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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고엽제의 독성을 몰랐을까?(이광조 CBS PD)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7:32
조회
137

이광조/ CBS PD



한 미국인의 양심선언으로 대한민국이 고엽제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 1978년 경북 칠곡군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캠프 캐럴에서 독성물질인 고엽제를 매몰했다는 증언이 나온 뒤 비슷한 증언이 잇따를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엽제를 매립한 곳이 낙동강과 불과 1km도 안된다고 하지 않는가. 미군부대 인근 마을에서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불안은 더욱 커지는 듯하다.

사안의 폭발성이 워낙 큰 탓에 우리 정부도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리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보수 여당 안에서 소파(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히 제대로 진상을 밝히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소파도 개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충격과 분노, 불안과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그 시절에 미군이 고엽제의 위험을 알고 그랬겠느냐’는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196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도 비무장지대 남쪽 일대에 고엽제를 살포했고 사용하다 남은 고엽제를 민통선 인근 농민들이 농약으로 사용했으니 그런 생각을 할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건 경우가 좀 다른 것 같다. 뭐 환경부 장관 후보자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에는 발언에 좀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나 역시 고엽제에 대해 뭘 잘 아는 건 아니다. 그저 책(<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마리-모니크 로뱅 저, 이선혜 역)을 통해 고엽제라는 몹쓸 화학무기가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 어떤 위험을 지니고 있는지를 어설프게 알게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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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매립 사건'과 관련된 캠프 캐럴
사진 출처 - 노컷뉴스


고엽제는 제조방식에 따라 에이전트 로즈, 에이전트 바이올렛, 에이전트 오렌지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것이 에이전트 오렌지이며, 베트남전쟁에 주로 살포된 것도 이 에이전트 오렌지였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독성이 강한 제초제인 2,4-D와 2,4,5-T를 반반씩 섞은 것으로 두 제초제의 개발단계에서부터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었다. 1949년 제초제 2,4,5-T를 생산하던 버지니아 주 몬산토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사고현장에 있던 작업자들과 청소를 위해 나중에 동원된 직원들이 당시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피부질환 증세를 포함해 구토, 두통, 호흡기와 중앙신경계 장애, 간 조직 손상, 성기능 장애 등의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도래와 함께 화학무기로 개발된 것이 바로 고엽제다. 고엽제 중에 가장 독성이 강한 에이전트 오렌지는 1959년 베트남 남부 지방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됐고 1962년 1월 13일부터는 ‘렌치 핸드’라는 작전명으로 약 330만 헥타르의 밀림과 토양에 8천만 리터(이 중 약 60퍼센트가 에인전트 오렌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고엽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양은 다이옥신 400킬로그램과 맞먹는 양이다. 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80그램의 다이옥신을 식수에 희석하는 것만으로 8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다이옥신이 베트남에 뿌려진 건가.

문제는 고엽제 제조회사들과 미국 정부가 고엽제의 독성을 언제 인지했는가 하는 점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대표적인 고엽제 생산기업인 몬산토는 1940년대 말에 이미 고엽제의 독성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몬산토를 비롯한 고엽제 생산업체들은 내부 실험을 통해 고엽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 예로 1965년 다우케미컬스 임원회의에서는 다이옥신에 노출된 토끼가 간 손상을 일으킨 연구 결과와 관련해 그 사실을 정부에 보고해야할지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보고되는 고엽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1969년 말에는 미 국립건강연구소의 의뢰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에이전트 오렌지의 원료인 2,4,5-T에 노출된 쥐가 기형의 태아를 임신하거나 사산했던 것. 이런 실험결과를 토대로 1970년 4월 15일에는 미국 정부가 2,4,5-T가 함유된 제초제의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2,4,5-T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성을 감안해 호수와 연못, 유원지, 주택, 식용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에서는 그 사용을 금지한다.”

미국인 스티브 하우스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 매몰을 목격한 것은 1978년, 미국 정부가 고엽제 사용을 금지한지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당시 캠프 캐럴에서 근무했던 미군들이 고엽제의 독성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 국방부를 포함한 미국 정부가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에이전트 오렌지 살포용 탱크를 설계한 제임스 클래리 박사가 고엽제 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된 뒤 톰 대슐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초제 살포 작전을 위해 일하던 1960년대에, 우리는 다이옥신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용’ 제초제는 ‘민간용’ 제초제보다 많은 양의 다이옥신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 단기간에 생산을 하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적’을 상대로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인이 제초제에 중독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