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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흔들리고 있다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24
조회
147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개미가 지나가는 걸 보고도 개미가 지나간다고 하면 안 된대. 그냥 저기 까만 조그만 것들이 어디로 움직이네, 이렇게 말해야 아이에게 인지적 학습이 안 되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거야.”

30개월 된 아들을 둔 내 친구는 놀이치료와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다른 엄마에게서 들은 수업 내용을 내게 들려준다. 20개월짜리 딸을 두고 2년 반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된 내게 뭔가 도움이 될 거라 들려준 얘기다. 아이를 주변 어른이나 다른 공동체의 도움 없이 전적으로 엄마 혼자 키워야 하는 입장에 있는 엄마들은 늘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 애가 조금만 심하게 반응해도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애착관계 형성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고민에 빠진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안 좋다니까 그런 불안의 이유나 원인을 빨리 알아내서 아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 이런저런 육아상담 심리책도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엄마들 얘기도 읽어 보고,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 주최하는 집단심리상담도 들어 본다. 그 속에 찾게 되는 건 해답일까, 위안일까. 어쩌면 너무 많은 육아 이론과 지침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엄마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개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한테 "너도 인지적 학습 형태로 아이한테 얘기를 많이 할 거 같은데, 어때?"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야, 이렇든 저렇든 아이한테 말도 해주고 대꾸도 해주면 됐지 뭘 그래? 입 꾹 다물고 있는 거보다 백배 낫잖아."

뭐가 정답인지는 나도 모른다. 직장에 다시 가기로 결정했을 무렵 내게 가장 큰 불안을 일으킨 기사가 있었다. 엄마 냄새를 하루 세 시간 이상은 아이가 맡아야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그 책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솔직히 읽기도 싫었다, 그건 나 자신의 정서적인 안정을 파괴할 것만 같은 위협으로 내겐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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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서점의 육아서적 코너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21


한편으론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 점점 더 자극적이고 단호함을 넘어서 독단 같은 지침들을 엄마들에게 들이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안아주는 식의 스킨십이 좋다는 식에서 3시간 이상은 꼭 엄마 냄새를 맡게 해야 한다는 식의, 뭔가 계량화된 법칙 같은.

자기 성과에 목매달게 하는 자기 착취 개념은 비단 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떠맡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에게 조금의 문제라도 발생하면 모두 엄마 책임이라는 암묵적인 책임전가와 위협들 속에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고 아이와 함께 편안한 육아를 하려는 엄마는 설 자리가 없는 걸까?

“아, 내가 아이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어떨 때는 주변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아, 다 잘 큰다 하고 말해주면 마음 편해질 것 같아.” 단 한 시간도 엄마 대신 아이를 돌봐줄 피붙이가 주변에 없던 나는 육아를 인터넷과 책으로 배우다 보니 다른 엄마들이 좋다는 건 꼭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내뱉은 말이다. 냉정한 사실은 ‘편안한 육아’가 누군가에게 그러고 싶다고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로부터 괜찮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육아를 하나의 커다란 나무라고 한다면, 그 나무를 지탱하는 튼튼한 뿌리와 줄기는 엄마의 자존감과 가치관이다. 문제라면 자존감과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천천히 뭔가 해보면 될 것 같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내 마음 살림살이 늘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당장 뭔가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이나 해결책을 전문가로부터 듣고 싶다. 그건 이미 현란한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입맛과 비슷할지 모른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법칙이나 대안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순박한 진리에도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세’이다.

어떻게 처음 해보는 일을 전문가의 말대로 한다고 금방 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좌충우돌할 수 있다. 그 정신없음과 당혹스러움과 불안과, 그 와중에도 애쓰는 자신과 그 시간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불안과 슬픔과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상태라면,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 누군가의 양육 방식을 흉내 내지 않고도 내 아이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고 그 과정 자체가 각자 색깔이 다른 ‘편안한 육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