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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양도할 수 없는 '육체적 쾌락의 기본권'을 갖는다?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46
조회
196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나라 중의 하나로 흔히 네덜란드가 꼽힌다. 마리화나를 포함한 마약과 공창(公娼)제도가 대변하는 육체적 향락이 허용된 세계에서 매우 드문 나라이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눈에 띄는 '커피 하우스'에 가면 마리화나를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량을 소지할 수도 있다. 또한 관광객들의 단골 답사지로 알려진 암스테르담 중심가 홍등가(Red Light Street)에서는 금전을 매개로 한 성매매가 공공연히 거래된다. 라이덴과 같은 대학촌에도 '에로틱 하우스'라는 간판을 내건 업소가 주택가에 버젓이 위치한다. 내가 작년 여름에 '금지된 것이 없는 나라'에 체류하기 위해 짐을 꾸릴 때 친구들이 염려와 부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환송해 준 까닭도 여기에 있으리라.

지난 6개월 정도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알아보니까 사정이 다소 다르다. 마리화나를 포함한 약한 마약류(soft drugs)를 소비하는 것은 엄격히 따지면 여전히 불법이다. 다만, '관용'될 뿐이다. 보통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탐닉을 감시, 통제, 금지하는데 따르는 공적인 재정 부담과 인적자원의 낭비 및 현실적인 실효성 등의 여러 요인들을 고려하여 관행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5-24세의 네덜란드 청년층의 9.7%가 한 달에 1번 정도 약한 마약류를 즐기며, 전체국민의 60%가 약한 마약류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이런 배경 하에 온갖 사회제도를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 철저히 실용적인 차원에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네덜란드 식의 '똘레랑스' (네덜란드 용어로는 gedoogbeleid) 정책이 법규와 실제가 다른 특이한 마약정책을 잉태한 셈이다.

마리화나 피는 것이 '관용'되는 것에 비해 성매매는 네덜란드에서 완전히 합법적이다. 1988년에 창녀/창남은 정상적 직업인으로 인정받았고, 2000년에는 성매매업소가 라이센서를 획득한 합법업체로 승격되었다. 현재 대략 150개의 사업자등록증을 획득한 성매매업소가 암스테르담에서 개업 중이며 8천-1만 2천명의 성노동자들이 업계에 종사하며 연간 1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창출한다. 홍등가에서 도보로 20-30분 거리에 떨어진 반 고호(Van Gogh)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연 150만 명이며 연간 입장료 수입이 대략 1천만 달러인 것인 것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서양격언을 곱씹어 보면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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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명이 빛나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데 왈렌’ 구역.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네덜란드에서의 공창제도의 도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의 존재이유와 유용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연적인 쾌락권리를 국가가 도와주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실용적 똘레랑스 정신을 역시 반영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육체적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도 성적 기본권에서 절대로 제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낳은 사회적인 실험이 현재진형형인 장애인에 대한 성적 서비스 제공제도이다.

육체가 불편한 성인고객들에게 성관계를 포함한 '서비스 배달'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비영리 사회단체가 1982년에 창립된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tichting Alternatieve Relatiebemiddeling, SAR)이다. 간호사 출신들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자 체제로 운영되는 SAR은 장애자들에게 단순히 성관계만이 아니라 쇼핑과 산책, 영화감상 등의 동료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한다. 재단의 홈페이지(www.stichtingsar.nl)에서 필자가 확인해 보니까, 80유로(약 12만원)의 금액으로 고객은 출장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금액의 7-8% 정도는 재단 운영비로 재투자 되고 나머지는 서비스제공 당사자의 교통비와 사례비로 충당된다.

필자와 같은 연구원(IIAS)에 소속된 가토(Kato Masae) 박사의 보충설명에 의하면, 극히 드물지만 가난한 장애자에게는 지방정부가 SAR 지불비용에 대해 공적 자금으로 일부 보조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수익자 부담이며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장애인들은 금전적인 걱정 없이 정기적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2005년 현재 1,800명이 SAR에 등록된 고객이며 18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이 서비스 자원공급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및 독일 일부 지역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성 서비스 공급제도는 어쩌면 19세기 전반 초기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허무맹랑한 '날 생각'이 150년 뒤에 열매 맺은 결과일 수도 있다. 당시 대표적인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의 한 명이었던 프랑스의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는 자신이 스케치한 이상적인 공동체(팔랑스테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양도할 수 없는 최소한의 육체적 쾌락추구권을 갖는다고 천명했다. 가난하거나 늙었거나 혹은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거나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적 파트너를 스스로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에서 무료로 '사랑의 배달부'를 파견하여 누구나 공평하게 최소한의 육체적 행복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했다.

일찍이 누군가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 선언한 이후, 인류는 형이상학적인 '말씀'의 복음에 포획되어 형이(배꼽)하학적인 육체는 오랫동안 찬밥신세였었다고 서양지성사는 기록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육체담론의 선구자격인 니체의 철학적 금언을 빌려 역설적으로 반박하자면, "거룩한 말씀은 천박한 육체에 빌붙어 사는 하숙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신성한 노동권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굶주리지 않고 사소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본권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장애자 아들이 억제해야만 하는 욕망의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그를 업고 사창가를 헤매는 늙은 어머니와 남동생의 이야기(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를 읽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군대에서의 사고로 불구가 된 아들의 폭력적인 (자위행위를 포함한) 발작 증세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가족들이 창녀를 구하러 다니는 소설은 슬픈 육체의 '생얼'을 상징적으로 증언한다. 육체적 터치와 보살핌은 본능적 욕망의 동물적인 교환만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 지향하는 지극히 온전한 행위의 일부분인 것이다.

극히 예외적인 서양사례에 기대어 육체적 쾌락의 기본권을 옹호하려는 필자의 글을 (다소) 낯부끄럽고 (매우) 한심한 봄 잠꼬대라고 항의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있고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현실을 기억한다면 이해할만한 불만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3류 역사가가 얕게 배운 역사적인 차원에서 관찰하면, 사회적 변혁은 늘 비천한 변두리에서 제기된 발칙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어제의 황당하고 유치찬란한 유토피아가 오늘은 위험하고 급진적인 사고방식으로 배척되다가 내일에는 경청할만한 건강한 대안으로 모색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진정 견디기 어려운 것은 비루한 시간의 사슬이 아니라 전망 없는 상식과 고정관념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