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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막말인가?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33
조회
166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최근 전개된 이른바 ‘막말 정치공학’의 중심에 서 있는 대통령 박근혜 씨는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작년 대선 투쟁이 격렬한 시점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대통령 후보로서 그녀가 막말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를 주장하는 상대방 후보인 문재인 씨에게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문재인 씨더러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지, 설사 문재인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지, 혹은 아니면 “제가 사실을 잘못 알았습니다.” 하고서 간단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 책임의 수위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막말’은 현실적인 논리상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어느 정도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역시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임에 틀림없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진실 공방이 이루어지고, 그 진실 여부를 어떻게 주장하는가에 따라 엄청난 이익과 손해가 갈릴 경우, 한쪽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자기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예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검찰에 의해 당시 국정원장의 지휘에 따라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댓글 달기 등을 활용해서 신성한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크게 물들 게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야가 이를 국정조사를 통해 그 진실을 더욱 세세하게 밝혀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뜻을 모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그런데 여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수장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이미 저질러 놓은 막말이 있으니 그 막말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 아예 국정조사라고 하는 국가적인 강력한 조치를 통해 그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집권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방책은 대대적인 물타기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래서 대선 투쟁 때 써서 크게 이득을 본 ‘노무현 대통령 NLL 포기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럼으로써 그야말로 막말의 정치공학이 대대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국정감사의 대상 기관인 국정원의 수장이 자진해서 총대를 메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막말’의 정치 상황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공공기록물이라는 미명 하에 정상회담의 비밀 기록을 노골적으로 공개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예 국정원장 남재준 씨는 그 기록을 보아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 씨가 NLL을 포기했음에 틀림없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이야말로 최고도의 막말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남재준 씨가 주도한 막말의 배후에서 애초 막말을 일삼은 탓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 대통령 박근혜 씨는 ‘침묵’으로써 남재준 씨의 막말 행위를 비호하고 있다. 자신이 내뱉은 막말에 대해 침묵 외에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수하로 하여금 더 큰 막말을 하도록 지시 내지는 방치를 하는 것이 최선의 역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저 귀찮은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칫 ‘부정선거’ 운운하면서 본인의 책임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지게 되면 대대적인 국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정확한 우려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분명 이렇게 집권 세력에 의해 실제의 막말 정치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질펀하게 전개되고 있기에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막말의 원흉인 양 엉뚱하게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귀태’ 운운한 국회의원 홍익표 씨가 원내 대변인의 자리를 자진해서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당 대표인 김한길 씨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손하게’ 사과하고 만 것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으로서는 천만다행의 전술적인 대 성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적반하장, 막말이 말을 먹어치운 꼴이다. 그러니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다. 먹힌 말이 막말을 치고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막말’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막말’은 말 그대로 ‘마지막 말’이다. 그러니까 막말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막말은 앞일을 두고서 함부로 발설되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네 말이 옳다면, 내가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가겠다.”라든가, “이제부터 내가 너와 만나 함께 일한다면, 나는 개 불알 밑으로 난 개자식이다.”라는 식의 말이 막말이다. 예컨대 “만약 국정원 댓글 선거개입이 사실이라면 후보직(혹은 대통령직)을 걸고서 책임을 지겠다.”라는 식의 말이 막말이다. 이러한 막말은 정치인으로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에게 많은 대다수의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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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숙석비서관회의에서 홍익표 민주당 전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 등 최근 '막말' 논란에 대해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홍익표 씨나 이해찬 씨의 발언을 막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막말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막말이라면, 그들의 말이 “만약 이번 국정원의 부정한 선거개입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에서이다. 만약 그들이 그런 뜻으로 발언을 했다면, 막말일 수도 있다. 만약 대통령이 국정원의 부정한 선거개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그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아예 정치적으로 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일체 인정치 않는 행위로 일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쪽이나 여당에서 보이는 반응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말을 막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부친의 치명적인 약점을 꼬집어 비난했다는 이유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대통령인 박근혜 씨 자신도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치사하게도’ 혈통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면서 비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막말이라는 것이다. ‘막말’ 개념에 대한 오인이다. 막말은 말을 점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합성과 논리적인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채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함부로 장담할 때 성립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눈과 귀가 온통 쏠려 있는 현안인 ‘국정원의 부정 선거 개입’에 관련해서 맨 처음 막말을 한 장본인이 오히려 수하의 막말 행위와 자신의 침묵을 동원해 더욱 더 막말의 상황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어찌 강력한 일침을 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과 행동의 일관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확실하게 지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올려 최고의 통치자인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인 그 ‘박근혜’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