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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누구인가?(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21 10:58
조회
1006

시온주의, 시온주의, 비시온주의


 

홍미정 / 단국대학교 아시아 중동학부



초정통파 유대인의 특성


유대인들의 혈통이 다양하다는 것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치적 입장이 시온주의, 비시온주의, 反시온주의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유대인들의 종교적 성향도 개혁파, 초정통파, 정통파, 전통주의자, 세속주의자 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초정통파(하레디)는 특별한 복장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다. 검은 정장에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초정통파 남성, 긴 치마, 두꺼운 스타킹, 검은 머리 덮개 등을 입은 초정통파 여성을 예루살렘 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간간히 보이는 검은 덮개로 머리와 얼굴까지 가린 초정통파 유대인 여성들은 세계 미디어에서 널리 알려진 무슬림 근본주의자 여성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초정통파 유대교는 세속화에 맞서 모세 시대부터 내려온 유대교법(토라)과 전통을 보존하고 수호함으로써, 세속 사회로부터 유대교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중부 및 동유럽 전통주의자 랍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공통적인 존재 근거는 유대교법과 전통의 보존 및 수호다.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유대교 내부에서도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유대 계몽주의 운동(하스칼라)이 발생하자, 이에 맞서 중부 및 동유럽 소재 예시바(유대교 학교)와 시나고그(유대 교회) 등 유대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신비주의 및 경건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경건주의 운동을 주도한 집단은 계몽주의 확산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보수적인 하시디 랍비들(우크라이나 중심)과 미트나그디 랍비들(리투아니아 중심)이었다. 역내에서 서로 세력 경쟁하던 이 두 랍비 집단들이 초기 초정통파 유대인들이다.


2021년 12월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경외와 두려움으로 신의 의지를 수행하고, 현대 가치와 관습에 반대하면서 유대교법과 전통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초정통파 유대인공동체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3%(약 1백 22만 6천명)다. 초정통파 유대인공동체는 사실상 종파 내 결혼과 높은 출산율 때문에 인구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이스라엘 내 초정통파 비율은 2009년 10%에서 2021년 13%으로 증가했다. 이스라엘군은 징병제이지만, 대부분의 초정통파 유대인은 예시바에서 토라공부를 한다는 구실로, 병역 면제 나이에 도달할 때까지 병역을 연기한다. 최근에는 초정통파 유대인 남자의 군대 지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초정통파 주민들은 국가 공무원이나 군복무를 반대한다.


최근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들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이상으로,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이 정당들의 최우선 과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하는 종교 공동체의 현실적인 이익 확보다. 따라서 이러한 유대교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파에 이익이 된다면, 좌파 진영이나 우파 진영 어느 쪽과도 연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스라엘 비례대표제 의회제도에서 전체 120석 중 61석 이상을 확보한 정당 연합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기 때문에, 상대적 소수파인 정통파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인구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연합정부의 생존에 결정적이다. 따라서 정통파 유대인 정당들은 ‘예시바 등 종교 교육기관에 재원 지원, 안식일 및 코셔 음식 준수, 비정통파 및 개혁파 유대교에서 행하는 개종 거부’ 등 종교 행위를 법제화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영향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22년 11월 의회 선거에서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은 11석을 획득한 세파르디&미즈라히(대부분 중동 출신)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당, 7석을 획득한 초정통파 아쉬케나지(유럽 및 러시아 출신) 유대인을 대표하는 토라 유대교 연합당(아구다트 이스라엘+ 데겔 하토라)이다. 이 두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은 20세기 초 폴란드에서 창설된 세계적인 초정통파 유대교 정치 단체,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갈라져 나오거나 통합된 정당들이다. 이스라엘 최초의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으로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교육, 사회복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종교 문제에 관한 입법과 초정통파 유대인들에 대한 병역 면제를 주도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반대, 이스라엘 국가 지지


세속적인 시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WZO)의 활동에 반대하면서, 1912년 폴란드에서 3종류의 초정통파 유대인들, 즉 독일 정통파 유대교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1808~1888)의 제자 랍비들, 폴란드의 하시디 랍비들, 리투아니아의 미트나그디 랍비들이 연합하여 세계적인 운동으로 아구다트 이스라엘을 창설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신의 개입으로부터 유대국가가 출현해야 한다고 믿고, 세속적인 시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유대국가 창설 운동을 반대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을 토라(모세 오경)에 의해서 정의된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이라고 정의하였고, 정통파가 아닌 유대인 단체들과 협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시온주의를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고,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설립을 목표로 활동하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맞서면서, 한 때 세파르디&미즈라히를 포함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포괄적인 우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시기에 4차례(1920년, 1925년, 1931년, 1944년) 실시한 팔레스타인 유대인공동체 대표회의 선거도 거부하였다. 이 선거에서 탁월한 시온주의 지도자로 부상한 폴란드 출신의 데이비드 벤구리온(1886~1973)이 이끄는 정당은 영국위임통치 기간 4차례 선거에서 모두 제 1당을 차지하였다. 게다가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후 1949년~1961년까지 실시된 5차례 의회 선거에서도 벤구리온이 이끄는 당이 제1당을 차지하였다. 동시에 벤구리온은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의장(재임: 1946~1956) 및 이스라엘 총리(재임: 1948~1954, 1955~1963)를 역임하는 등 이스라엘 정치에서 장기 지속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와 벤구리온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창설되었다.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의장 벤구리온이 발표한 ‘이스라엘 독립선언서’는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창설을 주도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데오도르 허즐(1860~1904)을 ‘유대국가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명시하였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시대에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조직화된 유대 공동체와는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나 1933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 산하 조직인 유대기구와 협정을 체결하면서, 유대기구가 영국위임통치당국으로부터 할당받은 이민자 중 6.5%를 재분배 받았다. 게다가 1947년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유대기구와 ‘현상유지 서한’으로 알려진 훨씬 더 포괄적인 협정을 체결하면서, 종교적인 이익을 보장받았고, 합법적으로 이스라엘 정부 연합에 합류할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등 이스라엘 국가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1951년 실시된 제2차 이스라엘의회 선거에 참가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1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1951년 3석, 1955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6석, 1959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6석, 1961년 4석, 1965년 4석, 1969년 4석, 1973년 아구다트 이스라엘+포알레이 아구다트 5석, 1977년 4석, 1981년 4석, 1984년 2석, 1988년 5석을 획득하였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국가와의 전략적 관계에서 장관 직위를 거부하였고, 정부에서 맡은 주요 업무는 ‘교육, 주택, 사회 서비스, 비군사 서비스, 유대 종교적 특성 보존을 위한 예산 문제’에서 하레디(초정통파) 유권자들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아구다트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시온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유연했다. 이러한 모호하면서 유연한 태도로 인해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정치적 협상력을 높이면서 리쿠드와 노동당이 이끄는 연합정부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2020년 10월 28일,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하레디 원칙에 대한 아구다트 이스라엘 성명]에서 세계 시온주의 기구에 반대하지만, 하레디 공동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하레디 원칙에 대한 아구다트 이스라엘 성명]


 

최근 시온주의 운동 조직 대표들의 성명은 하레디 유대인들이 세계 시온주의 기구의 ‘예루살렘 프로그램’을 수용했다고 암시했다. ‘예루살렘 프로그램’은 시온주의를 ‘유대인의 민족 해방 운동’으로 선언하고 ‘유대 민족의 삶에 있어서 이스라엘 국가 중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일신과 신이 우리에게 주신 토라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사람 집단이며, 그 외에는 다른 것은 아니다. 이 진리를 생략함으로써, ‘예루살렘 프로그램’과 그것이 구현하는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다른 모든 국가들과 유사한 정치적 실체로서 유대인의 본질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한다. 이 재정의는 우리 유대인의 신앙과 전통의 본질에 어긋난다.

지난 세기의 토라 거장들이 아구다트 이스라엘 운동을 설립한 근본 원칙들은 유대인 민족성에 대한 시온주의 재정의를 확고하게 거부하는 것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그 근본 원칙에 충실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온주의가 하레디 유대인의 근본적인 믿음과 양립할 수 있다는 어떠한 제안도 근거가 없으며 거부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 이전에 시온주의 운동발흥 초기부터 유럽의 명망 있는 랍비들 사이에서는 고대 이스라엘 땅에 ‘유대국가’ 건설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유대인들의 운동에 관한 깊은 우려가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가 창설되면서, 아구다트 이스라엘 운동을 이끈 명망있는 랍비들은 종교적 유대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의회 활동을 포함한 이스라엘 국가의 민주적인 업무에 참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스라엘 의회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부 기구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어떤 시온주의자 기구나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토라가 유대인들의 궁극적인 결정자이자 통합자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 시온주의가 유대민족을 규정하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구다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변경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안보, 경제적 필요, 복지 등을 항상 지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반시온주의자-네투레이 카르타: 이스라엘 해체 운동


영국 위임통치기간 동안 아구다트 이스라엘 소속 랍비 중에, 예루살렘 지역 초정통파 유대인 집단 거주지, 메아 쉐아림 소재 헝가리 유대 공동체 태생의 랍비 암람 블라우(1894~1974)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1869년 슬로바키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며, 어머니는 예루살렘 원주민 유대인이었다.


1930년대 아구다트 이스라엘이 시온주의 운동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자, 1938년 랍비 암람 블라우는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결별하고, ‘도시(예루살렘)의 수호자’를 뜻하는 네투레이 카르타를 공식적으로 창설하였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네투레이 카르타는 네투레이 카르타 교회당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하거나, 네투레이 카르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에 자녀를 보내거나, 네투레이 카르타가 소집하는 활동, 집회,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유대인 메시아가 도래할 때까지 유대인 자신들의 국가를 갖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스라엘 국가는 신에 대한 반역이라는 믿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평화적 해체를 요구한다. 회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데 자주 참여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들은 런던, 뉴욕, 예루살렘 등의 도시에서 퓨림 축일 등 유대교 기념행사 등에서 일상적으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운다.


네투레이 카르타 지도자 랍비 모세 허쉬(1930~2010)는 생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모세 허쉬와 야세르 아라파트의 관계는 아라파트가 튀니지에 거주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허쉬는 유대인 문제에 관한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허쉬는 시온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이중적인 행위를 하는 아구다트 이스라엘 등 초정통파 유대인 단체들을 비난했다.


이스라엘 건설 이후, 네투레이 카르타는 더욱 고립되었지만 부유한 초정통파 하시디 집단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시디 집단의 후원으로 네투레이 카르타는 이스라엘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을 견딜 수 있고, 자선기금 분배를 활용해서 이스라엘 국가로부터 보조금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결국 초정통파 하시디 후원 덕택에 네투레이 카르타는 이스라엘 내 정치적 기반 및 공식적인 관계가 거의 없는 자급자족 공동체로 존재한다.


네투레이 카르타는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유대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고, 신은 메시아가 도래할 때까지 유대 국가 창설을 금지했다.’라고 믿는다. 이러한 네투레이 카르타의 신학적 견해를 공유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도 이스라엘 국가 해체를 주장하는 등 과격한 행동 때문에 네투레이 카르타와 거리를 두었다. 반면 네투레이 카르타는 자신들과 종교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이단자로 배척하며, “아랍인이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에서 유대 공동체가 소수자로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2023년 1월 30일. 네투레이 카르타 뉴욕시위 : 출처 - (Neturei Karta facebook 게시물)


2023년 1월 9일, 예루살렘과 베이트 쉐메시 출신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 3명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중심지 서안 소재 제닌 난민 캠프를 방문해서 이스라엘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이슬람지하드 대원들과 파타 대원들을 만났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경찰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을 불법 방문한 혐의로 네투레이 카르타 회원 3명을 조사했고,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 극우파 이타마르 벤 그비르는 이 3명을 시리아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7월 15일 미국인 랍비 이스로엘 와이스 등 네투레이 카르타 대표단 4명이 이집트를 통해서 가자로 들어가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야를 만나고, 의료 지원 물품, 트럭 등을 전달했다. 이 때 랍비 와이스는 “우리는 당신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당신들과 함께 소리쳐 운다. 여기는 당신들의 땅이다. 이 땅은 불법적으로 부당하게 훔친 사람들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 사람들이 유대교의 이름과 우리의 정체성을 납치했다.”라고 주장했다. 랍비 와이스는 2006년 12월 11일, 이란에서 개최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세계적 비전을 검토하는 국제회의’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 국제회의에서 그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 출신이고, 아버지는 헝가리 출신이다. 홀로코스트 동안 그의 조부모, 아주머니, 삼촌 등 많은 가족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홀로코스트 국제회의에 참가한 이유를 “우리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아랍세계와 무슬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검은 코트 깃에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로 “유대인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적힌 팔레스타인 국기, 빨간 금지선이 그어진 이스라엘 국기가 위아래로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시온주의자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조차도 네투레이 카르타를 지나친 극단주의자로 간주한다.



시온주의자-샤스당: 세파르디&미즈라히 이익 확보


이스라엘 세파르디 최고 랍비를 역임한 이라크 출신의 오바디아 유세프(1920~2013)가 1984년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들이 지배하는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중동 출신의 세파르디&미즈라히를 독립시켜 ‘세파르디 수비대’를 뜻하는 샤스당을 창설하였다. 샤스당 창당 이유는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아구다트 이스라엘에 투표하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출신의 아쉬케나지들이 의원직을 독점한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샤스는 세속주의와 유럽계 초정통파의 패권에 반대하여 세파르디&미즈라히의 종교적 유산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일어났다. 선거 기간 동안 샤스의 구호는 “고대의 제왕적 영광을 회복하기, 우리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 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구호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조상들의 영광스런 유산을 되찾고, 현재 직면한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종식시키고, 차별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파르디 초정통파는 공동체 랍비들이 수백 명에 달하고,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하지만, 이스라엘 미즈라히 사회의 비초정통파 대중들과 강력한 유대감을 유지한다. 이러한 세파르디&미즈라히들의 지지를 배경으로 샤스당은 1984년 4석(3.1%, 63,605득표), 1988년 6석(4.7%, 107,709득표), 1992년 6석, 1996년 10석, 1999년 17석(13%, 430,676득표) , 2003년 11석, 2006년 12석, 2009년 11석, 2013년 11석, 2015년 7석, 2019년 4월 8석(5.99%), 2019년 9월 9석(7.44%), 2020년 9석(7.69%), 2021년 9석(7.17%), 2022년 11석(8.25%, 392,964득표)을 획득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샤스당의 활동을 통해서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치에서 독자적인 커다란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게다가 샤스당이 초정통파가 아닌 일반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들의 표를 흡수함으로써, 이스라엘 정치에서 초정통파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


샤스 당의 주요 이념은 세파르디&미즈라히 공동체의 종교적,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샤스는 ‘세파르디&미즈라히 주민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종식’시키고, ‘전통적인 미즈라히 유대인들의 고대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정통파가 아닌 일반 세파르디&미즈라히도 샤스를 지지한다.


2010년 이스라엘 세파르디&미즈라히 유대인을 대표하는 샤스 당은 시온주의 운동의 최고 상부 조직인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가입함으로써 적극적인 시온주의자로 나섰다.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달리, 샤스는 ‘종교적 신념과 시온주의 사이에 모순이 없다,’라고 간주한다. 아쉬케나지 초정통파 유대 정당들인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데겔 하토라는 이러한 샤스당의 적극적인 시온주의자 정책을 거칠게 비난하였다.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샤스도 좌파 및 우파 정부에 참가하였다. 샤스의 선택 기준은 세파르디와&미즈라히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부가 더 큰 이익을 주느냐였다.



비시온주의자-토라 유대교 연합당: 아쉬케나지 이익 확보


1992년 아쉬케나지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 아구다트 이스라엘과 데겔 하토라(1988년 미트나그디가 아구다트 이스라엘로부터 독립하여 창설됨)가 동맹하여 토라 유대교 연합당을 만들었다. 이들은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에 가입하지 않았다.


토라 유대교 연합은 이스라엘의회 선거에서 1994년 4석, 1996년 4석, 1999년 5석, 2003년 5석, 2006년 6석, 2009년 5석, 2013년 7석, 2015년 6석, 2019년 4월 8석, 2019년 9월 7석, 2020년 7석, 2021년 7석, 2022년 7석을 차지했다. 이 정당은 비시온주의자로 분류되며, 이스라엘 정부에서 원칙적으로 차관직만 받아들이며, 교육과 사회복지, 초정통파의 병역 문제 등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샤스와 마찬가지로, 토라 유대교 연합이 꾸준히 의회 의석의 확보한다는 것은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가 이스라엘 정치에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민과 더 독실한 공동체의 높은 출산율도 일정하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토라 유대교 연합도 이스라엘 정치에서 아쉬케나지 초정통파의 이익 확보를 위해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