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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투표율의 의미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11
조회
125

정재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강사



언젠가부터 어떠한 정치,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틀들이 과도하게 단순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떤 용어나 개념, 그리고 논쟁 구도가 등장하면,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없이, 마치 요즈음의 유행가들처럼 잠시 들끓다가는 사회에 별다른 실질적 영향도 못 미친 채 사라지는 용어와 논쟁의 싸이클이 너무 자주 반복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단순하게 나열되는 듯 한 과정 속에서 그 어느 누구도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령, 지난 대선에서 9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보였던 50대의 투표성향 변화는 분명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나 50대를 비롯한 투표성향에 있어서 세대 간 차이를 강조하는 학자들과 언론인들의 분석 글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 하지 않았나 싶다. 주목을 끌었던 50대의 투표 성향 변화의 경우에도, 계급, 지역, 성별 등에 따른 자세한 분석을 하지 않은 채, 통째로 박정희, 전두환 두 독재 정권 치하에서 청년기를 보내며 격렬한 민주화 과정을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이들이 청년이었던 시절에 당시 대학생들 중 학부 시절 진지하게 운동의 정신을 이어갔던 학생들의 비율은 졸업 후 기득권층으로 적극적으로 편입하려고 하던 이들의 비율에 비해 극소수였다. 대학 시절의 정의감에 입각한 저항의 경험은 졸업 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 이들에게 더 많은 평등 지향적 민주화 요구와 맞닿기 보다는 이를 거부하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학생은 전체 청년들 중 1/4에서 1/3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이러한 주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한 마디로 이러한 주장들은 민주화나 민주주의를 정치적인 측면만으로 보는 데에서 야기되는 매우 전형적인 오류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비극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가 낳은 필연적인 비극인 것이다. 매우 안타깝게도 서구 중심부 국가들에서와는 달리, 한국을 비롯한 비중심부 국가들에서는 민주화 투쟁, 저항의 주체들이 상대적인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후에는 급속하게 과거 독재자들이 구축해 놓은 사회경제적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 따라서 독재에 반대하는 수준에서는 많은 이들이 매우 용맹했지만, 독재 체제의 후퇴 이후 절차적, 제도적 민주주의를 일정정도 쟁취하고 난 뒤에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즉 평등화를 추구하는 복지 사회로 나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이를 거부했다. 따라서 이들은 부동산 투기, 탈세, 학연, 지연, 종교, 성접대, 부패 등이 서로 뒤얽힌 특권 구조와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구조를 향유, 강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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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50대는 바로 이러한 구조의 주체이자 산물이다. 이는 상당한 수의 서민들이 오히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현상과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복잡하게 설명하거나 안타까워할 일 없이 한 마디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맛보지 못한 서민들에게는 민주주의란 혼란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혼란 속에서 누구보다 더 고통 받는 것은 사회적 보호막이 없는 자신들 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어디 그 뿐인가? 정치를 떠나 사회를 보자. 예를 들어, 학교 폭력, 군대 폭력, 학벌 사회, 영어 광풍, 고시 열풍, 기러기 아빠, 부동산 투기 광풍, 사교육 광풍, 골프장 왕국, 최고의 자살율, 최고의 노인 빈곤율, OECD 국가 내 최고 수준의 자영업 비율, 최하의 복지 수준, 급증하고 있는 각종 범죄 등등... 특정 정권 들어 악화되었는지 아닌지를 논하기 앞서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구조화된 우리 사회의 고유한 문제들이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우리 사회에서만 있는 매우 해괴한 이러한 사회 현상들의 본질은 유사하다. 즉, 사회 복지 시스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국가에서 거의 모든 국민들이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길이란 출세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서로를 짓밟고 속이는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들인 것이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매우 특수한 현상들을 보지 못 하고, ‘신자유주의’나 ‘금융 세계화’ 등의 개념으로만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50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사회재구조화와 노동 불안정화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은 집단’, ‘명퇴 이후 영세 자영업으로 내몰린 이들’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리가 있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간과하는 주장이다. 이렇듯, 많은 지식인들이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굳이 사용해 가며 소위 불안정 노동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OECD 국가들 중 최고의 비중을 자랑한지 오래인 자영업과 같은 더 주변화된 사회 계층이나 집단들에 대해서는 커다란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50대 영세 자영업자들이 급증했고, 따라서 이들이 믿었던 민주화 세력이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억압에 분노하여 퇴행적 투표를 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 분석을 통해서 세대에 따른 진보와 보수의 비율 차이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20대의 보수화라는 사회적 위기현상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20대의 보수화는 이전의 보수화와는 궤를 달리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즉 이들 20대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 보수집단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관점에서 인종주의 등 서구식 극우와도 맞닿아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나 반여성주의, 반공주의까지 마구 뒤섞여 그 어느 극우집단보다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넷 우익’이 기존의 일본 우익들과 결합하며 실제 세력화되는 것을 일본의 진보 학자들도 예견하지 못 했듯,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과도하게 일시적 현상이거나 가볍게 보는 학자들이 너무 많다.

불안정 노동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이 만연한 시대에 서민들은 오히려 파시즘을 선택한 역사는 수두룩하다. 게다가 이러한 집단에조차도 속하지 못하는 엄청난 수의 주변화된 반범죄 집단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고령층이 많아져서 중도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며, 다시 진지하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로의 급진적인 변화를 구체적으로 논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