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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과 정치참여 (최정학)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0:57
조회
151

최정학/ 방송대 법학과 교수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주연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 그가 모델로 했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 혹은 그리움, 80년대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아련한 회고 ….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영화가 완전한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만큼, 적어도 당시에 이를 직접 경험하거나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법도 하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런 것이다. 1980년대 초반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부산에서 개업을 한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게 상고를 졸업한 사람이고, 그래서 보통 법률가들이 하지 않는 (부동산이나 세무와 같은) 새로운 법영역을 개척한다. 여하튼, 이를 통해 작지 않은 부를 얻게 된 이 변호사는 요트를 즐기고 마침내 대기업으로부터 일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게 된다. 한데, 서울에 이어 때마침 부산에서 터진 학생들에 대한 ‘용공조작’사건에 자신이 아는 청년이 관련되고, 순수한 정의감으로 변호를 시작한 그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고문과 진술의 조작, 사상 탄압과 그 배후의 정치권력을 마주하게 되어, 결국 이를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30여년이나 지난 일이고, 그래서 20대의 청년들에게는 옛날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를 지닌 정도라지만, 정작 처음에 이 영화의 배급사가 가장 꺼려했던 것은 대중의 ‘정치혐오’ 현상이었다고 한다. 정치의식의 각성과정을 그린 영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사람들이 정치를 싫어하는, 그래서 이런 류의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였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뭘 보여주려 한 것일까. 마치 게임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법정공방, 그 속에서 마침내 승리하는 진실 혹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한계에 굴복하고야 마는 정의. 그런 것인가, 거기에 그치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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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사진 출처 - 씨네21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 영화의 감독은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노가 며칠, 몇 주 가는 건 쉽다는 것이다. 이 분노가 성찰을 통해 몇 년이 지속됐고 … 신념의 공감과 연대가 이분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이 끝났어도, 그래서 한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더 국민의 정치참여는 중요하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이고, 다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변화를 결정하는 것은 늘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정치인이 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프롬(Fromm)이 말하였듯이, 사람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넘어서는 ‘사회적 건강’이라는 것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사회 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회의 주요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실현여부와 관계없이,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이라는 자존감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흔히 말해지듯이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것이고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철도, 의료와 같은 공공사업을 사영화하고 연금과 같은 복지혜택을 축소하며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정을 마구 해대도 말이다.

이런 탓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의 두 대통령은 서로 매우 비슷한 말을 남겼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행동하는 양심”이 민주주의의 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말도 가능하다.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핍박받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변호인, “천만 관객”이라는 변호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