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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동정의 굴레 (위문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3
조회
175

위문숙/ 장애인인권센터 대표



한국에 장애인 복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81년 세계장애인의 해를 맞아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낸 심신장애자복지법과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80년대 국제 사회에서는 장애인의 인권회복이 장애인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임을 알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정권은 이런 인권적 사고로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국제사회에 대해 불온한 정권의 당위성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잠재적 위험 존재인 장애인을 통제하기 위한 시작이었습니다.

복지의 목적은 각 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구조적 특성 등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개인이 누려야할 인간다운 삶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며 실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이 배제된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시설중심의 장애인복지라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의 서비스가 장애인 개인에게 당도해 인간적인 삶의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복지관, 재활기관 등을 통해 전달되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복지전달체계이지 장애인에게 자신의 삶의 통제권은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시스템입니다. 장애인 개개인이 가진 신체적 부실함을 가능하면 정상적으로 돌리는 것이 장애인복지의 최우선 목표라고 생각하는 재활론자와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은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분리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의 입장이 잘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80년대 이후 나타난 한국의 장애인운동은 여러 번의 격동기를 겪었습니다. 80년대 사회변혁의 흐름 속에 나타난 청년장애인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였고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바꾸고 장애인고용촉진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장애인도 인간이라면 누려야하는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2001년 사회기반시설의 미비로 지하철역사에서 장애인이 추락한 사건을 계기로 이동권투쟁은 사회적공감대를 이루어내며 기반시설의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중증장애인도 시설과 집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은 활동보조서비스지원제도를 만들어 예전과는 다른 사회생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동정적 복지서비스와 시설권력자들 사이에서 우리 장애인운동은 많은 것을 이루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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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폭행하고 장애수당 일부를 빼내 직원 해외여행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서울시 한 장애인시설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2014년 현재, 장애인의 삶은 행복한가요? 엊그제도 시설직원의 폭행으로 다리가 부러지고 자신의 국가보조금을 시설에서 횡령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수용시설처럼 외딴 곳에 있는 시설이 아닙니다. 서울시내에 있는 시설입니다. 염전과 양식장에서 가출·실종인 100여명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감금·폭행·임금 체불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업주들이 조사 중입니다. 100여 명 중 지적장애인등 장애인이 24명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몇몇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 아닙니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일상생활에서의 인권유린에 노출되어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산책 중인 장애인이 지역주민으로부터 이유 없는 폭언과 폭행을 당한 지인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음식점에 들어갈 때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빨리 음식점을 나가주길 바라는 사장의 푸념을 듣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인 동생이 회사 상사로부터 상습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는데, 회사를 상대로 하면 해고당할 수 있으니 가해자만 처벌할 수 없냐는 식구들의 상담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가 보장된 것도 아니면서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의견만 있으면 정신장애인을 6개월간 강제 입원(감금)시킬 수 있는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한 위헌 소송은 7번째로 합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2011년 실시된 전국시설인권실태조사 중 서울에 있는 한 시설에 대한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폭행의 흔적은 없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설생활자들은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 보인다”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는 존재는 무기력해집니다. 나의 의식주를 책임져주고 있는 시설장에 대한, 가족에 대한, 나의 일자리를 쥐고 있는 사장에 대한, 내가 음식을 사 먹고 있는 이 음식점에서, 그리고 나와 한 동네에 사는 이름 모를 지역주민에 대한, 얼마 되지 않는 복지서비스에서 탈락될까, 버림받을까 두려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인권은 지금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애인운동은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인권으로의 전환, 당사자의 참여, 지역에서의 자립생활 보장.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시설의 입소자와 지원예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상생활에서의 혐오와 동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지서비스를 중계하는 기관들이 새로운 권력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손쉽게 인권유린과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보호와 온정’의 정서가 ‘인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의 인권은 보호하지 않고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으로 시설과 복지서비스에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에게 여전히 어쩌면 더 절실히 인권이 소중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