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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41
조회
179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지난달 19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제1심 선고가 이루어졌다. 잘 알려진 대로 재판의 결과는 벌금 3천만 원. 함께 기소되었던 강경선 교수와 박명기 교수에게는 각각 벌금 2천만원과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피고인 간에 다소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이는 이런 선고결과는, 아마도 박명기 교수가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직을 사퇴하는 대가로 처음부터 금전을 요구하고 또 이후에 계속해서 대화를 녹음하는 등 위법한 방법으로 급부의 이행을 압박해온 행위들이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더욱 불법의 정도가 높은 것으로(즉, 책임이 큰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현 교육감은 일단 업무에 복귀하였다. 교육행정의 현안이 간단치 않은 마당에 교육감의 복귀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이 판결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결국 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되고 말 것이다.

재판의 쟁점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후보직 사퇴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한 ‘사전합의’가 있었는가. 그리고 둘째, 지급된 2억 원의 돈은 이러한 사퇴의 대가로 지급된 것인가, 아니면 곽노현과 강경선, 두 피고인의 주장대로 ‘선의의 부조’였는가. 나는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공판정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언론의 보도로 그 과정에서 진술된 증언들의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얼개나마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가 있기 약 1달 전인 5월 중순경 당시 곽노현 후보와 박명기 후보의 회계책임자가 서로 만나 단일화 협상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박명기 후보의 사퇴에 대한 대가로 5억 원을 건네기로 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실은 박명기 후보에게는 즉각 보고가 된 반면, 곽노현 후보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곽 후보측의 보증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시 선거본부장이었던 최 모교수가, 어차피 곽 후보는 이를 승인하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하도록 지시한 때문이었다. 여하튼 합의 다음날 박 후보는 사퇴하고 곽 후보는 마침내 선거에서 승리하여 교육감이 되었지만, 금액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2010년 10월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과도한 빚에 시달리던 박 교수의 사정을 알게 된 교육감이 그의 오랜 동료이던 강 교수에게 박 교수를 만나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된 강 교수는 교육감에게 사전합의와는 별개로 박 교수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때까지 이미 여러차례 박 교수에 대한 부조를 거절했던 교육감은 평소 그 인품을 잘 알고 있던 강 교수의 말에 따라 마침내 2억 원을 건네기로 하였고, 이를 강 교수가 박 교수에게 전달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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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된 뒤 업무에 복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재판부는 이러한 증언들에 의해 ‘사전합의’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좀 더 정확히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교육감이 알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해당 조항, 그러니까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위반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위 조항의 제1호와의 관계에 비추어 제2호의 경우에도 사전에 금품제공의 약속과 같은 부정행위를 한 경우에만 적용이 된다는 변호인들과 몇몇 법학교수들의 주장을 충분한 설명 없이 부인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재판부는 재판이 시작될 무렵,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 이러한 해석(즉, 사전합의의 존재여부는 제2호와 무관하다)이 있다는 점을 공지하면서 그러나 법원이 반드시 이러한 입장을 따르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여, 이 조항의 전향적인 해석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판결문에 나타난 재판부의 생각에 따르면, 결국 쟁점은 1가지로 좁혀진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지급된 돈에 ‘대가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재판부는 우선 후보직의 사퇴와 금전의 지급 사이에는 사퇴한 후보와 금품제공자와의 관계, 사퇴로 인해 금품제공자가 이익을 얻었는지 여부, 금품의 다과, 금품제공의 시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 객관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대가성을 피고인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했었는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진술과 여러 정황을 들어 세 피고인이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재판부는 곽노현, 강경선, 두 피고인에 대해서는 ‘대가의 지급’ 이외에 다른 행위의 동기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사퇴한 박명기 교수가 겪고 있었던 극심한 경제적 곤궁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 내지 진보진영의 유력한 교육계 인사의 어려움을 못 본채 할 수 없다는 ‘이타적 동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것은 이 사건이 문제되었던 맨 처음부터 교육감 측의 일관된 주장이었는데, “건네진 2억원은 ‘선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것이 없고, 이에 대한 국민과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노라고 한 교육감의 말은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을 터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모두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러한 동기와 함께 지급된 돈의 대가성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범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적인 상급법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유죄의 판단을 번복시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 아니 대한민국의 교육행정은 여전히 위기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