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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키케로 대 그라쿠스(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47
조회
401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원전 1세기 전반에 로마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 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실라와 마리우스 같은 군벌들의 대결이 공화정의 앞날에 암울한 전조를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기원전 58년에 호민관 푸불리우스 클로디우스가 도시빈민을 염두에 두고 식량을 무상으로 배급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키케로는 무상배급을 받으려는 시민들을 향해 '국고를 빨아먹는 반아사의 거머리들'이라며 참으로 품위 없는 독설을 쏟아 내었다. 물론 클로디우스에게 평민의 표를 얻기 위한 동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짐작이 간다.

당시에 정치를 민중과 손잡고 수행하겠다는 사람을 민중파(populares)로, 원로원과 상의하며 상층부의 이익을 옹호하는 그룹을 선량파(optimates)라고 불렀다. 키케로는 선량파답게 재산이나 토지의 집중을 정치적 의제로 거론하는 자들을 공화국의 파괴자라 성토하고, 국가를 '귀족과 기사계급(최상층 시민계급을 말함)라는 두 신분의 조화'라거나 '재산을 가진 자들의 연합체'로 규정하였다. 요즘 말로 유산자 계급의 국가론에 입각하여 로마의 귀족적 공화정을 온몸으로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러면서도 호민관제도가 민중의 격동을 순치하는 데에 적합한 기구라고 판단하는 정치적 노회함도 보여주었다. 본성상 그가 귀족적인 공화정이 민주정으로 진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로마공화정의 진화과정에서 그라쿠스 형제들의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항상 정치의 본령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그라쿠스 형제는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그러나 키케로는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하기 이전의 로마의 정치질서를 이상적인 체제로 규정하면서, 그라쿠스 형제를 민중파의 원흉으로 지목하였던 것이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을 종국적으로 승리함으로써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팽창하였다. 승전은 외부적으로 로마의 위세를 높이는 것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분열과 붕괴의 씨앗을 배태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쟁은 평등에 기여하기 보다는 부의 집중을 낳으면서 양극화를 가속화시킨다.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공화정의 기풍이 와해되고, 무엇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평민(군인)들이 빈곤의 나락에 떨어짐으로써 공화국의 입대자원도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그라쿠스 형제들이 10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기원전 133년과 기원전 122년에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가난한 평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토지귀족들이 과도하게 잠식한 공유지의 보유상한선(500유게라=약39만평)을 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는 환수하여 토지 없는 평민들에게 30유게라씩 배분하였다. 10년 후에는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곡가폭등으로 인한 로마의 가난한 시민들의 민생고를 타개하기 위하여 곡물법(lex frumentaria)을 도입하였다. 해외 시장에서 싼 가격으로 매입하여 시민(그의 처자나 자식 전부가 아니라 오로지 선거권을 갖고 있는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한 달에 33kg의 밀을 시가의 2분의 1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이었지만 상당히 유용한 정책이었다. 그라쿠스 형제들은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키케로는 이들을 성토하며 이른바 사회정의와 분배를 말하는 자를 거의 반역자 수준으로 몰고 갔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사회 안에 절망자를 희망으로 갖도록 이끌고, 중간계급을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와 책략이라고 본다면, 누가 정치의 이상에 충실하였는지를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키케로는 원로원의 명성 아래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이나 지키려하였던 정치적 수사학자로 자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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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교육 관련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등 야 5당과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가 3월18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 및 입법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21


최근 무상급식(의무급식)이 교육감선거에서 이슈로 자리 잡았다. 정파를 떠나서 의무적인 공교육의 이상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급식의무의 이행은 공교육의 내실화로서 청소년들의 건강에도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감이나 세대 간의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이 급식문제를 중요한 선거쟁점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가 시민단체의 이러한 노력을 선거법에 위반된다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민주주의 기네스북' 같은 것에 등록하기에 적합한 사례들이다. 정치는 공공의 대지를 확장하는 작업이다. 선거는 경마장으로 떠나는 소풍이 아니다. 시민은 후보자들의 경합을 그저 구경하는 집단이 아니다. 당국이 말의 정치를 막는다면 남는 수단이 무엇인지 당국자는 생각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