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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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Y형에게 보내는 초대장 (이은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08
조회
122

이은규/ 일꾼



사람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퍼렇게 살아도 설워라 할 생명들이 벼랑 끝에 서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세상은 ‘살아라!’‘살아라!’합니다. 지극한 이 위로의 말들이 벼랑 끝에 서있는 생명들에겐 더욱 허기진 말로 들릴 듯합니다. 함께 살자는 ‘윤리’가 나부터 살자는 ‘탐욕’에 짓눌린 현실에서 말입니다.

새해 덕담을 형에게 건네야 할 텐데, 내가 슬픕니다... 달리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눈물조차 막아선 슬픔에 온 몸이 무겁고 마음은 끝도 모를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습니다.

울고 싶은데 울음이 터지질 않고 복잡다단한 지금 이 심경을 글로 풀어보자는 마음에 밑도 끝도 없이 나오는 심사대로 토설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 또한 생기기에 전생에 척을 진 원수도 아닐 터인데 형에게 이 짐을 나누자 청합니다. “세상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말로 대충 위로하고 더 이상 회피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만히 머물면서 이 깊은 슬픔의 정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합니다.

내가 나에게 묻습니다. “이 슬픔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존재하기 이전부터, 내가 있기 전부터 있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태어남과 삶은 슬픔의 탄생이며 성장인 듯합니다. 그 열매는 마땅히 사랑과 평화이어야 합니다. 마땅히...

슬픔의 원인을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사랑과 평화는 경쟁과 탐욕에 의해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밀봉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약한 자를 탈락자로 자연 치부해버리기 일쑤이며 심지어 종교까지도 그들을 함부로 세상부적응자로 몰아세웁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소외시키는 세상입니다. 사랑과 평화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세상과 사람들은 변할 수 있을까요?

눈을 감았습니다. 고단한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음이 분분히 흩어져 있습니다. 내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있습니다. 그 마음들은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분별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습니다. 심판하고 단죄하며 이기고 싶은 욕망에 이리저리 촉수를 뻗고 있습니다. 세상은 둘째 치고 나 자신이 이미 세상입니다. 힘도 용기도 없습니다. 어찌 해볼 요량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세상으로 뻗어있는 촉수들을 바라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그리고 화가 납니다. 인정받고 싶고 이기고 싶고 힘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처럼 희망을 미끼로 사기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쏙 빼닮아가는 것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어린아이가 보입니다. 이제 삼십육개월이 된 내 딸 민서또래의 아이입니다.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 두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퍼 올려도 손가락사이로 모래는 빠져나갑니다. 그 빠져나가는 느낌이 생생합니다. 그 허망함이라니...

그리고 아이는 벽을 바라봅니다. 잠시 후 벽은 거대한 창공으로 변합니다. 끝도 없는 허공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슬픔에 오그라들었던 가슴이 천천히 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아...” 깊은 숨이 터져 나옵니다. 맥이 풀리듯 온몸의 긴장이 풀어집니다.

아이는 혼잣말로 묻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은 무엇일까요?” “사랑...” 어린아이에게 어둠속의 별은 사랑이라 합니다. 볼 수 있어 행복하고 편안한 사랑입니다. 또한 아이는 스스로도 별이라고 여깁니다. 아이가 보는 별들 또한 이 아이를 별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별이 별을 발견하고 별이 별을 인정하고 별이 온 천지의 어둠만큼이나 많다고 합니다. 별들의 공동체에 절로 평안해진 아이는 양팔을 뒤로 젖힌 채 다리를 뻗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마냥 바라봅니다. 하늘의 별들을.

우연스럽게도 오늘은 그리스도교에서 기념하는 주님공현대축일입니다. 별의 인도로 세 명의 동방박사가 세상의 구세주가 탄생되었음을 알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일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세 명의 동방박사와 그들을 인도한 별, 아기 예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존재에 대한 신원회복이 동방박사의 아기예수 경배가 아닐까 여겨지는 까닭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며 그 별의 안내에 충실했던 동방박사의 꿋꿋함이 부럽습니다. 가만히 유추해봅니다. 세상의 불완전함이 그들을 하늘의 별에게로 눈을 돌리게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슬픔은 별을 잉태합니다. 별은 내안의 세계를 발견하게 합니다. 이 깊은 슬픔은 여인의 자궁입니다. 태초로의 귀환 혹은 최후의 발견과 같습니다. 번뇌는 여래의 종자라 하듯 슬픔은 사랑의 종자입니다.

내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깊이 들여다보니 훤한 대낮에 별이 보입니다. 그래요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순응하지도 않겠습니다. 선동하지도 않겠습니다. 가만히 일어나는 감정들, 그것이 슬픔이거나 기쁨이거나 분노이거나간에 휩쓸리지 않는 가운데 찬찬히 살피며 한걸음 한걸음 꿋꿋하고 반듯하게 살겠습니다. 내가 사랑이 되고, 온전한 평화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를 양식으로 삼아 남아있는 생을 살겠습니다. 오늘 이 깊은 슬픔의 정체는 자기존재를 망실한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먼별의 초대장입니다.

두서없고 개요 없는 글을 인내심을 발휘해 사유해주시리라 믿으며 형에게도 먼별에서 보내온 초대장을 나눕니다. 인사가 조금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