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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12
조회
122

이광조/ CBS PD



요즘 인터넷에서는 조웅 목사라는 분의 인터뷰 동영상이 큰 화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와 사생활, 막후 실세에 관한 얘기부터 김정일과의 관계, 그리고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암살사건의 배후에 관한 얘기까지. 워낙 긴 인터뷰라 동영상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활자화 되어 떠돌고 있는 몇 가지 증언 내용만 보더라도 황당한 느낌을 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증언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스스로의 이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얘기였기 때문이다. 책장을 뒤져 <김형욱 회고록>을 찾아내고는 황태성 간첩 사건 대목을 찾아봤다. 김형욱은 황태성 간첩 사건의 전모가 미군 당국에 전해진 경로와 관련해 당시에 떠돌던 두 가지 설을 언급하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들어 알게 되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황태성이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던 중, 반혁명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조응이라는 학생을 알게 되어 그를 통해 비밀이 폭로되었다고 한다.”
조웅 목사는 자신이 5.16 쿠데타에 참여했으며 황태성 간첩사건을 알게 되어 이를 미군에 알려주면서 5.16 쿠데타 세력과 갈라서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럼 김형욱이 회고록에서 언급했던 조응 이라는 학생이 조웅 목사인가. 그런데 학생 신분으로 5.16 쿠데타에 참여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도 조웅 목사의 증언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단서가 있었다.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쿠데타 모의 세력이 애초에 1961년 4월 19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쿠데타를 준비하면서 4.19 1주년에 맞춰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유도하기 위해 공작을 벌였던 일화가 나온다. 쿠데타 모의에 가담하고 있던 박종규가 기자로 신분을 위장한 채 몇몇 대학 학생회 간부들과 토론 모임을 가지곤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4.19 혁명정신을 배신한’ 장면 정권을 뒤엎는 궐기를 하도록 유도하고 그 혼란을 진압하는 걸 명분으로 거사를 도모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이 일화는 조갑제 씨가 “5.16 군사혁명 50주년 기념 연재”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5.16 비사에도 나온다. 조응 이라는 사람이 학생신분으로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복역하다 곧 출소했다는 것도 당시 쿠데타 세력 내부의 갈등으로 빚어진 일이 아니면 설명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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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설사 조웅 목사가 얘기한 자신의 이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의 여러 가지 주장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에서는 그렇다. 그런데도 내가 호기심을 갖고 책을 뒤져보게 된 데는 ‘도대체 조웅 목사라는 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저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앞서 얘기했던 학생 데모 유도 같은 작업을 흔히 공작정치라고 부른다. 그가 만약 공작의 전모를 알고 계획적으로 거기에 가담했다면, 또 그의 증언처럼 지인으로부터 각종 암살사건의 내막을 전해 들었다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에게 세상은 권력자들의 음모로 가득 찬 암흑의 세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진실은, 우리 눈에 보이는 환한 무대 위가 아니라 어두운 장막 뒤에 있는 것이다.
조웅 목사의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걱정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허황된 얘기에 너무 쉽게 휘둘린다는 거다. 맞는 얘기다. 내가 봐도 걱정스럽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환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곧이곧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다가는 바보 되기 꼭 쉬운 게 우리나라다. 대한민국의 치안과 법집행을 책임졌던 전직 경찰청장이 오늘 법정구속 되었고 국정원에서 내부의 불법행위를 외부에 알린 직원이 파면되고 고발되었다는 소식이 오늘 전해졌다. 둘 모두 공권력이 거짓을 조장하고 국민을 기망한 사건이다. 음모론이 없어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