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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결례(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42
조회
133

고유기/ 민주통합당 제주도당 정책실장


 

제주의 세계 7대 경관 선정과 관련한 논란이 한창이다. 이를 주관한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 재단 실체에 대한 신뢰성 문제, 재단과 제주도와의 불공정 계약 문제, 7대 경관 선정을 위해 투입된 예산 씀씀이의 문제, 선정 추진 과정의 공무원 동원 문제 등이 그것이다. 제주도내의 시민단체들은 의혹들을 밝히기 위해 정보공개운동을 벌여오다, 지난 주 감사원 감사청구와 더불어 법률적 대응을 천명했다.

7대 경관 선정을 위한 릴레이 광고운동까지 벌이던 제주도내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판기사 실기에 주력하는 인상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난 2월 3일 제주세계7대경관범국민추진위 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급기야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1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7대 경관을 둘러싼 논란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이의 중단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 동원문제에 대해 “과도한 것"이라고 유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입장은 “문제없다"이다. 제주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가가 필요했다"며 나름 의도의 순수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선 9일, 도내 행정시를 돌며 펼쳐 놓은 언사에는 이 논란의 확산으로 인한 위기감 또한 역력히 읽힌다. “아주 끝내주는 일을 했다"며 강력한 어조의 자찬을 내놓는가 하면, “저를 싫어하는 몇 명이 잡음을 내고 있다"며 “도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권력자의 경고’도 거침없이 구사한다. 그러나 80억대의 예비비 사용 논란이나 전화투표를 위해 쓰여진 200억대의 행정예산의 타당성 문제 등은 분명히 가려져야 할 대목으로 논란의 확산을 부추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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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2일 오전 제주아트센터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실시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음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7대 경관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얼마나 진실을 길어 올릴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정작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왜 7대 경관이어야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세계 7대 경관 도전, 그 이면에 자리하는 ‘발상’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7대 경관 선정 추진은 제주자연에 대한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꼭 세계 7대 경관이라는 서열구조 안에서야 제주의 풍경은 살아날 수 있는 것인지, 제주의 아름다움이 외국 어느 기업의 이벤트에 돈 주고 참여해야 인정되는 것인지, 제주 자연의 고유성과 독자성은 투표참여를 위한 동원 정도가 결정하는 것인지 자괴감마저 찾아들었다. 수많은 제주의 주민들은 어땠을까? 하루에 30통, 100통 하는 투표 전화에 매달려야 했던 공무원들의 마음속에 제주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으로 각인되었을까? 그 전화 한 통, 한 통에 성실과 열의는 실제로 얼마나 작동되고 있었던 걸까?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봤을 것이다. 해안 언덕 너머로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아득함을, 저녁노을이 번지는 바다 위의 반짝이는 것들을. 중산간 어느 오름 기슭 작은 길을 따라 번지던 들꽃들의 반짝임을. 제주의 어느 곳이든, 오름이든, 곶자왈이든, 심지어 한라산이든,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모두가 반짝이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아니, 제주 자체가 반짝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지 않았던가. 그것을 꼭 수백억 돈 들이며, 왜 그들에게 확인받으려 했을까?

유네스코에 의한 세계생물권보전지역(2002), 세계자연유산(2007), 람사르습지지역(2006, 2008), 세계지질공원(2010)이라는 그 어떤 것보다 공인된 브랜드가 있는데, 또 어떤 글로벌 브랜드가 필요했던 걸까? 200억대의 행정비용이라면, 오히려 세계자연유산, 지질공원 등이 제대로 관리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이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7대 경관 투표참여를 위한 홍보비로 20억이 책정될 때, 지질공원 관리비로 고작 3천만 원이 예정됐던 것이 벌써 작년 초의 이야기다. 필자 또한 지정 신청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던 생물권보전지역만 하더라도,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앞선 사례처럼 이를 브랜드로 활용하자는 전략까지 세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지금 그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들어간 전화비의 1/3만 거기에 쓰였어도 굳이 7대 경관이니 하는 ‘생소한 도전'에 나서야 했을까? 아니, 세간에 떠도는 말처럼, 그 돈을 가지고 뉴욕 메디슨 스퀘어 광장에 제주를 알리는 홍보판을 개설하고, 국제 유력지나 관광 매거진 편집진들을 대거 초청했으면 제주를 제대로 설명하고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생물권보전지역 되더니, 이의 관리는 제쳐놓고 세계자연유산 도전하고, 또 다시 세계지질 공원이란 타이틀을 얻으면서 ‘트리플 크라운', ‘3관왕' 운운하던 도정. 이후 새로운 도정은 다시 7대 경관이란 새로운 타이틀을 따냈다. 이제 또 어떤 타이틀을 따내야만 할까? 7대 경관이란, 혹시 골프장과 같은 각종 개발 -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 - 국제자유도시 개발 등을 잇는 신종의 정치적 실적주의의 산물은 아닐까?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 해 초겨울의 아침, ‘제주, 세계인의 보물 됐다!’, ‘제주, 세계의 보물로 우뚝 서다’와 같은 환호의 문구들이 그 날 도내 모든 언론들의 머리글로 굵게 새겨졌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혹시 ‘보물’이란, 이름도 생소하고 국적도 생소한 어느 상업회사의 ‘마케팅'이 빚어낸 ‘헛것’은 아닌지. 그 추상의 ‘보물’이, 7대 경관이라는 그 이름이, 지금껏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여왔던 제주의 자연들, 풍경들에게 혹시 또 다른 상처가 되었던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기지건설 공사에도 아직 살아 있다면, 그래서 돌아올 봄에 다시 피어난다면, 생물권보전지역 강정마을 구럼비 작은 오솔길에 반짝이고 있었던 하얀 찔레꽃에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