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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양극화는 재난의 양극화와 닿아있다(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08-31 10:30
조회
479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네트워크 젠더고물상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었던 8일에 사무실 건물의 배수구가 막혀 물이 현관을 넘나들고 있어 건물 전체의 활동가들이 함께 배수구 청소를 하였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신림동에서 여성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반지하에 사는 40대 여성 두 명과 10대 여아였다. 70대 노모는 병원에 입원해서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10일에는 상도동 반지하주택에서 50대 여성이 침수로 사망했다. 역시 70대 노모는 다행히 참사를 피했다고 한다. 사망한 위의 40대 여성 한 명과 50대 여성은 발달장애인으로 이들을 돌보는 70대 노모와 함께 살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16일에는 ‘재난불평등추모행동’이 꾸려졌고, 22일에는 ‘서울장애인부모연대’가 서울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출처 - 한겨레


 ‘재난불평등추모행동’측은 8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회 앞에 일주일간 분양소를 마련하여 자연재해가 아닌 정부 정책의 부재로 인한 재난이라는 사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 기후로 인한 재난의 예방과 극복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시민들에 알리고자 하였다. 이날 기자회견문에는 9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아, 주무시다 돌아가셨구나”,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를 하지 않았어요?”라고 한 발언과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의 장례 기간동안 대통령실이나 서울시장, 서울시 관계자, 여당 등에서 한 명도 문상하러 오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무시다 돌아가셨으니 다행이라는 건지, 침수 사실을 알고도 대피하지 않은 그분들이 잘못이라는 건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님이 틀림없다. 이번 침수사건을 계기로 침수가 누구에겐 불평거리로 끝나지만 누구에겐 생존의 문제임이 드러났다. 그 경계에는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예전에 강의안을 작성하면서 존 C.머터의 <재난 불평등>을 참고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자연재해가 재난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인간으로 인한 원인이 함께 작동한다고 보았다. 즉,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가 함께 결합 되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재해가 ‘파인만 경계(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의 양쪽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재난의 피해가 동등하지 않은 원인, 재난의 피해가 불평등하게 오는 원인을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고 못 박는다. “자연이 처음 타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에는, 재난은 자연적이다. (…) 그러나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재해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소외계층, 즉 빈민층, 장애인, 여성, 노인, 청소년 등등 취약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재난 불평등의 요소는 부, 장애여부, 나이, 권력, 성 등 사회적 불평등 요소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연재해는 한 사회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불평등한 현실을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참사는 기후 위기와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정책의 부재가 빚어낸 것이다. 문제는 이 두가지 원인 모두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을 변경하지 않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인간 행동의 결과이고, 반지하에서 참사를 당한 것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인간 행동의 결과이다. 나아가 재난마저 돈벌이 기회로 사용하기조차 한다.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에서, 재난은 ‘손해’가 아니라, 외려 복구 과정에서 사회적 ‘이익’을 산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가 3월에 발표한 ‘도시기본계획’에서는 부동산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고,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는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동산 규제를 풀면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익을 더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고,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는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거이전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이들을 거주지에서 쫒아내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갈 곳은 또다시 고시촌이나 옥탑방 같은 곳으로 옮겨갈 뿐 근원적인 대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부동산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 이는 재난 복구과정에서 사회적 ‘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는 슘페터의 이론이 들어맞게 된다. 때문에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된다.

 하나 더 고려할 것은 참사를 당한 발달장애인들을 돌보는 이들이 나이든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대게 돌봄 노동은 여성들의 몫이다. 여성들이 재해 상황에서 더 많은 피해를 당하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도 돌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 노동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 사회적 돌봄 노동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부와 성 모두에서 취약 요소를 안고 있는 여성에게 재난은 더 가혹한 결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재난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재난 발생의 원인과 재난 발생 후의 대책은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인재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재의 결과는 사회적 불평등의 위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적 불평등이 양극화 될수록 재난 불평등도 양극화된다. 이번 참사에 대응하는 국가와 서울시의 안일하고 미봉적인 대처는 정치권력층이 양극화의 어느 쪽에 위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믿을 것은 양극화의 다른 편에 있는 이들의 연대와 대응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