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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②항을 위반한 대통령 대변인의 성희롱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23
조회
13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어깨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묻는다. “어떻게 아프세요?” 환자가 대답한다. “팔을 뒤로 돌릴 수가 없어요. 너무나 아파서.” 의사가 묻는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환자가 대답한다. “3개월 쯤 된 것 같아요.” 의사가 묻는다. “혹시 다른 데 아픈 데는 없으세요?” 환자가 대답한다. “편두통인지 가끔씩 머리도 찌르듯이 아파요.” 의사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세요. 또 다른 데는요?” 환자가 말한다. “우울증이 있는데. 그건 좀 오래 되었어요.” 의사가 말한다. “그러세요. 여러모로 힘드시겠어요.” 환자가 묻는다. “혹시 이 모든 질환들을 한꺼번에 싹 고치는 방법은 없을까요?” 의사가 환자를 멍하니 쳐다본다.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아무래도 생활방식을 아예 좀 다르게 바꿔 보면 어떨까 싶네요. 가장 큰 문제는 스트레스라고 하잖아요, 왜.”

다소 좀 조용해진 것 같지만 얼마 전만 해도 핵을 동원한 전쟁이 날까봐 전전긍긍했다. 결국은 애써 가꾸어 온 분단된 한민족의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던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고 남쪽 사람들이 전원 철수해버렸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직원들이 ‘그분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아 동시다발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적인 정치 개입을 자행한 탓에 검찰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아직 전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빙산의 일각이라고 여겨지는 남양유업의 갑을 사태가 불거져 유리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피지배적인 처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아예 인간의 명색을 벗어버린 작태가 만연해 있음을 노출했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하고만 있다고 보니 정신병까지 앓게 되었다고 실토한다.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그런 와중에 신임 대통령은 세계 최상의 나라인 미국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하면서 수 십 차례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하면서 멋지게 기염을 토하고 있는데, 이런!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핀잔을 들으면서까지 애지중지 기어코 대변인 자리를 맡긴 인물이 방문 국가에서 성희롱을 하다가 고발을 당하자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일체의 임무를 저버리고 돌연 귀국해 버렸다. “글쎄요. 아예 길이 안 보이네요.” 그렇잖아도 분기의 경제성장이 0%대로 내려앉지를 않나 부모로부터 방임·방치된 나머지 밤늦게 거리를 떠도는 어린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된다는 소식도 들려오면서 사회 양극화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지는 속도가 ‘안 봐도 비디오’ 식으로 날로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창조경제”라는 한 마디로 어떻게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되살려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데, 대통령 대변인이란 자가 그것도 가장 잘 보여야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성희롱으로 고발을 당하다니, 정말이지 돌아버릴 지경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정말 재수가 없어서 어쩌다가 당한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모든 일들은 지난 수 십 년간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간적인 독재와 가없는 폭력 그리고 그에 따른 부정과 부패의 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고통과 희생을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생겨난 반민주적·반민족적·반인간적인 결과이다. 이 모든 일들에 적어도 나 혼자만은 결백하고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았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려는 듯 기를 쓰고 한탄하고 비난해 마지않는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집권 통치 세력을 비롯하여 경제사회적으로 지배 계급에 속한 인물들, 특히 대통령 방미 때 대통령을 위시해서 연회석에서 대통령의 좌우에 도열했던 그 유명한 경제계의 거물들이 대오각성하기를 기대할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진보 진영이 아예 “사물의 명색만을 알뿐 인간의 명색은 전혀 모르는” 자본주의적 시장체제에 따른 의식/무의식의 아비투스를 싹 지어내고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대대적인 사회혁명적인 실천에 나서기를 기대할 것인가?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 아무래도 생활방식을 아예 좀 다르게 바꿔 보면 어떨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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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지배 계급은 대대적으로 심지어 세계적인 규모로 연대하여 흔히 서민이라 불리는 피지배 계급을 한편으로는 적절히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히 유린해서라도 그네들의 재산과 지위의 기득권을 유지 ․ 강화하고자 노력한다. 역사 이래로 모든 잉여의 생산은 아래에서부터 피지배 계급으로부터 산출되는데도, 그 잉여의 대다수를 독차지한 것은 상층의 지배 계급이지 않았던가. 1990년대 말 3백 48명의 억만장자들이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이후 이 수치는 더욱 증가했으리라. 그러면서 “낙수 효과” 운운하는 것이다. 이 낱말처럼 겉으로는 경제적인 원칙인 양 포장되어 실제로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굴욕으로 몰아가는 잔인한 낱말도 드물 것이다.

“글쎄요, 좀처럼 길이 안 보이네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여유가 없다. 딱 한 가지 길이 있다. 이 길은 다소 부족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한껏 제시한 길이다.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는 경제민주화의 창조여야 한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는 재벌 대기업들에게 자본주의적인 시장 원칙을 준수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복지의 대대적인 확대를 목표로 시장에서의 착취를 국가적으로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들의 질 높은 행복한 삶은 양극화의 깊은 골짜기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고, 이는 복지의 대대적인 확대 외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정부 관료들을 재기용해야 한다. 모두가 모두를 오로지 자신을 위한 수단이나 기회로만 여김으로써 다들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의 풍토를 전격적으로 바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국가의 생활방식을 아예 색다르게 바꾸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역시 대대적인 복지사회를 향해 국가 전체가 매진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의 기능은 대다수 국민들의 피땀 어린 노고의 성과를 상층의 소수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갖다 바치기 위해 진력하는 데 불과할 것이다.

“낙수 효과”라는 말을 믿지 말고 “정당한 노력에 정당한 대가”라는 말을 믿어야 한다. 때로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때로는 참신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디어 하나로 수 백 수 천 억 달러를 벌어들여 그들만의 지갑을 천문학적으로 부풀리는 세계자본주의의 논리에 국가가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②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균형 있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의 민주화” 등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란 대목을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헌법 조항의 내용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가 모두를 부와 권력을 향해 그 좁디좁은 대롱 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몰아 부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대변인이라는 자가 세계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발가벗고서 버젓이 성희롱을 자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