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개발과 이슬람 문화 유적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38
조회
446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3년에 이슬람 성지인 메카, 메디나 순례객 수가 1,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1년 11월에는 하지 순례자 약 250만 명이 메카를 다녀갔다. 이 중 180만 명은 외국인들이며, 70-80만 명은 사우디 거주민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국가별로 무슬림 100만 명 당 1천명의 하지 순례 쿼터를 할당한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무슬림 인구밀도가 높은 남아시아 출신의 가난한 순례객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 순례객들을 충분히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그랜드 모스크 확장사업과 최고급 쇼핑몰, 최고급 시계탑 호텔 건물을 포함하는 초고층 복합빌딩 단지 건설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우디 당국의 메카 관광인프라 구축 사업과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1천년이상 존재해온 이슬람 문화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0120109web02.jpg
메카 그랜드 모스크 확장과 초고층 복합 빌딩 단지 건설


메카 태생의 유명한 이슬람 건축 전문가인 사미 안가위(Sami Angawi)는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개발정책은 이슬람 성지라는 메카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메카와 메디나는 역사적으로 거의 끝났다. 여러분들은 메카와 메디나에서 초고층 빌딩 이외에 어떤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메카와 메디나 개발 정책에 반대하면서 현재 메카를 떠나 이집트에 머물고 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인디펜던트지는 2011년 9월 24일자에서 “메카 소재 1천년 이상 된 건물의 95%가 지난 20년 동안에 파괴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유네스코에 등록한 두 개의 문화유산 목록에는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포함되지 않았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하나는 이슬람 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나바티야 왕국(BC.1-AD.1)의 유적이고, 다른 하나는 사우디 제1왕국(1744-1818)의 수도였던 아라비아 반도 중앙에 위치한 디리야 유적이다. 디리야 유적은 사우디 제1왕국의 궁궐들과 유적들을 다수 포함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슬람 문화 유적들이 우상숭배, 다신교 신봉 등과 같은 죄를 고무시키기 때문에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주장은 사우디 제1왕국 시절 이슬람 정화를 내세운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이라는 이슬람 학자의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제1사우디 왕국은 알 사우드 가문과 압둘 와합 가문 사이의 결혼 동맹을 통하여 창설되었다. 이후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은 우상숭배자와 다신교 신봉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우디 왕가의 공세적인 영토 확장정책을 종교적으로 합리화시켰다.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을 기반으로, 제1사우디 왕국은 아라비아반도 내에서 이슬람 문화 유적을 파괴하고, 이라크에 있는 이슬람 성소들을 공격하였다. 예를 들면, 1802년 제1사우디 왕국은 나자프에 있는 시아파의 시조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 빈 아부 탈립의 무덤과 카르발라에 있는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 빈 알리의 무덤을 파괴하였고, 메카와 메디나의 이슬람 초기 유적들을 공격하였다.

대다수 다른 무슬림들은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문화 유적 파괴 행위들을 극단적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였다. 그러나 압둘 와합의 이슬람 해석은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과 시아파를 비롯한 다른 무슬림들을 우상숭배자 혹은 다신교도 등으로 낙인찍고, 이슬람 문화 유적들을 파괴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통치 영역을 공격하여 사우디 왕가의 지배영역 확장을 위한 공세적인 정책을 강화시켰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면서 사우디 왕가는 1915년 12월 영국과 앵글로-네즈드 협정을 체결하고 보호령(1915-1927)의 지위를 수락하였다. 이 협정에서 영국과 동맹한 사우디 왕가는 영국제 무기와 매달 5천 파운드의 군사원조 등을 영국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과 메카와 메디나(히자즈) 지역에서 하심가를 몰아내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927년 5월 20일 사우디 왕가와 영국이 체결한 제다 협정에서, 영국이 히자즈와 네즈드 지역을 통치하는 사우디 왕국의 독립을 승인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창설되었다.

결국 사우디 왕가는 영국과 동맹을 체결하여 상대 무슬림들을 공격하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압둘 와합이 제시한 와하비즘은 공격의 대상인 무슬림들을 우상 숭배자 내지는 다신교도로 규정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족주의 이념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1924년까지 메카와 메디나 지역은 지역 패권자인 오스만 제국의 영역에 속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지방 통치자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가문이 700년 이상 메카와 메디나 지역을 통치해왔다. 영국의 후원을 받은 중앙아라비아 출신의 사우드 가문이 1924년 메카를 공략하여 점령하였을 때, 이들이 가장 먼저 한 행위는 이슬람 역사상 중요한 인물들의 묘지를 훼손시키고 유적들을 파괴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생가는 소시장으로 바뀌었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도서관으로 변경되었고, 그랜드 모스크 확장 공사로 이 도서관조차도 파괴 위험에 직면하였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20세기 초까지 수 백 년 동안 이 지역 패권자이던 오스만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방 통치자이며 예언자 무함마드 후손인 하심 가문을 격퇴하고 창설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메카와 메디나에 존재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적을 포함하는 이슬람 초기 문화 유적과 오스만 제국의 문화유산 일소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