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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애, 그 존재의 가벼움 2 (위문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40
조회
129

위문숙/ 서울 DPI 회장



80년대 중반까지 장애인의 삶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철저한 배제와 분리였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찍소리도 못하고 보내온 장애인 역사의 처절함입니다. 이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 장애인의 비관 자살과 입학거부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교육과 노동에서 배제와 무시를 당했고, 산 좋고 물 좋은 어느 산골 수용시설에서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장애인의 인생인양 곁의 가족들조차도 그리 알고 살아 왔습니다.

80년대는 한국사적으로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운동 권하는 사회’였고 노동자 대투쟁과 시민 혁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던 시기입니다. 86년을 시발로, 이 투쟁에 속했던 젊은 장애인들의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은, 이 후 이어지는 장애인의 삶에 큰 회오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회오리는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의 양대 법안 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울림의 메아리는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와 차별에 대한 더 큰 자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장애인운동‘의 태동기가 시작되면서, 장애인복지에 대한 영역별 종합대책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입학거부나 비관자살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장애인 수용시설의 온갖 비리가 장애인의 또 다른 아픔을 보여줍니다.

평택 에바다 사태는 지난 1996년 11월 27일 강제노역·구타·인신매매·성폭행 등 구 재단의 인권유린에 견디다 못한 에바다 농아원생들의 절규 어린 농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해, 장애 시설 비리의 참상에 대한 충격을 사회에 던져 주었습니다. 2005년 광주 인화학교 사태는 ‘도가니’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사회를 또 한 번 경악케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원주 사랑의 집이라는 곳에서는 장애인을 목숨처럼 사랑해서 자신의 이름을 ‘장목사’라 부르는 이와 그의 처가 보조금과 후원금 횡령, 시신 유기, 원생들 구타·고문 및 실종 등 시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비리의 종합 세트를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어디선가에서 현재형으로 진행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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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사진 출처 - 씨네21


 

장애인들이 삶과 권리에 대해 각성하고 요구하기까지의 시간은 30년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세대라고 봄직한 시간이지만 차별의 장르가 바뀌었을 뿐 여전히 더불어 살기 어려운 존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고 싶은 곳에서 환경을 변화시켜 가며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자립생활 운동’의 도입과 전개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반인권적인 시설의 문제와 허망한 죽음과 상처들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반시설’의 깃발을 펄럭이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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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장목사가 직접 바늘로 새긴 장애인 팔뚝의 문신.
문신 내용은 장애인의 이름 전화번호, 장애급수 등
사진 출처 - SBS


한국의 장애인 복지는 ‘재활(론자)에 의한 재활(론자)을 위한 재활(론자)’로 근 50년을 보냈습니다. 장애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지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복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가령 장애인을 위한 용품을 만들어도 사용자의 욕구나 의견의 반영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다보니 막상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충족되지 못하는 물건으로 골칫덩어리 취급받기가 일쑤입니다. 당사자의 의견과 참여를 참으로 한결같이 고려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인이 무서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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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사랑의 집 수용 장애인의 모습. 수용된 장애인 모두가 머리카락이 없다
사진 출처 - SBS


이제는 장애인 자신이 우뚝 서서 대상에서 주체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복지에서 인권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가볍고 죽어있는 존재에서 의미 있고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