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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49
조회
202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 연구본부 연구위원



올 봄부터 퇴근 후 모 대학의 대학원 수업을 진행한다. 강의 제목은 ‘노동이란 무엇인가?’ 이지만 “노동하는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가 좀 더 정확한 제목이겠다.

첫 강의 때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강의의 핵심이라고 소개하였다. 첫 번째 질문은 “왜 노동(이때는 육체노동) 그리고 노동하는 인간이 고대 및 중세사회에서는 경멸 받았을까?”이다.

노동은 인간의 삶과 분리할 수 없으며 현대까지 계속 이어지는 보편적인 현상이자 행위이며 인간사회를 형성하는 기본 축이다. 하지만 고대 폴리스에서는 자유로운 시민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육체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필연성에 매달려 노동을 하는 인간은 동물과 같으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폴리스에서는 육체노동은 노예에게 맡겼고 육체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만이 시민이자 폴리스의 구성원이다.

고대 및 중세사회가 노예와 농노의 노동을 지배하였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인간이 먹고 사는 노동에 매달리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특수성을 드러내고 자유, 정의, 평등, 존중, 연대 등의 가치를 논의하는 정치적 행위를 할 능력을 갖출 수 없다고 본 고대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사의 부당하거나 부정의한 명령에 따르면서 “먹고 살기 위하여”, “내 직무이니까”라는 말을 쉽게 한다. 또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한숨을 쉬어본 경험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자유나 정의와 같은 가치는 사람들의 삶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먹고 살기 위하여 정당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포기해야 함을 고대인들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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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7월혁명이 일어났던 1830년에 완성된 혁명적 낭만주의 화가 들르쿠르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여신의 모습은 자유에 대한 열정과 흥분을 자아낸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의 모형이 됐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 한겨레


두 번째 질문은 “경멸의 대상이었던 노동의 지위가 상승하고 생산자의 사회가 도래한 이후 노동하는 인간은 자유로워졌는가”이다.

예컨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은 부의 원천이다. 더 이상 노동은 고대처럼 경멸받는 대상이 아니며 노동하는 인간은 시민권을 갖는다. 물론 이때의 노동은 ‘생산적’ 노동에 한정되지만 비생산적 노동일지라도 노예나 농노의 신분과는 다르다.

문제는 고대 사람들이 우려하였던 것, 즉 인간이 먹고 사는 노동에 매달리면 결코 자유로운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지적일 터이다. 기술발전 등에 따라 근로시간이 주 6일에서 주 5일로 줄어들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 경우 그 남는 시간에 사람들은 자유, 정의, 평등 등의 가치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정치적 행위를 할 능력을 키울까? 오히려 고대 사람들의 우려가 좀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용납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연한 진실 아닐까?

물론 한 학기동안의 강의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없고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전 혹은 중요한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학생들과 강사가 각자의 대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강의에서 함께 읽었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밀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설령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효용과 공리를 강조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주장한 밀이 1859년에 쓴 책의 한 구절이다.
“국가의 가치란, 궁극적으로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가치다(...) 국민을 위축시켜 국가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온순한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하는(비록 그것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고 해도) 국가는 머지않아 다음을 알게 될 것이다. 즉 국민이 위축되면 어떤 위대한 일도 실제로 성취할 수 없고, 국가가 모든 것을 희생하여 완전한 기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기구를 더욱 원활하게 운영하려고 한 나머지, 스스로 배제한 바로 그 구성원의 활력의 결여로 인해, 결국은 그러한 기구가 쓸모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51년 전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를 쓴 책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쨌든 이번 강의는 학생들보다 강사인 필자가 더 배우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