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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空約)과 새(鳥)정치 (박현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6
조회
154

박현도/ 종교학자



선거철로 들어섰다. 6월 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시끄럽고, 동네 주변도 여러 현수막과 홍보성 광고로 어지럽다. 아파트를 드나드는 어귀에는 선거에 나올 사람이 인사를 하고, 휴일에 좀 쉴라치면 생전 울리지 않는 집전화기가 여론조사에 참여해달라고 따르릉거린다. 앞으로 이러한 모습들이 더하면 더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때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공약이다.
공약을 한자로 쓰면 公約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꼭 지키겠다고 대놓고 공개적으로 하는 약속이다. “뽑아주시면 지금 제가 여러분들께 하는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라는 선거입후보자의 비장한 말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그러나, 울리기만 했지 제대로 약속을 이행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굳이 통계를 내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하다. 이수일에게 한 심순애의 약속처럼 당선 만 되면 公約은 空約이 된다.
요즘 공천을 두고 말들이 많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지난 대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공약사항이었다. 그런데 결국 지키지 못했고, 여당대표가 대국민사과까지 하였고, 야당은 왜 안 지키냐며 대통령 면담까지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추세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우리 정치를 벚꽃에 비유, “선거 때만 되면 마치 벚꽃이 피듯 갖은 공약들이 화려한 색과 향기로 치장되지만 선거가 끝나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그 약속들도 모두 허공에 스러져버리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이야기인데,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축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 준수율은 18%, 노무현 전 대통령은 8%에 불과하단다.
공천폐지를 두고 약속을 지키라는 야당의 속사정도 복잡하다. 공천폐지하려면 당을 해체하라는 강경반대파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당공천폐지의 요체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초의원들이나 단체장에게 끼치는 막강하고도 아주 못된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는 우스운 꼴이 되었다. 사족을 더 붙이자면, 지난 대선 당시 지지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현 야당 공동대표를 사전 약속 없이 찾아갔다가 문전박대 받은 적이 있고, 그때 안철수 대표 측근은 방송에서 “친구 집에 갈 때도 미리 연락하고 가는 거다. 이렇게 오는 것은 퇴로를 주지 않는 압박이다. 예의가 아니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급한 안 대표가 사전 예고도 없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찾아가서 면담을 신청하고 특정기한까지 답을 달라고 요청인지, 통보인지 모를 일을 하고 왔다.
모르겠다. 도대체 새정치가 무엇인지. 민주당으로 당선된 사람이 당선되자마자 몇 달도 안 되어 민주당을 구태의 소산으로 밀어붙이며 새(新)정치한다고 떠나 버린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다시 자신이 욕하던 사람들과 정말 새롭게 정치를 한다. 새정치인지, 새(鳥)정치인지, 아리송하다. 아마도 이들은 자기편이 아니면 다 구정치고, 자기편이면 다 새정치로 보는 모양이다.
바야흐로 선거철. 모두들 이래저래 약속을 깨니 公約은 空約이 아니라 攻約인가보다. 봄이라 그런지 초록(草綠)이 동색(同色)이다. 노안 때문만은 아닌듯하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