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살아감이 힘이요 무기이다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07
조회
123

신하영옥/ 광명인권센터장



주변은 허탈함, 무기력, 분노가 한 편으로 출렁이고 무반응과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한 편으로 흐른다. 그러나 환희와 열광과 같은 분출은 없다. 내 주변엔...그렇다. 나는...하루한나절 분노했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적어도 겉으론, 그리고 아직은 그렇다. 이후 어떻게 일상이 침윤 당할지는 모르겠다.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잠깐씩 왔다가곤 한다.

‘엄마 5년을 어떻게 기다리지?’ 라고 했던 아이는 벌써 5년이란 기다림의 끝자락에 와있고, 그만큼 커버렸다. 지금 앞으로 5년에 대해 지난번과 같이 묻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앞으로 5년은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바쁜 5년이 될 터이고, 준비할 것이 많고 기대할 것이 많은 그런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누구인가보다 일상의 변화가 더 크기 때문이다. 내겐 과거는 항상 압축된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5년은 좀 중요하면서 그래서 어쩌면 더 길 듯하다. 40대를 지나 50대로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좀 여유롭게 다음 세대들을 위해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 희망이 보이는 기간이길 기대하는데, ‘과연?’ 이란 질문이 따라붙는다. 벌써부터 자기목숨을 던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감에 코끝이 아리고 당선자를 대변하는 입은 막말이라는 걸레를 물고 있어 답답하다. 그래서 절망하고 어떤 가능성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엄마가 편찮으셔서 고향엘 갔다. 동생은 개표방송을 보면서, 그 결과를 보면서 너무 분해서 울었다고 한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동생이다. 정치에 그다지 관심도 없다. 엄마는 부러진 팔을 들고서 80대 노구를 이끌고 투표장으로 가셨다고 하신다. 그러나 엄마도 허망해 하신다. 술 한 잔 하면서 국민성과 투표결과에 대해 분노하는 동생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아니 그런 얘기, 실은 하기가 싫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래서 달라질 수 있다면 욕은 서 말 아니라 서른 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피곤함이 엄습한다. 어느 날 그런 피곤함에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 눈에 띈 글이다.

“언제나 말했듯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이나 새로운 법률 및 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낡은 질서의 근절을 이루고 협력하여 평화롭고 평등한 새로운 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거대한 영웅적 행동에 착수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이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복한다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하워든 진, 2002,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누가 누굴 탓하고 무엇 때문에 절망하는가? 그 화살은 어쩌면 각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할 일이지 않을까? 민주당은 대선패배의 원인을 스스로의 성찰과 반성에 두지 않는 듯하다. 아니, 스스로에게 두되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탓을 돌리고 있다. 그걸 반성이라고 하고 있다. 어느 민주당 인사는 ‘민주주의를 너무 말해서 졌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만 너무 강조해서, 사람들이 식상해서... 그것이 민주당의 패배에 대한 분석 결과인가 보다.

IE001531555_STD.jpg
지난 12월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럼 무엇을 말해야 했나? 무엇을 중심전략으로 대선에 임해야 했을까? ‘민생’, ‘먹고사는 문제’...라고 한다. 그것은 인권이 아닌가? 민생과 먹고사는 문제, 돈벌이를 인권의 관점이 아닌 ‘개발’, ‘경제총량’ 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한 해결책은 없다. 더 이상 경제력이 총량에서 발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자본주의에서 총량의 증가와 그 결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1%를 말한다. 나머지 99%는 그러한 이득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은 인권의 문제이다. 생존권이라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기본권으로서의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절차를 말한다. 그런데 민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인권담론이 작동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강조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 민주주의를 자기들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자기들만이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패배가 비롯된 것이다. 좀 더 국민들의 삶을 쪼개고 쪼개어 살폈어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국민들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제적 비민주화가 각 국민들의 삶에서 어떤 질곡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안들을 내왔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다만 거대담론으로서의 혹은 당위로서의 민주주의를 외쳐대기만 했을 뿐이었다. 국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구호로 여기게 만들었을 뿐이다. 당위로 권력을 획득,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인식은 낙후되지 않았다. 그들만 그걸 모르고 있나보다. 결국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국민이 이미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이틀 전 인권기본계획수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권을 한물 간 개뼈다귀쯤으로 여기던 사람들의 인식이 좀 변했음을 느낀다. 기본계획을 잘 내와야 한다는 말도 한다. 인권이 이렇게 폭 넓은 거냐는 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생과 인권은 별개라고 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여유가 생긴다. 결국 버티고 틈새를 확장하고 한 번에 한 가지씩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활동과 사업을 하다보면, 그 틈새가 결국은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대통령이나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들이다. 인식의 변화로부터 생활의 변화가 곧 변혁이다. 그 한 사람들이 결국은 한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절망은 없다. 그저 조금씩 살아내고 그 살아감을 변화시키는 길이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습관, 집단의 습관, 사회의 습관을 바꾸는 길. 대선패배에 대한 분석에 연연하기에 앞서 자신과 자기 집단의 습관을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민주당은 절망할 주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