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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업과 손해배상청구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7
조회
247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제1항에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한다. 보통 노동3권이라 불리는 이 권리의 핵심은 물론 파업으로 대표되는 단체행동권이다. 자신의 노동력 밖에 제공할 것이 없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강한 자본의 힘에 대항해서 집단적으로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파업이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기 위한 몇 가지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체행동의 목적, 수단, 절차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노동현장에서 파업이 이러한 요건들을 충분히 갖춘 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경제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파업의 목적에 정치적인 내용이 담길 수도 있고, 어떤 사정으로 법이 정하는 일련의 쟁의절차를 무시한 채 급박하게 파업에 돌입할 수도 있다. 기업에 근무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렇게 ‘합법파업’을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어떤 분들은 법이 얘기하는 요건과 절차를 모두 지키는 파업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하튼, 만약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불법파업’이 감행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위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합법파업에 대한 민, 형사상의 면책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민, 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적나라한 결과가 그동안 우리가 접해 왔던 파업가담자에 대한 처벌과 가혹한 손해배상청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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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이 2013년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정부와 사측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먼저 형사처벌은 형법 314조의 ‘업무방해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조항은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인데, 파업이 이 때의 위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는 이 범죄는 우선 ‘업무’, ‘위력’, ‘방해’와 같은 개념들이 지나치게 일반적이어서 그 처벌범위가 대단히 넓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조문의 역사를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즉, 이 조항은 본래 노동쟁의를 처벌하기 위한 1864년의 프랑스 형법 414조를 일본이 받아들이면서 그 대상과 방법을 업무와 위력 등으로 바꾼 것인데, 이렇게 처벌대상범위를 확대한 것은 이 범죄가 노동운동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외관을 벗어버리려는 의도와 함께 불법파업을 빠짐없이 처벌하겠다는 노동탄압의 정치적 전략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 조문은 이미 오래 전에 프랑스에서 폐지되었다. 일본에서도 근래에는 쟁의행위에 대해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직 우리만 파업을 형사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셈이 되는데, 따라서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인지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쟁의행위에 대해서 ‘위력’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하기도 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폭행’이나 ‘협박’이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와 같이 그 범위를 더욱 제한하거나, 아니면 아예 노동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단서규정을 두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의 형사책임과는 별개로 사업자는 불법파업을 한 노동조합 자체 혹은 이에 가담한 노동자 개인에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배상액수는 때로 대단히 무거워질 수 있는데, 파업 중 발생한 실제피해에 그 기간 차질을 빚은 생산액수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 개개인에게 이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게 될 터이고, 어떤 사람은 이러한 배상의 위협이 해고보다 더 무섭다고도 한다. 해고가 되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라도 있지만, 가압류를 동반한 배상의 책임은 평생 그 사람을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손해배상청구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일단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청구한 다음 노조를 탈퇴하면 그 대상자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회유가 뒤따르는 것이다. 이런 치졸한 방법은 분명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부정하는 것이지만, 현행 민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온전히 합법적인 것이고 따라서 법적으로는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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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사용자가 실제의 사정을 감안하여, 극히 예외적인 때가 아니라면, 파업에 대한 배상청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적 합의는 사회적, 정치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에게 특별한 권리를 부여한 법 전체의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며, 이미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법이 허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배상청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2014년 4월 현재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이 청구된 사업장은 전국에서 20곳이 넘고, 그 배상액수는 1600억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수 없이 제도적 보완책을 찾아보아야 한다. 파업으로 인한 배상액을 청구액보다 훨씬 낮게 인정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영국의 경우처럼 청구가능액을 법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 또 보다 근본적으로 위에서 본 노동법에서 정한 (합법)파업의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불법파업을 줄이고 노동권을 더욱 넓게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대안들은 제도적인 변화이므로 상당한 논의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여러 이유로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직과 가정파탄, 정신적 우울증과 사회적 삶의 포기로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사회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행히 지난 2월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고 한다. 건설적인 논의와 바람직한 대책,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실천과 결과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