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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도 진보도 안 할란다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50
조회
217

박현도/ 종교학자



솔직히 나는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지 알지 못할뿐더러, 세상을 둘로 쫙 나누어보는 언론의 이분법적 시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꼴보수’니, ‘입진보’니 하는 별칭에 까지 이르면 할 말이 더 없어진다. 도대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 지키는 것과 나아가자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어쩜 그리 명확하게들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인권이나 민주화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로 꼽힌다. 그런데 막말로 인권, 민주화는 진보의 대명사 아닌가? 보편적 인권과 보편적 민주화를 이야기하면 아름다운 진보고, 꼭 집어서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를 이야기하면 호전적인 보수인가? 초등학생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어른들이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민감한 정치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더하다. 보수와 진보 이분법은 양반이다. 급기야 홍어까지 등장해서 우리 코가 아니라 가슴을 찌른다. 5·18 광주민주항쟁 희생자 관을 두고 “홍어 택배 대기중”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초특급 “호로자식”이다. 차라리 “절라도(전라도) 깽깽이”가 더 인간적이다. 망자를 두고 “홍어 택배”라니,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는 패륜아다. 말끝마다 홍어 운운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한다. 그들은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이들은 종북이라고 부른다. 특히 종북 민주당을 지지하는 깽깽이들을 이제는 대놓고 종북홍어라고 부른다. 지극히 창조적인 국어사용이라고 상이라도 주어야할까 보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홍어라고 부르는 것이 보수인가? 그게 보수라면 나는 보수 안 할란다. 나는 북한인권, 북한민주화에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권이나 민주화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못 본체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동포가 아니라도 도와야할 사람들이다.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체 하면서 진보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세력으로 간주되는 세력도 싫다. 그래서 나는 진보도 안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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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진보(왼쪽)와 보수단체가 마주 보며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상반된 내용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나는 세간에서 정해준 진보도, 보수도 모두 안 할란다. 종북홍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쓰는 싸가지 없는 자칭 보수도 싫고, 인권, 민주를 줄기차게 외치다가도 북한인권, 북한민주화라는 말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인양 입을 꽉 다물어버리는 자칭 진보도 싫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보수고, 진보란 말인가.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르는 현실을 보면 정신분열증이 올 판이다. 보편적 정의나 기준도 없이 정파끼리 짝을 지어 내 편, 네 편 나누어 보수니, 진보니 하며 마구 이름을 갖다 붙이니 말이다. 상대방을 독재자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라 부르면서 친일행적 비판에 열 올리던 소위 진보들은 자기 조상들의 친일전력은 애써 외면하고 숨겼다. 연좌제는 유신의 산물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부친의 죄를 딸에게 묻는 연좌제를 정적에게 적용하고는 속 시원한 말 했다면서 자화자찬이다. 어디 그뿐이랴. 보수만 논문 표절하는 것처럼 떠들었는데, 진보도 장난 아니게 베꼈다. 얼굴 들기 어렵도록 친일, 표절 소동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는 확인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적어도 친일과 논문 표절에는 보수와 진보 편 가르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만하자. 보수와 진보로 나눠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어차피 둘 다 보편적 정의나 인권에는 눈을 감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에게나 “너 보수지?” “너 진보지?” 하며 다그치듯 묻는 것도 모자라 보수니 진보니 엿장수 마음대로 줄 세우는 짓을 이제는 제발 “쫌” 그만 하자.

이러다간 노예 사회를 해방시키지 못한 예수는 보수, 여성에게 더 많은 계율을 내린 부처도 보수라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 말도 안 되는 보수·진보 노름 그만하고 보편적 정의, 인권, 민주에 대해 이야기하자. 보편 말이다, 보편!
* 뱀꼬리: 제가 보수를 진보보다 먼저 쓴 이유는 한글 자모에서 ‘ㅂ’이 ‘ㅈ’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미리 밝히지 않아 괜히 쓸 데 없이 추리들 하시느라 애쓰게 해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정말 그러셨다면... 오~메, 어짜스까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