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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치는 책임이다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09:59
조회
12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우리 헌법 제69조에 나와 있는 대통령 취임 선서의 내용이다. 내년 2월 25일쯤이 될 것인가, 새로운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세의 표시로 손을 들고 이 선서문을 낭독할 것이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민들이 텔레비전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말 그대로 ‘엄숙하면서도’ 왠지 ‘비감에 어린’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다.

이렇게 엄중하게 대통령 취임 선서문을 낭독하고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년간 이 선서의 내용 대부분을 위반 내지는 아예 무시했다. 평화적 통일 대신 무력 대결의 위기를 고조시켜 놓았다. 국민의 자유를 증진하기는커녕 일방적인 국가공권력을 키워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대신 4대강 사업을 통해 수십 조 원의 국민세금을 낭비했다. 민족문화를 창달하기는커녕 특히 언론을 비롯한 문화예술마저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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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선서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 출처 - 뉴시스


이렇게 국민과 국가를 배신하고 실패해버린 이명박 대통령을 앞세워 권력을 ‘호의호식한’ 한나라당과 그 현재의 수장인 박근혜씨는 ‘새누리당’이라는 위장의 이름을 내세워 마치 이명박 정권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인 양 대다수 국민들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다. 당 내부에서 패거리를 형성해 ‘친이’와 ‘친박’으로 나뉘고 권력다툼만을 했을 뿐, 이른바 ‘친박’이란 이름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위 반(反)헌법적인 배신행위를 당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제동을 걸고자 한 노력이나 성과가 과연 있었던가. ‘손 놓고 넋 놓고’ 집권의 반사 이익을 한껏 누려놓고서는 이제 와서 ‘친이’의 짓일 뿐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식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무책임한 정치 행태를 보이는 ‘친박’과 그 수장 박근혜씨는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가. 요컨대 ‘새누리당’이라는 당 개명만으로도 이들 집단은 향후 5년의 정권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한 뒤 지금까지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권의 실패에 대해 자신이나 ‘친박’이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발언을 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던가.

이는 책임정치라는 말을 아예 쓸데없는 구호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처사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 때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직을 ‘억울하게 놓친’ 분풀이나 하듯이 세종시의 건립을 철회하려는 이명박씨에 대해 원래 계획대로 해야 한다는 한 마디 말을 한 것을 내세워 마치 본인이 타고나면서부터 원칙을 지키는 사람인 양 분식을 해서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가관’, 말 그대로 볼만한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이투데이> 11월 2일 자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최경환씨는 “박 후보는 위기에 아주 강한 분”이라며 “당이 2번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천막당사의 정신과,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대 변화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천막당사’야말로 정치 쇼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한나라당이 돈이 없어 천막당사에서 일을 보았는가? ‘차떼기 당’으로서 부패의 본질이 드러나자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를 대대적으로 눈속임하고자 한 것이 ‘천막당사’가 아니던가. 이러한 박근혜씨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이명박씨가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고서 발악을 한 것과 너무나 닮았다. 이러한 박근혜의 ‘쇼맨쉽’을 두고서 만약 그녀의 정치적 역량이 대단한 것으로 평가한다면, 그러한 정치적 역량으로 나라를 통치할 경우 이 나라는 물론이고 국민들 역시 각국으로부터 천박하다고 비난을 받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국민통합’을 내세우면서 마치 아버지 박정희씨의 치명적인 과오들을 넘어설 것처럼 하는 것 역시 쇼가 아닐 수 없다. 한 발 양보해서 말하면, ‘진정성이 넘치는 쇼’일 뿐이다. 이 말을 약간 바꾸어 말하면 ‘진정한 쇼’가 아니겠는가.

박근혜씨는 서민복지를 내세우고 무엇보다 국민행복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국민행복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요컨대 어떻게 되는 것이 국민행복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긴장감으로 넘치는 국제정세가 어떠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저 돈 벌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인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질 높은 진정한 문화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저 돈 벌기에만 급급한 대학들의 행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야말로 돈 벌기에만 급급한 재벌대기업들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법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 목숨을 걸고서 투쟁하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사태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그저 이명박 정권과 수사학적인 차이를 내세워 책임정치를 회피하려 할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초법적인 이른바 과거사를 통해 그녀가 누린 정치권력과 경제적인 호의호식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를 얻기 위해 어떻게 국민들의 불편한 심사를 다독거려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정수장학회는 무엇이며 영남대학교는 무엇인가?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 맨 앞에 제시한 대통령 선서는 대통령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압축해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정치적 권한을 함축하고 있다. 권한의 행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대통령 한 사람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대통령을 배출해 낸 당과 당의 수장들 역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새누리당’이 박근혜씨를 내세워 ‘재집권’을 노린다면, 이명박 정권에 대해 철저히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책임이다.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국민들이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올바른 인식을 흐리기 위한 전략전술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는 결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