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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초의 세계 일주(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30 10:43
조회
250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일일초는 기후와 지리가 맞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나 잘 자라는 귀화종 다년생 식물이다. 매일 꽃이 한 송이씩 번갈아 가며 계속 핀다고 해서 한국에서는 ‘일일초(日日草)’, 일본에서는 ‘니치니치소우(日々草, ニチニチソウ)’, 중국에서는 ‘장춘화(長春花)’라고 불린다. 보통 다섯 개의 작은 꽃잎으로 되어 있는데, 꽃잎이 짙은 핑크색을 내는 품종은 꽃의 심이 하얗고 꽃잎이 하얀 경우는 반대로 한가운데가 붉다. 현재는 다양한 품종 개량을 거쳐 100여 종이 번성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핑크’, ‘퍼시픽 펀치’, ‘사하라의 광기 어린 밝은 눈’, ‘사하라 화이트’, ‘트로피카나 블러쉬’처럼 개량종에는 하나같이 이국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나 같은 초심자도 씨앗부터 심어 꽃을 피워본 적이 있을 정도로 가드닝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화초이기에 신기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일초의 자연사는 다양한 생태계에 적응하며 전 지구적 분포를 이루는 데 ‘성공한’ 식물의 특별한 역사를 보여준다. 식물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일은 오랜 세월에 거쳐 천천히 일어난다. 이동성이 활발하지 않은 식물에 적극적 이동성을 부여하는 건 동물과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식물의 분포와 식생에는 인간이 개입한 흔적이 짙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이국식물 열풍 속에서 일일초가 이뤄낸 세계 일주의 배경에는 유럽의 원예와 과학, 그리고 식물 제국주의 기획이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원산의 일일초는 유럽에 전해졌을 때 비슷한 토착식물의 이름을 따라 빙카(vinca) 혹은 페리윙클(periwinkle)이라고 불렸다. 유럽 여러 도시의 온실과 식물원에서 재배에 성공하면서 귀화식물로 정착했다. 일일초에 대한 유럽 측의 첫 기록은 1658년에 등장한다. 1648~1655년 동안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마다가스카르 식민지 총독으로 재임한 에티엔 드 플라쿠르(Etienne de Flacourt)는 일일초에 대해 비누풀이나 자스민과 비슷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심장병 치료에 사용한다고 썼다. 프랑스 동인도회사(La Compagnie Française des Indes Orientales)는 1604년에 설립되어 1664년 장 밥티스트 콜베르에 의한 재편을 거치면서 인도 동해안의 찬데르나고르, 퐁디세리를 근거지로 인도양에서 세력을 확대했으나 인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에 패배하고 1769년에 해산했다.



마다가스카르 총독 플라쿠르에 의해 프랑스에 알려진 이후 일일초는 처음엔 이국적 표본으로, 다음엔 종자나 살아있는 식물의 형태로 유럽에 수입되기 시작했고 호기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8세기 초 영국 식물학자 리처드 브래들리(Richard Bradley)는 이 이국 식물은 잉글랜드의 토착종이나 이미 귀화한 외국 식물과도 다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썼다. 영국 작가 존 에블린(John Evelyn)도 『정원사의 알마냑(Kalendarium Hortense, or gardener's almanac)』(1706)에서 정원사는 “연약하고, 희귀하고, 이국적이고, 비싼” 식물에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며 그 예로 일일초를 들었다. 린네는 1759년 유럽에 이미 있던 빙카와 페리윙클을 참고해 일일초의 학명을 ‘빙카 로지아(vinca rosea)’라고 지었다. 1838년 영국 식물학자 조지 돈(George Don)이 ‘카타란서스 로지우스(Catharanthus roseus)’라고 다시 학명을 붙였지만, 지금도 린네의 학명이 더 널리 통용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 키 작은 화초는 프랑스 베르사유 정원을 장식한 적도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과 그 별궁 그랑 트리아농과 쁘띠 트리아농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파종과 재배에 성공해 꽃을 피웠다. 영국에서는 필립 밀러(Philip Miller)가 처음 재배에 성공했다. 베르사유에서 일일초 종자를 런던 첼시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으로 보냈고, 그곳 원예사 밀러가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첼시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은 1673년 영국 약제사협회(Society of Apothecaries)가 약용식물 재배를 위해 런던 첼시에 조성한 식물원이다. 19세기 후반까지 의사는 식물에 통달해야 했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식물학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식물학 시험은 1895년에 가서야 폐지됐다.


 

밀러는 『가장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귀한 식물들의 형태(Figures of the Most Beautiful, Useful, and Uncommon Plants)』(1760)에 일일초 도판을 실었는데, 이는 유럽 최초의 일일초 그림으로 여겨진다.




Vinca


출처: Philip Miller, Figures of the Most Beautiful, Useful, and Uncommon Plants (1760)



열대지방이 원산인 일일초는 난로나 온실 없이는 유럽의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은 런던과 파리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온실과 식물원이 만들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재배 조건을 갖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또한 밀러는 유럽과 영국 식민지의 여러 식물원과 종자 교환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거기에는 일일초도 포함되었다. 19세기가 되면 유럽과 미국에서 종묘회사 광고와 가드닝 카탈로그에 등장할 정도로 관상용으로 사랑받는 식물이 되었다.


 

열대 원산지에서 일일초는 관상용보다는 주로 약용의 면에서 중요했다. 일일초 잎은 선원들 사이에서 흥분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일초의 새로운 약효 성분이 1960년대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항암제 원료가 되는 약효 성분인 알카로이드가 일일초에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악성림프종과 백혈병에 사용되는 빈클리스틴(vincristine)과 빈블라스틴(vinblastine)은 일일초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북미 재배종은 열대산에 비해 약효 성분이 현저하게 감소하기 때문에 고농축 알카로이드를 얻기 위해서 제약회사들은 해외 생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일초에서 추출한 항암제 성분으로 화학요법제를 제조하는 엘리 릴리 앤 컴퍼니(Elly Lilly)는 열대지방에서 일일초 플랜테이션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산 일일초는 다량의 알카로이드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는 최적의 생산지로 떠올랐다. 그 결과 1980, 90년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일일초 플랜테이션이 성행했고, 이 지역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일일초는 유럽의 이국식물에 대한 관심과 전파 덕분에 전지구적으로 분포할 수 있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남아프리카로 일일초의 여정과 전 지구적 분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유럽의 제국주의적 기획 속에 포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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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tienne de Flacourt and Claude Allibert, Histoire De La Grande Isle Madagascar (Paris: INALCO, 1995), p. 203.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Horticulture, Natural History and the Rosy Periwinkle,” Environment and History 18.3 (2012), p. 348에서 재인용.


2)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Horticulture, Natural History and the Rosy Periwinkle,” Environment and History 18.3 (2012), p. 349.


3) 헬렌 & 윌리엄 바이넘, 김경미 옮김, 이상태 감수, 『세상을 바꾼 경이로운 식물들』 사람의무늬, 2017, 111쪽.


4) 루키 키오, 정지호 옮김,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푸른숲, 2022, 174쪽.


5)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pp. 351-352.


6)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pp. 364-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