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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여성들, 정치 거들떠보기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09:49
조회
110
신하영옥/ 전 여성단체 활동가

총선의 후폭풍이 가라앉고 있지 않은 듯하다. 소위 진보나 보수나 총선과정의 민주성을 문제 삼아 내홍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니 말이다. 한심할 따름이다. 광우병이며, FTA며, 여당의 밀어붙이기식의 부자정책이며, 산적한 정치적 과제를 앞에 두고 내분이라니, 더욱이 총선의 결과는 야당들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성은커녕 내부 권력다툼에 연연해하는 모습이 불편하기만 하다. 원래 정치가 그런 것이라고? 그렇다면 앞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일체의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정치란 선거철에만 반짝 국민 앞에 출현하는 것에 불과한 당신네들의 밥상 뺏기 놀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후보공천과정의 비민주적 절차에 관한 얘기는 좀 들은바가 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총선의 결과에 실망했던 마음이 절망하다 못해 허망해졌다. 여성운동의 선배인 분이 야당의 예비경선후보로 출마했다. 여성운동을 통해 다져진 정책적 기반과 조직화의 노하우를 기반삼아 차근차근 지역에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기대를 모아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이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여성의원을 만들어 새롭고 가치 있는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똘똘 뭉쳐 신나게 예비후보선거운동을 조직해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가면 공천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아니, 최소한 예비후보들의 경선이라도 기대하면서... 그러나 여성할당제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후보를 배려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선의 과정도 없이 위에서 내려꽂듯이 지역구후보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그의 그동안의 활동 방식과 내용을 보면 나로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지역민들을 조직하고 가치를 만드는 정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후보공천을 받았다면 당선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것은 함께 활동했던 그 지역의 여성운동원들의 말이기도 했다. 여튼 짐작은 금물. 그동안 아무런 낌새도 없다가 총선이 임박해 다른 후보를 갑작스레 등장시켜 배신감도 들었으나 경선을 기대하면서 묵묵히 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경선의 과정 없는 후보선정으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총선에서 패배했다.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후보였던 선배와 선거운동원들은 상처를 입었다. 정치의 실체란 것이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 권력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일 뿐이라는 현실정치의 알몸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의 희망에 찬 활동과 노력은 권력의 끈이 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 여성은 그 과정을 똥통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총선의 결과에 대한 실망보다 현실정치의 추악함에 더 절망했다. 그래도 그 선배는 차라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풀뿌리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더욱 더 확신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선거운동을 같이 했던 지역여성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꿈꾸고 일구어나가고 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치에 대한 희망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확산하고자 한 경험은 그 여성들을 다시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미련으로 작용했고 현실정치의 냉혹함 혹은 추악함을 본 경험은 정치를 정말로 변하게 해야겠다는 오기나 각오로 변화시켜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의 자기 삶으로 돌아가기보다 무엇이든 선거운동기간동안 설레었던 그 느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무언가 해보자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선배를 추동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새로운 정치, 여성들의 경험과 처지를 반영한 정치이면서 결과보다 과정이 깨끗한 양심적인 정치를 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가 정치후보로 성장하고자 하며 나아가 지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킴과 더불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치에 대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자 하고 있다. 작은 공간을 만들어 지역민들의 소통의 장소로 만들고 자신들의 훈련의 장소로 만들며 무엇보다 즐거운 정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총선결과와 상관없이 그 지역여성들에게 좋은 경험이다. 이는 사적인 존재로만 살아왔던 여성들이 정치활동을 통해 사적인 것들이 결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그 정치란 것이 여성들의 경험의 장인 사적인 것들에 대해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사적공간의 질서가 통하지 않는 곳임을 경험함으로써 정치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변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사적존재였으나 선거활동을 통해 공적존재로서의 자신을 경험함으로써 공적존재로서의 자존감의 경험이 있어서 사적인 존재로만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생활정치는 운동권으로부터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된 구호였다. 그러나 생활정치는 생활의 장을 담당하는 이들의 경험이 반영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정치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위 공적영역에서 일어나는 거대담론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삶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이 정책으로 입안되고 그 문제들이 거대담론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지를 사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자, 생활자들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FTA는 경제논리나 정의의 문제로 접근하기 전에 삶의 문제, 생존권의 문제로 접근해야한다. 선거는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이전에 생활자들의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통로이자 소통의 과정,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다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선거과정이 엉망이라면, 그 논리는 약육강식의 논리 외에 다름 아니며, 결국 우리생활을 어렵게 하는 경쟁과 1% 신화논리의 답습일 뿐이다. 1%를 넘자는 작자들이 그런 행태를 해서야 그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사적공간의 여성들이 그 경험을 가지고 공적공간으로 진입하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풀뿌리들, 지역민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활동이 좋은 결과를 맺는다면, 남성주도의 공적담론에 사적공간의 담지자인 여성들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다. 이는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가 정치인들만의 말잔치나 진흙싸움이 아닌 생활의 문제를 다양한 입장에서 조율하고 희망을 논의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경험을 통해 여성할당제가 지켜야 할 정의가 아니라 구색이었음이 확실해졌다. 할당제를 통해서는 남성정치를 바꾸어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적인 정치문화를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꾸어낼 수 있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세력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현실정치 안에서 그리고 정치변화를 실현하기 위한 세력이 됨으로 해서. 그래서 그 선배와 여성들의 시도가 가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공=남, 사=여라는 공식이 해체되고 여성들의 많은 경험들이 공론의 장을 이루고, 이로 하여 정치적 담론이 변화하고 정치까지 변화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다. 어쩌면 이번선거는 실망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 정치권은 내분이 아니라 반성을 할 때이고 절망에도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이 여성들에게서 배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