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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쟁, 그의 삶(석미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3-21 10:12
조회
282

석미화 / 평화활동가


 

국가(폭력)에 동원된 월남전 참전군인의 삶에 대한 연구 ‘월남으로 간 동창생’을 찾아가는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연구를 통해 월남으로 간 금마국민학교 동창생 이야기를 중심으로 월남전 참전이 학교, 마을,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었음을 인지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월남전의 기억을 살펴보고자 했다. 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국민학교 동창생 서사를 통해 월남전의 기억을 찾아감으로써 이제껏 말로만 전해 내려왔던 참전군인의 전후 삶을 확인하고, 마을을 중심으로 전쟁과 폭력의 역사, 그로부터 연결된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연구를 마치며 지난 2월 말, 1년여의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연구를 응원하고 후원한 30여 명의 활동가와 연구자,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작지만 빛나는 이야기를 만났다.


 


출처 - 아카이브평화기억 블로그


 

금마국민학교는 1911년 9월 익산공립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해 1959학년도 48회 졸업생이 되는데 이 해 졸업한 학생이 185명으로 전후 다른 해에 비해 많았다. 졸업생 중 110명이 남학생인데, 그중 월남에 간 이가 12명이다. 남자 졸업생 열 명 중 한 명 꼴로 월남에 간 것이다. 우리는 연구 활동으로 5명의 동창생과 3명의 가족, 그리고 이웃을 만났다. 그들의 전쟁 경험뿐만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들었다. 동창생과의 만남으로 전쟁과 삶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전쟁의 기억과 언어를 기록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동창생들이 전쟁과 삶에서 겪은 감정과 생각에 귀 기울였다. 삶에서 전쟁이 지나간 자리를 만나고, 동원된 존재로서 전쟁을 겪었던 그의 이야기 속에서 국가와 이념의 외피를 벗은 전쟁과 폭력의 얼굴을 마주하고자 했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연인원 32만여 명의 청년이 월남에 갔다. 마을에서 함께 나고 자란 동창생들은 청년이 되어 전장으로 갔다. 이들은 어릴 적 한국전쟁을 겪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어려운 시절이었다. 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졸업을 하는 시대도 아니었다. 동창생 중에는 국민학교 시절이 유일한 학창 시절인 이도 여럿이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동창생들과의 만남에서, 월남으로 가는 이야기의 어느 대목에서든 가난은 반드시 등장했다. 가난과 월남전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국가는 가난을 경제발전이라는 언어로 포장해 결과적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 가난은 월남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국가는 전쟁터에 일자리를 마련했고, 동창생들은 가난 때문에 군사 노동을 해야 했다. 동창생마다 가난에 대한 서사가 길었다. 돈 벌러 월남 갔다는 말은 감추고 싶은 이야기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국가의 기억에는 동창생들이 겪어야 했던 그 시대의 가난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동창생들에게는 가난과 더불어 월남으로 간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출처 - 아카이브평화기억 블로그



연구는 개인과 마을공동체의 언어가 지금까지 국가가 유통하고 있는 전쟁 기억과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실체로서 그들의 언어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공식 기억은 역사 교과서, 월남 파병을 전시하는 공간, 다수의 언론 보도,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주도하는 홍보와 기억의 영역에 존재한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호국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경제발전과 같은 언어로 정의된다. 참전군인은 용맹한 한국군, 대민 지원 활동을 하는 인도적인 모습이나 전사·부상·고엽제 피해와 같은 희생과 헌신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동창생들의 기억은 국가의 공식 기억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사건으로 기억하지만 동창생들에게 전쟁은 삶의 일부이고,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전쟁은 삶으로 치환되었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어떤 의미로든 긍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쟁을 찬성하거나 미화하는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전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가난’ ‘가족’ ‘경험’과 같은 더 나은 것들로 가기 위한 선택의 결과이거나, 그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강요와 타의에 의한 것으로 저항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명령체계 속에 순응하는 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전쟁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장에서 경험한 것들까지 미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전장에서 맞닥뜨린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그곳에서 살아온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이야기했다. 국가가 공식 기억에서 전쟁을 명분과 정의로 포장하는 것과 달리 동창생들이 목격한 전쟁은 허망한 죽음 그 자체였다.



동창생들은 총 들고 적과 싸우는 것 말고도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게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일들이 문제라거나 부당하다고 여기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고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전쟁과 기억들 속에서 전쟁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동창생에게 돌아온 답변은 그래도 잘 갔다 왔다는 것이었다. ‘아 살아왔으니 잘 갔다 왔지.’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전쟁을 갔다 온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이렇듯 그들의 기억과 언어 사이에서 진심을 헤아리는 일은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을 만날 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다.



출처 - 아카이브평화기억 블로그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짧게 내뱉은 말속에서 혹은 행간에서 70대 중반 넘어 인생의 끝자락을 살고 있는 이들의 슬픔이 느껴졌다. 지나온 삶으로서 전쟁 경험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분노, 체념과 인정 같은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분열적 감정과 생각들 사이에서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시대, 그들이 겪은 전쟁을 공감의 언어로 이해하고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현재 우리가 만나는 베트남전쟁의 기억들은 동창생들의 기억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이 전쟁에 대한 냉소와 비판 사이에 정작 그 전쟁에 갔던 수많은 동창생들은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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