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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 논쟁에서 벗어나기: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비과학적 논쟁에 대한 비판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29
조회
134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활동가들 중에는 자신의 지식이나 상식만이 진리라는 아집에 휩싸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과거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꿈꿨던 일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에 젖어 있기도 하다. 몇 가지 원칙만을 가지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그 원칙이 적용가능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그 수에 비해 목소리가 크다. 그런데 이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서 그와 대비되는 주장이나 이론에 대해 본질까지 왜곡할 만큼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공격하는 나쁜 관행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러한 날카로운 공격의 대상은 같은 진영 내부를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그 어떤 진실도 거부한 채, 여전히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꿈꾸는 이들과는 스스로 다르다고 강변하면서도, 이들은 논쟁 과정에서 밀리거나 우위를 점하고 싶을 때에는 돌연 100년도 더 된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원칙들을 들이대며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곤 한다.

전후 아주 잠시 동안, 그것도 서구 일부 국가들에서만 예외적으로 케인즈 주의적 정책을 통해 시장의 폭력을 다소 조절했을 뿐, 사회주의 실험을 예외로 하면, 봉건 시대 이후 대부분의 시기, 대부분의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 틀 속에서의 일반적인 현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념적인 진보 지식인들은 아무 때나 너무 쉽게 상대에게 ‘신자유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우곤 한다. 바로 얼마 전에도 국내 자본과 해외 자본의 과도한 관념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 국내 자본에 더 많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신자유주의자’로 몰아 부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표면 뒤에서 작동하는 실제 ‘정치’에 대한 무지는 정당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관료 권력이나 사회기득권 세력에 대한 무지로 이어지면서, 왕조 시대도 아닌데 명색이 사회과학자라는 이들이 국가수반이라는 일 개인을 중심으로 한 지지와 비난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를 경우, 결국 그 어느 누구도 신자유주의로의 투항과 배신이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관념적인 지식인들은 서구 사회에서 발달하고 서구 사회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론에 대한 과도한 몰두로 인해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중심부 지역들의 특수한 역사와 구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무지하다. 따라서 비중심부 지역에서의 식민지 시대 ‘민족’과 ‘민족주의’가 갖는 특수성, 그리고 탈식민지 시대 이들 지역의 ‘자유주의’ 세력의 특수성과 같은 사안들에 대해서 너무나 둔감하다.

역사적 맥락 없는 관념, 정치를 도외시한 채 서구 중심적, 원론적 관념에 휩싸인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뉴 라이트 학자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자료가 있다고 한 말 자체가 뭐가 문제냐’고 하거나,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뭐냐’며 마치 자신이 퇴행적인 민족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종의 정통 좌파 지식인인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독도는 한국 땅도 일본 땅도 아닌 갈매기의 땅’, ‘고구려는 중국 역사도 한국 역사도 아니’라는 말도 텍스트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컨텍스트 없는 단순한 말의 나열은 지식인들만의 관념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비판을 받으면 그들은 언제나 ‘그럼 민족주의에는 민족주의로 맞서는 게 맞다는 것인가’하는 전형적인 ‘모 아니면 도’ 식의 주장을 되풀이한다.

현재 역사 논쟁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역사를 왜곡하는 수구보수 세력과 맞서기에 앞서 이러한 폐습은 진보 진영 내부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가령, 뉴 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논리에 반대하는 진영에는 소위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학자들이 주요 세력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두고 좌/우 구분 없이 민족주의로 규정하는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수탈론’마저도 단순화시켜 비판한다.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근대화의 맹아가 있었음에도 조선이 독자적으로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화를 이룩하지 못 했다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을 두고 이들이 ‘근대화 혹은 자본주의화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식의 심각한 왜곡이나 폄하도 쉽지 않게 발견된다. 그러나 우파 민족주의 학자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이도 일본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근대화나 자본주의화가 가능했다고 해서 그것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그 과정이 아무리 끔찍하고 야만적이며 폭력적이었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극소수의 서구 중심부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민지적 착취와 억압, 수탈을 수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후대 인간들의 관념과는 상관없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 이후의 이상사회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해도 명백한 역사적 진보였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근대화 과정의 고통이 배가된 것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민족주의적 퇴행보다도 더 퇴행적인 관념일 뿐이다.

형식적으로는 독립한 상태였으나 사실상 미국 등의 식민지나 다름없었던 중남미 국가들까지 포함한다면 태국 등 극소수 국가들을 제외한 사실상 거의 전 세계 국가들이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근대화(혹은 자본주의화)를 겪었다. 따라서 인류 역사에서 근대화란 제국주의 치하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극소수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세계 역사에서의 근대화 과정은 그리 다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얼마나 그 이후의 사회경제적 구조의 발전에 영향을 줄 만큼 수탈 구조가 있었는가의 문제가 존재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은 분명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것이지 그 이후의 독자적(?) 근대화나 산업화는 좋았다고 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상과 세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며, 시장의 폭력에 대한 통제와 조절을 옹호한다. 그러나 필자는 몰역사적이며 비과학적인 자세로 비중심부에서의 민족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또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시장을 완전히 철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 쉽게 신자유주의로의 경도나 배신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과학적인 자세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회의 반동과 퇴행은 종종 진보 진영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