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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적인 너무나 제국적인 동물, 코끼리(염운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4-18 09:46
조회
269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지상최대의 동물 코끼리에 대한 권력자들의 사랑은 유난했다. 사랑의 감정이 종종 그러하듯 대상에 대한 애호는 소유욕이나 지배욕과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권력이 미치는 땅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진귀한 동물에 대한 사랑은 커졌다. 전설이나 전언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이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강박적 호기심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욕망 중 가장 큰 것은 권력욕이었을 것이다. 사나운 맹수와 대형동물을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것은 왕과 귀족이 지배할 자격을 타고났다는 증명이 될 테니까.


 

유럽에 알려진 코끼리 이야기는 로마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동물쇼와 살육전에서 가장 많이 죽어 나간 동물은 북아프리카 코끼리였다. 사하라사막 이북에 살던 이 작은 체구의 코끼리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었던 코끼리와 같은 종이다. 카르타고를 제압한 로마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본토와 속주에는 수많은 원형경기장이 건설되었고, 동물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끼리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북아프리카 코끼리는 로마 시대에 이미 멸종하고 말았다.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사라진 이후 한참 동안 유럽에서는 코끼리를 직접 볼 수 없었다. 수 세기 만에 이탈리아에 코끼리가 다시 등장한 때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교황 레오 10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가 보낸 선물에 보석, 중국의 책, 황금 잔, 코뿔소와 함께 인도산 흰 코끼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리스본을 1514년 1월 말에 출발한 이 코끼리는 3월 12일 로마에 도착해 4년을 살고, 일곱 살이 되던 1516년에 죽었다. 교황 레오 10세와 조카 로렌초 메디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교황의 코끼리’는 하노(Hanno)라 불렸다. 하노의 모습은 라파엘로의 스케치에 남아있다. 프레스코화 제작을 위해 밑그림인 이 스케치에서 라파엘로는 조련사와 안내인에게 이끌려 로마로 입성하는 하노의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다. 아시아코끼리의 특징인 솟은 이마와 작은 귀 작은 어금니를 실제로 보고 정밀하게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하노를 기리는 비문에 레오 10세는 “동양을 정복한 마누엘 왕이 포로로 보낸 하노를 여기 묻는다. … 자연이 빼앗아간 것을 우르비노의 라파엘로가 복원했다”고 애도했다.


 


라파엘로의 코끼리


출처: wikimedia



17세기 무역의 강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동물 무역에도 열을 올렸다. 163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왕가에 선물한 아시아코끼리는 한스켄(Hansken)이라 불렸다. 렘브란트가 그린 스케치도 남아있다.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한스켄을 사촌 요한 마우리츠 반 나사우-지겐에게 선물했다. 네덜란드령 브라질 식민지 총독으로 파견가게 된 요한 마우리츠는 코끼리를 서커스단에 팔았다. 한스켄은 이후 20년간 유럽을 순회하며 서커스에 동원됐고 1655년 11월 9일에 죽은 후 골격 표본이 되어 피렌체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다음으로 코끼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린네와 관련된다. 1753년 봄, 린네는 스웨덴의 아돌프 프레데릭 국왕을 설득해 알코올에 담긴 코끼리 태아 표본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국왕이 사들인 표본은 원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유였는데 나중에 네덜란드의 동물학자이자 수집가 알베르투스 세바의 자연사 컬렉션에 포함됐던 것이다. 린네는 이 표본을 아시아코끼리로 판단하고 엘레파스 막시무스(Elephas maximus)라고 명명했다. 린네를 따라 분류학자들은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를 다른 종으로 분류한다. 아프리카코끼리의 학명은 록소돈타 아프리카나(Loxodonta africana)로 팔랑거리는 큰 귀가 특징이다.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몸집이 작고 온순하다.


 

그런데 린네가 아시아코끼리의 기준표본으로 삼은 이 코끼리 태아가 아시아코끼리가 아니라 아프리카코끼리였음이 250여 년 만에 밝혀졌다. 2013년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포유동물학예사인 앤시어 젠트리 박사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탐 길버트 교수와 엔리코 카펠리니 박사는 알코올에 너무 오래 담겨있어서 채취할 수 없었던 DNA 대신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표본이 아프리카코끼리임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스웨덴 왕실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표본의 코끼리 태아는 귀가 유난히 컸기 때문에 19세기부터 아프리카코끼리가 아닌가는 의심이 있었으나 누구도 정식으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피렌체 국립자연사박물관 소장 한스켄이 아시아코끼리의 새로운 기준표본이 되었다.


 

19세기가 되면 유럽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국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왕과 귀족을 위해 조성된 동물원 메나주리(menagerie)는 점차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혁명으로 국민이 탄생한 프랑스에서는 동물원도 국민의 소유가 되었다. 한 사람의 권력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한 동물이 사육되는 곳이 근대 동물원이다. 동물 사육과 전시 공간이 메나주리에서 동물원으로 변해가는 현상은 헤이그, 빈, 마드리드, 파리, 런던 등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동물원은 시민을 위한 오락과 여가의 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다. 1828년 개장한 런던동물원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런던동물원에 살았던 점보(Jumbo)는 수컷 아프리카코끼리이다. 수단에서 태어나 파리와 런던의 동물원을 거쳐 뉴욕의 서커스로 팔려간 사례다. 점보의 여정은 동물원 사육과 전시, 상업적 동물쇼에 코끼리가 동원됐던 역사의 일부였다. 1882년 1월 25일 『더타임스』에 런던동물원이 바넘쇼(Barnum’s Show)로 유명한 미국의 서커스 업자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에게 점보를 2천 파운드에 팔기로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자 전국에서 반대 운동이 불붙었다. 런던동물원에서 16년 동안이나 사랑받았던 점보를 미국에 판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점보 소식이 뉴스 지면을 도배해버려 아일랜드 자치법안 논의나 빅토리아 여왕 암살 미수사건 같은 뉴스가 묻혀버릴 정도였다. 노트, 벽지, 의자, 패션 등 도시의 일상 어디에나 점보가 있었다. 동물원 측은 청년기에 이른 점보가 발정기 특유의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해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설득했으나 반대 여론은 식을 줄 몰랐다.


 

점보 열풍은 코끼리의 적응과 순화가 점보의 고향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상징적 지배와 연결됐다는 점, 미국에 대한 영국의 열등감과 반감이 점보 수출 반대에 얽혀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동물원 사육 동물은 유럽에 적응을 완료한 존재이며 다른 곳에 가서는 살 수 없는 동화된 존재로 여겨졌다. 점보는 1866년 런던에 도착했다. 파리 식물원에서 런던동물원으로 왔다. 영국으로서는 첫 아프리카코끼리였다. 왕실 가족들에게 무릎을 굽혀 절하기를 배웠고, 10만 번 이상 등에 하우다를 얹고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태웠다. 윈스턴 처칠도 어린 시절 점보의 등에 올랐던 경험을 즐거운 추억으로 회상했다. 이미 ‘런던의 애완동물’, ‘국민의 애완동물’로 불리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1882년 스캔들로 인해 점보를 보기 위해 런던동물원의 관람객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881년 21,333명이던 연간 관람객은 1882년에는 151,158명으로 급증했다. 태생은 아프리카이지만 영국으로 ‘귀화’한 동물로 점보를 받아들인 대중들은 좁은 수송용 상자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점보의 몸짓을 정든 영국을 떠나기 싫어 눈물 흘리는 행위라고 의인화해 해석했다. 이로써 점보는 비록 짐승이지만 영국의 신민으로 거듭난 존재가 되었다. 영국문화에 동화된 존재가 사슬에 묶여 대서양을 건넌다는 사실은 한 세기 전의 노예무역을 떠올리게 하며 미국의 서커스 상업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A Farewell Ride on Jumbo’ (1882)


출처: wikimedia



하지만 점보는 결국 미국으로 팔렸다. 1882년 3월 20일 런던을 출발해 4월 9일 뉴욕에 도착했고 바넘 서커스의 주역으로 ‘지상 최대의 코끼리쇼’에 동원됐다. 3년 후 불의의 기차 사고로 사망함으로써 수단, 파리, 런던, 뉴욕으로 비자발적 이주를 거듭해야 했던 점보의 생은 끝나게 되었다. 점보는 ‘지상최대의 동물’, ‘최초의 비인간 셀렙’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점보를 수단에서 뉴욕까지 데려간 과정, 즉 잔인한 코끼리 사냥과 부적절한 사육환경, 어미를 죽이고 새끼를 포획하는 역겨운 동물거래의 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바넘 서커스 포스터


출처: wikimedia


1882년 점보 열풍은 빅토리아 시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든 제국주의와 애국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코끼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여황제 대관식에도 등장할 정도로 제국의 위신과 동일시되었다. 아프리카코끼리 점보 길들이기는 아프리카 ‘미개인’의 통제와 ‘문명화 사명’의 은유로 작용했다. 야생동물의 순화는 그 동물이 태어난 땅과 그 땅의 사람에 지배와 동일시되었다. 수백 종의 동물 사육과 전시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의 생물에게까지 미치는 여왕의 통치를 감각할 수 있는 제국을 런던에 구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로마 시대부터 빅토리아시대에 이르기까지 코끼리는 권력과 동일시되었고, 대중의 제국의식을 자극하는 상징이었다. 모두 코끼리의 의사에 반해 인간이 벌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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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종영, 『동물권력: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북트리거, 2022), 60-66쪽.


2) 전한호, 「뒤러의 코뿔소, 라파엘로의 코끼리」,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56 (2022), 165-167쪽.


3) George Ryan, “The Pope’s Elephant: The Story of the Papal Elephant Buried Underneath the Vatican,” Jan. 7, 2019. https://ucatholic.com/blog/the-popes-elephant-the-story-of-the-papal-pet-elephant-that-was-buried-underneath-the-vatican/


4) Ria Winters,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and the Transport of Live Exotic Animals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M. Chaiklin, Philip Gooding, and Gwyn Campbell, eds., Animal Trade Histories in the Indian Ocean World, Cham,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20, p. 36.


5) Ewen Callaway, “Linnaeus’s Asian Elephant Was Wrong,” Nature, 04 November, 2013. species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013.14063 ; Joeri Wittenveen and Staffan Mueller-Wille, “Of Elephants and Errors: Naming and Identity in Linnaean Taxonomy,”Mueller-Wille, “Of Elephants and Errors: Naming and Identity in Linnaean Taxonomy,” History and Philosophy of the Life Sciences 42 (2020).https://doi.org/10.1007/s40656-020-00340-z


6)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의 생애는 2017년 미국에서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이라는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7) Peter Yeandle, “‘Jumboism Is Akin to Jingoism’ : Race, Nation, and Empire in the Elephant Craze of 1882,” Stephanie Barczewski and Martin Farr, eds. The MacKenzie Moment and Imperial History, Cham,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19. pp. 47-55.


8) howdah. 코끼리나 낙타 위에 얹는 좌석.


9) Peter Yeandle, “‘Jumboism Is Akin to Jingoism’,” pp. 5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