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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주화, 그 험한 길을 지켜보면서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1 11:43
조회
128

박현도/ 종교학자



지난 해 초부터 불기 시작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와 달리 시리아는 1년 넘게 정부의 강력한 유혈진압 속에 국제사회가 개입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이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나라들은 새로운 민주 정권을 창출하기 위하여 여러 정치 세력들이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실로 민주화의 길은 험난하고도 멀다.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내부사정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이들 국가를 둘러싼 국제 강국들의 움직임도 만만찮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은 행여나 반서구 기치를 내세우는 이슬람 정권이 중동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기회에 서구의 대중동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노심초사하고 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중동을 어떻게 해서든지 장악하려는 욕심이 빚어내는 추악한 풍경이다.

격변의 풍랑을 맞고 있는 중동을 보면서 자유롭게 한 표를 던지는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사실 굳이 중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민의를 왜곡하지 않고 반영하는 투표와 결과를 존중하는 민주 정치제도를 확립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나라도 이 점에서 온전한 민주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민주와 진보를 외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만 엄격할 뿐 스스로에게는 너무나도 관대한 통합진보당을 보면서 소위 시쳇말로 “멘붕”이 되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굳이 중동의 민주화만 문제 삼을 수 있겠는가. 마침 선배라도 되는 양 중동국가에 민주화 훈수를 두려는 제 자신이 어찌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국가의 민주화 진척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현 중동의 민주화과정이 우리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반성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에 숨 막혔던 사회가 정의와 자유를 찾아 정상적인 삶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그 여정이 고통스러운 지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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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대다수의 독재정권이 그러하듯 민주화 시위 물결에 휩쓸려간 중동의 장기집권 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이야말로 국가를 선진대국으로 이끄는 적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확신 하에 그들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총칼로 반대자의 입을 봉하고, 손발을 묶었다. 미행, 체포, 구금, 고문은 일상적인 통치 수단이 되었고, 국가안보와 부패비리척결이라는 구호는 정치적 반대자를 깔끔하게 제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반대가 없는 사회에서 대안세력이 똬리를 틀 공간은 없었다. 통치자는 곳곳에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을 세워 ‘라인’을 만들고 이익을 취하였다. 그들만의 정부가 굳건히 자리내린 것이다. 강력한 이인자는 위험하기에 그런 싹수를 보이는 이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였다. 이러다보니 그들만의 정부는 통치자를 위한 기쁨조가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물론 이러한 일은 통치자가 다 계획한 것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한 것으로 통치자는 모르는 일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다. 통치자의 개가 된 언론이 주인을 물 일이 만무하니 비판여론이 형성될 공간도 없었고, 비판적인 야당세력이 생기기도 어려웠다.

대안세력의 부재와 아울러 분열은 독재문화의 산물이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나중에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마따나 독재자 밑에서 자유와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미워하고 욕하던 사람을 닮아 독단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눈앞에 펼쳐진 민주화의 길을 어깨동무하며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이다. 최악의 경우 무정부적 혼란보다는 독재자가 더 낫다며 군사 독재자를 다시 전면으로 불러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중동의 혼란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주화되었다고 우리도 자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자유의 열린 광장을 다시금 우리 손으로 폐쇄할지도 모른다. 말끝마다 민주와 진보를 들먹이면서도 비민주적 구태를 반복하는 민주인사들이 넘치고, 나의 사랑은 로맨스라고 미화하면서도, 남의사랑은 불륜으로 매도하는 이율배반적 태도가 몸에 밴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국가의 이익을 나눠먹고 시민들 뒷조사나 하는 부패한 정치인은 중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귀에 따갑도록 들은 영포라인, 민간인 사찰은 모두 국산이다.

벤 알리, 무바라크, 까다피, 살레 등 독재시장에서 1위를 두고 다투던 인물들이 중동 민주화 바람에 사라졌다. 지금 그들이 남긴 추악한 배설물 악취로 중동이 들썩인다. 그런데 그 냄새가 우리에게도 난다. 한국이 중동인지, 중동이 한국인지 모르겠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도 헷갈리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갈피를 못 잡겠다. 솔직히 우리가 중동을, 아니면 중동이 우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 그 여부조차 잘 모르겠다.

중동이 민주화 되겠냐고 비웃지 말자. 한국은 민주화되었냐고 물을까 두렵다. 중동 민주화, 그 험한 길을 보면서 자꾸 낯 뜨겁고 자괴감이 든다.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멋모르고 까부는 우리들이 다시 한 번 더 차분하게 성찰해야한다. 홀로 방안에 고요히 앉아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아도 부끄러운 것 하나 없는 삶을 추구했던 유학자를 선조로 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혼란의 중동을 보면서 우리를 반성하자. 민주주의에 비추어 부끄러운 것 하나 없는 나라가 되도록 말이다. 국격(國格)은 그렇게 높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