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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이 쏘아 올린 질문(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2-13 11:50
조회
654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38년 어느 날 런던 동물원에서 오랑우탄 제니를 만났다. 제니는 보르네오에서 온 세 살짜리 암컷 오랑우탄으로 런던 동물원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오랑우탄이었다. 제니는 난방이 들어오는 우리에 갇혀 인간처럼 옷을 입고 차를 마시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제니가 다윈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다윈이 본 제니는 기록에 남았다. 다윈은 오랑우탄과 인간의 공통점을 눈여겨보았다. 제니를 관찰한 다윈은 인간 어린아이와 닮은 오랑우탄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나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화적 연속성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노트에 적었다. 후일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서 유인원 관찰이 흥미로운 이유는 감정 표현이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기쁨, 즐거움, 애정을 표현할 때면 인간도 유인원도 입술을 내밀고 웃는 소리를 내고 눈을 반짝일 뿐만 아니라 고통, 슬픔, 고민, 질투 같은 부정적 감정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까지도 똑같다고 했다.


 

오랑우탄은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에서만 서식하는 대형 유인원이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고대 말레이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얼굴과 몸이 털로 가득 덮여 있고, 숲속 나무 위에 살며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한 이 유인원을 고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현지인들은 ‘uraŋutan’, ‘wuraŋutan’, ‘uraŋuta’ 이라 불렀다. 이를 들은 유럽인들이 ‘Orang Outang’, ‘Ōran ootan’이라고 적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성성(猩猩)이’이라고 불렀다.


 

오랑우탄이란 말은 1630년대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왔다.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당시까지 유럽에 알려진 모든 대형 유인원을 포괄하는 용어로 쓰였다. 놀랍게도 pygmy, Indian satyr, pongo, jocko, barris, drill, smitten Quioias Morrou, salvage 같은 용어가 오랑우탄과 같은 의미로 쓰였고, 오랑우탄과 침팬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오랑우탄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오랑우탄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일 뿐만 아니라 유럽어, 아시아어, 아프리카어가 혼재하는 언어적 혼란과 동남아시아에 사는 오랑우탄과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가 구분되지 않는 지리적 혼동은 오랑우탄이 유럽에 던진 충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오랑우탄이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이유는 유럽인의 인식체계에 들어온 이 낯선 동물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몹시 곤란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불길하게 상기시키는 이 생명체를 늑대소년 같은 야생인간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원숭이에 가까운 종이라고 하면 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8세기는 ‘오랑우탄의 세기’라고 할 만큼 오랑우탄 연구는 이 시기 자연사와 비교해부학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의 과학자 니콜라 클로드 파브리 드 페이레스크(Nicolas-Claude Fabri de Peiresc)는 아프리카와 지중해 여행을 통해 오랑우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 동물은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제3의 종”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오랑우탄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구분선을 명확히 그음으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오랑우탄이 쏘아 올린 질문이 계몽주의 시대 자연학과 인간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오랑우탄은 어떻게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상업 네트워크는 유럽에 아시아 오랑우탄에 관한 지식이 전해지는 주요 루트였다. 오랑우탄이란 말을 책에 써서 처음 소개한 학자는 야코부스 본티우스(Jacobus Bontius)였다. 레이덴 태생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로 바타비아에서 활동했던 본티우스는 저서에 오랑우탄에 관한 묘사와 삽화를 남겼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이 놀라운 괴물이 직립해 걸어 다니는 것을 자신이 직접 여러 번 목격했으며, 자바인들에 의하면 오랑우탄은 말을 할 줄 알며, 혐오스러운 욕정을 만족시키려고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관계하는 인도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고 전했다.


 

Jacobus Bontius, Engraving of a orangutan, 1658, Wellcome Collection L0032838


출처: Wikimedia Commons


 

유럽 최초로 살아있는 유인원을 관찰하고 책에 쓴 사람은 네덜란드 의사이자 암스테르담 시장이었던 니콜라스 튈프(Nicolaes Tulp)였다. 『의학적 관찰』(1641)의 한 장(章)을 할애해 오랑우탄에 관해 썼다. 오랑우탄을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라고 표현하고, ‘인디언 사티로스(Indian satyr)’와 같은 존재라고 적었다. 이런 동일시는 고대 로마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Claudius Aelianus), 16세기 스위스 의사 콘라드 게스너(Conrad Gesner)로 이어지는 유럽 박물학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튈프가 관찰한 오랑우탄은 1630년 한 네덜란드 상인이 들여와 헤이그의 오라녜공 프레데릭 핸드릭(the Prince of Orange Frederick Hendrick)의 메나주리에서 사육한 개체였다. 튈프는 신체적 특징을 조사했을 뿐 아니라 컵을 사용해 물을 마시고 잠잘 때 베개와 담요를 사용하는 것 같은 행동에 주목해 마치 ‘가장 교육받은 사람’ 같았다고 적었다. 튈프는 오랑우탄을 눈으로 직접 관찰하면서도 고전 문헌에서 읽은 ‘호모 실베스트리스’, ‘인디언 사티로스’라고 판단하고, 전통에 기대어 신빙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택했다. 계몽의 시대라고 하지만 경험적 관찰은 아직 고전의 권위를 이기지 못했다. 튈프의 책은 한 페이지 전면을 할애해 오랑우탄 판화를 실었고, 이 판화 덕분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었다. 판화에서 오랑우탄은 늘어진 젖가슴에 다소곳한 태도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있는 여성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튈프의 판화는 과학 논문과 대중 여행기에서 수없이 복제·유통되었다.


 

Nicolaes Tulp, Homo Sylvestris, Observationes Medicae, 1641


출처: 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4.


 

사체 해부를 통해 오랑우탄의 정체에 대해 해부학적 결론을 내놓은 학자는 페트루스 캄퍼르(Petrus Camper)였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해부학자 캄퍼르는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해 밝혀낸 결과를 1779년 영국 왕립학회 학술지 『철학논문집』에 실었다. 캄퍼르의 논문 「오랑우탄의 발음기관에 관한 설명」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답이 되었다. 이 논문에서 캄퍼르는 오랑우탄의 언어사용과 인간과의 교접 가능성을 전면 부정했다. 후두부의 구조상 언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생식기도 인간보다 개와 유사하다고 밝힘으로써 인간과 오랑우탄의 성교와 번식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캄퍼르가 여러 마리의 오랑우탄을 해부할 수 있었던 배경은 177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네트워크를 통해 네덜란드 총독의 메나주리로 공급된 아시아 오랑우탄의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 오랑우탄은 과학적 관찰과 해부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 전시되어 ‘호기심 많은’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오랑우탄에 관한 기사는 정기적으로 신문에 실렸고, 런던의 커피하우스 같은 새로운 사교와 공론의 공간에 오랑우탄이 전시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오랑우탄은 살아서는 왕과 귀족의 메나주리, 커피하우스, 동물원에서 사육·전시되었고, 죽어서는 해부대 위에 올랐다가 표본이 되어 자연사박물관에 안치되었다. 오랑우탄의 본성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되고, 유럽 동물원에 대중의 구경거리로, 자연사박물관에 해부학 표본으로 안치되는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동물성과 인간성에 관한 논쟁은 유럽과 비유럽 사이에 구축된 수많은 연결망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유럽과 비유럽의 연결은 인간과 인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유인원의 글로벌 교환으로도 드러났다. 인간과 같은 ‘사람과(Hominidae)’의 친척 오랑우탄이 아직도 동물원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Charles Darwin, Notebook, 1838. Lines 79 & 196–197.


http://darwin-online.org.uk/content/frameset?eywords=boast%20of%20his%20proud&pageseq=69&itemID=CUL-DAR122.-&viewtype=text


2)찰스 다윈, 김성한 옮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사이언스북스, 2020), 206-211쪽.


3)Wayan Jarrah Sastrawan, “The Word ‘Orangutan’: Old Malay Origin or European Concoction?,” Bijdragen tot de taal-, land-en volkenkunde/Journal of the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of Southeast Asia 176.4 (2020), pp. 536-539.


4)성성(猩猩)은 전근대 한자문화권의 고전들에 기록된 인간을 닮은 동물의 통칭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침팬지를 흑성성(黑猩猩), 보노보를 왜성성(倭猩猩), 고릴라를 대성성(大猩猩), 오랑우탄을 홍성성(红猩猩)이라고 한다.


5)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The Orangutan, Savagery, and the Borders of Humanity in the Global Enlightenment,” History of the Human Sciences 32.4 (2019), p. 82.


6)M. C. Meijer, “The Century of the Orangutan,” New Perspectives on the Eighteenth Century 1 (2004), pp. 62–78.


7)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83.


8)튈프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1632)의 주인공이다.


9)라틴어로 호모 실베스트리스(homo sylvestris)는 ‘숲(sylva)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야만(savage)과 숲(sylva)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다. ​


10)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p. 82-83.


11)Petrus Camper, (1779) ‘Account of the Organs of Speech of the Orang Outang’, Philosophical Transactions 69 (1779), pp. 139–159.


12)Silvia Sebastiani, “A ‘Monster With Human Visage’, p. 93


13)사람과(Hominidae)는 사람,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을 포함하는 영장류의 한 과이다. 대형 유인원이라고도 부른다. 이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는 침팬지와 보노보다.


14)Jacobus Bontius, “Historiae naturalis et medicae Indiae orientalis [Natiral and Medical History of East Indies],” in W. Piso, De Indiae utriusque re naturali et medica libri quatuordecim [On the Natural and Medical Things of Both Indies in Fourteen Books]. (Amsterdam: Lodovicum et Danielem Elzevirios,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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