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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종교 정체성은 폭력이다 : 종교 정체성을 넘어서 보편적 인권으로 (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2
조회
196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아 센은 「정체성과 폭력」에서 “세계의 무수한 갈등과 만행은 선택이 불가능한 독보적인 정체성이라는 환영을 통해 유지된다. 증오심을 구축하는 기술은 다른 관계들을 압도하는 호전적인 정체성의 형태를 띤다. 정체성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것도 닥치는 대로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은 현재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협상자들에게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책은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폭력적인 추방과 배제 위협으로 작용한다.

지난달 26일자 팔레스타인 신문 알 쿠드스(Al-Quds)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협상자들과의 회동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완전히 채택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을 유대국가”로 인정하라는 위협에 대답하여, 팔레스타인 알 쿠드스 대학(Al-Quds University)교수는 페이스 북에서 “전략적으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이 집단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특정한 정체성 규정이 폭력과 직결된다.”라는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을 현실적으로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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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회담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 달 25일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Haaretz)는 이스라엘 의회가 무슬림들과 기독교 아랍인들을 구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것은 기독교인들을 이스라엘 사회 안으로 포섭하는 반면, 무슬림들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하였다. 비판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종교 정체성을 활용하여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분할 통치하기 위한 이스라엘 전략의 일환이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팔레스타인 전통문화를 공유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중에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무슬림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의회는 종교 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들을 탈 아랍화함으로써 무슬림들과 분리시키려는 ‘분할통치 정책’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분할통치 정책은 ‘유대인의 민족고향 회복'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시온주의의 몰역사적인 발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7세기 이전에는 이슬람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조상은 다수가 기독교인이었고, 유대교도였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개종을 통해서 형성된 것처럼, 오늘날 팔레스타인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들도 개종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시온주의가 내세운 ‘유대인 민족고향 회복'이라는 주장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몰역사적인 발상이다.

이렇게 몰역사적인 발상에 토대를 둔 종교 정체성 조작은 20세기 초 영국제국주의 중동 분할지배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오늘날 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시온주의자란 ‘예루살렘(시온)을 포함하는 그 주변 지역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영국의 분할 통치 전략에는 유대인 시온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아랍 무슬림 시온주의자들이 협력하여 ‘팔레스타인 토착주민들의 자결권을 희생’시키면서 ‘유대 시온주의 국가 건설’에 동의하였다. 그 보답으로 무슬림 시온주의자들 역시 영국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아 하심 왕국들(요르단, 이라크)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1919년 당시 영국의 후원을 받던 메카 통치자(하심가문)의 아들이었던 파이잘 후세인 하시미(1921년– 1933년, 이라크 왕)와 시온주의기구 의장이며, 1948년까지 영국 시민권자였던 하임 와이즈만(1949–1952, 이스라엘 초대대통령) 사이에서 ‘파이잘-와이즈만 협정(1919년 1월 3일)’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의 산파 역할을 하고 통역을 한 인물은 영국군 장교인 T.E 로렌스(일명 아라비아 로렌스는 하심가문을 통솔하여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키는 아랍반란 주도)였다. 이 협정 서문은 아랍인들과 유대 민족 사이에서 고대부터 내려온 인종적 유대를 밝히고 있다(독보적인 유대민족 정체성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코메디다. 아랍인들 중에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이 있다. 유대인들도 기독교인이나 무슬림들과 마찬가지로 인종적으로 너무나 다양하다). 이 협정에서 파이잘 후세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민족 고향’을 건설한다는 1917년의 밸푸어 선언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대규모의 유대 이민과 유대 정착촌 건설에 협력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세계 시온주의기구는 파이잘이 열망하는 아랍국가 건설을 후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협정을 통하여 창출된 하심가-시온주의자 동맹은 오스만 제국의 아라비아 반도 영역을 시온주의 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 해체시키기 위한 영국의 전략이었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영국은 메카의 통치자 하심가문에게 대 아랍 국가를 건설시켜주겠다는 안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1년 11월 이란의 Press TV 보도에 따르면, 192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왕국 창설자 압둘 아지즈 이븐사우드는 영국의 메소포타미아 원정 대장 페리 콕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나는 술탄 압둘 아지즈 이븐사우드다. 나는 가엾은 유대인들이나 비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을 넘겨주는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영국 대표 페리 콕스 경에게 무수히 밝혔다. 나는 결코 영국의 명령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두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역사다.

위의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의 예에서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비롯된 팔레스타인 문제를 주도한 주체는 영국 시온주의자들과 영국인들을 의지해서 국가를 세운 아랍 무슬림 통치자들, 하심가(현 요르단)와 사우드가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4년 현재도 이 통치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안에 따라 이스라엘과 연대한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두 국가 해결, ‘이스라엘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안을 놓고, 이스라엘과 협상을 추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치자들도 이스라엘 점령정책을 추인하는 정도였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교 혹은 종족 정체성으로 편 가르기보다는 보편적인 인권에 토대를 두고, 모든 주민이 평등권을 누리는 국가-사회 건설을 목표로 새로운 해결 방안을 세울 필요가 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해결 방안을 들고 나오는 탁월한 정치세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