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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39
조회
119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78년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읽고 난 이후였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현실이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심한 멀미를 하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빛의 화가 모네는 ‘건초더미’나 ‘루앙 대성당’ 연작을 통해 날씨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익숙한 자연이나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표현한 바 있다. 난쏘공 역시 현실을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보인 작품이겠지만 중학교 3학년생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 혹은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현실일리 없어, 믿을 수 없어, 소설일 뿐이야”라면서 책을 덮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 작품을 다시 꺼내든 것은 1982년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잦은 거주지 이전 때문에 책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난쏘공이 던진 충격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혹 루앙 대성당 연작 중 햇빛 강한 오후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2000년대 초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보았을 때 기울기 직전의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바라 본 듯 눈이 부셔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그림을 보다가 다시 돌아가고 또 돌아가서 보기를 반복했다. 뜨겁고 나른하고 환한 그 오후의 햇살을 난쏘공에서도 본 듯 한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 노동이 뜨겁고 나른하고 환하게 다가든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햇빛 강한 여름 오후나 여린 풀잎이 돋아나는 다정한 봄날의 오후에도 노동은 칼날 같거나 답답하거나 무겁다. 이 때문에 노동자인 대다수 시민들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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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 가족의 꿈과 희망이 좌절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연극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한겨레21


201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하는 사람의 71.8%가 임금근로자 즉 노동자이다. 일하는 사람 10명 중 7명이 노동자이니 10명 중 8, 9명꼴인 다른 국가보다는 그 비중이 적지만 상당수가 노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제가 노동자인가요?”라고 되묻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노동관련 서적을 산 적이 있어요?”라고 하면 눈이 동그래진다. 사실 교보나 영풍문고, 알라딘이나 예스24 등에서 주, 월, 분기, 연도별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에 노동관련 서적이 명함을 내미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이나 자기관리 서적에는 선뜻 손이 가지만 노동이라는 제목이 달린 책은 불편하다.

그래서 작년 김진숙과 희망버스가 놀랍다. 정리해고를 한진중공업에서만 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없던 것도 아니다. 2012년 1월 부진 인력퇴출시스템과 사망자수 증가로 언론에 오르내린 KT만 해도 민영화가 시작되고 IMF를 거친 후 2009년까지 구조조정 인원이 26,555명이다. 당사자들의 개인적 혹은 집단적 저항이 없지 않았지만 빨간 머리띠 노동자의 밥그릇 지키는 행위로 치부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한 해 동안 10조 이상 이익을 올린 4대 은행을 포함하여 일부 대기업에서 경기하락을 이유로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일”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은 명예이든 희망이든 그 앞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노동자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회사를 위해 퇴직을 해야 하는 것이 일상의 관행임을 뜻한다. 여기에 비정규직까지 고려하면 그 일상의 냉혹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그러다보니 일상인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저항한 김진숙이 희망버스라는 사회적 동의의 아이콘이 된 현실은 창문을 열자마자 서쪽에서 뜬 해와 맞닥뜨린 기분이다. 다른 빛과 그림자로 노동이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노동자, 노동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촛불시위가 광화문 거리를 수놓았던 2008년으로 되돌아가보자. 그 해 다양한 이유로 총 143건의 파업 혹은 농성이 있었고 짧게는 하루, 길게는 365일을 넘겼다. 혹 하나라도 기억하는 것이 있는가? 2008년이 너무 멀다면 2011년은 어떤가. 한진중공업 말고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아웃소싱에 반대한 뉴코아와 이랜드리테일(홈에버) 투쟁을 주도했던 당시 수석부위원장 이남신은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촛불은 끝내 홈에버 매장으로 오지 않았다. 10년 후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쇠고기 수입반대에는 그렇게 열정적인 시민들이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의외로 차가웠다. 촛불은 아름다웠지만 계급적 문제에 대해선 무력했고 둔감했다.”

이 상황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르세에 걸린 모네의 그림 그 이상의 긴 시간동안 다양한 형태로 동일한 물음이 반복되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1월부터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막론하고 계약종료나 해고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각종 집회와 시위, 노동 쟁의 역시 함께 터진다. 굳이 해고문제만이 아니다. 임금 및 근로조건의 개선, 고용승계나 불법파견, 일자리나 청년실업, 조직민주화와 공공성 강화에 이르기까지 이슈 역시 다양하다.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국가는 적정한 임금 및 근로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으며 대다수의 시민이 노동자이니 이와 같은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때문에 노동을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노동은 어떤 모습을 띠는가. 노동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해가 바뀌어도 필자의 질문 역시 여전하다. 항상 노동을 연구나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마도 운명인가 보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며 새해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