 것이 최근 박물관의 추세이다. 버크와 같은 악명높은 범죄자의 시신이나 런던 헌터 박물관(Hunterian Museum)의 아일랜드인 거인 찰스 번(Charles Byrne)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생전에 전시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에 있었던 남아프리카 코이코이족 여성 사르키 바트만(Saartje Bartman)의 경우는 탈식민화의 맥락에서 유해반환이 실현된 경우였다. 대부분의 의학박물관에 전시된 인간 장기, 분리된 신체 일부는 누구의 소유인지 명시되는 경우가 드물다. 의학박물관에 시신의 일부가 놓일 경우 윤리적 이유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료 윤리에서 익명성 유지는 사생활 보호와 환자 개인 이력이 의사에게 미칠 수 있는 편견을 최소화해야 하기 위해 중요하다. 전형적인 의학박물관인 서전스홀 박물관에서는 의료 윤리의 관점에서 익명성 원칙을 지키고 있다. 여기 전시된 신체 부위의 대다수는 익명이다. 신체 부위의 명칭과 전형적이거나 병리학적인 것을 기록하는 캡션의 형식이 정해져 있다. 이름, 출처 같은 개인 정보는 목록에는 기록되지만 전시 설명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한 남성의 머리 표본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Specimen GC12334. 상악골, 머리 관상동맥 부분의 앞쪽 부분, 왼쪽 부비동의 암종으로 인한 얼굴의 궤양을 보여주며, 현미경으로 재검사했을 때 세포 확산성 종양 성장이 확인되며 구상세포암 또는 육종일 가능성이 있다.” 이 표본은 찰스 벨 컬렉션의 일부로 1824년 왕립 외과의 대학이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환자의 사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남자의 머리 부분은 방부제로 채워진 커다란 원통형 유리병에 들어 있다. 종양이 그의 얼굴을 심하게 변형시켰고 비강과 구강의 연조직을 침범했음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병리학적 표본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떠올리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방부제로 인해 얼굴과 머리카락은 옅은 노랑색이다. 눈이 감겨 있어서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비인격화와 익명성은 구체적 인간을 지우고, 추상적 보편적 인간 신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익명성의 전제 위에서 ‘사람’, ‘개인’은 ‘표본’, ‘유물’이 된다. 오랜 시간 세월에 거쳐 형성된 이 의학박물관은 카데바가 된 이름 모를 환자, 빈자, 무연고자, 범죄자의 몸 위에 세워져 있다.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30 | hrights | 조회: 356 | 추천: 4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전 세계에 걸쳐 해외 미군기지를 설치하고 있는 미국이 일극 패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의 지정학적 분쟁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거나, 한편으로는 군비경쟁이 고조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등 서방진영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무기지원에도 러시아에 대한 전세 역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에는 미국의 대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은 중단되고 현재의 고착된 전선에서 러시아의 점령을 인정하고 휴전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전쟁은 패권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 미국은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전면 봉쇄로 민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 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편파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가자 지구의 민간인 학살과 인도주의적 재난을 초래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휴전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전쟁범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가자 지구 민간인에 대한 제노사이드 범죄를 자행 중인 이스라엘에 대한 천문학적 군사적 지원을 하며 집단학살을 묵인, 방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패권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며 정치, 도덕적으로 파산선고를 받고 있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에 이스라엘의 대공방어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아슈켈론. 사진: 로이터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가자 지구 전쟁은 하마스를 지원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교전으로 이어지고 있고, 또한 하마스를 지원하는 예멘 반군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에 대응하여 홍해에서 이스라엘, 미국 등과 관련된 선박을 공격하여 홍해 물류 대란을 낳았다. 급기야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에 대응하여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 드론 공격을 하였고, 현재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공격 여하에 따라서는 전면적인 중동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였고 이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공격 계획의 철회를 강요 중이다. 가자 지구의 영구 휴전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간 평화공존을 위한 정치적, 외교적 해결방안의 마련이 이스라엘의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바람이 되고 있다. 패권국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힘의 우위를 추구하며 계속되는 군사적 지원과 해외 미군 주둔으로는 분쟁과 갈등, 전쟁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더 큰 혼란과 분열, 정세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한 것이 그 예다. 오랜 전쟁의 늪에서 패권국은 탈레반을 정치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철수를 합의하고 단행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패권국은 패퇴는 패권의 쇠퇴와 몰락 과정을 뚜렷이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전략적 경쟁대상과의 군비경쟁도 패권국의 말로를 앞당기는 중이다. 패권국에 대응하는 군비경쟁국도 증가추세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란 등이 중요 군비경쟁국으로 부상 중이다. 세계 제1위의 군사비 지출로도 군비경쟁에서 압도적 승리는커녕 요원한 일이기에 전략적 경쟁대상국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차선책으로 세계적 범위에서 나토와 같은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동맹국들의 군비확장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날로 강해지는 중국 억제를 위한 정책에 따라 남중국해 영해 분쟁과 대만 문제, 무역 및 인권 문제 등에서 군사, 경제, 정치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데 초점을 두는 한편, 조선민주주인인민공화국의 핵, 미사일, 인권 문제 등을 문제 삼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대북적대정책과 대북제재정책을 지속 중이다. 그러나, 패권국의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에서 중국과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을 억제하기 위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개입에 전력을 쏟아 붓더라도 자신의 역량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패권 유지를 위해 동맹을 내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과거를 잊고 평화헌법을 유린하며 군비경쟁과 해외 군사개입의 폭을 넓히며 군사대국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일본의 방종을 키울 뿐. 한반도 문제에서도 패권의 쇠퇴와 몰락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 국가정보국 보고서에 의하면 북은 극초음속 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 5000km 사정권 명중률 제고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개발 등에서 사실상 성공 내지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미 군사적 대결정책이 낳은 후과다. 북 비핵화는 요원해졌다. 강대강 군비경쟁이 지속될 경우 미국에 대응하는 북의 군사적 역량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패권국을 겨냥한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을 상대로 주적론, 선제공격, 북 지도자 참수작전, 점령과 흡수통일, 즉강끝 등 군사적 대결정책은 군사적 충돌과 전쟁을 초래하는 무책임하고 무대책의 자멸적 망동이다. 극우적 시각의 북맹이 지배하는 반북현실이 패권의 쇠퇴와 몰락을 덮고 있을 뿐, 전 세계와 한반도에서 패권의 쇠퇴는 지금 이 시각도 그 끝을 향해 진행 중이다. 군비경쟁이 낳을 수 있는 우발적 군사적 충돌과 긴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군사적 수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군비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미 간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실현되는 길 밖에 없다. 미국의 조야에서 나오는 북미 간 대화재개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달성하지 못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미 간 ‘정치적, 군사적 중간지대를 설정’하여 새로운 대화로 군축, 군사적 위협 감소, 관계정상화를 위한 다방면의 상호 관심사 추구로 상호 신뢰와 이해를 구축하여 북미 핵전쟁을 방지하자는 취지의 내용이다. 패권의 쇠퇴와 몰락의 과정이 선명해진 상황에서도 ‘친북 반미 경력’의 국회의원 후보자가 사퇴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정세에 무지한 극우보수시각에 세뇌된 여론이 지배적인 탓이다. 전쟁 통일을 반대하는 누구나 북을 평화공존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북미 평화협상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어야 정상적, 이성적 사회이다. 우리는 동족의 국가를 배척하고 패권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적 사회에 오늘도 강박당한 채 굴종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17 | hrights | 조회: 523 | 추천: 12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이 글이 실리는 건 10일(수요일) 이후, 선거가 끝난 뒤일 것이다. 칼럼 게재 날짜를 받고 난 뒤 뭔 일이 이렇게 많이 터지는지, 이미 2년 동안 적립한 포인트도 차고 넘치는데, 날씨 1, 대파, 쪽파, 김활란, 삼겹살, 또 선관위 대파, 이제는 복면가왕 9주년까지……. 정말 한국의 개그맨들은 먹고 살기 힘든 지경이다. 하지만 그건 표면의 찰랑거림이다. 우리는 안다. 한국 사회라는 거함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1.  그래도 천하다. 참으로 천하다. 이 말은 신분제 사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쓰기가 꺼려지지만 달리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상하길 기대하지 않거늘, 고상하면 좋지만 평범해도 그만이거늘…….  복습 하나. 『동호문답(東湖問答)』에 나오는 율곡의 말을 들어보자. 폭군, 혼군, 용군, 즉 폭압적 군주, 어리석은 군주, 있으나마나한 군주에 대한 율곡의 정의이다. ① 많은 욕심이 마음을 흔들고 온갖 유혹이 밖에서 쳐들어온 결과, 백성의 힘을 다 쥐어짜 자신만 살고자 하고, 충언(忠言)을 물리치고 자신만 성스러운 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가 폭군(暴君)이다. ②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으나 간사한 자를 분별하는 총명함이 없고, 믿는 자는 어질지 못하고 관료들은 실력이 없어서 패망하게 되는 자는 혼군(昏君)이다. ③ 마음이 나약하여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과단성이 없어서 어름적거리다가, 정책은 혼선을 빚거나 구태만 되풀이하면서 날로 쇠약해져 가는 자가 용군(庸君)이다. 1.  기억 하나 소환. 2008년 8월 어느 날 MBC뉴스, 퇴임을 몇 달 앞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방한했다.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에 관해 논의를 했느냐고 기자가 질문했다. 이명박은 즉각 대답했다. “아프가니스탄 뭐, 파견 문제, 이것은 부시 대통령이 답변해야 하잖아요, 내가 할 것이 아니고. 그러나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걸 우선 말씀드립니다. 네, 허허.” (이때 부시는 이명박을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면서 이어폰을 빼고 즉각 반박했다.) “우리는 논의했습니다.[We discussed it!]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기여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 감사드렸습니다.” “We discussed it!” 내가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부시가 얼마나 정확히 발음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명박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때 실실 웃으며 책임감을 피해갈 수 있는 인성을 가진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안 순간, 나는 많은 것을 접었다. 그런데……. [부시와 기자회견하는 이명박. 오른쪽은 질의응답 없는 51분 담화.] 1.  난 요즘 ‘어색하게 실실 웃었던’ 이명박씨는 그래도 나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에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이게 중요하다. 이런 마음을 단서로 개과천선, 잘못을 고치고 나은 길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1.  역사를 보면 국왕의 마음가짐에 대한 경계가 많이 나온다. 고려시대 스님들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가르쳤고, 조선시대 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다[人心唯危]’고 일렀다. 최고권력자의 마음은 ‘속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힘이다. 정책과 행정을 통해 고스란히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힘이다.  그에게 측은지심이 남아 있으면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줄 알 것이다. 수오지심이 남아 있으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힐 수 있고 미안해할 줄 알 것이다. 외롭고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더라도 정책의 이름으로 돌보려고 할 것이고, 자신이나 주변의 탐욕이나 과오로 벌어진 사태에 자존심 상할 것이다. 2024년 4월을 사는 나는 그런 기대가 없다. 1.  반정(反正)이 필요하다. 언제나 일이 되려면 가닥을 잘 타야 하는데, 반정 역시 털컥 판만 벌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반정은 망가진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의 정권교체보다 복합적이기 마련이다. 반정은 세 방향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폭정(暴政) 또는 혼정(昏政)의 즉각적 중단 : 이는 사회의 자기보존이며 시민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② 폭군 또는 혼군 이전의 시대 상태 회복 : 국민의 삶이 일상을 회복하고, 나라의 재정과 관료제 운영 등이 정해진 제도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 ③ 폭정이나 혼정으로 미루어진 사회의 재편, 개혁 수행 : 이는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비전과 정책이므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반정의 세 과제 : 왕조시대라면 이런 모델이었을 것이다.] 1.  말할 것도 없이 ①, ②, ③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섞여서는 안 된다. 또한 논리적으로는 폭정을 멈추고, 회복하고, 개혁하는 순서를 밟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반정의 순간 ①, ②, ③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③이 특히 중요하다. ①, ②는 반정의 소극적 국면이다. 지금 국면을 멈추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반면 ③은 반정의 적극적 국면이다. 누구도 안 해본 국정이 여기서 펼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녕 국정철학이 필요하다. 지독한 학습과 살떨리는 고뇌가 버무려진 헌신적 실천적 철학 말이다.  여기에도 내가 알기에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대안도 방법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주저하지 말고 추진하자. 동시에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23년 내놓은 제6차 종합보고서를 보자. 2040년 이전에 지구의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전면적인 종족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말이다. 지금은 북극곰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이나 AI 운운하며 당황하지 말고, 산업구조의 변화를 살피고 그 변동의 잦은 주기에 주목하자. 21세기 산업구조는 자주 또는 예상치 못하게 변할 것이다. 이런 변동에서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도생이 아니다. 공공성 확대라고 하든, 기본소득이라 하든, 공유제라고 하든, 변동의 사이사이에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1.  천지(天地)가 어질지 않듯, 역사 또한 그럴 수 있다. 허나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길은 하나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 그건 반정 밖에 없다. 대파(大破) 이후 새 세상을 짜는 일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09 | hrights | 조회: 417 | 추천: 10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공식적 폐지 수거 시간은 매주 수요일 오전 7시부터 목요일 오전 11시까지다. 주민들이 그 시간에 내놓은 폐지를 관리원들이 정리해놓으면 목요일 정오경에 외부 업체가 와서 수거해간다. 수거 장소에는 종이류 배출시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걸려있다. 아무 때나 버리면 관리가 힘드니, 반드시 시간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담은... 입주민들은 여러 해 동안 종이류 배출시간을 잘 지켜왔다. 그런데 일 년 몇 개월 전부터인가, 공식 배출시간이 아닌데도 종이를 내놓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규정을 몰라서 그랬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수막에 배출시간도 적혀있으니 곧 이전 질서를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때나 폐지를 내놓는 이들이 도리어 더 많아졌다. 목요일 점심에 폐지를 수거해갔는데 바로 그날 저녁부터 폐지가 다시 쌓였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게 현실인데 왜 폐지 배출시간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느냐며 못마땅해하던 이들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관리상의 어려움이 있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으니 종이류 배출시간을 지켜달라는 방송을 여러 차례 더 했다. 그런데 아랑곳하지 않고 폐지를 아무 때나 내놓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 관례를 조금 어기니 자기가 더 편리해지더라는 것을 경험해 본 탓일지도 모른다. 종이류 배출일 안내 방송을 못 들었다거나 집안 사정상 폐지 배출일에 맞추기 힘들다는 변명을 스스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종이류 수거일 같은 공동체적 약속에는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자신의 편리함이 우선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바탕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막 아래로 배출시간이 아닌데도 보란듯이 폐지가 쌓여갔다. 현수막은 완전히 무색해졌다. 아무 때든 종이를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다시피 했다. 이제는 관리사무실에서 방송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관리원들도 종이를 매일 정돈하는 등 전에 없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종이류를 ‘자유’롭게 배출하는 것이 ‘현실’이니 관리원들이 더 깨끗이 청소해달라는 입주민들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롭게’ 폐지를 내놓은 이들이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그런 목소리를 더 높일 공산이 커졌다. 일부 입주민들로 시작된 파행을 정당화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도 하나의 공동체이자 작은 사회이니 개인의 작은 불편함을 잠시 감수하면 관리원의 노동도 덜고, 공동의 환경도 다시 쾌적해질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무 때든 자유롭게 폐지를 내놓아도 된다는 편리함이 승리해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 행위는 여의도나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자기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언행들이 혼재되어 있다. 어차피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문화가 확대되면서 종이박스 등 폐지가 많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니 매일 폐지를 버릴 수 있도록 공식화하자는 ‘개인 자유 중심의 현실 관리파’, 주변 환경이나 공동의 질서를 위해 개인의 일시적인 불편은 조금씩 감수해 공동의 원리를 세워가자는 ‘공동체 균형 중심의 변화 지향파’ 간 견해 차이가 있다. 이것을 이른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보수가 대체로 현실주의적이라면 진보는 대체로 변화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이들이 무 자르듯이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 간에는 상호 침투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그런 경향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현실이냐, 무엇으로의 지향이냐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이나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이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누군가 기존 질서나 흐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언젠가부터 폐지를 수시로 내놓기 시작하고, 배달 문화로 인해 종이박스가 급격히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이 폐지 더미를 아무 대나 배출해서 단지 환경을 훼손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도 이런 원인은 보지 않은 채 관리사무소에서 더 잘 관리하면 입주민들이 편리해지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승리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좀 멀리 떨어진 원인을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체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인정하곤 한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니 국가안보(국방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이들은 왜 북한과 대치하게 되었는지, 그 대치상황이 왜 더 강고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일본에 의한 피식민 경험, 외세에 의한 분단, 그 과정에 증폭된 이념 갈등과 전쟁 등 주요 원인은 성찰하지 않은 채, 서로 대치 중인 당장의 현실만 중시하고, 당장 북한을 압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고만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내내 골칫거리이니 이 기회에 그들을 몰아내자는 이스라엘의 근시안적 현실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자국이 팔레스타인에 힘으로 정착해온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테러를 일삼는 이들은 멸절시켜야 한다며 당장의 위험 요소에만 집중한다. 집권하자마자 느닷없이 자유를 강조하고, 개인의 현재 능력을 자극하면서, 불평등한 구조에서 이미 역량이 커진 이들을 더 편드는 현 정권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좀 더 희생하면 국가가 더 강해지지 않겠느냐며 특정 부류의 희생, 그것도 힘없는 이들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한반도의 분열과 불평등의 주요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채, 미래로 나아가자며 현실의 권력을 긍정하려는 데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폐지가 매일 쌓이면 관리원이 매일 치우면 된다는 당장의 현실 관리파와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서 무엇을 긍정만 할 수 있겠는가. 불평등한 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 어찌 미래를 내다볼 것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그 주요한 역사적, 사회적 원인들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도 중요한데, 정치를 하겠노라 나서는 이들에게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그러자고 역사도 공부하고 모두를 위한 윤리도 요구하는 것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고 모두의 균형적 미래를 위해 현실의 부조리를 개혁하는, 그런 원리에 충실한 이들만 정치 현장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03 | hrights | 조회: 252 | 추천: 5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파묘’ 제작진은 김덕영 감독에게 명절마다 한우선물세트를 보내야 한다. 그가 좌파 어쩌구 저쩌구 흰소리를 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파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권좌에서 쫓겨난다고 외국으로 도망간 한민족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권력자였던 이승만을 오구오구 하는 뇌구조를 가진 분이 비난하는 영화라면 틀림없이 괜찮은 영화일 테니까. 그런 연유로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주말에 극장에 갔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고 싶다. “재미있는 영화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파묘’를 본 감상을 말한다면,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였다. 천만영화가 될만한 자격을 갖췄다고나 할까. 물론 아쉬운 대목도 여럿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근엄과 진지라는 함정 옆으로 위태롭게 발을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특히 ‘쇠말뚝’ 얘기는 다분히 헛다리였다는 게 솔직한 감상평이다. 영화 첫장면을 보자. 주인공이 미국으로 가는 여객기에서 스튜어디스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눈다. 십중팔구 그 여객기는 일본 항공사 소속일텐데,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일본어로 서비스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주인공은 맥락도 없고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로 “저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스튜어디스는 ‘아 그러세요(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사실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감독의 속내를 너무 일찍 들켰고, 또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약점 역시 노출해 버렸다. 쇠말뚝은 참 오래된 얘깃거리다. 어떤 이들에게 쇠말뚝은 일제강점기의 비극과 분노를 떠올리게 하는 반면, 어떤 이들에겐 감정에 휘둘린 반일감정이라는 허깨비를 보여주는 소재일 뿐이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짚어보자. 일제가 박은 쇠말뚝? ‘파묘’에서도 분명히 언급하지만 그 쇠말뚝 가운데 99%는 가짜다. 그럼 나머지 1%는? 그냥 허깨비다. 일본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단다. 애초에 쇠말뚝 몇 개 박는다고 수천년 이어온 민족의 정기가 끊어진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지만 뭐 그렇다고 치자. 만약 일제가 진지하게 쇠말뚝을 박아야 했다면 둘 중 하나겠다. 몰래 했거나 대놓고 했거나. 둘 다 말이 안된다. 몰래? 한반도를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당에 뭐하러 숨어서 민족정기를 끊는단 말인가. 대놓고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매한가지다. 대놓고 했다면 그에 따른 예산과 인력을 들였을 텐데. 그런 기록이 없다. 동네방네 조선의 정기를 끊었다고 자랑하고 신문에도 싣고 방송도 해야 모욕감을 줄 수 있을텐데 그런 기록은 하나도 없다. 쇠말뚝 박는데 참여했다는 친일파가 단 한 명도 없고, 자발적으로 쇠말뚝 박아서 칭찬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풍수에 입각해 민족정기를 끊는다면 뭐하러 좀스럽게 쇠말뚝을 박는단 말인가. 그냥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시키거나 바위를 깨버리는 게 훨씬 더 확실한데 말이다. 민족정기가 용솟음쳐 특정 마을이나 지역에 독립운동 지도자가 나온다? 그냥 그 마을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게 효과적인 것 아닌가?  사실 쇠말뚝 소동에 대해선 이미 1999년 역사학자 이이화가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역사비평)에서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그는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수의 기를 꺾어 인물 배출을 막으려고 산마루 등 요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말이 있지만, (중략) 이는 그들이 지도 작성 과정에서 산마루에 쇠말뚝을 박아 표지를 삼았던 것”이라고 꼬집었는데, 한마디로 일제의 풍수침략이라는 쇠말뚝은 헛소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지리산 옥녀봉서 또 '일제 쇠말뚝' : 경향신문 2005년 6월 26일 기사 산에 오르는 걸 참 좋아한다. 가장 자주 가는 산은 수락산-불암산인데 둘 다 바위산이고 제법 험한 구간이 있다. 안전을 위해 계단도 있고 줄도 걸려 있다. 그 줄을 연결하기 위해 관공서는 무얼 했을까? 쇠말뚝을 박았다. 바위가 워낙 가파른 곳에는 디딤판으로 쓰도록 관공서에선 무얼 했을까? 쇠말뚝을 박았다. 쇠말뚝에 흥분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쇠말뚝을 밟고 잡고 산에 올랐다는 건 왜 기억을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에 쇠말뚝이 박혀 있는데, 그 덕에 대한민국이 물이 마르고 인재가 말라서 국운이 쇠퇴하기라도 했나? 백두대간 곳곳에 송전탑이 솟아있는데 송전탑을 세울 때는 민족정기를 지키기 위해 나무 말뚝을 쓴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고, 송전탑 때문에 국운이 쇠퇴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말뚝’은 존재한다. 민족의 정기를 반토막내고, ‘호랑이의 허리를 끊는’ 쇠말뚝은 분명히 한반도의 허리에 박혀 있다. 그것도 아주 촘촘하게 155마일에 걸쳐 있다. ‘파묘’가 1000만 관객을 향해 흥행을 이어가고 그 덕분에 쇠말뚝이 다시한번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는 속에서도 도깨비불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한반도 허리를 끊고 한민족 정기를 누르고 있는 쇠말뚝, 휴전선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파묘’에서 가장 씁쓸한 건 진짜 쇠말뚝은 외면한 채 그저 일본만 비난하며 손쉽게 끝내버린 선무당 사람잡기가 아닐까 싶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4-03-19 | hrights | 조회: 542 | 추천: 14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시 4월이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신동엽이 그렇게 노래했다. 그의 간절함대로 우리는 4월마다 많은 것을 갈아엎었고, 많은 것을 새로 세웠다. 총칼로 국가를 유린하던 군부세력을 갈아엎었고, 문민정부가 군부를 통제하는 틀을 새로 세웠다. 외세가 독재정부를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던 틀을 무너뜨렸고, 보다 평등한 국가간 관계의 틀을 새로 일궈왔다. 재벌이 노동을 압도하던 관행을 허물었고, 노동하는 자들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4월은 그렇게 늘 꽃 피울 줄 알았다. 봄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랬다. 놀랍게도 모든 영역의 민주화의 꽃들이 시들고 저무는 데는 2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 반대 세력은 언제라도 감옥으로 보내는 군부독재 시절이 재현되고 있다. 광인으로 불렸던 트럼프 대통령조차 눈치 보게 만들었던 한국의 위상은 이제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종속적 국가의 지위로 전락했다. 노동하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시대는 고사하고 재벌 총수들 조차 떡볶이를 먹는데 동원되는 시대가 되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는 3월 초 윤석열 정부를 ‘독재화’ 국가로 분류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급속히 반동의 시기가 왔을까.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고유 명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좀 큰 문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타율적 해방에 따른 미완의 근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근대를 완성하지 못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위기가 찾아 올 수밖에 없는 체제에 살고 있었다. 전후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인 샌프란시스코체제와 중국이 들어와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인 키신저시스템이라는 양 축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국은 지금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체제로 회귀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이 회귀하고자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일방적 불평등 동맹체제이다. 수출로 먹고 살아 온 분단된 한국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반동적 회귀전략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1970년대 미중 간에 구축된 키신저시스템은 한국에게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은 미중수교를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미중수교에 이어 단행된 한중수교는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키신저시스템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를 해체하고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었다.  불평등한 국가체제 위에서 한국은 정치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기댄 채 모래 위에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회귀전략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분명했다. 미국을 따라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회귀했다. 그동안 확보해놓았던 전략적 자율성을 버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올인하며 미국의 첨병 역할을 자처했다. 모든 것은 다시 197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다시 북한을 대화조차 불필요한 적성국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 틈을 활용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나아갔고 민족국가 지향을 폐기하고 2국가체제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넘어서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대시 해나갔다. 러시아로부터 모든 사업은 중단되었고, 중국으로부터 흑자로 유지되어 오던 성장은 무너지고 적자경제로 돌아섰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우리의 주력산업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도전받고 있고,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가계부채는 GDP의 100%를 넘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축배를 들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야수들은 그저 숨죽이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확보했다고 믿었다. 국가간 불평등 구조는 해체되지 않았는데 마치 온전한 주권을 확보한 것으로 착각했다. 물대포 하나만 등장해도 위태로운 촛불 시위의 성과를 촛불 혁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민주화의 동력이었던 청년들이 가장 축제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두고도 위기의 시대라 말하지 않고 신세대의 등장이라고 불렀다. 아직 우리는 겨우 30%의 진보세력만 확보되어 있는 불안정한 민주체제일 뿐인데도 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은 전후체제가 흔들리고 반동세력이 전쟁과 폭력의 20세기로 회귀하고자 하는 위기의 시기이다. 위기의 크기에 맞는 큰 싸움을 해야 할 때이다. 큰 것부터 갈아엎고 다시 세워야한다. 주권의 온전한 확보와 국가간의 불평등 체제로부터 자유를 얻지 않는 이상 나라 안의 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의 확보라는 근대의 완성 없이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다시 외세가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는 외압으로 작동하는 시대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우리의 민주화를 망가뜨리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다시 우리를 전쟁과 폭력의 시대로 몰아가게 쳐다만 보고 있어서도 안된다. 중국이 부상한 힘을 동아시아를 패권 싸움의 전장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된다. 윤석열 정부의 폭거가 어설프게 보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 뒤에는 거세되지 않은 폭력적 권력집단이 틈을 노리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식민주의 세력들이 언제라도 그들의 뒷배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국가의 꿈을 세울 큰 그림을 그리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이 땅의 엘리트들은 이번 4월 만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적 위기이다. 여차하면 나라의 운명이 골짜기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이다. 엘리트들은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반동 세력을 앞에 두고 우리 안의 민주의 차이를 말하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워야 할 반동세력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진보언론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묻은 때를 탓하는 일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다. 지금은 달을 가리킬 때이다.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꼭 나여야 한다고 강변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엘리트라면 자신이 원하는 그 자리가 아니어도 국가를 위해 일할 곳은 많다. 모든 정치인은 국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엘리트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상식을 가진 시민들의 각성이 중요한 시기이다. 결국 국가의 운명은 그들이 결정한다. 넥타이 색깔이나 아파트 가격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들이 다수인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국내 문제야 다음이 또 있지만 국가 간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그것이 시스템으로 고착되어 백년을 간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면 우리 시민들이 일어서야 한다. 국가의 꿈에 대해 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4월이다. “그날이 오기 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이다. 반동의 역사를 갈아엎을 시기가 왔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일어서자. 우리가 여기서 분열하여 다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을 헤맬 수는 없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3-13 | hrights | 조회: 373 | 추천: 18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예전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은 생활을 하다 보니 옛날 일들을 종종 생각하게 된다. 아마 1994년 5월초 즈음이었으니 벌써 30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2년여 몸담고 있던 어느 대기업 산하 연구소를 나와 정처 없는 프리랜서의 길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각오도 다질 겸 며칠 시간을 내어 동해안을 찾았었다. 돌아오는 길은 설악산 미시령을 넘는 길을 택했는데, 지금은 미시령 밑으로 터널이 뚫렸지만 그 때는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의 좁고 구불구불한 구간을 넘어야 했다. 돌아오는 날은 마침 주말, 토요일이었다. 서울로 가는 차선은 텅텅 비었지만 속초 쪽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개 중턱쯤 이르렀을 때 거의 서 있다시피 하는 반대 차선에서 차 한 대가 갑자기 삐져 나왔다. 피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내 차와 정면 충돌했다. 내 차가 한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멈추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오르막 차선이어서 속도를 내지 못했고, 상대 차도 정체구간에서 튀어나온 것이라서 충돌 강도가 약했다는 것인데 어쨌든 내 차는 엔진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상대방 차에서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나왔다. 추월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앙선을 넘어 와 낸, 이해불가한 사고였지만 막상 사고를 낸 당사자는 멀뚱멀뚱 서 있을 뿐, 뭘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는 듯 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과도, 사고처리를 위한 대책도 없이 그냥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에서 부인인 듯한 여인이 내렸다. 그 여인은 나를 붙잡고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구 부부와 넷이 주말 동해안에 놀러오는 길이다. 이 차는 친구에게 빌려 온 차다. 자기네들에게는 보험이 없다. 그러니 경찰은 부르지 말고 해결하자. 차 수리비는 지불하겠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대포차"에 걸린 셈이었다. 사고로 차량통행이 완전히 막히고, 양 방향에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사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그 여인의 처지가 딱해보였다. 남편은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사람같이 보였다. 특별한 직업도 없는 것 같고 부인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놀러 온답시고, 그것도 남의 차를 빌려 나섰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안되었다. 보험도 없으면서. 거기다가 말도 안되는 중앙선 침범까지 하고. 정말 아무 대책 없이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문제는 그 부인이었다. 부인이 거의 사색이 되어 경찰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해결하셨을지 묻고 싶다. 나는 그 부인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보여 그녀의 요청대로 하기로 했다. 그녀가 대책 없는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보태서 말이다. 그래서 내 차는 다시 속초 시내로 견인되어 가고 정비소에 수리를 맡긴 후 나는 고속버스 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버스 편으로 속초에 가서 차를 찾아왔다. 정비소에 지불한 수리비는 그 부인에게 나중에 돌려 받았다. 그러나 차를 찾으러 다시 속초를 오가며 지불한 시간이나 비용은 그냥 내가 부담하였다. 그런데 정비소에서 에어컨 수리비용을 누락했다고 10여만원 정도를 추가로 요구해 왔다. 돈을 부쳐 주고 나서 그 부인에게 이야기하니 부쳐 주겠다고 하고는 끝내 종무소식이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쯤에서 그 일은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돈이 거짓말하는 거지 사람이 거짓말 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면서. 반전은 6년 후에 일어났다. 그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2000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선거운동을 하다가 사무실로 들어오니 운동원들이 계란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삶은 훈제달걀이 널려 있고 사무실 안은 그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여성분이 계란을 몇 십 판 싣고 와서 주고 갔다고 했다. 열성지지자께서 그런 후원을 했나 싶어 바쁜 유세 와중에 계란상자에 적혀 있는 주소로 찾아갔다. 훈제달걀을 취급하는 도매상 같은 곳이었다. 주인을 찾아 인사룰 하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6년전 미시령 고개 위에서의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사이 일산에 들어와 계란 사업을 시작했었고, 어느 날 길을 지나다 선거벽보에 붙어있는 내 사진을 보고는 사무실을 수소문하여 찾아왔던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쳐 봤을 사람인데도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 여인 역시 미시령에서의 일이 가슴에 오래토록 부담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참 희한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일에 감개무량해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 일은 두고두고 나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원론적 질문에서부터, 손해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어쨌든 그 만남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 보다는 훨씬 훈훈한 만남이었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까지 떠올렸다면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일테고. 지혜로운 어른들께 들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날 이때껏 살아오는 동안 나 모르게 내 목숨 구해주고 도와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바람의 딸’ 한비야가 해남 땅끝마을에서 DMZ까지 도보여행을 하다가 충북 괴산 어느 산골에서 만났던 할머니 이야기다. 6.25때 후퇴하는 어린 인민군 병사를 숨겨주고 치료해 보내줬다는 할머니에게 한비야가 물었다. “그러다가 걸리면 바로 총살인데 무섭지 않았어요?” 이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대답이 바로 위의 말이다. 나 모르는 새에 내 목숨 구해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올해로 창립 9주년을 맞는 장발장은행 사업이 성황(?)이다. 지난 2015년 2월 25일, 돈이 없어서 감옥에 가는 현대판 장발장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설립된 장발장은행은 그동안 1만 5194명의 후원자들로부터 16억 가까운 성금을 모아 1300여명의 장발장들에게 22억 6천여만원을 대출해 줬다. 벌금을 못내 감옥에 가야 했을 사람들 중 1300명을 구했다는 말이다. 모금액보다 대출액이 더 많은 것은 그사이 대출을 갚은 장발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대출 신청자에서 후원자가 된 경우들도 있다. 장발장은행이 성황을 이루는 것은 비극이다 장발장은행은 하루빨리 은행문을 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벌금을 내지 못해 몸으로 때우는 노역장 환형유치는 2021년 2만 2천명에서 2023년 11월 기준 4만 1800명 까지, 불과 2년새에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장발장은행에 대출을 신청해 온 우리 시대 장발장들의 사연은 눈물겹다. 200여년 전 배고픔에 빵 한 조각을 훔쳐 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소설 속 장발장 이야기가,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던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한 논픽션의 현실이다. 후원자들의 사연도 하나하나가 감동적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넘어 그들의 연대하는 정신이 감동이다. 그들이야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더불어 숲’을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내미는 연대와 선행의 몸짓은 내가 모르게 받았던 어느 누군가의 도움과 선행에 대한 답장일 것이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
2024-03-06 | hrights | 조회: 875 | 추천: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