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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 자리를 찾으셨나요?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5
조회
163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마이 플레이스(My Place). 박문칠 감독이 7년 여 동안 가족들을 인터뷰해 만든 이 영화는 주인공 네 사람이 각자의 자리 -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 혹은 각자가 있고 싶어 하는 자리를 찾아 떠나고 또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역이민을 온 감독과 여동생은 캐나다와는 너무 다르고 낯선 한국의 정서와 시스템에 혼란을 겪고 상처를 받았다. 자신을 감추기에 능했던 오빠에 비해 그러지 못했던 여동생은 상대적으로 성장과정에서 더 많은 상처를 겪었고, 결국 스무 살 넘어 혼자 캐나다로 떠났다. 그런 여동생이 뱃속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평소 정치계로 진출할 꿈을 가진 아버지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임신해서 돌아온 딸을 못마땅해 하지만, 엄마는 그런 딸과 아이를 별 동요 없이 받아들인다. 결국 소울의 출생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자리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 이 가족은 자신만의 플레이스를 찾아 여전히 이합집산중이다.

이 영화는 여러 층위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사람들에게 던진다. 보는 사람마다 이입되는 주인공이 다르다고들 하는데, 내 경우엔 네 명 모두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조금만 달라도 쉽게 비난하고 배타적으로 구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거나 감싸주지 않아 더 힘들고 외로웠다는 여동생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자신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소울을 키우면서 학교 공부를 하는 그녀의 바쁜 일상은 내 경험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화면 속의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감독이 한 말이 가슴 한 구석에 와 박혔는데, 여동생은 정말 원해서 아이를 가졌고 낳았기 때문에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옆에서 봐도 알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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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씨네21


일류 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영화인이 된 오빠. 여전히 그 결정이 맞는지, 자신의 플레이스를 제대로 찾아가는 과정인지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었던 그는 캐나다에서 소울을 키우면서 자기 자리를 찾은 여동생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다. 그의 결정과 고민을 들여다보면서 또 나를 바라본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찾은 것인가. 정말 원해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건 맞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과 잃거나 놓치게 된 것은 교환가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15년 이상 내 적성에도 맞고 하고 싶어 해온 것이라고 생각해온 일이 요즘엔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나만이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을 텐데, 과연 과감하게 새로운 선택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겨우 공고를 나와 캐나다에 가서 자리를 잡았지만 아내의 결정을 따라 학벌 따지는 한국에 돌아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아빠. 그는 정치계로 진출할 꿈을 접고 새로운 자신의 플레이스를 찾아 몽골로 떠난다. “그런 얘긴 처음 듣는데?”라는 아들의 질문에 “당연하지. 내가 말한 적이 없으니까.”라는 그의 대답은, 나처럼 청년과 장년 시절이 당연히 있었을 내 아빠의 과거와 가족들에게 아직도 말하지 못한 그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된 아버지와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역이민을 결정했던 엄마. 역이민 와서 청소년기에 많은 상처를 입은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그녀의 선택을 사랑으로 받아주는 엄마. 비혼모라는 어려운 결정에 자신이 그녀를 보듬지 않으면, 다시는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엄마. 이렇게 현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 엄마의 마음은 누가 안아주는 건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가장 가깝지만 어쩌면 가장 서로를 모르는 관계. 아니, 가까운지 어떤지는 몰라도 결국엔 무시하지 못하는 이름, 가족. 너무 붙어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내는 줄 모르는 고슴도치 같다고나 할까. 가능하다면, 이 영화의 가족처럼 적당히 간격을 두고 각자의 자리를 찾고 가끔은 뭉쳐서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이상적인 가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그 가능성을 위해서 사람들이 이 가족 같은 고난의 과정을 기꺼이 치를 용기를 갖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가족도 여동생의 임신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오빠의 끈질긴 질문을 통해 가족들 각자 생각하는 시간을 길게 갖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마이 플레이스’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가족들이 마음 한편으로 부럽고 그 용기들에 질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