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애, 그 존재의 가벼움 1 (위문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25
조회
462
늘 ‘을’의 위치인 장애인들

위문숙/ 서울DPI 회장


 

최근 남양유업의 대리점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갑을전쟁’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애써 모른 체하지만, 갑의 횡포에 일상적으로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회사의 횡포에서 또 다른 주류회사, 그리고 통신회사와 최근엔 연예계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같은 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우리들 자신의 둔감함에 대해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횡포를 견뎌내지 못한 어느 을의 자살로 인해 우리는 이러한 사태들의 진정한 내막에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번 갑을전쟁을 접하면서 과거 무수히 많이 짓밟히고 사라진 장애인의 삶을 떠올립니다. 장애인의 인생은 늘 ‘을’의 인생이었고, 또한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1967년부터 1986년까지 약 20년간 신문보도를 통해 (단 한 줄이라도) 알려진 장애인의 사건과 사망 보도의 간략한 내용들입니다.
● 1967년
박정희 前대통령, 사립초등학교에 장애아 우선 입학 지시
부산중학교에 지원한 소아마비 장애인 윤철 君, 학과시험이 만점임에도 체능검사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 1968년
권오병문교부장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특혜 반대의사 표명
문교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별도의 체능 배점 기준 마련
문교부, 지체부자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관한 별도의 체능 특혜 백지화 발표
중·고교 입시특혜 백지화에 따른 대책위 구성과 서명운동 전개

● 1972년
한국소아마비아동특수보육협회(현,소아마비협회),장애학생의 중·고교 입시에 따른 체능점수 배 점을 높여 줄 것을 요구하는 진성서 관계기관에 전달

● 1974년
경북대치의과에 지원한 박영범 君, 소아마비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 1975년
UN장애인권리선언 결의

● 1976년
장애를 이유로 대학입시 30여명 불합격. 장애학생·부모 등 1백여명 비교육적 입학제한 규탄 궐 기대회 개최.
UN,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 선포

● 1977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지원한 박창권 君, 청각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영남대 약대에 지원한 정길석, 구본영,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YMCA, 장애로 인해 대학입시에서 탈락된 박창권, 정길석, 구본영의 입학허가 건의문을 관계 기 관에 전달

● 1978년
부산대학교에 지원한 윤여진 김호남 등 7명, 집단 입학 거부
휠체어 이용 장애학생 윤태호 君, 과속택시에 치여 사망

● 1980년
예시합격 시각장애자 대부분 대학에서 원서접수 거절
복지시설, 재활위주로 개편 발표
20세 도효희 양, 영남대 약대에서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경북 경주시 5급 행정직 시험을 치룬 정진석씨,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

● 1981년
24세 지체장애인 전용호 씨, 비관 자살
17세 뇌성마비 장애인 남구현 군, 주위의 조롱으로 비관 자살
18세 지체장애인 천병전 군 비관 자살
15세 정신지체 장애 조만수 군, 장애 비관으로 나무에 목 매어 자살
19세 지체장애인 진식열군, 비관 자살
심신장애자복지법(현, 장애인복지법) 제정

● 1982년
성균관대 약대 장애를 이유로 2명 입학거부
한국심신장애자선도선교협회. 기술 훈련을 핑계로 장애인 착취
박 찬, 박은수, 조병훈, 김신, 법관임용에서 장애를 이유로 탈락
중등교사 임용후보자 김봉련 양, 장애를 이유로 면접에서 낙방

● 1983년
장애를 이유로 이희정, 김용학 대입 낙방

● 1984년
동국대 지원한 최동락 군, 지체장애를 이유로 낙방
휠체어 이용장애자 김순석 씨, 서울시장앞으로 유서 남기고 비관 자살
뇌성마비 딸 고치려고 돈 훔친 이분성 씨 입건
문교부, 대학신입생모집요강에 ‘수학불능’ 기준 명시 지시
술집주인·종업원, 장애자 손님 재수없다고 폭행

● 1986년
가톨릭대 의대, 소아마비 학생 3명 장애를 이유로 입학 거부
가톨릭대, 불합격 처분 고수 의사결정
김수환추기경, 불합격 처분 재고 요청
정립회관에서 ‘장애학생불합격처분에 대한 전국장애인대회’ 강행
고모 씨, 소아마비 어린 딸 학대(조선일보)

 

20130604web06.jpg
1983년 2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쳐.
박찬, 조병훈, 김신, 박은수씨.


 

내 자식 교육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만큼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 장애인은 공부를 잘해도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운 처절한 과거를 지나왔습니다. 휠체어나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감히 생각조차 못하고 엄마 등에 업혀서라도, 기어서라도 다녀보려던 시절에 말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장애운동이 시발되기 전이라고 보아야 할 만큼 조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고, 피해 장애학생의 부모와 몇몇 기관의 눈물어린 호소와 청원만이 유일한 접근방법이었습니다. 구제되면 참으로 다행이었고, 안 된다 해도 어찌하지 못했던...

1975년에는 (8년의 노력 끝에) UN장애인권리선언이 결의되었고, 1981년에는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으며 그해가 바로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입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뭔가 기대해 봄직한 1981년에 오히려 장애인의 비관자살 보도가 가장 많았습니다. 짐작컨대, 세계장애인의 해를 맞아야 하는 정부는 대단히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태도일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장애인문제에 관심 갖기’여서 보도의 횟수가 늘어난 것일 뿐, 아마도 그 이전에 훨씬 더 많은 장애인의 자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시나 88올림픽을 앞둔 몇 년 동안에도(장애인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무척이나 떠들어댔음에도) 역시나 장애인의 비관과 갖가지 차별은 별반 차이 없이 계속됩니다. 이렇듯 장애인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 간에도, 사회 속에서도 늘 존재감 없는 ‘을’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삶에는 늘 ‘갑’의 학대와 ‘을’의 서글픈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86년 이후의 내용을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