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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은 지키면서 삽시다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27
조회
159

박현도/ 종교학자



어느 날 밤, 우마르는 거리를 걷다가 어느 집에서 남녀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담벼락으로 다가갔고, 이내 한 쌍의 남녀가 술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더니 “알라의 적들이여! 너희들은 알라께서 너희들의 죄를 감춰주시리라 믿느냐!”라고 소리쳤다. 이에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는 “우리 믿는 자들의 지도자여, 우리가 한 가지 실수를 했다면, 당신은 세 가지나 했소이다. 알라께서는 다른 사람을 염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염탐했소. 알라께서는 문으로 드나들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담벽으로 넘어왔소. 그리고 알라께서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살람(평화)’이라 말하며 인사하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이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알라의 적들이여!’라고 했소이다.”

(이븐 아빌 하디드의 샤흐르 나흐즈 알-발라가에서)

우마르는 이슬람 역사상 2번째 지도자다. 632년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뒤 더 이상 예언자는 나오지 않지만, 누군가는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기에 무슬림들은 아랍어로 예언자의 대리자라는 뜻을 지닌 칼리파(영어로는 칼리프)를 뽑았는데, 우마르는 2대 칼리파였다. 첫번째 칼리파 아부 바크르 (재위 632-634년)를 이어 634년부터 644년까지 10년간 무슬림 공동체를 이끈 그는 괄괄한 성격의 사내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거리를 걷다 남녀의 소리를 들었으니 가만 두고 넘어갈 리 만무! 그래서 슬금슬금 소리가 나는 집 담을 넘어 보니, 아뿔싸, 한 쌍의 남녀가, 그것도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술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짜고짜 거친 성격 그대로 “알라의 적들이여!”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글에서 두 남녀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부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마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집안에 들어 온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서 인사도 없이 무작정 저주의 말을 뿜어대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이슬람에서 금하는 술을 앞에 두고 있었다한들, 이 어찌 무례한 일을 거침없이 하는 것일까? 앞 뒤 따져보지도 않고 말이다. 술을 안 마셨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 가슴 한켠이 무겁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기본이 지켜지고 있는지 우마르에게 항변하는 남자가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하다. 갑의 횡포가 사회 전반에서 횡행하는 나라라서 그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 다물고 제발 그런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최근 한 두 달 사이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비행기에서 진상부린 대기업의 ‘라면’ 상무, 제품 밀어내기로 대리점을 못살게 한 남양유업, 불평등거래 관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편의점 업주 사망진단서를 위조한 CU 편의점 갑 BGF 리테일, 그리고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면서 권력을 무기로 인턴을 성추행한 희대의 ‘Grab’범 윤창중 전 대변인 등등 대한민국의 갑들의 끊임없이 ‘갑질’에 그동안 숨죽이던 ‘을’들이 전 국민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헌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갑질’의 주인공들이 뻔뻔하고 속 보이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나선 점이다. ‘갑질’의 피해를 당한 ‘을’들에게 사과해도 시원찮은데,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입 씻으려 한 것이다. 남양유업과 BGF 리테일이 그랬다. 왜? 물어서 뭐하나. 속이 뻔히 보이는 속셈이지. 국민들이 불매 운동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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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는 기업 경영진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배상면주가 배영호 대표.
사진 출처 - 한겨레21


그런데 그게 어째 국민들에게 먼저, 그리고 국민들에게만 용서를 구할 일이냐. 자기들 때문에 눈물 흘린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른 일 아닌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 매출저하를 막아놓고 보자. 어차피 점주들에게 굳이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고, “잠시 언론플레이로 반성하는 척 보이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지저분한 ‘갑질’을 기억조차 못할 것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못된 갑이 ‘갑질’을 못하도록 우리가 지켜봐야 한다. 그렇다고 우마르처럼 염탐하거나, 담을 넘거나, 욕하지 말고, 점잖고 차분하게 말이다. 기본을 잘 지키는 사회를 만들려면 좀 늦더라도 우리가 기본을 지켜야겠지. 기본! 그 기본이 없어서 우리 사회에 ‘갑질’ 천국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갑’이 반드시 대기업만은 아니라는 것. 소시민인 우리도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갑’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갑질’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둘러보자. 기본은 지키는 착한 갑이 되기 위해서, 좋은 갑, 그리고 그런 갑과 사이좋은 을이 공정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