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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지역, 그리고 역사의 토성(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02
조회
219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2008년,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잠시 소강상태지만 분명한 사실은 촛불은 민주주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또 남길 것이다.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수많은 숙제를 주었지만,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은 뜻밖의 큰 질문을 하나 던지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지역과 촛불의 관계다.

촛불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청와대로 전진했다. 광장에 ‘아고라’나 ‘82쿡’, ‘레몬 테라스’나 ‘소울드레서’의 깃발은 나부꼈지만 ‘00지역’ 깃발은 자취를 감췄다. ‘집단지성’은 서울광장에만 나타났고 지역은 ‘대책위’의 빈약한 깃발아래 모인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역은 ‘대책위’가 서울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며 매일매일 시위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촛불의 의미와 진로를 토론하는 자리에서도 지역은 주제가 되지 못했고 지역에서 나타난 흐름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 관심거리가 되지 않았다. 일상의 정치, 일상의 운동을 이야기 하자면 지역을 뺄 수 없는데 촛불이 생활의제의 정치화라고 선명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지역이 왜 일상에 끼지도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역은 온라인의 저항 없이 오프라인에서 여전히 기동전을 치러야 했다. 지역은 ‘꼰대’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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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


민주주의가 지역에 이르면 풀뿌리 보수주의로 바뀐다는 말처럼, 지역의 골목골목은 여전히 근대를 목표로 달음질치고 있고 가끔 전근대의 그림자가 기웃거리기도 한다. 지역주민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이권을 찾아다니다가도 ‘지역개발’ 앞에서는 일치단결한다. 온 천지가 공사판인데도 도로를 놓아 달라, 고속철도를 깔아 달라며 머리띠를 묶고 서명을 하며 중앙정부에 몰려간다.

지방정치는 당리당략의 제물이거나 개인의 영달과 정치적 진출을 위한 발판이다. 애석하게도 지역개발과 발전을 위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지역의 역량강화에 기여했다는 흔적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을 움직이는 원리가 ‘협동과 자치’가 아니라 ‘경쟁과 동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현실이다. 시민사회는 연고에 기반한 위계가 뚜렷하고 저개발 낙후지역일수록 자치단체의 영향력이 막강해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체들이 줄을 서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울 지경이다. 좋은 의미로는 사회자본이 두터운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사회자본이 연고와 결합하면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이런 지역에서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이성적 시민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촛불에서 지역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절망일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속살과 사회운동의 숙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시민운동이 풀뿌리를 외치며 풀뿌리에서 둥지를 트고자 한지 십 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튼튼한 집을 지었다고 보기에는 빈약하다. 문제의식은 뚜렷하지만 문제해결 능력은 약하다. 주장은 있지만 주장을 실현할 물질적 토대는 취약하다. 노동운동은 아직 작업장에 머물러 있어 광활한 지역의 삶터로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2008년, 촛불의 또 다른 의미는 그들이 아직은 생소하지만 지역의 광장에서 만났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역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역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과 함께 쌓여가고 있다.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제도를 하나 만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과 노고가 필요한 일인 듯하다. 그것은 역사의 무게만큼 버티고 있는 큰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큰 산을 옮기는 것은 무모한 일이겠지만 역사의 무게는 그렇게 쌓였을 것이다.

지역을 새롭게 발견하고 지역에서 귀신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십 수 년을 버티고 있는 골골의 이름 없는 이들의 삶이 부싯돌이 되어 다시 촛불을 살리고 우리 모두를 더욱 한발 나가게 할 것이다. 그렇게 지역은 느리지만 천천히 한발 한발, ‘역사의 토성’을 쌓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