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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체포에 대해 알아보기(이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28 11:23
조회
417

이윤/경찰관



체포라는 용어가 영화, 드라마, 뉴스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수사관에게 잡혀가는 것이라고만 아는 분이 많다.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지하철 내 몰카범을 체포하는 장면에 현행범체포가 아닌 긴급체포라는 용어를 쓰기에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다. 방송 작가나 PD도 정확히 모를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수사기관에 체포당했을 때 체포에 대해 모르고 있으면 당황하여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나의 인권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체포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 연합뉴스



  • 영장에 의한 체포와 영장 없는 체포


체포는 크게 영장에 의한 체포와 영장 없이도 가능한 체포로 나뉜다. 영장 없이 가능한 체포에는 현행범체포와 긴급체포가 있다.



-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


체포는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여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므로(무죄추정의 원칙) 함부로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범죄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면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피의자)을 상대로 구체적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형사소송법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강제로라도 데려다 앉혀놓고 질문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의심된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아무나 체포하면 안 되므로, 법원이 검토하여 영장을 발부한 사람만 체포하게 한 것이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려면 수사기관이 피의자 인적사항(이름, 주민번호, 주거지 등)을 알고 있어야 하고,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없이 3회 정도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출석요구에 잘 응하면 체포영장은 잘 발부되지 않는다. 수사는 임의수사(강제가 아닌 동의나 승낙에 의한 수사)가 원칙이다. 몇 번이나 출석하여 조사를 받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면 체포영장 또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발부할 요건이 되지 않는다. 재판도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다.



- 현행범체포


현행범이란 범죄를 실행 중이거나 실행 직후인 사람이다. 현행범은 누가 보더라도 범인임이 확실하고, 바로 체포하지 않으면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으며, 도주하면 누구인지 알아내기도 쉽지 않고, 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적 여유(2~3일)도 없으므로 영장없이 체포가 가능하다. 또한 수사기관이 아닌 누구라도 현행범을 체포할 수 있는데, 이때는 즉시 수사기관에 인계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현행범으로 취급되는 준현행범이 있다는 것이다. 준현행범은 범인으로 불리며 추적되는 사람(“도둑이야”라며 쫓기는 사람), 장물이나 범행에 사용된 물건을 가진 사람, 신체나 의복에 증거가 될 뚜렷한 흔적이 있는 사람, 누구냐고 묻자 도망하려는 사람이다.



- 긴급체포


말 그대로 영장을 미리 받을 여유 없이 범인을 우연히 발견했거나 하는 긴급한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받아간 사람을 5시간 정도 추적하다가(이미 현행범은 아니다) 범죄장소에서 먼 곳의 어느 모텔로 들어간 것을 CCTV로 확인하였으나, 그 사람의 인적사항은 모른다. 그래서 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다. 혐의자가 모텔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일단 체포해야 한다. 종업원에게 물어 그 사람이 어느 방에 있는지 파악하여 불러내었다면 도주 방지를 위해 영장없이 체포할 수밖에 없다. 긴급체포는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와 현행범체포의 실무적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보인다. 경찰이 긴급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받지 못하면 바로 석방해야 한다. 검사가 긴급체포하면 별도로 승인받는 절차가 없다.




  1. 체포 시 고지받을 권리


위 세 가지 체포를 할 때 검사나 경찰은 피체포자에게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진술거부권과 체포적부심사권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흔히 미란다 고지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다. 형사소송법에는 진술거부권 고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대통령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는 고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고지하지 않은 체포는 절차적으로 위법하며, 위법한 체포를 이용하여 얻은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될 수 없다.




  1. 체포와 구속

체포는 수사를 위해 잠시 붙잡아두는 것이고, 구속은 재판을 위해 붙잡아두는 것이다. 수사를 위해 잠시 붙잡아 인적사항과 혐의사실을 확인하는 데 영장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강한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체포에도 영장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독일이나 영국은 영장 없는 체포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체포영장 제도가 있는데, 검사만 청구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경찰도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다. 한국은 체포가 마치 구속을 위한 전 단계 같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체포 후 구속할 필요가 있으면 다시 검사에게 구속영장 청구를 신청하여 발부받도록 하고 있다. 체포와 구속에 검사는 항상 관여한다. 체포 시간으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석방해야 한다. 그러니 무고하게 체포가 되었다고 하여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죄가 없다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절차에서 판사에게 무고함을 토로하고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실질심사는 구속 적절성을 심사하는 절차일 뿐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은 아니다. 불구속 재판이 원칙인데도 요건이 미비한 구속영장을 청구해놓고 ‘정정당당하다면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체포와 구속은 수사와 재판을 위해 대상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하여 피의자의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수차례나 성실히 응하여 도주 우려가 없고, 달리 인멸할 증거가 없는데도 체포나 구속을 시도하는 것은 직권을 남용하여 괴롭히는 행위로 보인다. 법집행이 공정하려면 일관성과 형평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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