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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by Doing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1:01
조회
177

신하영옥/ 광명시민인권센터장



지난 일주일간 태국을 다녀왔다. 도시빈민지역을 방문하고, 스스로 주거문제를 해결해나간 조직가들과 주민들을 만나 뵙고 왔다. 주로 CO(Community Organizer)라 불리는 조직가들은 PO(People Organization)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NGO와는 좀 다른 의미이고, 직접 이슈파이팅을 하기보다는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조직하는 일을 중심으로 한다. 처음 그곳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들은 왜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려 하는지, 무엇을 보고자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왜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세세히 질문하였었다. 어쩌면 무수한 조직이나 모임이 그곳을 방문하지만, 그 이후 뭔가 달라졌다기 보다는 그저 한번 방문하고 말아버리는, 이후에 어떤 활동과도 연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가 느껴졌다. 사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였었다. 그들 조직가 및 주민들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10년 전 필리핀에서 비슷한 주민조직과 조직가들의 활동을 접해본 터였는지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직접 주민들과 조직가들을 만나고부터는 마음이 무거웠다. 진정으로 이들을 통해 나는 무엇을 보고자 왔으며 이 경험이 나의 삶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삶, 실천과 만나지 못하는 경험도 경험이긴 하지만, 이들의 귀중한 시간을 얻어내고, 그들로부터 환대를 받고, 짧은 순간의 만남이었음에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한편 감사하지만 한편 죄스런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쉬운 마음으로 갔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정직처분으로 강제휴가 중에 있는데, 처분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새기게 된 듯하다. 까칠해졌고 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고, 남의 말을 들어주고 있기가 예전에 비해 귀찮다. 한 두 달여간의 짧은 순간에도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짐승마냥 분노를 표출할 곳을 찾거나 나 자신에게로 그 분노를 돌려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이상을 그 지겨운 주거권의 문제로 정부와 지주와 싸우는 그분들의 얼굴에서 나는 평화로움을 보았다. 그리고 행복하냐는 질문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희망이 있어 행복하다는 답변을 들으면서, 운동이 투쟁이 행복할 수도 있음에 경탄했다. 진정으로 그 분들은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그 분들의 개인적인 희망과 꿈은 공동체와 무관하지 않았고, 공동체의 발전과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안전과 행복이 개인들의 비전과 일치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게, 그리고 서로 도우며 함께 마을의 비전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는지, 난 내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와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순간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목적 없이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공동체운운하면서도, 나는 나의 개인적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고, 함께 운운하며 나는 ‘따로’를 꿈꾸어왔다. “따로 또 같이”에서 ‘같이’ 보다는 ‘따로’에 더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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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노숙인 쉼터에서, 그리고 방문한 도시빈민공동체에서 그들은 공동의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었고, 점차로 공동의 생산물을 늘려갈 계획 중에 있다. 그리고 그 주민들 속에는 공동체마다 CO들이 자리하고 있다. 현지 활동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주장한다.

“Learn by Doing", "Creating Culture of helping each other", "Making Alternative plane which is getting benefit for everyone" 더불어 이런 말도 덧붙였다. 한국은 주민조직가 트레이너 교육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실제로 자기들은 현지 주민들 속에서 운동을 하면서 배운다고 한다. 트레이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일단 해 보면서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동감이다. 배움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사장되어버린다. 그리고 배척이 아닌 서로서로 도와주는 문화를 만들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투쟁의 대상이 누가되었든 그것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투쟁하면서 대안보다는 반대를 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본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서로서로의 도움과 신뢰와 대안의 비전덕분에 가능하다. 75세의 주민대표인 할머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더 나은 공동체 주거대책과 그 곳 아이들의 삶의 질의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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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광명지역도 재개발과 맞물려 주거권의 문제가 심한 곳들이 있다. 올 해 주요사업으로 그곳의 주민조직화를 위한 주민조직가훈련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그 전에 중요한 것은 그 곳 주민들로부터의 신뢰를 얻는 것과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다. 새롭게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복귀 후 재계약의 심사가 있긴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라고 우리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주거관련 문제를 해결해나가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한 번 해보는 거다. 그 속에서 희망을 재발견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지 한 번 실험해보는 것이다. 이번에 태국의 주민들로부터 받은 환대와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울린 것처럼, 사람에 대한 감동이 만들어지는 그런 지역 활동을 해보고 싶다. 사람이 싫어지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분노하는 활동이 아니라, 사람들과 해맑게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운동, 활동의 가능성을 태국에서 보았다. 나아가 헝가리 노숙인들을 격리하려는 정책에 맞서 헝가리 대사관앞에서 그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끝내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정책을 전달하고 만 그 실천력을 보면서, 서로 돕는 문화가 국가를 넘어 관철되고 있음을 보면서 말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힘들 때마다 다른 공동체에서 그리고 조직가들이 그들에게 협조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연대와 협조가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국제연대의 실천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연대를 실천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할 때다. 밀양이, 용산이, 강정이, 쌍용차가 연대하였듯이 운동의 분야와 주제를 넘는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파편화된 개인으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자본축적을 강조하고 모든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연대가 필요하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서도 그렇다. 미래의 불안이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하게 지키는 것도 결국 연대와 나눔이다. 그걸 확인해준 것이 이번 태국방문이었다. 실천하면서 배우라는 말도 잊지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