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느낌에 대한 해설 – 오월의 어느 날 (이은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50
조회
129

이은규/ 인권연대 '숨' 사무국장


.

?

??

.

.

.

.

.

.

!!

사무실 창문을 열었습니다. 5월의 따뜻한 숨이 후우욱 쏟아져 들어오며 환기를 시켜줍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 이 공간에서 이렇듯 나른한 온도를 느낄 줄은 몰랐거든요. 그만큼 한겨울의 추위는 대단했으며 아직도 틈만 나면 그 한기가 되살아나고는 합니다.

따뜻한 햇볕, 잔잔히 일렁이는 바람. “여기 나의 5월이면 충분해.”호기롭게 널뛰기하는 마음을 가만히 다독이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 내 눈에 느닷없이(!) 선명하게 나타난 물체! “저것은 뭘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횡으로 흐르면서 가만 가만 바닥으로 내려앉는 하얀 것. 천장을 올려다 보기도하고 창가 쪽을 바라보기도 하며 도대체 저 하얀 것이 어디에서 출현했는지를 분주히 추적했습니다. “뭐지? 먼지일까?” 다시 그 정체불명의 하얀 것에 집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일순간 정지된 가운데 침묵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허공을 흐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 궤적이 참 유려했습니다. “아 저 확실한 존재감... 멋진걸.” 궁금증은 곧 감탄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엔 이것의 정체가 작은 거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낡은 천장에서 하강하는. 그런데 거미는 나름 직선으로 내려오잖아요. 해서 다시 유심히 그것을 보았는데 아! 민들레 씨앗... “아 깜짝이야!” 바닥에 내려앉을 때쯤에야 녀석의 정체를 알고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더라고요. 왜 놀랐을까요?

여기 이 공간에 혼자 인줄 알았는데 다른 존재의 발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전혀 의외의 것에서 깊은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것은 흐름을 타며 유유히 지상으로 낙하하는 민들레 씨앗의 위엄에 압도당했다는 것입니다.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너머로 목을 길게 뻗어 녀석의 낙하지점을 확인했습니다. 아주 느긋하게 누어버렸더라고요. 한참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았습니다.

409-photo.JPG
사진 출처 - 네이버



“여기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할텐데...” 손으로 집어서 창밖으로 날려 보낼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그 자리에 놔두기로 했습니다. 녀석은 또 흐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지 정하지 않고 바람에, 공간에, 그리고 시간에 온전히 내어 맡기고서는 말이지요. “아! 저 미친 존재감! 나 너한테 반했다.” 가만히 누워있는 민들레 씨앗을 보고 고백을 했습니다.

깊고도 고요한 파문... 아마도 녀석은 이미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듯합니다. 머지않아 내 몸 어디에선가 민들레꽃이 피어나겠지요.

상상을 해 봅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할라치면 민들레 씨앗이 풀풀 날리지 아닐까 하고. 생각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네요. 그러고 보니 내 마음의 영토가 새삼 넓어진 것 같습니다. 이미 드러나 번다한 곳이 아니라 존재했으나 미처 몰랐던 혹은 버려두었던 미지의 영토가 말입니다. 민들레 씨앗은 그곳에 정착한 것 같습니다. 이 팽팽하고 뿌듯한 느낌대로라면 심장을 뚫고 금세 싹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래요 지금 여기 5월은 민들레 홀씨를 품기에 참 알맞은 계절입니다. 한순간 한호흡이 경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