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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군가산점제 - 여성 대 남성의 이전투구를 우려한다.(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01
조회
209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아침에 눈을 뜨고 새로운 뉴스들을 접하면서 요즘 드는 생각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것과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일까?’ 하는 것이다. 규제 때문에 경제가 힘들다며 기업과 금융에 대한 모든 규제들을 완화하거나 철폐하고, 종합부동산세도 완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재벌 총수의 비리에는 검찰이 나서서 선처를 구하고, 소위 강남부자들의 단결과 결속력을 잘 보여준 교육감 선거의 당선자는 영어몰입교육과 특목고를 밀어붙이겠다고 일갈한다. 또한, ‘국정 철학이 같은 인물이 공영방송 사장이 되어야 한다’ 는 발언을 철썩 같이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한나라당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은 시민사회단체들을 행안부의 지원금에만 의존하는 존재로 평가절하하면서 ‘이명박 정부 비판 시민단체 보조금 회수’ 라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월 100만원 여 정도 받는 ‘나’를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나날이 느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나날이 ‘우리나라’에 대한 박탈감과 배신감만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주권을 가진 국민인가? 아니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몇몇의 국가를 위한 소모품인가?

휴가를 맞아 유명한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그곳을 가게된 것은 어떤 종류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는데,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동안은 겁 없이 덤볐으나 대회가 다가오면서, 또 대회당일 이틀은 정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껴야 했다. 그냥 ‘참가’ 하는데 의미를 두자고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우승’에 대한 집착이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준비과정에서는 나름으로 힘든 훈련을 거쳐야 함에서 오는 다음날의 훈련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려야 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시험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는데, 스스로 시험에 들어 그 강박을 또 다시 느껴야 할 이유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든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의 고통스러움을 느끼는데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이라면 상황은 더 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학생들과 군인들이 아닐까 싶다. 공부하는 기계로서, 전쟁하는 기계로서 욕망과 욕구를 억압당하거나 거세당해야 하는 집단들. 그러나 아마도 그 강도는 군인들이 더 심한가 보다. 군인으로 지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18대 국회 들어 군가산점 부활법안이 2건(한나라당 김성회, 주성영의원) 발의되었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의 하나인가? ‘군가산점제’는 이미 9년 전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17대 국회부터 슬며시 부활법안이 논의되더니 결국 18대 국회에서 발의되고 말았다. 9년 전 위헌소송을 냈던 여성들-여성단체-과 장애인들-장애단체-이 당한 수모가 기억되면서 그 진흙탕 싸움을 또 해야 하는가? 하는 갑갑함이 먼저 들었다. 또 다시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로 문제의 핵심이 흐려질까 우려하면서-벌써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을 왜 여성단체-여성들-가 찾아야 한단 말인가? 아니 왜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이 그 대안을 만들도록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래의 사례들은 군인으로서 직접 당사자인 남성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한 남성이 병역법의 몇 조항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은 ‘남자만 병역의무를 지게하고 여성은 지원에 한해 복무하도록 한 점을 들어 평등권, 직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 전쟁이 무기의 현대화 등으로 전통의 개념과 다르며, 넓은 의미의 대체복무형태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여성도 병역의 의무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병역의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남성에게 차별적인 제도라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국방부장관은 위헌이 아니라고 답했으나 지난 6월 14일 한국젠더법학회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양현아 교수는 남성에게 차별적인 조항임을 확인하였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한 여성에게 ’수혜적 차별‘이라는 말은 결국 여성은 권리와 의무에서 권리는 있으나 의무에서는 배제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남성에게 ’과도한 부담적 차별‘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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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폭력 진압 때문에 부대 복귀 거부를 선언했던 이길준 의경이 지난 7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성당에서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한 전투경찰이 "촛불시위 진압에 나서는 것은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며 육군으로 전환복무를 요청했었고, 또 다른 전경은 촛불진압의 포상휴가를 나왔다가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에서 ‘인간성이 타들어가는’ 상처를 느껴 복귀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개인이 모여 '전·의경제 폐지를 위한 연대'를 결성하여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안보 행위’를 벌이고 있는 군인으로서의 전․의경제도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시에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사자 남성들이 군대내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요소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군대제도가 가진 인권 침해적 요소에 대해 적극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는 단순히 제대군인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것으로 보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군대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산점을 통해 이득을 보는 제대군인들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 이는 가산점의 실익이라기보다는 그런 제도를 통한 정신적 위로의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를 잊지 않고 있어...’ 정도?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군에서도 통용이 되는 듯싶다. 군대가 아무리 편해도 가기 싫은 곳이라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있긴 하지만, 군에 있는 동안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고난 후에 주는 적당한 보상보다는 군에 있을 때 보다 적절한 처우의 개선 여지는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외국의 예처럼 국민의료보험제도나 장학금제도를 통한 실질적인 보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미국의 방위비 분담요구는 수용하면서 자국민인 건강한 남성들을 위해 투자할 비용은 없는가? 23가지 불온서적을 발표하여 사고와 판단의 자유마저 박탈하고 전쟁도구로 조정, 지배하기 위한 정책 외에 건전하고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넘치는, 배려와 존중이 규율과 같이 공존하는 군대문화를 만들기 위한 고민과 정책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병역의무가 신성하다면 진정으로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 ‘신의 아들’들도 가게 만들 의지는 없는가?

‘군가산점제부활안’은 어느 모로 보나 유치한 논리이다. 눈속임이고, 남성들 간의 계급문제를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20:80으로 점점 양극화 되고 있는 사회에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는 이들은 80에 속해있는 이들의 아들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박탈당하는 이들의 자식들이 국가로부터 수익과 혜택을 입는 자들의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소모품이 아닐까?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개인들로 하여금 국가의 보위를 위해 헌신하라고 하는 것은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군대문제는 가산점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 더 깊고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거기서 주체로 나설 이들은 남성들이다. 가산점이란 떡밥에 위로받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지 않는가? 여성에게 분노를 향하기엔 뭔가 수치스럽지 않은가? 위로받고 분노하기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고민하고 드러내는 용기와 공론화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은가?

군가산점 부활을 들고 나온 한나라당은 미끼와 얄팍한 상술로서 또다시 여성과 남성의 대결구도로 본질을 흐리는 것에 낯부끄럽지 않은가? 진정으로 내 자식 걱정 하듯 진지한 정책을 마련할 의도는 없는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가? 여성단체 활동가들도 편안히 휴가를 즐기고 싶다. 제발 사고 좀 그만 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