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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윤리적 전환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7:32
조회
156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4월의 마지막 주말에 “4·3트라우마, 그 치유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참석을 위해 제주도를 다녀왔다. 나는 <상흔의 역사에서 치유의 역사학으로〉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었던 과거청산과 화해를 위한 사례들을 참고삼아 우리의 아픈 과거사를 애도하고 치유하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내용이었다. 역사학자, 심리학자, 정신과의사, 민속인류학자 등이 각각 다른 시각에서 과거 상흔(傷痕)의 생채기들을 어떻게 보듬고 포옹할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진단해 보려는 것이 오전순서의 주요 내용이었다. 오후에는 일본식민시대의 ‘위안부’,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대구 10월 항쟁’ 피해자, ‘여순사건’ 피해자 등의 증언에 이어 관련 활동가들의 현황보고가 있었다. 다음 날에는 제주4·3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 너븐숭이 4·3위령성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등 기억의 터전을 답사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하고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한 1박 2일 동안의 모임을 통해 필자가 배우고 느낀 몇 가지를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이 땅의 산하에는 억울하게 목숨을 앗긴 혼령들의 흔적과 목소리가 곳곳에 묻혀있다. 할아버지-아버지 세대를 포함한 우리는 식민시대와 제국주의, 냉전(분단)체제와 독재정권이라는 ‘극단적인 20세기'의 광기가 잉태한 시대적 폭풍우를 온 몸으로 견뎠다. 해방이후에는 근대화, 통일조국, 한국적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구호에 맞춰 불법감금과 집단학살, 야만적인 고문과 성폭력 등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실행되었다. 아직까지도 올바른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각종 ‘사건들’과 ‘사태들’의 희생자/생존자/유족들은 국가권력의 오남용과 이데올로기적 칼날에 베여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시키고 참여정부가 계승했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불행했던 과거를 둘러싼 진상규명과 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과거가 해소되지 않은 분노와 트라우마로 가득하다면, 역사가는 잠들지 못하는 영혼을 초혼가로 달래며 씻김굿을 춤춰야 하는가? “빨갱이 가족이라고 손가락질 할까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나는 소똥말똥으로만 살았습니다.” 책으로만 읽었던 사건의 생존자가 토해내는 기억(증언)의 실타래가 만드는 무늬를 바라보면서 나는 ‘역사가의 이상한 운명’을 숙고해 본다. 과거에 진정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따져 기록함으로써 ‘과거의 대변인이자 미래의 안내자’를 자임했던 옛날 역사가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역사가가 최근에 출현(출몰?)하고 있다. “그는 선배들과는 달리 자신의 주제와 자신이 맺고 있는 밀접하고 친숙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그 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낯선 과거를 더 잘 이해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피에르 노라,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기억의 장소》1권. 필자가 편집인용.)

말하자면, 객관적인 관찰이나 가치중립적인 거리 두기로 과거를 차갑게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머물지 말고 감정이입적인 감성으로 무장하여 “역사가 그저 [죽은] 역사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막아내”고자 애쓰는 것이 새로운 역사가의 숙명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과거에 정녕 무슨 일이 제주도에서, 여수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광화문에서 (왜) 발생했는지를 따지는 이쪽과 저쪽의 해석이 충돌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증언이 모순되며 국가권력의 부침에 따라 그 기념연설이 변주(變奏)된다면, 누가 감히 역사적 진실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판결할 것인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희생자/생존자/유족들이 넋두리처럼 읊조리는 파편적인 신음과 외마디에는 실증적인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또 다른 무거운 진실이 실려 있다. 치유되지 못하고 방치된 아픈 기억들이 정상화, 과거와의 화해, 혹은 국론통일이라는 이름으로 희석, 표준화, 그리고 화석화 되려는 오늘, 역사가들이 직면한 과제는 억압된 목소리에 예민하게 주파수를 맞춰 그 메시지를 공감적으로 접수하여 경청하는 것이다.

제주4·3 평화기념관에는 백비(白碑)―묘비명이 적혀있지 않은 맨 묘비―가 전시되어 있다. 60여 년 전에 발생해 대략 3만 명이 희생되었던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은 ‘4·3반란’, ‘4·3사태’ 혹은 ‘4·3민중항쟁’이라는 명칭들이 반영하는 논쟁과 갈등보다도 더 오래 계속되리라. 쓰여 지지 않는 역사 혹은 단정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공백 남기기는 과거사실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탐구의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백비야말로 과거가 남긴 희미한 흔적들과 경쟁적인 목소리들을 반죽하여 제멋대로 ‘만들어지는 역사’를 향해 죽은 자들이 던지는 소리 없는 웃음이 아닐까. 묘비명 없이 누워있는 창백한 묘비를 바라보며 나는 ‘불안한 과거’를 색칠하는 당파적인 역사서술의 어리석음과 ‘위험한 현재’의 비탈길에 서서 ‘오지 않을 미래’를 마중해야 하는 역사가의 한계와 겸손함을 동시에 배운다. 실증주의적 국가 만들기의 신화를 깨고 그 틈바구니로 얼굴을 내미는 새로운 종류의 역사가들이 자기 고백적인 윤리적 전환을 모색해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