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월은 푸르구나(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5-18 22:28
조회
199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퇴근길, 전철에서 쏟아져 내린 사람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때,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저 무언가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울음소리라기 보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사력을 다해 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우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너덧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뜻밖에도 경찰차 안에 있었다. 미아인 듯한 아이를 경관이 집에 데려다 주려고 차에 태운 듯하였다. 경관이 계속 전화를 하였으나 받지 않는지 답답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화를 거는 경관과 운전석에 있는 경관의 대화가 이어졌다. 


“집에 가도 애 엄마는 없을 것 같아. 지난번에도 집에 가니 엄마는 클럽에 가고 없다고 했거든.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집에 다른 사람은 없어?”


 


“글쎄, 지난번에 갔을 때는 외할머니라고 하면서 애를 받았는데, 오늘은 전화를 다 안 받네….


엄마가 고딩이야.” “…….”


 


경관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인생의 대물림이 뻔해 보여 가슴이 먹먹한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살려 달라는 비명처럼 가슴을 후벼팠다.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의 무거운 추를 아이는 이미 매단 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연합뉴스


2. 


“숨진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출생신고할 수 없다.”는 뉴스가 한동안 이어졌다. 불륜 아내, 출생신고를 거부한 남편, 이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망한 엄마, 나타나지 않는 친부, 법적 친부로 불리는 이가 모두 아이를 거부하였다. 지금 태어난 아이는 어디에서도 축복을 받지 못했다. “나를 버리지 마세요!” 하고 지르는 아이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축복이 아닌 굴레로 시작하는 아이의 뉴스는 파출소 앞 경찰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여 울던 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그때 그 아이는 경관의 손에 이끌려 엄마 손을, 할머니 손을 잡았을까? 그때 그 아이는 철없는 엄마지만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지만, 지금 이 아이는 잡을 수 있는 손이 어디에도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저 태어난 순간 꼭 쥔 주먹을 풀지 못한 채 “나를 잊지 마세요!” 하고 작은 가슴을 파닥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 뒤, 아이는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양육 시설이나 위탁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그저 아이의 주변에 따스한 맘을 가진 좋은 어른이 많이 있기를, 그래서 아이가 꼭 쥔 주먹을 풀고 인생이라는 걸음마를 할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