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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혀뽑기(이재승 건국대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32
조회
324

이재승/ 건국대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권력은 경제를 닮아 불안과 강박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권력의 강박적 행태들을 연옥의 한 시절로 마냥 감수해야 할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권수정이라는 망측한 틀로 우려스러운 역사관을 강요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금지와 강요 사이에 고통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처벌하는 틀은 참으로 가지가지다. 타인에 대한 모욕, 명예훼손, 심지어 사자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기밀누설, 반국가단체활동의 고무, 찬양, 동조 등이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빈틈없이 틀어막는 법제를 가진 나라가 우리 말고 없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표현행위와 관련하여 대종은 명예훼손 소송이다. 그러나 자유언론이 보장된 나라는 명예훼손을 둘러싼 소송이 빈발하는 나라를 촌스러운 나라로 취급한다. 특히 자유화이후에 서구사회는 동구권국가에 대하여 명예훼손을 둘러싼 소송에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하였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 자유언론을 위하여 사회가 지불해야 할 통행료를 치르지 않는다고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명예와 연관되지 않는 표현행위는 찾기 어렵다. 특히 웬만한 공공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사안에서 개인이 없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공익과 개인의 명예 사이에서는 뭔가 근본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자유언론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죄나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침해하는 비근한 예들이다. 최근에 사이버공간상의 모욕적인 표현을 더욱 간편하게 제한할 수 있도록 개정하려는 시도, 미네르바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죄의 적용시도도 표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권력이 특정한 성향의 표현행위를 겨냥하면 내용, 성질, 방식, 동기 등 갖가지 요소들에 있어서 약간이라도 유사한 수많은 표현행위들을 무더기로 침묵시키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에 이른다. 어느 경우에나 권력에 봉사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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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시스


표현의 자유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미국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의회가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헌법에 부합하는 데에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 수정 제1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선동규제법을 제정하여 반정부적인 표현을 제한하였다. 법원도 나쁜 결과를 야기할 경향이 있는 표현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수정헌법 제1조가 명실상부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일련의 반전론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판결에서 정립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의 이론이었다. 이제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행위도 표현의 자유에 속하게 되었다.

정치적 사상이나 종교적 교의를 선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진리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왔다. 밀튼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진리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여전히 진리에게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도 표현의 자유가 진리발견에 봉사한다거나 오류도 진리를 생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는 진리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진리란 무엇인가? 법정에서 국가가 진리를 규정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다투는 재판은 종교재판과 다를 바가 없다. 억압하는 권력도 진리의 이름으로 불편한 진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한 차원의 비약이 이루어진다. 진리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때 단호하게 표현의 자유를 택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지적 활동의 근원이고, 민주주의의 초석이기 때문에 다른 강제수단을 통해서 억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견은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서, 사상은 사상의 자유 시장을 통해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홈즈(Holmes)와 브랜다이스(Brandeis) 판사가 이를 정식화하였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의 가장 큰 적은 흐리멍덩한 대중과 거칠 것 없이 설치는 국가권력이다. 지난 1년간 사람들은 미네르바에게 이미 신뢰를 보내고 있는데, 그 신뢰도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을 통해 정화되어야 하는 것은 미네르바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독점욕이다. 미네르바의 혀를 뽑아 국가정책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의 제물이 되기 위해 국가가 미네르바에게 낚인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