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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의왕(義王) 이야기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11
조회
124

박현도/ 종교학자



나는 경기도 의왕시에 산다. 우리 시의 이름은 품격이 넘친다. 한자를 보라. 義王! 얼마나 멋진가. 조선시대 광주부의 ‘의곡면(義谷面)’의 의(義)자와 ‘왕륜면(王倫面)’의 왕(王)자가 합쳐져 된 이름이니 의로움과 제왕의 윤리가 홈빡 깃든 이름이다. 1914년 일제의 농간으로 義王 대신 ‘거동할 의(儀)’와 ‘왕성할 왕(旺)’의 儀旺으로 표기가 바뀌었다가 2007년에야 비로소 원래의 이름인 義王을 되찾았다. 국내 행정구역중 의왕만큼 멋진 이름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동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천박하다. 우선 우리 동네 국회의원 행실부터 수준 이하다. 우리 동네 일꾼은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놓고는 몇 달 되지 않아 그것도 자신을 뽑아준 지역주민들에게 단 한마디 의견도 묻지 않고 말없이 철새처럼 잽싸게 안철수 씨에게 날아간 “묻지마” 개혁정치의 기수 송호창 의원이다. 표 달라고 넙죽 인사하며 인덕원 전철 역 앞에서 명함을 건네던 송의원은 당선된 후 정말 전광석화처럼, 독불장군 독재자처럼 제멋대로 당을 옮겼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안철수씨 편에 선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옮겨가는 과정이 몹시 추하다. 정치 초년생이라 뭘 모르고 한 것이니 용서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는 정치 경력이 아니라 기본적인 정치 도의의 문제다. 배고파 아쉬울 때는 손 벌리고 배가 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거두고 표변하는 사람과 다를 바 무엇인가. 적어도 지역구민들의 의견을 묻거나 양해를 구해야 옳은 것인데, 제 살 길을 찾아 그냥 날아가 버렸다. 뉴스보고 당적변동을 알았으니 말 다한 거다. 고매한 동네 이름인 의왕에 걸맞지 않은 정치 철새다. 개혁정치라는 말이나 안했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철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왕(義王)의 왕(王)자가 연유한 원명인 왕륜(王倫)도 없다. 인덕원에서 판교 쪽으로 한 2분만 가면 왼편 깊숙한 곳에 서울구치소가 있다. 의왕시에 있지만 이름은 서울구치소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힘 있고 돈 있는 분들이 자주 오신다. 노태우, 정몽구, 박지원, 권노갑 등 정재계 거물들이 드나들던 곳이고 현재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의원,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KT &G 복지재단 이사장,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등이 수감돼있다.

그런데 유력인사들, 이른바 ‘범털’들이 하도 자주 오길래 ‘구치소’가 아니라 ‘구치텔’이라고 까지 불리는 이곳에서 최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비리로 구속된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통령의 특별사면의 은덕을 받아 줄줄이 구치소를 떠난 것이다. 법과 원칙을 그리도 강조하더니 특별사면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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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설 특별사면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월 31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제 아무리 감언이설로 특별사면의 정당성을 이야기해보았자 특사의 원칙은 야당의 표현대로 대통령과 친하냐 친하지 않냐로 귀결될 뿐이다.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면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입각해 실시”한 특사라고 하지만,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대통령 임기 중인 2009년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임천공업으로부터 4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람이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구급차를 타고 황급히 빠져 나왔을꼬! 분노를 넘어서 애잔하기까지 하다. 대통령 측근으로 무소불위의 방송 권력을 누리다 구속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확정된 징역 2년 6개월 중 9개월만 살다 나왔다. 우리 대통령은 대학생 반값 등록금 약속을 못 지킨 것이 미안했나보다. 측근의 징역형을 30%로 깎아주는 것을 보니 말이다. 왕륜(王倫)은 어디 갔나? 있기나 했을까?

철새 의원과 왕륜 없는 대통령. 의왕 우리 동네 이름이 맞지 않는 말들이다. 제발 새해에는 개혁, 법, 원칙을 입으로만 나불대는 정치모리배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 국민이 뱀처럼 지혜로워지도록 우리 동네 의왕의 의로운 기운이 더욱 강성해졌으면 좋겠다.

기사년(己巳年) 의로운 왕의 기운이 솟구쳐라!

의왕(義王)을 희구(希求)하며, 의왕만세(義王萬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