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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저소득·고물가 시대, 지역화폐의 의미(이재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18 22:42
조회
235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물가는 치솟는데, 월급은 그대로... ’


지청구같은 푸념이 아니다. 아주 실감나는 자료가 공개됐다.


최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2021년 귀속 근로소득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근로소득자 1천995만9천148명의 1인당 평균 급여는 4천24만원이었다.


상위 1%의 1인당 평균 급여는 3억1천730만원, 중간 지점인 상위 50%의 1인당 평균 급여는 3천4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최상위 0.1% 구간에 속하는 1만9천959명의 총 급여는 1인당 평균 9억5천615만원이었다.


상·하위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근로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근로소득/하위 20% 근로소득)은 지난 2021년 기준 15.1배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급여생활자 가운데 상위 20% 구간에 속한 고소득자들이 하위 20%의 15배에 달하는 소득을 벌어 들였다는 것이다.


근로소득 5분위 배율은 2019년 14.6배에서 2020∼2021년에 15.1배로 벌어졌다. 우리 사회 근로소득격차가 그 폭을 넓혀가며 전반적으로 저소득 시대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만만한 한 끼 식사의 대명사였던 국밥이 어느 순간 가격표를 보고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번 해야 할 메뉴가 되었다. 소비의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소득격차의 심화와 급격한 고물가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없이 사는 서민들과 골목상권 자영업자이다. 아예 규모가 다른 부유층의 ‘그들만의 소비시장’은 변화가 없거나 활황을 맞지만 다수의 소비는 줄고 그에 따른 경기침체는 공식처럼 이어진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단속이 있었다. 현장 점검을 나가 의심되는 가게에 찾아가면 다른 처벌을 받더라도 지역화폐를 받을 수 있는 가맹점 지위 취소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행여 부정유통 행위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실로 닥쳐온 소비침체를 실감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화폐 소비가 늘고, 지역화폐를 취급하지 못하면 장사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소상공인들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지역화폐 활성화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센티브 재정지원은 크게 줄고 있다. 올해는 작년의 절반 수준,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자체 고유사무인 만큼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경기불황의 늪을 지나는 현장을 대면하는 지자체들은 지역화폐가 가진 순기능을 그냥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역화폐의 골목상권 소비촉진·경기진작 효과는 현장 검증을 마친 상태인데 아직도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 투입되는 재정을 ‘세금 낭비, ’돈 살포’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많다. 세금은 아끼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게 능사임을 잘 아는 사람들도 정치적 입맛에 맞춰 호도하고 있다. 마치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던 시절이 떠올려 진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을 사는 시민들에게 소비가 늘어야 경제도 산다는 이야기는 정언명제와도 같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동참하기 위해 동네가게를 이용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가. 마중물이 없으면 물 구경은 할 수가 없다.


중하위 소득자가 소비의 주축을 이룬다는 실증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소득이 낮을수록 본인이 지출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대부분 또는 그 이상을 소비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쓰는 돈을 아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축을 못하는 한계소비성향은 당연히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낮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높게 나타난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을수록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여 소득재분배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현재 재정정책 중 지역화폐 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근로소득 격차 해소라는 근원적 대책과 함께 지역화폐를 적절히 운용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는 한국경제에 든든한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과도한 인센티브 재정 투입 역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골목상권을 벗어난 가맹점 허용 범위, 정치적 목적에 의한 조삼모사식 혜택 제공, 과도한 홍보 등도 그렇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적정 수준이라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아주 축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0% 할인 혜택을 제공했던 시흥시가 올해 6% 할인을 제공한 이후 현재까지 지난해 동기 대비 10~15% 정도 발행액이 줄었을 뿐이다.


지역화폐는 생각보다 지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